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제6부 제4장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신의 과거와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자신의 과거와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아마 알고 계시겠지요. 하기야 내가 직접 이야기하기도 했지만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말을 시작했다. “나는 여기서 빚 때문에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빚은 어마어마한데 갚을 길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지요. 그때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나를 어떻게 꺼내 주었는지까지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고요. 여자가 때로 얼마나 정신없이 사랑할 수 있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정직하고, 상당히 똑똑한 여자였습니다. 배운 것은 전혀 없었지만요. 그런데 바로 그 정직하고 질투 많은 여자가, 무서운 발작과 원망을 수도 없이 거듭한 끝에, 나와 일종의 계약을 맺는 데까지 양보하고는 결혼 생활 내내 그 계약을 지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그 사람은 나보다 나이가 꽤 많았고, 게다가 늘 정향 같은 것을 입에 물고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는 돼지 같은 뻔뻔함도, 또 나름의 정직함도 그만큼은 있어서, 당신에게 완전히 충실할 자신은 없다고 대놓고 말했지요. 그 고백에 그 사람은 발광했지만, 내 거친 솔직함이 어떤 면에서는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미리 이렇게 말하는 걸 보면 속이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겠지.」 뭐, 질투 많은 여자에게는 그것이 첫째지요. 오래 울고 나서 우리 사이에는 이런 구두 계약이 성립했습니다. 첫째, 나는 결코 마르파 페트로브나를 떠나지 않으며 언제까지나 그 남편으로 남는다. 둘째, 허락 없이는 아무 데도 가지 않는다. 셋째, 따로 정해 놓고 만나는 정부는 절대로 두지 않는다. 넷째, 그 대신 마르파 페트로브나는 내가 이따금 하녀들에게 눈길을 주는 것을 허락하되, 반드시 자기가 남몰래 알고 있어야 한다. 다섯째, 우리와 같은 신분의 여자를 사랑하는 일은, 하느님 맙소사, 있어서는 안 된다. 여섯째, 만약에, 부디 그런 일은 없기를 바라지만, 크고 진지한 정열에 사로잡힌다면 마르파 페트로브나에게 털어놓아야 한다. 하지만 마지막 조항에 대해서 그 사람은 줄곧 상당히 마음을 놓고 있었습니다. 똑똑한 여자였으니 나를 진지한 사랑은 할 수 없는 난봉꾼,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자로 볼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런데 똑똑한 여자와 질투하는 여자는 서로 다른 존재이고, 바로 거기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어쨌든 어떤 사람들을 공정하게 판단하려면, 먼저 몇 가지 선입견과 평소 주위에서 보는 사람이며 사물에 익숙해진 습관부터 버려야 합니다. 나는 다른 누구보다도 당신의 판단에 기대를 걸 권리가 있습니다. 당신도 마르파 페트로브나에 관해 우습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이미 많이 들었겠지요. 실제로 그 사람에게는 꽤 우스운 버릇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하건대, 내가 그 사람에게 끼친 무수한 슬픔을 진심으로 후회합니다. 자, 이 정도면 더없이 다정한 남편이 더없이 다정한 아내에게 바치는 제법 그럴듯한 추도사는 되겠군요. 말다툼이 벌어지면 나는 대개 잠자코 있었고 성을 내지 않았습니다. 그런 신사연하는 태도가 거의 언제나 효험이 있었지요. 그 사람은 거기에 영향을 받았고, 심지어 좋아하기까지 했습니다. 나를 자랑스러워할 때도 있었어요. 그래도 당신의 누이동생만은 견디지 못했지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미인을 가정교사로 자기 집에 들일 엄두를 냈을까요! 내 생각에는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열정적이고 감수성이 예민한 여자라서, 아주 간단히 말해 그 사람 자신이 당신의 누이동생과 사랑에 빠진 겁니다. 말 그대로 사랑에 빠졌어요. 하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도 보통 사람이어야지요! 나는 첫눈에 일이 좋지 않게 되리라는 걸 아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겠습니까? 그쪽으로 눈도 들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다가온 사람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였어요. 믿으시든 안 믿으시든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내가 당신 누이 이야기는 늘 입에 올리지도 않고, 자기가 끊임없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사랑에 빠진 듯 칭찬해도 냉담하기만 하다고 화까지 냈다는 것도 믿으시겠습니까? 그 사람이 무엇을 원했는지 나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마르파 페트로브나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내 속사정을 밑바닥까지 다 털어놓았겠지요. 그 사람에게는 우리 집안의 비밀을 닥치는 대로 누구에게나 이야기하고, 누구에게나 끊임없이 내 험담을 하는 불행한 버릇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새 친구를 놓칠 리가 있겠습니까? 두 사람은 나에 관한 이야기 말고는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도 내가 저질렀다는 그 어둡고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들을 모두 알게 되었겠지요…… 장담하건대 당신도 그런 이야기를 벌써 좀 들었을 텐데요?”

