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제6부 제8장

고백을 향해 걷는 라스콜니코프의 뒤를 소냐가 따른다.
고백을 향해 걷는 라스콜니코프의 뒤를 소냐가 따른다.

그가 소냐의 방에 들어섰을 때에는 벌써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소냐는 하루 종일 끔찍한 불안 속에서 기다렸다. 두냐와 함께 기다렸다. 두냐는 어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소냐는 '이 일을 안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 아침부터 찾아왔었다. 두 여자가 나눈 이야기와 눈물, 서로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는 자세히 전하지 않겠다. 두냐는 이 만남에서 적어도 한 가지 위안을 얻었다. 오빠가 혼자가 되지는 않으리라는 것이었다. 고백을 들고 맨 처음 찾아온 사람이 바로 소냐였다. 사람이 필요했을 때 소냐에게서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운명이 어디로 보내든 소냐는 뒤따라갈 것이다. 두냐는 묻지도 않았지만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소냐를 어떤 경외심으로 바라보기까지 했고, 처음에는 그런 경외 어린 태도로 소냐를 거의 당황하게 했다. 소냐는 울기라도 할 것 같았다. 자신은 도리어 두냐를 바라볼 자격조차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스콜니코프의 방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토록 세심하고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던 두냐의 아름다운 모습은 그때부터 영원히 소냐의 마음에 남아 있었다.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손이 닿지 않는 환상 가운데 하나로.

마침내 두네치카는 견디지 못하고 오빠 방에서 기다리려고 소냐를 떠났다. 오빠가 먼저 그곳에 올 것만 같았다. 혼자가 되자 소냐는 그가 정말 목숨을 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곧 두려움으로 괴로워졌다. 두냐도 같은 것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둘은 하루 종일 온갖 이유를 들어가며 서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번갈아 안심시켰고, 함께 있는 동안에는 더 마음이 놓였다. 이제 헤어지자마자 두 사람 모두 그 생각만 하게 되었다. 소냐는 어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라스콜니코프에게는 두 길, 블라디미르 가도 아니면…… 이 있다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의 허영심과 오만, 자존심과 불신도 알고 있었다. '정말 나약함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이 그를 살게 할 수 있는 걸까?' 마침내 절망적으로 생각했다. 한편 해는 이미 지고 있었다. 소냐는 슬프게 창 앞에 서서 밖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창으로 보이는 것은 이웃집의 회칠하지 않은 두꺼운 벽 하나뿐이었다. 마침내 그 불행한 사람이 죽었다고 완전히 믿게 되었을 때, 그가 방에 들어왔다.

기쁜 외침이 가슴에서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유심히 보자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래, 맞아!” 라스콜니코프가 웃으며 말했다. “네 십자가를 받으러 왔어, 소냐. 네가 직접 나를 네거리로 보내지 않았나. 그런데 막상 일이 닥치니 겁이 났어?”

소냐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말투가 이상했다. 차가운 전율이 온몸을 스쳤지만, 잠시 뒤 그 말투와 말들이 모두 꾸민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말하면서도 구석을 보고, 소냐의 얼굴을 똑바로 보는 것을 피하는 듯했다.

“소냐,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유리하겠다고 판단했어. 사정이 하나 있거든…… 설명하자면 길고, 할 필요도 없어. 그런데 무엇이 화나는지 알아? 지금 그 어리석고 짐승 같은 낯짝들이 나를 에워싸고 눈알을 부라리며, 대답해야만 하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손가락질할 거라는 게 짜증 나…… 퉤! 나는 포르피리에게 가지 않을 거야. 그 사람은 지겨워. 차라리 내 친구 화약에게 가겠어. 얼마나 놀랄까. 나름대로 효과가 크겠지. 좀 더 냉정해야 하는데, 요즘 너무 성마르게 되었어. 믿어지나? 방금 누이가 마지막으로 나를 보려고 돌아보았다는 이유만으로 거의 주먹질하듯 위협했어. 돼지 같은 꼴이지, 이런 상태는! 아, 내가 어디까지 온 거야! 자, 십자가는 어디 있어?”

그는 제정신이 아닌 듯했다. 한자리에 일 분도 가만히 서 있지 못했고, 어떤 것에도 주의를 모으지 못했다. 생각이 생각을 뛰어넘었고 말이 엉켰다. 손이 조금 떨렸다.

