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에필로그 1813-1820년 / 제15장
《전쟁과 평화》 · 제1에필로그 1813-1820년

제15장

《전쟁과 평화》 제1에필로그 15장 삽화

저녁 식사 때 대화는 정치나 모임 이야기가 아니라 니콜라이가 가장 좋아하는 주제인 1812년의 추억으로 향했다. 데니소프가 그 이야기를 꺼냈고 피에르는 유난히 상냥하고 재미있게 응대했다. 가족들은 더없이 다정한 분위기 속에서 헤어졌다.

저녁 식사 뒤 니콜라이는 서재에서 옷을 갈아입고 자신을 기다리던 관리인에게 지시를 내린 다음, 실내복 차림으로 침실에 갔다. 아내는 아직도 탁자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있었다.

“마리야, 무엇을 쓰고 있소?” 니콜라이가 물었다.

마리야 백작부인은 얼굴을 붉혔다. 자신이 쓰던 것을 남편이 이해하거나 좋게 여기지 않을까 봐 두려웠다.

그에게 쓰던 것을 감추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가 뜻밖에 발견하여 이제는 말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기쁘기도 했다.

“일기예요, 니콜라이.” 그녀는 힘차고 굵은 글씨로 가득 찬 푸른색 공책을 건네며 대답했다.

“일기라고?” 니콜라이는 희미하게 비꼬는 투로 되묻고 공책을 집어 들었다.

일기는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다.

 

12월 4일. 오늘 안드류샤(맏아들)는 잠에서 깨어나 옷을 입으려 하지 않았고, 루이즈 양이 나를 불렀다. 아이는 말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위협도 해 보았지만 더욱 화를 낼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맡았다. 아이를 혼자 내버려 두고 유모의 도움을 받아 다른 아이들을 일으키면서, 그 아이에게는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놀란 듯 말없이 있더니, 침대에서 뛰어내려 잠옷 바람으로 내게 달려왔고, 너무 서럽게 울어서 한참 동안 달래지 못했다. 아이를 가장 괴롭힌 것은 나를 슬프게 했다는 사실임이 분명했다. 나중에 저녁이 되어 표를 주자, 또 서럽게 울며 내게 입을 맞추었다. 다정함으로 그 아이에게서 무엇이든 이끌어 낼 수 있다.

 

“‘표’가 무엇이오?” 니콜라이가 물었다.

“큰아이들에게 매일 저녁 어떻게 행동했는지 표시한 표를 주기 시작했어요.”

니콜라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빛나는 눈을 들여다보고는 계속 책장을 넘겨 읽었다. 일기에는 아이들의 성격을 보여 주거나 교육 방법에 관한 일반적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고 마리야가 여긴, 아이들의 삶에서 주목할 만한 일이 모두 적혀 있었다. 대부분 아주 하찮은 사소한 일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고, 처음으로 자기 아이들에 관한 이 일기를 읽는 니콜라이에게도 이제는 사소해 보이지 않았다.

‘5일’ 아래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드미트리가 식탁에서 말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푸딩을 주지 말라고 했다. 아이는 푸딩을 받지 못했지만, 다른 아이들이 먹는 동안 너무나 애처롭고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단것을 주지 않는 벌은 아이의 탐욕만 키우는 것 같다. 이 일을 니콜라이에게 말해야겠다.

니콜라이는 공책을 내려놓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빛나는 눈은 남편이 자신의 일기를 인정할지 못마땅하게 여길지 묻듯 그를 바라보았다. 남편이 인정할 뿐 아니라 아내를 감탄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이렇게 꼼꼼히 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르고, 아예 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고 니콜라이는 생각했다. 그러나 오직 아이들의 도덕적 행복만을 목적으로 하는 이 지칠 줄 모르는 끊임없는 정신적 노력에 마음이 기뻤다. 니콜라이가 자신의 감정을 분석할 수 있었다면, 아내를 향한 한결같고 다정하며 자랑스러운 사랑이 그녀의 정신성과 자신은 거의 닿을 수 없는 고결한 도덕적 세계에서 그녀가 살아가는 모습에 대한 경탄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는 아내의 지성과 선함을 자랑스러워했고, 정신적 세계에서 그녀 곁에 선 자신의 보잘것없음을 인정했다. 그런 영혼을 지닌 아내가 자기에게 속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일부라는 사실에 더욱 기뻐했다.

