전쟁과 평화 / 제4권 1806년 / 제5장
《전쟁과 평화》 · 제4권 1806년

제5장

《전쟁과 평화》 제4권 5장 삽화

“자, 시작하시오!” 돌로호프가 말했다.

“좋소.” 피에르는 여전히 똑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공포의 기운이 감돌았다. 그토록 가볍게 시작된 일이 이제는 피할 수 없으며, 사람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절로 진행되고 있음이 분명했다.

데니소프가 먼저 경계선으로 나아가 선언했다. “두 분이 화해를 거부했으니 진행하겠습니다. 권총을 드시고, 셋을 세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하나! 둘! 셋!” 그는 화가 난 듯 외치고 옆으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밟아 놓은 길을 따라 차츰 가까워졌고, 안개 속에서 서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계선으로 다가가는 동안에는 언제든 발사할 수 있었다. 돌로호프는 권총을 들지 않은 채 천천히 걸으며, 밝게 빛나는 푸른 눈으로 상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입가에는 평소와 같은 미소 비슷한 것이 떠올라 있었다.

“그러면 아무 때나 쏘면 되는 거요?” 피에르가 말했다. ‘셋’이라는 말이 떨어지자 그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다가 밟아 놓은 길을 벗어나 깊은 눈 속으로 들어섰다. 그는 자기를 쏠까 두렵기라도 한 듯 권총을 오른손에 쭉 뻗어 들고 있었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받치고 싶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왼손은 조심스럽게 뒤로 젖혔다. 여섯 걸음쯤 나아가 길을 벗어나 눈 속에 빠진 피에르는 자기 발을 내려다보았다가 돌로호프를 재빨리 바라보고, 배운 대로 손가락을 굽혀 방아쇠를 당겼다. 그렇게 큰 총성을 예상하지 못했던 피에르는 소리에 몸을 떨고는 자기 반응이 우스운 듯 미소 지으며 멈춰 섰다. 안개 때문에 더욱 짙어진 연기로 잠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두 번째 총성은 들리지 않았다. 돌로호프가 서둘러 걷는 소리만 들렸고, 곧 연기 사이로 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한 손으로 왼쪽 옆구리를 누르고 다른 손에는 축 늘어진 권총을 쥐고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 로스토프가 그에게 달려가 무언가 말했다.

“아니이이!” 돌로호프는 이를 악문 채 중얼거렸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는 비틀거리며 몇 걸음 더 나아가 경계선의 군도까지 이르렀다가 그 곁의 눈 위에 주저앉았다. 왼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는 손을 외투에 닦고 그 손으로 몸을 지탱했다. 찌푸린 얼굴은 창백하게 떨리고 있었다.

“부디……” 돌로호프가 말을 꺼냈지만 처음에는 제대로 발음하지 못했다.

“부디.” 그가 힘겹게 말했다.

피에르는 흐느낌을 가까스로 참으며 돌로호프에게 달려가다가 두 경계선 사이를 막 건너려 했다. 그때 돌로호프가 외쳤다.

“당신 경계선으로 돌아가!” 피에르는 뜻을 알아듣고 자기 군도 옆에 멈춰 섰다. 두 사람 사이에는 겨우 열 걸음밖에 남지 않았다. 돌로호프는 고개를 눈 위로 숙여 눈을 탐욕스럽게 깨물었다. 다시 고개를 들고 몸을 가다듬은 뒤 두 다리를 끌어당겨 앉아, 몸을 단단히 지탱할 자세를 잡았다. 차가운 눈을 빨아 삼켰다. 입술은 떨렸지만 여전히 미소 띤 눈은 남은 힘을 끌어모으는 노력과 분노로 번뜩였다. 그는 권총을 들어 겨누었다.

“몸을 옆으로 돌리십시오! 권총으로 몸을 가리세요!” 네스비츠키가 다급히 외쳤다.

“몸을 가려!” 데니소프마저 상대에게 소리쳤다.

피에르는 연민과 뉘우침이 담긴 부드러운 미소를 지은 채, 팔과 다리를 힘없이 벌리고 넓은 가슴을 돌로호프에게 정면으로 내보이며 슬픈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데니소프와 로스토프와 네스비츠키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총성이 울리고 돌로호프의 성난 외침이 들렸다.

“빗나갔어!” 돌로호프가 외치고는 힘없이 얼굴을 눈에 묻고 쓰러졌다.

피에르는 두 손으로 관자놀이를 감싸 쥐고 돌아서 숲속으로 들어갔다. 깊은 눈을 짓밟으며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중얼거렸다.

“어리석은 짓…… 어리석은 짓! 죽음…… 거짓……” 그는 얼굴을 찡그리며 되풀이했다.

네스비츠키가 그를 붙잡아 집으로 데려갔다.

로스토프와 데니소프는 부상한 돌로호프를 태우고 떠났다.

돌로호프는 눈을 감은 채 썰매에 말없이 누워, 사람들이 묻는 말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스크바에 들어서자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곁에 앉은 로스토프의 손을 잡았다. 로스토프는 완전히 달라진 그의 얼굴에 나타난 뜻밖의 황홀하고 다정한 표정에 놀랐다.

“어때? 몸은 좀 괜찮아?” 로스토프가 물었다.

“나빠!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야, 친구……” 돌로호프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여기가 어디지? 모스크바군. 알아. 나는 아무래도 좋아. 하지만 내가 그 여자를 죽였어, 죽였다고…… 그 여자는 이 일을 견디지 못할 거야! 살아남지 못할 거야……”

“누가?” 로스토프가 물었다.

“내 어머니! 내 어머니, 나의 천사, 내가 숭배하는 천사 같은 어머니!” 돌로호프는 로스토프의 손을 세게 움켜쥐고 울음을 터뜨렸다.

조금 진정한 뒤 돌로호프는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어머니가 자기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면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로스토프에게 먼저 가서 어머니의 마음을 준비시켜 달라고 거듭 애원했다.

로스토프는 부탁받은 대로 먼저 가서, 싸움꾼 돌로호프, 난폭한 돌로호프가 모스크바에서 늙은 어머니와 곱사등이 누이와 함께 살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아들이자 오빠로 지낸다는 사실을 알고 크게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