“들었습니다. 루진은 당신 때문에 어린아이가 죽기까지 했다고 비난하던데, 사실입니까?”

“제발 그런 시시한 이야기는 그만두십시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역겹다는 듯 짜증스럽게 받아넘겼다. “그런 허튼소리를 그토록 꼭 알고 싶다면, 언제 따로 이야기해 드리지요. 지금은……”

“시골에 있던 당신 하인 이야기도 하더군요. 거기서도 당신이 무슨 일의 원인이 되었다고요.”

“제발 그만합시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다시 말을 끊었다. 이번에는 노골적으로 참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그 하인이 죽은 뒤에도 담뱃대에 담배를 채워 주러 왔다던 바로 그 사람 아닙니까…… 당신이 직접 내게 이야기했잖습니까?” 라스콜니코프는 갈수록 흥분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라스콜니코프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 눈길에 사악한 비웃음이 번개처럼 한순간 번뜩인 것 같았다.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자제하고 몹시 공손하게 대답했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당신도 이런 일에 대단히 관심이 많으시군요. 기회가 생기는 대로 모든 항목에 걸쳐 호기심을 풀어 드리는 것을 내 의무로 알겠습니다. 제기랄! 이렇게 보니 내가 정말 누구에게는 소설 속 인물처럼 보일 수도 있겠군요. 그렇다면 죽은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당신 누이에게 나에 관해 그렇게 수수께끼 같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으니, 내가 그 사람에게 얼마나 고마워해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인상을 주었을지는 감히 판단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내게 유리한 일이었지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본능적으로 나를 혐오했고, 내 모습도 언제나 음울하고 불쾌했지만, 마침내 나를 가엾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구제할 길 없는 인간을 가엾게 여긴 겁니다. 젊은 여자의 마음에 연민이 생기면, 물론 그것이 그 여자에게는 무엇보다 위험합니다. 그러면 꼭 「구해 주고」 싶고, 타일러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고, 다시 살아나게 하고 싶고, 더 고상한 목적을 일깨워 주고 싶고, 새로운 삶과 활동을 시작하도록 거듭나게 하고 싶어지지요. 그런 식으로 무슨 꿈인들 못 꾸겠습니까. 나는 새가 제 발로 그물 속에 날아들고 있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고, 내 쪽에서도 준비했습니다. 로디온 로마니치, 이마를 찌푸리시는 것 같은데요? 괜찮습니다. 아시다시피 별일 없이 끝났으니까요. 제기랄, 내가 술을 얼마나 마시는 거지! 아십니까, 나는 처음부터 줄곧 안타까웠습니다. 어째서 운명은 당신 누이동생을 서기 이삼 세기쯤 소아시아 어느 작은 군주나 총독, 혹은 지방 장관의 딸로 태어나게 하지 않았을까요. 그랬다면 틀림없이 순교를 겪은 여자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겁니다. 달군 집게로 가슴을 지져도 분명 미소를 지었겠지요. 일부러 제 발로 그런 곳에 갔을 겁니다. 사오 세기였다면 이집트 사막으로 들어가 뿌리를 캐 먹고 황홀경과 환상을 양식 삼아 삼십 년을 살았을 테고요. 그 사람은 오로지 그것만 갈망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어서 무슨 고통이든 겪게 해 달라는 거지요. 그 고통을 주지 않으면 창문으로 뛰어내릴지도 모릅니다. 라주미힌이라는 어떤 분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리 분별이 있는 친구라지요. 성만 보아도 그렇군요. 신학교 출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그 사람더러 당신 누이를 잘 지키라고 하십시오. 한마디로 나는 그 사람을 이해한 것 같습니다. 그것이 내 자랑이고요. 하지만 그때, 그러니까 처음 알게 되었을 때에는, 아시다시피 누구나 좀 더 경솔하고 어리석어져서 잘못 보고 엉뚱한 것을 보게 마련이지요. 제기랄, 왜 그렇게 아름다운 겁니까? 내 잘못은 아니잖아요! 한마디로 내게는 걷잡을 수 없는 욕정이 먼저 생겼습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정숙함은 무서울 정도입니다. 