“전적으로, 정말 전적으로 찬성하오, 내 사랑!” 그는 의미 있는 눈길로 말했다. 잠시 뒤 덧붙였다. “그리고 나는 오늘 잘못했소. 당신은 서재에 없었지. 피에르와 내가 논쟁을 벌였는데…… 그만 화를 냈소. 하지만 그는 도무지 어쩔 수가 없어. 어린애 같단 말이오! 나타샤가 붙들어 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그가 왜 페테르부르크에 갔는지 짐작하겠소? 그 사람들이 무슨 모임을 만들었는데…….”

“네, 알아요.” 마리야 백작부인이 말했다. “나타샤가 말해 주었어요.”

“그렇다면 알겠군.” 니콜라이는 논쟁을 떠올리기만 해도 흥분하여 말을 이었다. “그는 모든 정직한 사람이 정부에 맞서는 것이 의무라고, 충성 맹세와 의무가…… 엉뚱한 것이라고 나를 설득하려 했소. 당신이 거기 없었던 것이 아쉽군. 데니소프와 나타샤, 모두가 나를 몰아세웠소…… 나타샤는 정말 우스워. 피에르를 얼마나 휘어잡는지! 그러면서 논쟁만 시작되면 자기 말은 하나도 없이 피에르의 말을 되풀이할 뿐이야…….” 니콜라이는 가장 가깝고 소중한 사람까지 판단하게 만드는 억누를 수 없는 충동에 굴복하여 덧붙였다. 나타샤에 관해 자신이 한 말을, 아내를 대하는 자기 자신에게 한마디도 바꾸지 않고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은 잊었다.

“그래요, 저도 그것을 알아차렸어요.” 마리야 백작부인이 말했다.

“내가 의무와 맹세가 무엇보다 앞선다고 말했더니, 그는 도대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것을 증명하기 시작했소! 당신이 거기 없었던 것이 아쉬워. 당신이라면 뭐라고 말했겠소?”

“제가 보기에는 당신 말이 전적으로 옳았어요. 나타샤에게도 그렇게 말했어요. 피에르는 모두가 고통받고 고문당하고 타락하고 있으므로 이웃을 도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해요. 물론 그 점에서는 옳아요.” 마리야 백작부인이 말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더 가까이 있는 다른 의무, 하느님께서 친히 가리켜 주신 의무도 있다는 것을 잊고 있어요. 우리 자신을 위험에 내놓을 수는 있어도 아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는 없어요.”

“그래, 바로 그거요! 나도 그에게 꼭 그렇게 말했소.” 니콜라이는 자신이 정말 그렇게 말한 듯 여기며 끼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은 이웃 사랑과 그리스도교라는 자기들 견해만 고집했소. 게다가 어린 니콜라이가 내 서재에 들어와 내 물건을 모조리 부러뜨리고 있는 앞에서 말이오.”

“아, 니콜라이. 있잖아요, 저는 어린 니콜라이 때문에 자주 마음이 쓰여요.” 마리야 백작부인이 말했다. “그 아이는 정말 남다른 아이예요. 내 아이들에게 치우쳐 그 아이를 소홀히 할까 봐 두려워요. 우리에게는 모두 아이와 친족이 있지만, 그 아이에게는 아무도 없어요. 언제나 자기 생각과 단둘이 있지요.”

“그 아이 일로 당신이 자신을 탓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오. 가장 사랑 깊은 어머니가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은 그 아이에게 해 주었고 지금도 하고 있어. 물론 나도 기쁘오. 좋은 아이야, 좋은 아이지! 오늘 저녁 피에르의 말을 넋을 잃은 듯 듣더군. 그런데 이럴 수가.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하러 갈 때 보니 내 책상 위의 물건을 모조리 산산조각 내 놓았지 뭔가. 그러고는 곧바로 자기가 했다고 말했소! 나는 그 아이가 거짓말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좋은 아이야, 좋은 아이지!” 니콜라이는 속으로 니콜라이 볼콘스키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가 좋은 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며 되풀이했다.