소냐가 말없이 서랍에서 십자가 두 개를 꺼냈다. 편백나무 십자가와 구리 십자가였다. 자신에게 십자 성호를 긋고 그에게도 그어 준 뒤, 편백나무 십자가를 목에 걸어 주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짊어진다는 상징이군. 헤헤! 지금껏 내가 고통을 덜 받았다는 듯이! 편백나무 것은 서민들이 쓰는 것이고, 구리 것은 리자베타의 것이니 네가 가지는 거겠지. 어디 보자. 그러니까 그 순간에도…… 몸에 걸고 있었나? 나도 비슷한 것 두 개를 알아. 은 십자가와 작은 성상. 그때 늙은 여자 가슴 위로 던졌지. 지금은 그것들이 어울리겠어. 정말로, 그걸 내가 걸어야 할 텐데…… 하지만 다 쓸데없는 소리야. 할 일을 잊겠네. 어쩐지 정신이 흩어져!…… 소냐, 나는 사실 미리 알려 주려고 왔어. 네가 알고 있으라고…… 그게 전부야…… 그 일 때문에만 왔어. 흠, 하지만 좀 더 많은 말을 할 줄 알았는데. 너도 내가 가기를 바랐잖아. 이제 감옥에 앉아 있겠지. 네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야. 그런데 왜 울어? 너도 그래? 그만해. 그만. 아, 이 모든 것이 너무 괴로워!”

그러나 그에게도 감정이 일어났다. 소냐를 보니 가슴이 조였다. '이 사람은, 이 사람은 왜 이러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자기에게 무엇이라고? 왜 울고, 어머니나 두냐처럼 나를 떠날 채비시켜 주는 거야? 내 보모가 되겠군!'

“성호를 그으세요. 한 번만이라도 기도하세요.” 소냐가 떨리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청했다.

“좋아, 얼마든지! 진심으로 할게, 소냐. 진심으로……”

그러나 그가 하고 싶었던 말은 다른 것이었다.

그는 성호를 몇 번 그었다. 소냐가 숄을 움켜잡아 머리에 둘렀다. 녹색 드라드담 모직 숄이었다. 아마 전에 마르멜라도프가 말한 '집안의' 그 숄이었을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도 그 생각이 스쳤지만 묻지 않았다. 실제로 그는 자신이 몹시 산만하고 어딘지 흉하게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느끼기 시작했다. 그것이 두려웠다. 소냐가 함께 나가려 한다는 것도 갑자기 그를 놀라게 했다.

“왜 그래! 어디 가려고? 있어. 여기 있어! 나는 혼자 갈 거야!” 그가 나약한 짜증으로 외치고, 거의 화를 내며 문으로 향했다. “수행원이 줄줄이 따라올 필요가 뭐 있어!” 나가면서 중얼거렸다.

소냐는 방 한가운데 남았다. 그는 작별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벌써 소냐를 잊었다. 따끔거리고 반항적인 의심 하나가 마음속에서 끓어올랐다.

'정말 이렇게 해야 하나? 정말 그런가?' 계단을 내려가며 다시 생각했다. '아직 멈춰서 모든 것을 다시 고치고…… 가지 않을 수는 없을까?'

그래도 걸었다. 더는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갑자기 분명히 느꼈다. 거리로 나오자 소냐에게 인사하지 않았다는 것이 생각났다. 녹색 숄을 두른 채 그의 호통 때문에 감히 움직이지도 못하고 방 한가운데 남아 있던 모습이 떠올라, 잠깐 멈칫했다. 바로 그 순간 생각 하나가 밝게 번쩍였다. 마지막 타격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지금 그 사람에게 갔지? 볼일이 있다고 했는데, 무슨 볼일? 아무 볼일도 없었어! 간다고 알리려고?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그럴 필요가 어디 있어!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나? 아니잖아, 아니지? 방금 개처럼 쫓아 버렸잖아. 정말 십자가가 필요했던 걸까? 아, 얼마나 비참하게 추락한 거야!

아니야. 그 사람의 눈물이 필요했어.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어! 무엇에라도 매달리고, 시간을 끌고, 사람을 보고 싶었던 거야! 그런 내가 감히 자신을 그렇게 믿고 그런 꿈을 꾸었다니. 가난뱅이, 보잘것없는 놈, 비열한 놈, 비열한 놈!'

그는 운하 둑길을 따라 걸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다리에 이르자 멈칫하더니 갑자기 옆으로 다리를 건너 센나야 광장으로 갔다.