듣도 보도 못한 정도예요. 이것은 당신 누이에 관한 사실을 말하는 것이니 잘 들어 두십시오. 그토록 생각이 넓은 사람인데도, 정숙함에서는 어쩌면 병적일 정도이고,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될 겁니다. 그 무렵 우리 집에 파라샤라는 처녀가 하나 왔습니다. 눈이 검은 파라샤였지요. 다른 마을에서 막 데려온 하녀로, 나도 그전에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주 예뻤지만 믿을 수 없을 만큼 어리석었어요. 울음을 터뜨리고 온 마당에 들리도록 소리를 질러서 한바탕 소동이 났지요. 어느 날 점심을 먹은 뒤에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정원 산책길에 혼자 있는 나를 일부러 찾아와서는, 눈을 번뜩이며 불쌍한 파라샤를 내버려 두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이 아마 우리 둘만의 첫 대화였을 겁니다. 나는 물론 그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고, 충격을 받고 부끄러워하는 척하려 애썼습니다. 한마디로 연기를 제법 잘했지요. 서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남모르는 대화, 훈계, 가르침, 부탁, 간청, 심지어 눈물까지 나왔습니다. 믿으시겠습니까, 눈물까지요! 어떤 처녀들은 남을 교화하려는 열정이 그 정도까지 갑니다! 나는 물론 모든 것을 운명 탓으로 돌렸고, 빛에 굶주리고 목마른 척했습니다. 마침내 여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장 위대하고 확실한 수단을 꺼냈지요. 누구를 위해 쓰든 실패한 적이 없고, 예외 없이 모든 여자에게 통하는 수단 말입니다. 잘 아시는 수단이지요. 아첨입니다. 세상에 솔직한 마음을 그대로 말하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없고, 아첨보다 쉬운 일은 없습니다. 진심 어린 말에 백분의 일만큼이라도 거짓된 음이 섞이면 곧 불협화음이 생기고, 그다음에는 소동이 벌어집니다. 하지만 아첨은 마지막 한 음까지 모두 거짓이어도 듣기 좋고, 즐겁지 않게 듣는 법이 없지요. 천박한 즐거움일망정 그래도 즐거움은 즐거움입니다. 아무리 서투른 아첨이라도 적어도 절반쯤은 반드시 진실처럼 여겨집니다. 교양의 정도나 사회 계층을 가리지 않습니다. 베스타의 성화를 지키는 처녀 사제조차 아첨으로 유혹할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지요. 남편과 자식과 자신의 정숙함에 헌신하던 어떤 부인을 유혹한 일이 생각나면 지금도 웃음을 참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재미있고, 얼마나 손이 덜 갔는지! 그 부인은 실제로 정숙한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자기 식으로는요. 내 전술은 시시각각 그 정숙함에 압도되어 그 앞에 엎드리는 것뿐이었습니다. 나는 염치도 없이 아첨했고, 손 한번 잡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아니, 눈길 한번 얻기만 해도, 내가 억지로 빼앗아 냈다고 자책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항했다, 얼마나 저항했는지, 내가 이렇게 타락한 자가 아니었다면 절대로 아무것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 사람은 순진해서 계략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본의 아니게 넘어간 것이다,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다, 어쩌고저쩌고 했지요. 한마디로 나는 얻을 것을 다 얻었는데, 그 부인은 자기가 여전히 순결하고 정숙하며 모든 의무와 도리를 다하고 있고, 그저 아주 뜻밖의 실수로 파멸했을 뿐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마지막에 내가 진심으로 보건대 당신도 나와 똑같이 쾌락을 찾았다고 말했을 때, 그 부인이 얼마나 화를 냈는지 아십니까. 불쌍한 마르파 페트로브나도 아첨에 몹시 약했습니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살아 있을 때 재산 전부를 내 명의로 바꾸어 놓았을 겁니다. 그런데 정말 술을 너무 마시고 말도 너무 하는군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하더라도 화내지는 않으시기 바랍니다. 다만 내가 어리석고 성급해서 일을 다 망쳤습니다. 