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1813년에 열린 나타샤와 베주호프의 결혼식은 늙은 로스토프가에서 일어난 마지막 행복한 사건이었다. 같은 해 일리야 로스토프 백작이 죽었다.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가 죽자 가족 집단은 흩어졌다.
전해의 사건들, 곧 모스크바 화재와 피란, 안드레이 공작의 죽음, 나타샤의 절망, 페탸의 죽음, 늙은 백작부인의 슬픔이 늙은 백작의 머리를 연달아 내리쳤다. 그는 이 모든 사건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듯했고, 자신을 끝장낼 타격이 더 오기를 기다리고 부르기라도 하듯 정신적으로 늙은 머리를 숙였다. 때로는 겁먹고 정신이 팔린 듯했고 때로는 부자연스러울 만큼 활기차고 진취적이었다.
나타샤의 결혼 준비는 한동안 그의 마음을 붙들었다. 그는 오찬과 만찬을 마련하고 분명 명랑하게 보이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의 명랑함은 전처럼 다른 사람에게 번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를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의 연민을 불러일으켰다.
피에르와 아내가 떠나자 그는 아주 조용해지고 우울하다고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며칠 뒤 병이 나 침대에 누웠다. 의사가 용기를 북돋아도 처음부터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작부인은 옷도 벗지 않고 그의 베개 곁 안락의자에서 2주일을 보냈다. 백작부인이 약을 줄 때마다 그는 흐느끼며 말없이 아내의 손에 입 맞췄다. 마지막 날에는 재산을 탕진한 것을 용서해달라고 흐느끼며 아내와 그곳에 없는 아들에게 빌었다. 그것이 자신이 깨달은 가장 큰 죄였다. 성찬과 성유성사를 받은 뒤 그는 조용히 죽었다. 이튿날 고인에게 마지막 예를 표하러 온 수많은 지인이 로스토프가가 빌린 집을 가득 채웠다. 그의 집에서 그토록 자주 식사하고 춤추며 그를 그토록 자주 비웃었던 이 모든 지인은 자책과 감동이라는 공통된 감정으로 자신들을 변호하듯 말했다. “어쨌든 어떤 사람이었든 더없이 훌륭한 분이었어. 요즘에는 그런 사람을 만나지 못하지…… 우리 가운데 자기 약점이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백작의 재정 사정이 너무 복잡해져 1년만 더 산다면 어떻게 될지 말할 수 없게 된 바로 그때 그는 뜻밖에 죽었다.
니콜라이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들었을 때 파리의 러시아군에 있었다. 그는 즉시 사직서를 내고 수리되기를 기다리지 않은 채 휴가를 받아 모스크바로 갔다. 백작의 사정은 죽은 지 한 달 뒤 완전히 드러났다. 존재를 아무도 의심하지 못한 작은 빚들의 엄청난 총액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빚은 재산 가치의 두 배에 달했다.
친구와 친척들은 니콜라이에게 상속을 포기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기억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상속 포기라는 말은 들으려 하지 않고 빚을 갚을 의무와 함께 상속을 받아들였다.
그토록 오랫동안 침묵했던 채권자들은 백작이 살아 있는 동안 그의 태평하고 선량한 성품이 막연하지만 강력한 영향을 미쳐 억제되어 있었다. 이제는 모두 즉시 채권 집행에 나섰다. 이런 경우 언제나 그렇듯 누가 먼저 돈을 받을지를 두고 경쟁이 일어났다. 선물로 받은 약속어음을 지닌 미텐카 같은 자들이 이제 가장 가혹한 채권자가 되었다. 니콜라이는 한순간의 여유도 평안도 얻지 못했다. 늙은이를 자기들의 손실이 있다면 그 원인이라고 여기면서도 가엾게 여기는 듯했던 사람들은, 이제 자발적으로 빚을 떠안았고 그 빚을 진 데 아무 잘못이 없음이 분명한 젊은 상속인을 무자비하게 뒤쫓았다.
니콜라이가 시도한 계획은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영지는 경매에서 가치의 절반에 팔렸고 빚의 절반이 여전히 갚지 못한 채 남았다. 니콜라이는 실제로 대가를 받은 정당한 빚이라고 여기는 채무를 갚으려고 매부 베주호프가 내놓은 3만 루블을 받았다. 채권자들이 협박한 대로 남은 빚 때문에 감옥에 들어가는 일을 피하려 다시 관직에 들어갔다.
군대로 돌아갔다면 다음 자리가 비는 즉시 대령이 되었겠지만 돌아갈 수 없었다. 이제 어머니가 삶에서 붙잡을 유일한 사람으로 그에게 매달렸기 때문이다. 전부터 알던 사람들이 있는 모스크바에 머물기 싫었고 관직도 혐오했지만 그곳에서 문관 직책을 받아들였다. 그토록 좋아하던 군복을 벗고 어머니와 소냐와 함께 시프체프 브라조크의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당시 나타샤와 피에르는 페테르부르크에서 살았고 니콜라이의 사정을 명확히 알지 못했다. 니콜라이는 매부에게 돈을 빌린 뒤 비참한 형편을 숨기려 했다. 연봉 1천2백 루블로 자기와 어머니와 소냐를 부양할 뿐 아니라 어머니에게 가난을 알리지 않아야 했으므로 그의 처지는 더욱 힘들었다. 백작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익숙한 호화로운 환경 없이는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아들에게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지 못하고 친구를 데려올 마차—그들에게는 마차가 없었다—를 요구하거나 자기에게 줄 비싼 음식, 아들에게 줄 포도주, 나타샤나 소냐 또는 니콜라이 자신에게 깜짝 선물을 사줄 돈을 계속 요구했다.
소냐는 살림을 맡고 숙모를 시중들며 책을 읽어주고 변덕과 은밀한 악의를 참았다. 또 늙은 백작부인에게 가난을 숨기도록 니콜라이를 도왔다. 니콜라이는 소냐가 어머니를 위해 하는 모든 일 때문에 영원히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고 느꼈고 그의 인내와 헌신에 크게 감탄했지만, 그와 거리를 두려고 애썼다.
니콜라이는 소냐가 너무 완벽하고 비난할 것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마음속에서 그를 책망하는 듯했다. 그는 사람들이 누군가를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지녔지만 니콜라이의 사랑을 불러일으킬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니콜라이는 소냐를 귀하게 여길수록 덜 사랑한다고 느꼈다. 소냐가 편지로 자유를 주었을 때 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이제는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모든 일을 오래전에 잊어 어떤 경우에도 다시 이어질 수 없는 일처럼 행동했다.
니콜라이의 처지는 갈수록 나빠졌다. 봉급에서 조금이라도 남겨둔다는 생각은 꿈으로 판명되었다. 돈을 모으기는커녕 어머니의 요구를 들어주느라 작은 빚까지 졌다.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 친척들이 제안한 대로 부유한 여자와 결혼한다는 생각은 역겨웠다. 또 다른 출구인 어머니의 죽음은 머리에 떠오른 적도 없었다. 그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으며, 불평 없이 자기 처지를 견디는 데서 마음 깊은 곳으로 어둡고 엄격한 만족을 느꼈다. 연민과 모욕적인 도움의 제안을 내놓는 옛 지인들을 피하고 모든 오락과 기분 전환도 피했다. 집에서도 어머니와 카드놀이를 하고 말없이 방을 오가며 파이프를 연달아 피우는 것밖에는 하지 않았다. 자기 처지를 견딜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인 어두운 기분을 조심스럽게 마음속에 간직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