갈급하게 좌우를 살피며 사물 하나하나를 힘주어 바라보았지만, 어느 것에도 정신을 모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빠져나갔다. '일주일 뒤, 한 달 뒤에는 저 죄수 마차에 실려 이 다리를 건너 어디론가 가겠지. 그때는 이 운하를 어떻게 볼까. 지금을 기억해 두면 좋겠는데.' 머릿속을 스쳤다. '저 간판, 그때는 저 글자를 어떻게 읽을까? 여기에는 「Таварищество」라고 쓰여 있네. 저 а를, 잘못 쓰인 а를 기억해 두었다가 한 달 뒤에 바로 저 а를 다시 보자. 그때는 어떻게 볼까?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생각할까?…… 하느님, 지금 내 이런…… 걱정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일까! 물론 이것도 흥미롭기는 하겠지…… 나름대로는…… 하하하!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어린애가 되어 가는군. 나 자신 앞에서 허풍을 떨고 있어. 그런데 왜 나를 부끄럽게 하는 거지? 제기랄, 왜 이렇게 밀어! 나를 민 저 뚱뚱한 사람, 아마 독일인이겠지. 자기가 누구를 밀었는지 알까? 아이를 데리고 구걸하는 여자가 있군. 나를 자기보다 행복하다고 여긴다는 게 흥미로워. 재미 삼아 적선이나 해 볼까. 어라, 주머니에 오 코페이카짜리가 남아 있네. 어디서 났지? 자, 여기…… 받으세요, 아주머니!'

“하느님이 지켜 주시기를!” 거지 여자의 애처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센나야 광장에 들어섰다. 사람들과 부딪치는 것이 불쾌했다. 몹시 불쾌했다. 그런데도 사람이 더 많이 보이는 곳으로 갔다. 혼자 있을 수만 있다면 세상 모든 것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단 일 분도 버티지 못하리라는 것도 스스로 느꼈다. 군중 속에서 술 취한 사내 하나가 추태를 부리고 있었다. 자꾸 춤을 추려는데 옆으로 넘어지기만 했다. 사람들이 둘러섰다. 라스콜니코프는 군중을 비집고 들어가 몇 분 동안 술 취한 사람을 보다가 갑자기 짧게 끊어 웃었다. 잠시 뒤에는 그를 잊었고, 바라보면서도 보지 못했다. 마침내 자기가 어디 있는지도 기억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그러나 광장 한가운데 이르자 갑자기 어떤 충동이 일었다. 한 감정이 단번에 몸과 생각을 통째로 사로잡았다.

소냐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네거리로 가서 사람들에게 절하세요. 땅에도 죄를 지었으니 땅에 입 맞추세요. 그리고 온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하세요. 「나는 살인자입니다!」' 그 말을 떠올리자 온몸이 떨렸다. 그동안, 특히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출구 없는 비애와 불안이 그를 너무도 짓눌렀기에, 그는 이 온전하고 새롭고 충만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가능성 속으로 몸을 던졌다. 발작처럼 갑자기 밀려왔다. 마음속에 불꽃 하나로 붙더니 곧 불길처럼 온몸을 휘감았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녹아내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서 있던 그대로 땅에 엎드렸다……

그는 광장 한가운데 무릎을 꿇고 땅까지 몸을 굽혀, 그 더러운 땅에 기쁨과 행복으로 입 맞추었다. 일어나 다시 한 번 절했다.

“거참, 잔뜩 마셨군!” 곁에 있던 젊은이가 말했다.

웃음이 터졌다.

“얘들아, 저 사람 예루살렘에 가는 거야. 자식들과 고향에 작별하고, 온 세상에 절을 올리고,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와 그 땅바닥에 입 맞추는 거지.” 조금 취한 도시 서민 하나가 덧붙였다.

“아직 젊은 친구인데!” 세 번째 사람이 끼어들었다.

“귀족이군!” 누군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요즘은 누가 귀족이고 아닌지 알 수가 있어야지.”