그전에도 몇 번, 한번은 유난히 심하게,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내 눈빛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믿으시겠습니까? 한마디로 그 눈에 어떤 불길이 갈수록 강하게, 갈수록 거리낌 없이 타올랐고, 그것이 그 사람을 겁먹게 하더니 마침내 혐오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세히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지요. 우리는 갈라섰습니다. 그러고는 내가 또 어리석은 짓을 했습니다. 그 온갖 교화니 개심이니 하는 것을 가장 천박한 방식으로 비웃기 시작했지요. 파라샤가 다시 등장했고, 그 여자뿐만도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소돔이 시작된 겁니다. 아, 로디온 로마니치, 당신 누이동생의 눈이 가끔 어떻게 번뜩일 수 있는지 평생에 단 한 번이라도 보셨다면! 내가 지금 취했고 벌써 포도주를 한 잔이나 마셨다는 것은 아무 상관 없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겁니다. 장담하건대 그 눈길이 꿈에도 나타났습니다. 나중에는 그 사람의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조차 견딜 수가 없었어요. 정말이지 간질 발작이라도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렇게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했지요. 한마디로 화해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불가능했어요. 그때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격분하면 사람이 어디까지 우둔해질 수 있는지! 로디온 로마니치, 격분했을 때에는 아무 일도 벌이지 마십시오. 나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사실은 가난뱅이라는 점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아, 실례했습니다. 그런 뜻으로 말한 것은…… 하지만 같은 뜻을 나타내는 말이라면 결국 마찬가지 아닌가요? 한마디로 자기 손으로 일해 먹고살고, 어머니와 당신까지 부양한다는 점 말입니다. 아, 제기랄, 또 얼굴을 찌푸리시는군…… 그래서 나는 내 돈을 전부 주겠다고 제안하기로 했습니다. 그때도 삼만 루블 정도는 마련할 수 있었지요. 그 대신 나와 함께, 여기 페테르부르크로라도 달아나자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영원한 사랑과 행복, 그 밖의 온갖 것을 맹세했겠지요. 믿으시겠습니까, 나는 그때 그토록 깊이 빠져 있어서, 그 사람이 마르파 페트로브나를 베어 죽이거나 독살하고 자기와 결혼하라고 말했다면 당장 그렇게 했을 겁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당신도 아는 그 파국으로 끝났지요. 그러고 나서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그 비열하기 짝이 없는 법률 사무꾼 루진을 찾아내 거의 혼사를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내가 얼마나 미칠 듯했을지는 당신도 짐작할 겁니다. 사실 그 결혼이란 내가 제안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을 테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렇잖습니까? 보아하니 갑자기 아주 주의 깊게 듣기 시작하셨군요…… 흥미로운 젊은이야……”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조급하게 주먹으로 탁자를 쳤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라스콜니코프는 그가 눈에 띄지 않게 한 모금씩 홀짝여 마신 샴페인 한 잔 내지 한 잔 반이 그를 병적으로 흥분시켰다는 것을 똑똑히 보고, 이 기회를 이용하기로 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몹시 의심스러운 사람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당신이 여기 온 것도 내 누이동생을 노리고서였다는 확신이 드는군요.” 라스콜니코프가 더욱 자극하려고 숨김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에이, 그만두십시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갑자기 정신이 든 듯했다. “내가 말했잖습니까…… 게다가 당신 누이는 나를 질색합니다.”

