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제6부 제1장

추궁과 방황 끝에 라스콜니코프는 고백의 문턱으로 향한다.
추궁과 방황 끝에 라스콜니코프는 고백의 문턱으로 향한다.
라스콜니코프가 도시를 떠돌며 깊은 고립과 불안을 견딘다.
라스콜니코프가 도시를 떠돌며 깊은 고립과 불안을 견딘다.

라스콜니코프에게 기묘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갑자기 눈앞에 안개가 내려앉아, 빠져나갈 길 없는 무거운 고립 속에 가두어 놓은 것 같았다. 한참 뒤에 이 시절을 돌이켜 보면서, 그는 때때로 의식이 흐려졌으며 그런 상태가 간간이 되풀이되다가 마침내 모든 일이 결판나는 순간까지 이어졌던 모양이라고 짐작했다. 당시 자신이 여러 가지를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은 확신했다. 이를테면 어떤 사건들이 일어난 시기나 시간 같은 것들이었다. 적어도 훗날 기억을 되살리고 그 기억을 분명히 이해하려 애쓸 때, 다른 사람들에게 들은 이야기에 기대어 자기 자신에 관한 많은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 사건을 다른 사건과 혼동하기도 했고, 자기 상상 속에서만 일어난 일의 결과라고 어떤 일을 여기기도 했다. 때로는 병적이고 괴로운 불안에 사로잡혔으며, 그 불안은 극심한 공포로 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와 정반대로 무기력에 휩싸인 순간들, 몇 시간, 어쩌면 며칠도 있었음을 기억했다. 죽음을 앞둔 어떤 사람들이 보이는 병적인 무관심과 닮은 무기력이었다. 대체로 이 마지막 며칠 동안에는 자기 처지를 분명하고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에서 스스로 달아나려 했던 것 같았다. 당장 밝혀야 할 절박한 사실들이 특히 무거운 짐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걱정들에서는 그저 벗어나 도망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싶었다. 그 걱정들을 잊는다는 것은 지금의 처지에서는 완전하고도 피할 수 없는 파멸을 뜻했는데도 그랬다.

특히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생각이 그에게 가서 멎어 버렸다고 해도 좋을 듯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숨진 순간, 소냐의 방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내뱉은 말은 너무도 위협적이고 너무도 분명했다. 그 말을 들은 뒤부터 생각의 평소 흐름이 깨진 것 같았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실 때문에 몹시 불안하면서도, 어찌 된 일인지 사정을 밝히려 서두르지는 않았다. 때때로 정신을 차려 보면 도시의 멀고 외진 구석, 초라한 술집 탁자에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거기에 어떻게 왔는지 거의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런 때면 문득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떠올랐고, 이 사람과 되도록 빨리 이야기를 나누어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완전히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도 또렷하고 불안하게 밀려들었다. 한 번은 어디 성문 밖까지 나갔다가, 이곳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를 기다리고 있으며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했다고 상상하기까지 했다. 또 한 번은 새벽이 되기 전 어디 수풀 속 맨땅에서 깨어났다. 어떻게 거기까지 왔는지 거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죽은 뒤 이삼 일 동안 스비드리가일로프를 두 번쯤 만나기는 했다. 거의 언제나 소냐의 방에서였다. 별 목적 없이 들렀다가 거의 언제나 잠깐 만에 나오는 곳이었다. 두 사람은 늘 짧은 말만 주고받았으며, 정작 중요한 문제는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얼마 동안 그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저절로 합의라도 된 듯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시신은 아직 관에 놓여 있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장례를 맡아 분주히 움직였고, 소냐도 몹시 바빴다. 가장 최근에 만났을 때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아이들 문제를 어떻게든 잘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몇몇 인맥을 통해 도움을 줄 사람들을 찾았고, 그 덕분에 세 고아를 모두 곧바로 상당히 괜찮은 시설에 맡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떼어 둔 돈도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돈이 있는 고아는 빈털터리 고아보다 받아 줄 곳을 찾기가 훨씬 쉬웠던 것이다. 소냐 이야기도 조금 했고, 가까운 날에 라스콜니코프를 직접 찾아가겠다고 약속하며 이런 말도 덧붙였다. “의논을 하고 싶습니다. 꼭 이야기를 나누어야 해요. 그런 일들이 있어서…….” 이 대화는 계단 옆 현관에서 이루어졌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라스콜니코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갑자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로디온 로마니치, 왜 이렇게 넋이 나가 계십니까? 정말이에요! 듣고 보고 계시는데 이해하지는 못하시는 것 같군요. 기운을 내세요. 우리 이야기를 나눕시다. 남의 일도 내 일도 너무 많아서 아쉽지만……. 아, 로디온 로마니치.” 그가 불쑥 덧붙였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공기가 필요합니다. 공기, 공기가요……. 무엇보다도!”