그 모든 반응과 말들이 라스콜니코프를 붙들었다. 어쩌면 혀끝에서 나올 준비를 하던 '내가 죽였습니다'라는 말은 안에서 멎었다. 그러나 그는 그 외침들을 차분히 견디고, 돌아보지 않은 채 골목을 가로질러 경찰서 쪽으로 곧장 걸었다. 길에서 하나의 모습이 눈앞에 스쳤지만 놀라지 않았다. 그렇게 되어야 하리라는 것을 이미 예감했기 때문이다. 센나야 광장에서 두 번째로 땅에 절할 때, 왼쪽으로 몸을 돌리다가 쉰 걸음쯤 떨어진 곳에 있는 소냐를 보았었다. 광장에 늘어선 목조 가건물 하나 뒤에 숨어 있었다. 그러니까 이 슬픈 행렬 내내 뒤따라왔던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그 순간 단번에, 영원히 깨닫고 느꼈다. 소냐는 이제 언제까지나 자기와 함께 있고, 운명이 어디로 보내든 세상 끝까지라도 따라올 것이다. 마음 전체가 뒤집혔다…… 그러나 벌써 운명의 장소에 도착했다……

그는 제법 힘차게 마당으로 들어갔다. 삼 층으로 올라가야 했다. '우선 올라가자.' 하고 생각했다. 대체로 운명의 순간은 아직 멀고, 시간도 많이 남아 있으며, 많은 것을 더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선처럼 돌아가는 계단에는 또 같은 쓰레기와 껍데기들이 있었다. 집집마다 문이 또 활짝 열려 있었고, 같은 부엌들에서 매캐한 연기와 악취가 풍겼다. 라스콜니코프는 그때 이후 이곳에 온 적이 없었다. 다리가 굳어 감각이 없어지고 무릎이 꺾였지만 걸었다. 잠시 멈춰 숨을 돌리고 몸을 추슬렀다. 사람다운 모습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왜?' 자기 행동의 뜻을 깨닫고 갑자기 생각했다. '어차피 이 잔을 마셔야 한다면 상관없는 것 아닌가? 더 역겨울수록 좋지.' 그 순간 화약, 일리야 페트로비치의 모습이 상상 속에 스쳤다. '정말 그 사람에게 가나? 다른 사람에게는 안 되나? 니코딤 포미치에게 갈 수는 없을까? 지금 돌아서서 서장 집으로 직접 가는 것은? 적어도 집에서 사적으로 끝나겠지…… 아니, 아니야! 화약에게, 화약에게! 마시려면 한꺼번에 다 마셔야 해……'

몸이 싸늘해지고 의식이 거의 흐려진 채 사무실 문을 열었다. 이번에는 사람이 아주 적었다. 문지기 한 사람과 평민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수위는 칸막이 너머로 내다보지도 않았다. 라스콜니코프는 다음 방으로 갔다. '아직 말하지 않아도 될지 몰라.' 생각이 스쳤다. 그곳에서는 평복 프록코트를 입은 서기 하나가 책상 앞에서 무엇인가 쓰려고 자세를 잡고 있었다. 구석에는 다른 서기 하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메토프는 없었다. 니코딤 포미치도 물론 없었다.

“아무도 없습니까?” 라스콜니코프가 책상 앞의 사람에게 물었다.

“누구를 찾으시오?”

“아아아! 소식도 모습도 없더니 러시아 사람 냄새가…… 옛이야기에서 뭐라고 했더라…… 잊었군! 어서 오십시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외쳤다.

라스콜니코프가 떨었다. 앞에 화약이 서 있었다. 세 번째 방에서 갑자기 나온 것이다. '운명이야.' 라스콜니코프가 생각했다. '왜 여기 있는 거지?'

“우리한테 오셨소? 무슨 일로?” 일리야 페트로비치가 외쳤다. 기분이 아주 좋고 조금 들뜨기까지 한 듯했다. “업무 때문이라면 너무 일찍 오셨는데. 나도 우연히…… 하지만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성함이? 뭐였더라? 실례……”

“라스콜니코프입니다.”

“그렇지, 라스콜니코프! 내가 잊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나를 그런 사람으로 여기지는 마시오…… 로디온 로…… 로…… 로디오니치, 맞던가요?”

“로디온 로마니치입니다.”

“맞아, 맞아! 로디온 로마니치, 로디온 로마니치! 그 말을 하려던 거요. 여러 번 알아보기도 했지요. 솔직히 그때 우리가 그렇게 된 뒤로 진심으로 괴로웠소…… 나중에 설명을 듣고 알았지. 젊은 문필가에 학자이기까지 하고…… 말하자면 첫걸음을…… 오, 하느님! 처음부터 색다른 걸음을 걷지 않은 문필가나 학자가 어디 있겠소! 나와 내 아내는 둘 다 문학을 존중하오. 아내는 열광할 정도지!…… 문학과 예술을 말이오! 사람이 고결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재능과 지식과 이성과 천재성으로 얻을 수 있소! 모자라면, 가령 모자가 뭐요? 모자란 납작한 전병 같은 것, 치메르만 가게에서 사면 그만이오. 하지만 모자 밑에 들어 있고 모자로 덮이는 것은 살 수 없지요!…… 사실은 찾아가 해명까지 하고 싶었는데, 당신이 어쩌면…… 그런데 묻지도 않았군. 정말 필요한 일이 있소? 가족이 왔다지요?”