“예, 질색한다는 것은 나도 확신합니다. 하지만 지금 하는 말은 그게 아닙니다.”

“질색한다고 확신하십니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비웃듯 웃었다. “맞습니다. 나를 사랑하지 않지요. 하지만 남편과 아내 사이, 혹은 애인들 사이에 있었던 일은 결코 장담하지 마십시오. 거기에는 언제나 온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고 오직 두 사람만 아는 구석이 하나씩 있습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나를 혐오하며 바라보았다고 당신이 장담하십니까?”

“당신 이야기에 섞여 나온 몇몇 말과 말투를 보면, 지금도 두냐에 관해 꿍꿍이와 아주 다급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비열한 계획이지요.”

“뭐라고요! 내가 그런 말과 말투를 흘렸습니까?” 스비드리가일로프가 갑자기 더없이 순진한 얼굴로 겁을 먹었다. 자기 계획에 붙은 형용사에는 조금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도 흘리고 있잖습니까. 가령 무엇이 그렇게 두려운 겁니까? 방금 갑자기 무엇 때문에 놀랐지요?”

“내가 두려워하고 놀란다고요? 당신을 두려워한다고요? 오히려 당신이 나를 두려워해야 할 텐데요, 친애하는 친구. 참, 별 터무니없는…… 하긴 취하기는 했군요. 나도 압니다. 하마터면 또 말이 새어 나올 뻔했네. 빌어먹을 술! 이봐, 물 좀!”

그는 병을 움켜잡더니 거리낌 없이 창밖으로 내던졌다. 필리프가 물을 가져왔다.

“다 헛소립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수건을 적셔 머리에 갖다 대며 말했다. “나는 한마디로 당신 기세를 꺾고 그 의심을 모조리 가루로 만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가령 내가 결혼한다는 것을 아십니까?”

“그 이야기도 전에 했습니다.”

“했습니까? 잊었군요. 하지만 그때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신부를 아직 보지도 못했으니까요. 그저 그럴 생각이었지요. 이제는 신부도 있고 일도 다 정해졌습니다. 급한 일이 없기만 하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신을 데리고 그 집에 가겠어요. 조언을 좀 듣고 싶거든요. 아, 제기랄! 이제 십 분밖에 안 남았군. 보십시오, 시계를 보세요. 그래도 이야기는 해 드리지요. 내 결혼이라는 것이 나름대로 흥미로운 물건이니까요. 어디 가십니까? 또 가시려고요?”

“아니요. 이제는 안 갑니다.”

“아예 안 가시겠다고요? 두고 봅시다! 그 집에는 정말 데려가 드리겠습니다. 신부도 보여 드리고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당신도 곧 가셔야 해요. 당신은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레슬리흐를 아십니까? 내가 지금 세 들어 사는 집의 바로 그 레슬리흐 말입니다. 예? 듣고 계십니까? 아니, 무슨 생각을 하시는 겁니까. 바로 그 여자 말입니다. 그 어린애가 물에, 겨울에…… 하는 이야기가 있는 여자요. 듣고 계세요? 듣고 있습니까? 자, 그 여자가 이 모든 일을 꾸며 주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따분해하니 시간이나 좀 즐겁게 보내 보라고 하더군요. 나는 원래 음울하고 따분한 사람입니다. 명랑한 사람 같습니까? 아닙니다. 음울해요. 남에게 해코지는 하지 않고 구석에 앉아 있을 뿐이지요. 어떨 때는 사흘 동안 말을 시켜도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레슬리흐는 사기꾼입니다. 말해 두지요. 속으로 무엇을 생각하느냐 하면, 내가 싫증이 나서 아내를 버리고 떠나면, 그 아내가 자기 손에 들어올 테니 그 여자를 장사에 이용하겠다는 겁니다. 우리 같은 계층이나 그보다 높은 계층을 상대로 말이지요. 그런 아버지가 하나 있다는 겁니다. 퇴직한 관리인데 중풍으로 의자에 앉아 지내고, 다리를 못 쓴 지 삼 년째라고요. 어머니도 있는데 사리 분별이 있는 부인이랍니다. 어머니 말입니다. 아들은 어디 지방에서 근무하지만 도와주지는 않고요.