그는 계단으로 올라오는 신부와 성당 봉사자를 지나가게 하려고 문득 비켜섰다. 두 사람은 추도예식을 드리러 오는 길이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의 지시로 하루 두 번씩 어김없이 추도예식을 드리고 있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제 갈 길로 갔다. 라스콜니코프는 잠시 서서 생각하다가 신부를 따라 소냐의 방으로 들어갔다.

문간에 섰다. 조용하고 엄숙하고 슬프게 예식이 시작되었다. 죽음을 의식하고 죽음이 곁에 있음을 느끼는 일에는 어릴 때부터 늘 무겁고도 신비롭게 두려운 무엇이 있었다. 추도예식을 들은 지도 오래되었다. 게다가 여기에는 다른 무엇도 있었다. 너무도 무섭고 불안한 무엇이. 그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모두 관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폴레치카는 울고 있었다. 그 뒤에서 소냐가 조용히, 마치 조심스러워하는 것처럼 울며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며칠 동안 저 사람은 나를 한 번도 바라보지 않았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 라스콜니코프는 문득 생각했다. 햇빛이 방을 환하게 비추었다. 향로에서는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신부는 “주여, 안식을 주소서”를 읊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예식이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신부는 축복을 내리고 작별하면서 어딘가 이상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예식이 끝난 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에게 다가갔다. 소냐는 갑자기 그의 두 손을 잡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 짧은 몸짓에 라스콜니코프는 놀라 어리둥절해졌다. 이상하기까지 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나에 대한 반감도, 혐오도 조금도 없고, 손에 자그마한 떨림조차 없다니! 이것은 제 자신을 끝없이 낮추는 일이었다. 적어도 그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소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의 손을 꼭 잡아 주고 나왔다. 마음이 끔찍하게 무거워졌다. 이 순간 어디로든 가서 완전히 혼자 남을 수 있다면, 설령 평생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문제는 요즘 거의 늘 혼자 있으면서도 혼자라는 느낌을 도무지 가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도시 밖으로 나가 큰길을 걷기도 했고, 한 번은 어느 작은 숲에까지 들어갔다. 하지만 외진 곳일수록 누군가가 가까이에 있다는 불안한 느낌이 더 강해졌다. 무섭다기보다는 너무도 성가시게 느껴지는 존재였다. 그래서 서둘러 도시로 돌아와 사람들 틈에 섞이고, 술집과 선술집에 들어가고, 고물시장과 센나야광장으로 갔다. 그곳에서는 오히려 좀 더 편하고, 더 혼자인 듯했다. 해 질 무렵 어느 밥집에서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는 한 시간 내내 앉아서 들었다. 아주 즐거웠던 것까지 기억했다. 하지만 끝 무렵에는 갑자기 다시 불안해졌다. 문득 양심의 가책이 괴롭히기 시작한 것 같았다. '여기 앉아서 노래나 듣고 있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이 이건가!' 그런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불안하게 하는 것이 그것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당장 해결해야 할 무엇이 있었지만, 생각으로 붙잡을 수도 말로 옮길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알 수 없는 실뭉치처럼 감겨 들었다. '아니야, 차라리 어떤 싸움이라도 있었으면! 다시 포르피리라도……. 아니면 스비드리가일로프라도……. 어서 또 무슨 도전이, 누구의 공격이라도 있었으면……. 그래! 그래!' 그는 생각했다. 밥집을 나와 거의 달리듯 걸었다. 두냐와 어머니를 생각하자 갑자기 어째서인지 극심한 공포가 덮쳤다. 바로 그날 밤, 새벽녘에 크레스토프스키섬 수풀 속에서 깨어났던 것이다. 온몸이 떨리고 열이 났다. 집으로 향해 이른 아침에 도착했다. 몇 시간 자고 나자 열은 가셨지만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늦은 시각이었다. 오후 두 시였다.