“예, 어머니와 누이동생이요.”

“누이동생을 만나는 영광과 행복도 누렸소. 교양 있고 매력적인 분이더군. 솔직히 그때 우리가 그렇게 흥분했던 것이 유감이오. 뜻밖의 일이었지! 그때 당신이 실신해서 내가 좀 묘한 눈으로 보았던 일은, 나중에 아주 명쾌하게 설명이 되었소! 광신과 맹신이었지! 당신의 분노도 이해하오. 가족이 오셔서 혹시 이사를 하려는 겁니까?”

“아, 아니요. 그냥…… 물어보러 왔습니다…… 자메토프가 여기 있을 줄 알았어요.”

“아, 그렇지! 둘이 친구가 되었다고 들었소. 그런데 자메토프는 이제 여기 없소. 늦었지요. 알렉산드르 그리고리예비치를 잃었소! 어제부터 현원이 아니오. 옮겼지…… 옮기면서 모든 사람과 말다툼까지 했소. 아주 무례하게…… 경솔한 풋내기, 그뿐이오. 장래성도 있었는데, 우리 빛나는 젊은이들이 그렇지 뭐! 무슨 시험을 보겠다고 하는 모양인데, 우리는 말하고 허풍 떨기만 좋아하니 시험도 그것으로 끝날 거요. 당신이나 친구인 라주미힌 씨와는 다르지! 당신의 진로는 학문이니, 실패가 와도 흔들리지 않을 거요! 당신에게 삶의 이런 온갖 즐거움은 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지. 금욕자, 수도사, 은둔자!…… 책과 귀에 꽂은 펜, 학문 연구, 거기가 당신 정신이 날아오르는 곳이오! 나도 어느 정도는…… 리빙스턴의 기록을 읽어 보셨소?”

“아니요.”

“나는 읽었소. 그런데 요즘 허무주의자들이 아주 많아졌지. 뭐, 이해는 하오. 요즘이 어떤 시대요? 그렇지만 당신은…… 물론 허무주의자는 아니겠지요! 솔직히, 솔직히 말해 보시오!”

“아, 아닙니다……”

“아니, 내게는 솔직히 말하시오. 거리끼지 말고, 혼자 자신에게 말하듯! 직무는 직무고, 또 다른 것은…… 내가 우정이라고 말하려던 줄 알았소? 아니오, 틀렸소! 우정이 아니라 시민과 인간의 감정, 인간애와 지극히 높으신 분을 사랑하는 마음이지. 나는 공직자이고 직무를 맡고 있을 수 있소. 하지만 언제나 내 안의 시민과 인간을 느끼고 책임을 다해야 하오…… 자메토프 이야기를 꺼내셨지요. 자메토프는 못된 업소에서 샴페인이나 돈강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프랑스식으로 무슨 추문이나 일으킬 사람이오. 당신의 자메토프가 그런 사람이란 말이오! 나는 말하자면 충성과 고상한 감정 때문에 타 버린 사람인지도 모르고, 게다가 지위와 관등과 직책도 있소! 결혼했고 아이들도 있소. 시민과 인간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데, 그자는 대체 누구요? 교육으로 고결해진 사람에게 말하듯 당신에게 말하는 거요. 또 요즘은 이 산파들이 지나치게 많아졌어.”

라스콜니코프가 묻는 듯 눈썹을 들었다.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분명 식탁에서 막 일어난 참이었고, 그의 말들은 대부분 텅 빈 소리로 라스콜니코프 앞에 두드리듯 쏟아졌다. 그래도 일부는 간신히 알아들었다. 그는 묻는 눈길로 바라보며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끝날지 몰랐다.

“머리를 짧게 자른 처녀들 말이오.” 말하기 좋아하는 일리야 페트로비치가 계속했다. “내가 산파라는 별명을 붙였는데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하오. 헤헤! 아카데미에 기어들어 가서 해부학을 배우지. 어디 말해 보시오. 내가 병이 났다고 처녀를 불러 치료해 달라겠소? 헤헤!”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자기 재치에 완전히 만족하여 웃었다.