딸 하나는 시집가서 찾아오지도 않고, 어린 조카 둘까지 맡아 기르고 있답니다. 자기 자식만으로는 모자란다는 듯이 말이지요. 그리고 막내딸은 학교를 마치기도 전에 그만두게 했는데, 한 달 뒤에야 열여섯이 된다니, 한 달 뒤면 시집보낼 수 있다는 겁니다. 나한테 말이지요. 함께 찾아갔습니다. 그 집에서 어찌나 우습던지! 나를 소개했지요. 지주이며 홀아비, 이름 있는 집안 출신으로 이런저런 연줄과 재산을 가진 사람이라고요. 내가 쉰이고 그 애는 아직 열여섯도 안 되었기로서니 어쩌겠습니까? 누가 그런 것을 따진답니까? 하하! 내가 아버지 어머니와 어떻게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보셨어야 합니다! 그때 내 모습을 보려면 돈을 내야 할 정도지요. 아이가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아직 어린 티를 벗지 못했고 몹시 수줍어했습니다. 물론 이야기는 미리 들었겠지요. 나는 그 어린 나이와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습을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나는 집안 사정 때문에 서두른다고 밝혔습니다. 바로 다음 날, 그러니까 그저께 우리에게 혼인의 축복을 내려 주었지요. 그 뒤로 찾아갈 때마다 나는 아이에게 거리낌 없이 행동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내가 남편이 될 사람이니 받아들여야 한다고 일렀고요. 어쩌면 지금처럼 약혼자로 지내는 때가 남편이 된 뒤보다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른바 자연과 진실이지요! 하하! 두어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 아이가 결코 어리석지 않더군요. 아십니까, 얼굴이 라파엘로의 성모를 닮았습니다. 시스티나의 성모는 어딘지 환상적인 얼굴이지요. 슬픔에 잠긴 성스러운 바보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 느낌입니다. 혼인의 축복을 받자마자 그다음 날 천오백 루블어치 선물을 가져갔습니다. 다이아몬드 장신구 한 벌, 진주 장신구 한 벌, 그리고 여러 가지 도구가 들어 있는 이만한 은제 화장품 함이었지요. 그 성모님도 얼굴이 붉어지더군요. 어제는 내 무례한 행동 때문에 아이가 눈물을 흘렸지만, 괴로운 기색을 드러내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비워 우리 둘만 남자, 아이는 처음으로 제 쪽에서 다가와, 순종하고 충실하고 착한 아내가 되겠다, 나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 평생을, 평생의 매 순간을 바치고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 대신 바라는 것은 오직 자기를 존중해 달라는 것 하나뿐이라더군요.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선물도 필요 없어요!」 하고요. 나는 그런 고백을 듣는 것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뭔가 값어치가 있는 일 아닙니까? 자…… 그러니 들어 보세요…… 내 신부를 보러 갑시다…… 다만 지금은 안 됩니다!”

“한마디로 그 끔찍한 나이 차이와 성숙도의 차이에 당신이 끌리는 거군요! 정말 그렇게 결혼할 생각입니까?”

“왜 못 하겠습니까? 반드시 합니다. 누구나 제 살 궁리를 하는 법이고, 자기를 가장 잘 속일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즐겁게 사는 법이지요. 하하! 그런데 당신은 어쩌자고 그렇게 마차 끌채까지 통째로 도덕 속에 들이박는 겁니까? 좀 봐주십시오. 나는 죄 많은 인간입니다. 헤헤헤!”

“그러면서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아이들은 돌보아 주었지요. 하지만…… 하지만 거기에는 당신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군요…… 이제 모두 알겠습니다.”