그날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장례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났다. 참석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스타시야가 먹을 것을 가져왔다. 그는 식욕이 좋아 거의 게걸스럽게 먹고 마셨다. 지난 사흘보다 머리가 맑았고 마음도 더 차분했다. 앞서 공포가 발작처럼 밀려오던 것을 잠깐 이상하게 여기기까지 했다. 문이 열리고 라주미힌이 들어왔다.

“아! 먹고 있군. 그러면 아픈 건 아니네!” 라주미힌이 의자를 가져다 탁자 맞은편에 앉으며 말했다. 불안한 기색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눈에 띄게 짜증스러웠지만 서두르거나 유난히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았다. 무언가 특별하고 단호한 결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할 만했다. “들어 봐.”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시작했다. “너희가 다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지만, 지금 보니 분명히 알겠어.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겠어. 제발 캐물으러 왔다고 생각하지는 마. 관심 없어! 나도 알고 싶지 않아! 지금 네가 그 비밀들을 모조리 털어놓는다고 해도 듣지 않을지도 몰라. 그냥 내버려 두고 가 버릴 거야. 내가 온 건 먼저 한 가지를 직접, 확실히 알아보려는 것뿐이야. 정말 네가 미쳤는지. 있잖아, 네가 어쩌면 미쳤거나 거의 그 지경에 이르렀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어. 그래, 어디에선가 말이야. 솔직히 말하면 나도 그 생각에 아주 많이 기울었어. 첫째는 네 어리석고 더러는 비열하기까지 한 행동들 때문이야.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행동들 말이야. 둘째는 얼마 전 어머니와 누이에게 보인 태도 때문이고. 미친 게 아니라면 괴물이나 비열한 놈만이 네가 한 것처럼 그분들을 대할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는 미친 거지…….”

“그분들을 본 지 오래됐어?”

“방금 보고 왔어. 너는 그 뒤로 못 봤어? 대체 어디를 쏘다니는지 좀 말해 봐. 벌써 세 번이나 찾아왔어. 어머니는 어제부터 심하게 앓고 계셔. 너를 보러 가겠다고 하시는데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말려도 아무 말도 듣지 않으셨어. 「아이가 아프고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면 어머니 말고 누가 도와주겠니?」 하시더군. 그래서 다 같이 여기 왔지. 혼자 가시게 둘 수는 없잖아. 네 방문 앞에 이를 때까지 진정하시라고 부탁했어. 들어와 보니 너는 없고, 어머니는 바로 여기에 앉으셨어. 십 분을 앉아 계셨고 우리는 말없이 옆에 서 있었어. 그러더니 일어나셔서 말씀하셨지. 「집 밖에 나간다는 건 건강하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어머니를 잊었다면, 어머니가 문턱에 서서 동냥하듯 사랑을 구하는 건 체면 없고 부끄러운 일이야.」 집에 돌아가 곧바로 누우셨어. 지금은 열이 나. 「자기 여자에게 쓸 시간은 있구나」 하셔. 그 여자가 소피야 세묘노브나라고 생각하시는 거야. 네 약혼자인지 연인인지, 나도 모르겠지만. 나는 곧바로 소피야 세묘노브나에게 가 봤어. 모두 알아내고 싶었거든. 가서 보니 관이 놓여 있고 아이들은 울고 있었어. 소피야 세묘노브나는 아이들에게 상복을 입혀 보고 있었지. 너는 없었어. 둘러보고 사과하고 나와서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도 그대로 전했어. 그러니까 그런 이야기는 모두 헛소리고 무슨 여자가 있는 게 아니야. 그렇다면 가장 그럴듯한 것은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거지. 그런데 너는 여기 앉아서 사흘이나 굶은 사람처럼 삶은 쇠고기를 처먹고 있군. 물론 미친 사람도 먹기는 먹겠지. 하지만 나하고 말 몇 마디 안 했어도 너는…… 미친 게 아니야! 그건 맹세할 수 있어. 무엇보다 미친 게 아니라고. 그러니 너희 모두 알 바 아니야. 여기엔 무슨 비밀이, 숨기는 것이 있으니까. 나는 너희 비밀 때문에 머리를 싸맬 생각이 없어. 그냥 욕이나 한번 하려고 들렀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을 맺었다. “속 좀 풀려고. 이제 뭘 해야 할지 나도 알아!”

“이제 뭘 하려고?”

“내가 뭘 하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

“조심해. 술독에 빠지겠어!”

“어떻게…… 그걸 어떻게 알았어?”

“그걸 꼭 물어야 알아?”

라주미힌이 잠시 말이 없었다.

