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에필로그 1813-1820년 / 제1장
《전쟁과 평화》 · 제1에필로그 1813-1820년

제1장

《전쟁과 평화》 제1에필로그 1장 삽화

7년이 흘렀다. 폭풍에 뒤흔들리던 유럽 역사의 바다는 제 해안 안으로 잦아들어 고요해진 듯했다. 그러나 인류를 움직이는 신비로운 힘들—그 운동 법칙을 우리가 모르기에 신비로운 힘들—은 계속 작용했다.

역사의 바다 표면은 움직이지 않는 듯했지만 인류의 운동은 시간의 흐름처럼 끊임없이 이어졌다. 여러 인간 집단이 생겨났다가 해체되었고, 왕국의 형성과 해체, 민족의 이동이 앞으로 일어나도록 준비되고 있었다.

역사의 바다는 전처럼 발작하듯 이 해안에서 저 해안으로 밀려다니지 않았다. 깊은 곳에서 끓고 있었다. 역사적 인물들은 전처럼 파도에 실려 한 해안에서 다른 해안으로 옮겨가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제자리에서 맴도는 듯했다. 전에 전쟁과 원정과 전투를 명령함으로써 대중의 움직임을 반영하던 군대 수뇌부의 역사적 인물들은 이제 정치적·외교적 결합과 법률과 조약으로 불안한 움직임을 반영했다.

역사가들은 역사적 인물들의 이러한 활동을 ‘반동’이라고 부른다.

역사가들은 이 시기를 다루면서 자신들의 생각에 이른바 반동을 일으킨 역사적 인물들을 엄하게 비난한다. 알렉산드르와 나폴레옹에서 스탈 부인과 포티, 셸링, 피히테, 샤토브리앙 등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유명 인사들은 모두 엄정한 심판대 앞에 세워져 진보에 이바지했는지 반동에 이바지했는지에 따라 무죄 또는 유죄 판결을 받는다.

그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 무렵 러시아에서도 반동이 일어났고, 가장 큰 책임자는 알렉산드르 1세였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바로 이 인물이 치세 초 자유주의 운동의 주된 원인이었고 러시아를 구한 사람이었다.

이제 러시아 문학계에서는 학생 논술가부터 학식 있는 역사가에 이르기까지 알렉산드르가 이 시기 치세에 저지른 잘못을 향해 제 나름의 작은 돌을 던지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는 이렇게도 저렇게도 행동했어야 했다. 이 경우에는 잘했고 저 경우에는 잘못했다. 치세 초기와 1812년에는 훌륭하게 처신했지만 폴란드에 헌법을 주고 신성동맹을 만들며 아락체예프에게 권력을 맡기고 골리친과 신비주의를 총애한 것은 잘못했다. 나중에 시시코프와 포티를 총애한 것도 잘못했다. 현역 군대의 일에 관여하고 세묘노프스키 연대를 해산한 것도 잘못했다.”

역사가들이 인류에게 무엇이 좋은지 안다고 전제한 채 그에게 퍼붓는 모든 비난을 열거하려면 열두 쪽은 필요할 것이다.

이 비난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역사가들이 알렉산드르 1세를 칭찬하는 행동들, 곧 치세 초의 자유주의적 시도와 나폴레옹과의 투쟁, 1812년에 보인 확고함과 1813년 원정은 그들이 그를 비난하는 행동들, 곧 신성동맹과 폴란드 복구, 1820년 이후의 반동이 나온 것과 똑같은 원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그 원천은 그의 인격을 형성한 출생과 교육과 삶의 환경이 아니었던가?

그러한 비난의 본질은 무엇인가?

알렉산드르 1세 같은 역사적 인물은 인간 권력의 가장 높은 정상에 서서 역사의 눈부신 조명을 한몸에 받았다. 권력과 떼어놓을 수 없는 음모와 아첨과 자기기만이라는 가장 강력한 영향에 노출되었다. 삶의 매 순간 유럽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책임을 느꼈다. 그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처럼 개인적 습관과 정념, 선과 아름다움과 진실을 향한 충동을 지닌 살아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 인물이 덕성이 부족하지 않았음에도—역사가들도 그 점을 비난하지는 않는다—50년 전 인류의 행복에 관해, 젊을 때부터 학문, 곧 책과 강의와 거기에서 베껴 적은 내용에 몰두해 온 오늘날의 교수와 똑같은 관념을 갖지 않았다는 데 비난의 본질이 있다.

그러나 50년 전 알렉산드르 1세가 민중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보는 관점에서 잘못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알렉산드르를 심판하는 역사학자 역시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 인류에게 무엇이 좋은지를 보는 관점에서 잘못했다고 판명되리라고 반드시 가정해야 한다. 역사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해마다 새로운 저술가가 나타날 때마다 인류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관한 견해가 변하기 때문에 이 가정은 더욱 자연스럽고 불가피하다. 한때 좋아 보인 것이 10년 뒤에는 나빠 보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더욱이 역사에서 무엇이 나쁘고 좋은지에 관해 서로 완전히 모순되는 견해가 같은 시기에 존재한다. 어떤 이들은 알렉산드르가 폴란드에 헌법을 주고 신성동맹을 만든 것을 칭찬할 만하다고 여기지만 다른 이들은 비난할 만하다고 여긴다.

알렉산드르나 나폴레옹의 활동은 유익하거나 해롭다고 부를 수 없다. 무엇에 유익하고 무엇에 해로웠는지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활동이 누군가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이 좋은가에 관한 그 사람의 제한된 이해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일 뿐이다. 모스크바에 있는 아버지의 집을 보존하는 것, 러시아군의 영광, 페테르부르크를 비롯한 여러 대학의 번영, 폴란드의 자유, 러시아의 위대함, 유럽의 세력 균형, 또는 ‘진보’라고 불리는 특정한 유럽 문화 가운데 무엇이 내게 좋거나 나빠 보이든, 나는 이런 것들 외에도 모든 역사적 인물의 활동에는 내가 알 수 없는 더 일반적인 목적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이른바 과학이 모든 모순을 조화시킬 수 있고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심판할 불변의 선악 기준을 지녔다고 가정해보자. 알렉산드르가 모든 일을 다르게 할 수 있었다고 해보자. 그를 비난하며 인류 운동의 궁극적 목적을 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지도를 받아 오늘날 비난자들이 그에게 주었을 민족성과 자유와 평등과 진보의 강령—내 생각에는 이것들이 전부를 포괄한다—에 따라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해보자. 이 강령이 실현 가능했고 당시 이미 작성되어 알렉산드르가 그대로 행동했다고 가정해보자. 그렇다면 당시 정부에서 우세한 경향에 반대한 모든 사람의 활동, 역사가들의 견해로는 선하고 유익했던 그 활동은 어떻게 되었겠는가? 그들의 활동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삶도 없고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인간의 삶이 이성으로 지배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삶의 가능성은 파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