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1에필로그 1813-1820년 / 제2장
《전쟁과 평화》 · 제1에필로그 1813-1820년

제2장

《전쟁과 평화》 제1에필로그 2장 삽화

역사가들처럼 위인들이 러시아나 프랑스의 위대함, 유럽의 세력 균형, 혁명 사상의 확산, 보편적 진보 또는 그 밖의 어떤 특정한 목적을 이루도록 인류를 이끈다고 가정한다면, 우연과 천재라는 개념을 도입하지 않고는 역사의 사실을 설명할 수 없다.

19세기 초 유럽 전쟁의 목적이 러시아의 팽창이었다면 앞선 모든 전쟁과 침공 없이도 그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프랑스의 팽창이 목적이었다면 혁명과 제국 없이도 이룰 수 있었다. 사상의 전파가 목적이었다면 인쇄술이 전쟁보다 훨씬 더 잘 해냈을 것이다. 문명의 진보가 목적이었다면 부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보다 문명을 더 효과적으로 퍼뜨리는 다른 방법이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다른 방식이 아니라 이런 방식으로 일어났는가?

그렇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가 그것을 이용했다.” 역사는 말한다.

그러나 우연이란 무엇인가? 천재란 무엇인가?

우연과 천재라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실체도 가리키지 않으므로 정의할 수 없다. 그 말들은 현상을 이해하는 특정 단계만을 가리킨다. 나는 어떤 사건이 왜 일어나는지 모른다. 알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알려고 하지 않고 우연을 말한다. 나는 평범한 인간 행위자의 범위를 넘어선 결과를 낳는 힘을 본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천재를 말한다.

숫양 무리에게는 목자가 저녁마다 특별한 우리로 데려가 먹이를 주어 다른 숫양보다 두 배나 살찌운 숫양이 천재로 보일 것이다. 이 숫양이 매일 저녁 공동 우리로 들어가는 대신 귀리가 있는 특별한 우리로 가고, 바로 그 숫양이 살로 부푼 뒤 고기로 쓰이려고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은 천재와 일련의 비범한 우연이 놀랍게 결합한 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숫양들이 자기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오직 양으로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일어난다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 자기들에게 일어나는 일에는 이해 범위 밖의 목적도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기만 하면, 살찌운 숫양에게 일어난 일의 통일성과 일관성을 곧바로 알아볼 것이다. 무엇을 위해 살찌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그 숫양에게 일어난 모든 일이 우연히 일어난 것은 아님을 알게 되고, 더는 우연이나 천재라는 개념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즉시 이해할 수 있는 목적을 분별할 수 있다는 주장을 버리고 궁극적 목적은 우리의 이해 밖에 있음을 인정해야만, 역사적 인물의 삶에서 사건들이 이어지는 질서를 분별하고 평범한 인간의 능력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결과를 그들이 낳는 원인을 알아볼 수 있다. 그러면 우연과 천재라는 말은 불필요해진다.

유럽의 격변이 지닌 목적을 알지 못하며, 우리가 아는 것은 사실, 곧 처음에는 프랑스에서, 이어 이탈리아와 아프리카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와 에스파냐와 러시아에서 일어난 살육뿐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또 서쪽에서 동쪽으로,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진 움직임이 이 사건들의 본질이자 목적임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에게서 비범한 능력이나 천재성을 볼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그들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존재 외에는 아무것으로도 여길 수 없게 된다. 이들을 그런 인물로 만든 작은 사건들을 설명하려고 우연에 의지할 필요도 없으며 그 모든 작은 사건이 불가피했음이 분명해질 것이다.

궁극적 목적을 안다는 주장을 버리면, 한 식물에 그 식물이 내는 꽃이나 씨앗보다 더 알맞은 꽃이나 씨앗을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나폴레옹과 알렉산드르가 그들의 모든 선행 조건과 함께 가장 작은 세부까지 자신들이 이루어야 했던 목적에 완벽하게 맞도록 갖춰진 두 사람임을 분명히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