“지나친 지식욕이라고 해 둡시다. 하지만 배웠으면 그만이지. 왜 남용하오? 왜 못된 자메토프처럼 고결한 사람을 모욕하느냐 말이오. 왜 나를 모욕했는지, 어디 말해 보시오? 또 자살이 얼마나 늘었는지 상상도 못 할 거요. 마지막 돈을 써 버리고 스스로 죽는 거지. 처녀들, 젊은이들, 늙은이들…… 오늘 아침에도 얼마 전에 온 어떤 신사에 관한 보고가 있었소. 닐 파블리치, 이봐, 닐 파블리치! 아까 보고 들어온 그 신사 이름이 뭐였지? 페테르부르크 지구에서 총으로 자살한 사람 말이야?”

“스비드리가일로프.” 다른 방에서 누군가 쉰 목소리로 무심하게 대답했다.

라스콜니코프가 움찔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총으로 자살했다고요!” 그가 외쳤다.

“뭐요! 스비드리가일로프를 아시오?”

“예…… 압니다…… 얼마 전에 왔어요……”

“그렇소. 얼마 전에 왔고, 아내를 잃었고, 행실이 아주 방탕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총으로 자살했소. 상상도 못 할 만큼 요란하게 말이오…… 수첩에 몇 마디 남겼는데, 맑은 정신으로 죽으니 자기 죽음 때문에 아무도 탓하지 말라고 했더군. 돈도 있었다던데. 어떻게 아시오?”

“저는…… 아는 사이입니다…… 누이가 그 집에서 가정교사로 있었어요……”

“아, 아, 그렇군…… 그러면 그 사람에 관해 알려 줄 수 있겠소. 짐작도 못 했소?”

“어제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포도주를 마셨고……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라스콜니코프는 무엇인가가 떨어져 자신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또 창백해진 것 같군요. 여기는 공기가 워낙 탁해서……”

“예, 가야겠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중얼거렸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천만에, 얼마든지! 즐거웠소.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 기쁘오……”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손까지 내밀었다.

“저는 그저…… 자메토프를……”

“알겠소. 알겠소. 즐거웠소.”

“저도…… 기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라스콜니코프가 웃었다.

그는 나왔다. 몸이 흔들렸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두 발로 서 있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오른손으로 벽을 짚으며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책자를 든 문지기 같은 사람이 사무실로 올라오다 자기를 민 것 같았다. 아래층 어디에서는 작은 개가 요란하게 짖었고, 어떤 여자가 밀대로 개를 향해 던지며 소리를 질렀던 것 같았다. 그는 아래로 내려와 마당으로 나갔다. 출구에서 멀지 않은 마당에 소냐가 창백하고 죽은 듯한 얼굴로 서서, 놀랍도록 처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소냐 앞에 멈춰 섰다. 그 얼굴에는 병들고 고통받는 무엇, 절망적인 무엇이 드러났다. 소냐가 두 손을 번쩍 들어 모았다. 그의 입술에는 추하고 망연한 미소가 비집고 나왔다. 잠시 서 있다가 피식 웃고 돌아서서 다시 위로, 사무실로 올라갔다.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 앞에는 조금 전 계단을 올라오며 라스콜니코프를 밀었던 바로 그 사내가 서 있었다.

“아아? 다시 오셨소! 무엇을 두고 갔소?…… 그런데 왜 그러시오?”

라스콜니코프는 입술이 창백하고 시선이 굳은 채 조용히 다가갔다. 탁자 바로 앞까지 가서 한 손으로 짚었다. 무엇인가 말하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뜻을 이루지 못하는 소리만 들렸다.

“몸이 안 좋군. 의자! 여기, 의자에 앉으시오. 앉아요! 물!”

라스콜니코프가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몹시 불쾌하게 놀란 일리야 페트로비치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보며 기다렸다. 물을 가져왔다.

“제가……” 라스콜니코프가 말을 시작했다.

“물을 마시오.”

라스콜니코프는 손으로 물을 밀어 내고, 낮게, 사이를 두되 분명하게 말했다.

“그때 그 관리의 미망인과 그 동생 리자베타를 도끼로 죽이고 돈과 물건을 빼앗은 사람은 저입니다.”

일리야 페트로비치의 입이 벌어졌다. 사방에서 사람들이 달려왔다.

라스콜니코프는 진술을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