“너는 언제나 아주 분별 있는 사람이었어. 한 번도, 한 번도 미친 적이 없었지.” 그가 문득 열을 띠며 말했다. “그래, 맞아. 술을 마실 거야! 잘 있어!” 돌아서서 나가려 했다.

“라주미힌, 그저께였던 것 같은데 누이와 네 이야기를 했어.”

“내 이야기를! 그런데…… 그저께 어디서 만날 수 있었어?” 라주미힌이 갑자기 멈췄다. 얼굴이 조금 창백해지기까지 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천천히, 팽팽하게 뛰기 시작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 왔었어. 혼자 와서 여기 앉아 나하고 이야기했지.”

“그분이!”

“그래,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데……. 그러니까 내 말이야.”

“너는 아주 좋은 사람이고 정직하고 부지런하다고 했어. 네가 누이를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 그건 누이도 알고 있으니까.”

“알고 있다고?”

“당연하지! 내가 어디로 떠나든, 나한테 무슨 일이 생기든, 너는 두 사람을 지켜 주는 섭리 같은 존재로 남겠지. 말하자면 그분들을 네게 맡기는 거야, 라주미힌. 이렇게 말하는 건 네가 누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확실히 알고, 네 마음이 깨끗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야. 누이도 너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걸 알아. 어쩌면 벌써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러니 이제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결정해. 술독에 빠져야 할지, 말아야 할지.”

“로쟈……. 있잖아……. 그러니까……. 아, 제기랄! 그런데 너는 어디로 떠나려고? 봐, 비밀이라면 좋아! 하지만 나는…… 나는 그 비밀을 알아낼 거야……. 틀림없이 무슨 어처구니없고 대단찮은 일일 거고, 전부 너 혼자 벌인 일일 거라고 확신해. 하여간 너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정말 훌륭한 사람이야!”

“바로 그 말을 덧붙이려 했는데 네가 끊었어. 아까 그런 비밀은 알아내지 않겠다고 판단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야. 당분간 내버려 둬. 신경 쓰지 마. 때가 되면 모두 알게 될 거야. 꼭 알아야 할 바로 그때에. 어제 어떤 사람이 내게 말했어. 사람에게는 공기가 필요하다고. 공기, 공기가 필요하다고! 지금 그 사람을 찾아가서 무슨 뜻인지 알아보려 해.”

라주미힌은 생각에 잠기고 흥분한 채 서서 무언가를 헤아렸다.

'정치적인 음모에 가담한 거야! 틀림없어! 무슨 결단을 내릴 참인 거야. 그건 분명해!

다른 설명은 있을 수 없어. 그리고…… 그리고 두냐도 알고 있어…….' 문득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니까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너한테 오는군.” 그가 한 마디씩 끊어 말했다. “그리고 너는 공기가 더 필요하다는 사람을 만나려는 거고. 공기가 필요하다는……. 그렇다면…… 그렇다면 그 편지도…… 그것도 같은 일과 관련이 있겠군.” 혼잣말처럼 결론을 내렸다.

“무슨 편지?”

“오늘 편지를 한 통 받았어. 그걸 보고 몹시 불안해하더군. 아주. 지나칠 만큼. 내가 네 이야기를 꺼내자 그만하라고 했어. 그러고는…… 그러고는 어쩌면 우리가 아주 곧 헤어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하더니, 무슨 일 때문인지 내게 열심히 고맙다고 했어. 그 뒤에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지.”

“편지를 받았다고?” 라스콜니코프가 생각에 잠겨 되물었다.

“그래, 편지. 너는 몰랐어? 흠.”

두 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잘 있어, 로디온. 나는 말이야…… 한때는……. 하여간 잘 있어. 있잖아, 한때는……. 그래, 잘 있어! 나도 가 봐야 해. 술은 안 마실 거야. 이제 그럴 필요 없어……. 어림없지!”