“그래도 저는 친어머니와 같지 않아요.” 마리야 백작부인이 말했다. “같지 않다는 것이 느껴져서 괴로워요. 훌륭한 아이지만 저는 그 아이가 몹시 걱정돼요. 또래 친구들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오래가지는 않을 거요. 내년 여름에는 그 아이를 페테르부르크로 데려가겠소.” 니콜라이가 말했다. “그래, 피에르는 언제나 몽상가였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는 자신을 괴롭힌 것이 분명한 서재의 대화로 돌아가 말을 이었다. “아락체예프가 나쁜지,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가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내가 결혼했을 때 빚이 너무 많아 감옥에 갈 지경이었고, 그 일을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어머니가 있었을 때 그런 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었소? 게다가 당신과 아이들과 우리 일이 있잖소. 내가 즐거워서 아침부터 밤까지 농장과 사무실에 붙어 있는 줄 아오? 아니야. 하지만 어머니를 편안히 모시고, 당신에게 진 빚을 갚고, 아이들을 예전의 나 같은 거지로 남겨 두지 않으려면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소.”

마리야 백작부인은 사람이 빵만으로만 사는 것은 아니며 남편이 그런 일을 지나치게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해서는 안 되고,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남편의 손을 잡아 입 맞추었다. 그는 이것을 자기 생각을 인정하고 확인해 주는 표시로 받아들였고, 몇 분 동안 생각한 뒤 다시 소리 내어 생각을 이어 갔다.

“있잖소, 마리야. 오늘 일리야 미트로파니치가…….” 그것은 그의 영지 관리인이었다. “탐보프 영지에서 돌아왔는데, 그곳 숲에 벌써 팔만 루블을 주겠다고 한다는군.”

니콜라이는 열띤 얼굴로 머지않아 오트라드노예를 되살 가능성을 이야기하기 시작했고 덧붙였다. “앞으로 십 년만 더 살면 아이들에게…… 훌륭한 재산을 남겨 줄 거요.”

마리야 백작부인은 남편의 말을 들으며 그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했다. 남편이 이렇게 소리 내어 생각할 때면 이따금 방금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고, 그녀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언짢아한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남편의 말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서 억지로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았으나, 다른 것을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이해하는 모든 것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 이 남자를 향한 순종적이고 다정한 사랑을 느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를 향한 사랑이 더욱 강해지고 거기에 열렬한 다정함까지 더해지는 듯했다. 그녀를 온전히 사로잡아 남편의 계획을 세세히 따라가지 못하게 하는 이 감정 외에도, 남편의 말과 아무 관련 없는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조카를 생각했다. 피에르가 말할 때 소년이 흥분했다는 남편의 이야기가 강렬한 인상을 주었고, 상냥하고 예민한 소년의 여러 특성이 떠올랐다. 조카를 생각하다가 자기 아이들도 생각했다. 그들을 조카와 비교하지는 않았지만, 그 아이들을 향한 감정과 조카를 향한 감정을 비교했고, 어린 니콜라이에게 품은 감정에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을 유감스럽게 느꼈다.

그 차이가 아이들의 나이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길 때도 있었지만, 자신이 그 아이에게 잘못하고 있다고 느꼈다. 마음속으로 더 잘하고 불가능한 일을 이루겠다고, 곧 이 삶에서 그리스도가 인류를 사랑했듯 남편과 아이들, 어린 니콜라이와 모든 이웃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다. 마리야 백작부인의 영혼은 언제나 무한하고 영원하며 절대적인 것을 향해 나아갔으므로 결코 평온할 수 없었다. 육체의 짐을 진 영혼이 품은 높고 은밀한 고통의 엄숙한 표정이 얼굴에 나타났다. 니콜라이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 하느님! 저런 표정을 볼 때마다 두려워하듯, 이 사람이 죽는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성상 앞에 서서 저녁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