“나는 원래 아이들을 좋아합니다. 아이들을 아주 좋아해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런 이야기라면 아주 흥미로운 일화를 하나 들려드릴 수 있습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일이지요. 여기 도착한 첫날부터 이런저런 시궁창을 찾아다녔습니다. 칠 년 만이니 달려들 수밖에요. 아마 내가 예전 패거리, 옛 친구와 아는 사람들을 서둘러 만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은 눈치채셨겠지요. 가능하면 오래도록 그들 없이 지낼 생각입니다. 아십니까, 마르파 페트로브나와 시골에서 사는 동안에는 그런 은밀한 장소들이 생각나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는 사람이라면 많은 것을 찾아낼 수 있는 곳들이지요. 제기랄! 사람들은 술에 빠져 있고, 교육받은 젊은이들은 할 일이 없어 실현 불가능한 꿈과 망상 속에서 타들어 가고, 이론에 빠져 망가지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유대인들이 몰려와 돈을 감추고, 나머지는 모두 방탕하게 지내지요. 이 도시는 도착한 첫 순간부터 그 익숙한 냄새를 풍겨 왔습니다. 이른바 무도회라는 곳에 들어갔는데, 지독한 시궁창이었습니다. 나는 시궁창도 좀 더 더러운 쪽을 좋아하지요. 물론 캉캉을 추고 있었는데, 내 시절에도 보지 못했던 춤이었습니다. 그런 방면으로는 진보했더군요. 그러다 보니 열세 살쯤 되는 아이 하나가 말쑥한 차림으로 춤꾼과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도 춤꾼이 하나 있었고요. 어머니는 벽 쪽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이는 그런 춤판에서 수치심을 느끼다가 모욕을 당했다고 여겨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도 춤꾼은 아이를 붙잡아 빙빙 돌리며 공연을 계속했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나는 그런 순간의 우리 관객이 좋습니다. 캉캉 구경꾼이라도 말이지요. 웃으며 소리를 지르더군요. 「잘됐네, 잘됐어! 그러게 아이를 데려오지 말았어야지!」 뭐, 나는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자기 마음을 달래는 논리가 맞든 틀리든 알 바 아니지요! 나는 곧 내가 끼어들 자리를 알아보고 어머니 곁에 앉았습니다. 나도 타지에서 왔는데 이곳 사람들은 어찌나 무례한지, 진정한 가치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마땅한 존경심도 보일 줄 모른다고 말을 꺼냈지요. 돈이 많다는 것을 넌지시 알리고, 내 마차로 데려다주겠다고 했습니다. 집까지 데려다주고 안면을 텄지요. 막 상경해서, 어느 세입자에게 다시 빌린 작은 방에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딸은 나를 알게 된 것을 영광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고 하더군요. 알고 보니 가진 것은 하나도 없고, 무슨 관청에 무슨 일을 청원하러 올라온 것이었습니다. 도움과 돈을 제안했지요. 그날 저녁 모임에도 정말 춤을 가르쳐 주는 곳인 줄 알고 잘못 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가씨의 교육, 프랑스어와 춤을 배우는 데 보탬이 되겠다고 제안했습니다. 몹시 기뻐하며 받아들였고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지금도 알고 지내고요…… 원하면 함께 가 봅시다. 다만 지금은 아닙니다.”

“그만두시오. 그런 비열하고 추잡한 이야기는 그만하란 말이오. 타락하고 천박한 호색한 같으니!”

“우리 실러 선생, 실러 선생이 납셨군! 도덕은 참 어디에나 둥지를 트는군요! 아십니까, 당신이 그렇게 비명을 지르는 것을 들으려고 일부러 그런 이야기를 계속해 드리겠습니다. 아주 즐겁거든요!”

“그렇겠지요. 이 순간 내가 나 자신에게 우습지 않은 줄 압니까?” 라스콜니코프가 사납게 중얼거렸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목청껏 웃었다. 마침내 필리프를 불러 셈을 치르고 일어서기 시작했다.

“참, 취하기도 했군. 이야기는 이쯤 합시다!” 그가 말했다. “즐거웠습니다!”

“당신이야 즐거울 수밖에 없겠지요.” 라스콜니코프도 일어서며 소리쳤다. “닳고 닳은 난봉꾼이 그런 행각을 늘어놓는 일, 그것도 같은 종류의 끔찍한 계획을 마음에 품고서 하는 일이 즐겁지 않을 리가 있습니까?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나 같은 사람에게…… 흥이 더 나겠지요.”

“아, 그렇다면,”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라스콜니코프를 살펴보며 조금 놀란 듯 대답했다. “그렇다면 당신도 제법 냉소적인 사람이군요. 적어도 그럴 자질은 엄청나게 지니고 있습니다.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겠어요. 아주 많은 것을…… 하긴 실행도 많이 할 수 있지요. 자, 이제 그만합시다. 당신과 이야기를 얼마 나누지 못해 진심으로 아쉽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나를 피하지 못할 겁니다…… 조금만 기다려 보십시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술집을 나섰다. 라스콜니코프도 뒤따랐다. 그러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그리 심하게 취한 것은 아니었다. 잠깐 머리에 술이 올랐을 뿐, 취기는 시시각각 가라앉고 있었다. 그는 무엇인가에, 몹시 중요한 일에 마음을 쓰며 얼굴을 찌푸렸다.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그를 흥분시키고 불안하게 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몇 분 동안 라스콜니코프를 대하는 태도도 갑자기 달라져서, 갈수록 거칠고 비웃는 투가 되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모든 것을 알아차렸고, 그 역시 불안했다.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몹시 의심스러워졌다. 그는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인도로 내려섰다.

“당신은 오른쪽으로, 나는 왼쪽으로 갑시다. 반대로 해도 좋고요. 어쨌든 잘 가시오, 나의 기쁨이여. 즐겁게 다시 만날 때까지!”

그는 오른쪽으로, 센나야 광장 쪽을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