라주미힌은 서둘렀다. 하지만 나가면서 문을 거의 닫았다가 갑자기 다시 열더니, 어딘가 다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참! 그 살인 사건 기억하지? 그 포르피리가 맡은, 노파 말이야. 그 살인자를 찾았어. 스스로 자백했고 증거도 다 내놓았대. 바로 그 일꾼들 중 하나야. 페인트칠하던 사람들 말이야. 생각해 봐. 내가 여기서 그 사람들을 변호했던 것 기억하지? 관리인과 증인 두 사람이 올라갈 때 자기 동료와 계단에서 싸우고 웃던 그 장면을, 의심을 피하려고 일부러 꾸몄다는 게 믿어져? 그런 풋내기가 얼마나 교활하고 얼마나 침착한 건지! 믿기 어렵지만 본인이 다 설명하고 전부 털어놓았대! 내가 제대로 속아 넘어간 거지! 내 생각에는 시치미를 떼고 임기응변으로 빠져나가는 천재, 법의 추궁을 피하는 천재였던 거야. 그러니 특별히 놀랄 것도 없지! 그런 사람이 없으란 법이 있나?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자백했다는 점 때문에 오히려 더 믿게 돼. 더 그럴듯하잖아……. 하지만 그때 내가, 내가 그렇게 속다니! 그 사람들을 감싸느라 얼마나 열을 냈는데!”

“그런데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어? 왜 그토록 관심이 있는 거야?” 라스콜니코프가 눈에 띄게 동요하며 물었다.

“참, 왜 관심이 있느냐니! 그걸 말이라고 해?…… 여러 사람에게 들었는데 포르피리한테도 들었어. 하긴 거의 다 그 사람에게 들었지.”

“포르피리한테?”

“포르피리한테.”

“그래서…… 그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 라스콜니코프가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아주 잘 설명해 줬어. 자기 방식대로 심리적인 설명을 해 줬지.”

“설명했다고? 그 사람이 직접 너한테 설명했어?”

“직접, 직접. 잘 있어! 나중에 더 이야기해 줄게. 지금은 할 일이 있어. 그때…… 한때는 내가 생각하기를……. 됐어. 나중에! 이제 내가 왜 술에 취하겠어? 네가 술 없이도 취하게 해 줬는데. 나 취했어, 로쟈! 지금 술도 안 마시고 취했어. 그럼 잘 있어. 또 올게. 아주 곧.”

라주미힌은 나갔다.

'정치적인 음모에 가담한 거야. 분명해, 분명해!' 계단을 천천히 내려가면서 마침내 확신했다. '누이까지 끌어들였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성격이라면 아주, 아주 그럴 수 있지. 두 사람이 만나기 시작한 거야……. 그러고 보니 그분도 내게 넌지시 말했잖아. 여러 말과…… 몇 마디와…… 암시를 종합하면 꼭 그렇게 돼! 이 뒤엉킨 일을 달리 어떻게 설명하겠어? 흠! 그런데 나는 하마터면……. 아, 하느님, 내가 무슨 생각을 할 뻔했지. 그래, 그건 눈이 멀었던 거야. 나는 그 친구에게 잘못했어! 그때 복도 등불 아래에서 그 친구 때문에 눈이 멀었던 거야. 퉤! 내가 얼마나 더럽고, 천박하고, 비열한 생각을 했는지! 미콜카가 자백하기를 잘했어……. 이제 전의 일도 모두 설명되잖아! 그때 아팠던 것, 이상한 행동을 했던 것, 더 전부터, 대학에 다닐 때부터도 늘 그렇게 침울하고 음울했던 것까지……. 하지만 이번 편지는 무슨 뜻이지? 거기에도 무언가 있을지 몰라. 누구한테 온 편지일까? 짐작 가는 사람이……. 흠. 아니야, 내가 다 알아낼 거야.'

두네치카에 관한 모든 것을 떠올리고 앞뒤를 맞추자 심장이 멎는 듯했다. 그 자리에서 뛰쳐 달려갔다.

라스콜니코프는 라주미힌이 나가자마자 일어나 창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자기 굴 같은 방이 좁다는 것도 잊은 듯 이쪽 구석으로, 저쪽 구석으로 갔다가…… 다시 소파에 앉았다. 온몸이 새로워진 듯했다. 다시 싸움이었다. 그러니 나갈 길이 생긴 것이다!

'그래, 나갈 길이 생겼어! 모든 것이 너무 막히고 꽉 닫혀 고통스럽게 짓눌렀고, 무슨 몽롱한 기운이 덮쳐 왔지. 포르피리 앞에서 미콜카가 나타났던 그 장면부터 출구 없는 비좁은 곳에서 숨이 막히기 시작한 거야. 미콜카의 일이 있고 같은 날에 소냐와의 일이 있었어. 그 대화를 이끌고 끝낸 방식은 미리 상상했던 것과 전혀, 전혀 달랐지……. 그러니까 순식간에, 뿌리째 약해진 거야! 단번에! 그리고 그때 소냐 말에 동의하기까지 했지. 스스로 동의했어. 그런 일을 마음에 품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마음으로 동의했어! 그런데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수수께끼야……. 그 사람 때문에 불안한 것은 사실이지만, 어쩐지 그건 다른 쪽에서 오는 불안이야. 그 사람과도 앞으로 싸워야 할지 몰라. 스비드리가일로프 역시 어쩌면 하나의 온전한 출구가 될 수 있어. 하지만 포르피리는 다른 문제야.

그러니까 포르피리가 라주미힌에게 직접 설명까지 했다는 거지. 심리적으로 설명했다는 거야! 또 그 빌어먹을 심리학을 들이대기 시작했군! 포르피리가? 그날 우리 사이에 있었던 일을 겪고도? 미콜카가 나타나기 전, 단둘이 마주했던 그 장면을 겪고도? 오직 하나밖에 달리 옳게 해석할 길이 없는 그 장면을 겪고도, 포르피리가 단 한순간이라도 미콜카가 범인이라고 믿을까?'

이 며칠 동안 라스콜니코프의 머릿속에는 포르피리와의 장면이 몇 번이나 조각조각 스쳐 지나갔다. 전체를 한꺼번에 떠올린다면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 우리는 그런 말들을 주고받았어. 그런 움직임과 몸짓을 보이고, 그런 시선을 나누었지. 그런 목소리로 말이 오갔고, 그런 지점까지 갔어. 그러고 나서는 미콜카 따위가 그 확신의 뿌리를 흔들 수 없었어. 포르피리는 미콜카의 첫마디와 첫 몸짓만으로도 훤히 알아보았을 텐데. 미콜카가 그걸 흔들 수는 없었지.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라주미힌까지 의심하기 시작했었어! 복도 등불 아래의 그 장면은 헛된 것이 아니었어. 그래서 포르피리에게 달려간 거야……. 그런데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라주미힌을 그렇게 속인 걸까? 미콜카 쪽으로 시선을 돌려서 얻으려는 게 뭐지? 틀림없이 무언가를 꾸미고 있어. 의도가 있어. 그런데 무슨 의도일까? 하긴 그날 아침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어. 너무, 너무 많이. 그런데 포르피리의 소식은 전혀 없었지. 그래, 그건 물론 더 나쁜 일이야…….'

라스콜니코프는 모자를 집어 들고 생각에 잠긴 채 방을 나섰다. 이 모든 일이 있은 뒤 처음으로, 적어도 정신은 온전하다고 느꼈다. '스비드리가일로프와 결판을 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든 되도록 빨리. 그 사람도 내가 먼저 찾아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아.' 그 순간 지친 마음속에서 갑자기 증오가 치솟았다. 어쩌면 스비드리가일로프나 포르피리, 둘 중 누구 하나를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그럴 수 있겠다고 느꼈다. '두고 보자, 두고 보자.' 속으로 되풀이했다.

그런데 현관으로 나가는 문을 열자마자 포르피리와 맞닥뜨렸다. 그가 찾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잠시 굳어 버렸다. 이상하게도 포르피리를 보고 크게 놀라지 않았고 거의 두렵지도 않았다. 다만 움찔했을 뿐, 재빨리, 순식간에 마음의 준비를 마쳤다. '어쩌면 결말이겠군! 하지만 어떻게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왔는데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을까? 엿듣고 있었나?'

“손님은 예상 못 하셨지요, 로디온 로마니치.” 포르피리 페트로비치가 웃으며 외쳤다. “전부터 들르려던 참이었습니다. 지나가다가 오 분쯤 안부나 묻고 가면 어떨까 싶어서요. 어디 가시려던 길입니까? 오래 붙들지는 않겠습니다. 괜찮으시다면 담배 한 대만 피우고요.”

“앉으세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 앉으시지요.” 라스콜니코프가 손님에게 자리를 권했다. 겉으로는 몹시 기쁘고 친근한 얼굴이어서, 제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마지막 남은 것, 바닥의 찌꺼기까지 긁어모으고 있었다! 사람은 때로 강도 앞에서 삼십 분 동안 죽을 만큼 두려워하다가도, 마침내 목에 칼이 닿으면 두려움마저 사라지기도 한다. 그는 포르피리 바로 앞에 앉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바라보았다. 포르피리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담배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자, 말해. 어서 말해.' 라스콜니코프의 가슴에서 이 말이 튀어나오려는 것 같았다. '왜, 왜, 왜 말을 하지 않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