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되기를!

장로가 암자를 비운 지 어느덧 이십오 분 가까이 지나 있었다. 열두 시 반이 훌쩍 넘었지만, 정작 이 모임의 당사자인 드미트리는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거의 잊어버린 듯했고, 장로가 다시 암자로 들어섰을 때는 손님들이 한창 열띤 대화를 나누고 있는 참이었다.
이야기를 주도한 것은 이반과 두 수도사였다. 미우소프도 대화에 끼어들려고 무척 애쓰는 눈치였지만, 이번에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분명히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고, 그의 말은 무시당하기 일쑤였는데, 그럴수록 그는 더욱 신경이 곤두섰다. 그는 전에도 이반과 지적으로 부딪친 적이 있었고, 이반이 자신을 대하는 그 무심한 태도를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유럽의 모든 진보적 사조에서 맨 앞줄에 서 있었는데, 여기서는 신세대가 우리를 아예 무시하는구나.'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만히 앉아 있겠노라 약속했던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실제로 한동안 조용히 있었지만, 옆자리의 미우소프를 곁눈질하며 짓궂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우소프가 곤경에 처한 것을 즐기고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오래전부터 묵은 원한을 갚을 기회를 기다려 왔던 터라, 이제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는 그의 어깨 너머로 몸을 기울여 다시 속삭이며 놀려대기 시작했다.
"아까 그 '정중한 입맞춤' 뒤에 왜 자리를 뜨지 않으셨습니까? 어째서 이런 볼썽사나운 자리에 계속 남아 계시기로 하셨습니까? 모욕당하고 억울한 기분이 들어서, 자신의 지성을 과시해서 체면을 세우려고 남으신 게지요. 이제는 저 사람들 앞에서 그 지성을 다 드러내 보이기 전엔 절대 가지 않으실 겁니다."
"또 시작이오?... 천만에, 지금 막 가려던 참이오."
"가장 마지막에, 맨 끝에 가시겠지요!"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조시마 장로가 돌아오는 그 순간 거의 맞춰서 그에게 또 한 번 일침을 놓았다.
논쟁은 잠시 잦아들었지만, 장로는 원래 자리에 앉으면서 마치 다들 이야기를 계속하라고 다정하게 권하는 듯한 눈길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그의 표정 하나하나를 다 아는 알료샤는, 그가 몹시 지쳐 있고 안간힘을 쓰고 있음을 알아챘다. 요즘 들어 그는 탈진으로 인해 실신 발작을 일으키곤 했다. 그런 발작이 오기 전에 흔히 나타나는 창백함이 그의 얼굴에 감돌았고, 입술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임을 깨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분명했다. 그에게는 사람들을 붙들어 두려는 무언가 특별한 목적이 있는 듯했다. 그것이 무엇일까? 알료샤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신사분의 아주 흥미로운 논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참입니다." 도서계 이오시프 신부가 장로에게 말을 건네며 이반을 가리켰다. "이분은 새로운 논점을 많이 제시하고 있습니다만, 제 생각엔 그 논지가 양날의 검 같습니다. 이건 교회 재판권 문제와 그 관할 범위에 관해 어느 성직자가 쓴 책에 대한 반박으로 쓰인 논문입니다."
"자네 논문을 읽지 못해 유감이네만, 이야기는 들었네." 장로가 이반을 날카롭고 골똘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이분은 아주 흥미로운 입장을 취하고 계십니다." 도서계 신부가 말을 이었다. "교회 재판권에 관한 한, 이분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에 명백히 반대하는 듯합니다."
"흥미롭군. 그런데 어떤 의미에서 말인가?" 조시마 장로가 이반에게 물었다.
이반은 마침내 그에게 답했는데, 알료샤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거만한 태도가 아니라 겸손하고 신중하게, 분명한 호의를 담아, 이렇다 할 속셈은 조금도 없어 보이는 태도로 대답했다.
"제 출발점은 이렇습니다. 교회와 국가라는 본질적 원리의 이 혼동은, 그 둘이 뒤섞일 수 없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며, 이 요소들의 혼동은 그 뿌리에 이미 거짓이 있는 만큼 결코 일관되거나 정상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재판권과 같은 문제에서 교회와 국가 사이의 타협은, 제 생각으로는 어떤 진정한 의미에서도 불가능합니다. 제 상대인 성직자 논객은 교회가 국가 안에서 정확하고 한정된 위치를 차지한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반해 저는, 교회가 국가 전체를 포함해야 하며 단지 그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만약 지금 당장은 어떤 이유로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교 사회의 미래 발전이 지향해야 할 직접적이고 중요한 목표로서 실제로 세워져야 한다고 봅니다!"
"전적으로 옳습니다!" 말수가 적고 학식 높은 수도사인 파이시 신부가 열렬하고도 단호하게 동의했다.
"순수한 극단적 교황지상주의로군요!" 미우소프가 참지 못하고 다리를 이쪽저쪽으로 바꿔 꼬며 외쳤다.
"허허, 저희에게는 산이 없습니다만." 이오시프 신부가 외치고는 장로 쪽으로 몸을 돌려 말을 이었다. "이분이 자신의 상대―유의하십시오, 성직자입니다만―의 다음과 같은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명제들에 어떻게 답하는지 들어 보십시오. 첫째, '어떠한 사회 조직도 그 구성원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처분할 권한을 스스로 참칭해서는 안 되며 또 그럴 수도 없다.' 둘째, '형사 및 민사 재판권은 교회에 속해서는 안 되며, 이는 신성한 제도로서나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인간의 조직으로서나 교회의 본질과 양립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로,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다.'"
"성직자로서는 참으로 부당한 말장난이군요!" 파이시 신부가 참지 못하고 다시 끼어들었다. "저는 당신이 반박한 그 책을 읽었습니다." 그는 이반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다'라는 말에 아연실색했습니다. 만약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 땅에 아예 존재할 수조차 없습니다. 복음서에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말은 그런 의미로 쓰인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로 말장난을 하는 것은 옹호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 위에 교회를 세우시려고 오셨습니다. 물론 천국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있지만, 그곳은 오직 이 땅 위에 세워지고 확립된 교회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문맥에서 경솔한 말장난을 하는 것은 용서받을 수도, 온당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참으로 하나의 나라이며 통치하도록 정해져 있고, 결국에는 틀림없이 온 땅을 다스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에 대한 신성한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치 스스로를 다잡듯 갑자기 말을 멈추었다. 이반은 주의 깊고 정중하게 귀 기울인 뒤, 여전히 침착한 태도로, 전과 다름없이 흔쾌한 호의를 담아 장로를 향해 말을 이었다.
"제 논문의 요지는 이렇습니다. 최초의 삼백 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오직 교회 안에서만 이 땅에 존재했고, 교회 그 자체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교의 로마 제국이 그리스도교화되기를 원했을 때, 그리스도교화됨으로써 교회를 포함하게 되었지만 그 수많은 부문에서는 여전히 이교 국가로 남아 있었던 것은 필연적인 일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로마는 국가로서 이교 문명과 문화를 지나치게 많이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예컨대 국가의 목적과 근본 원리 자체가 그러했습니다. 그리스도교 교회는 국가 안으로 들어가면서도, 물론 자신이 딛고 선 반석인 근본 원리는 조금도 내줄 수 없었고, 하느님 스스로 정하시고 계시하신 목적 외에 다른 어떤 목적도 추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목적 가운데는 온 세상을, 따라서 옛 이교 국가 자체까지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다시 말해 미래를 내다볼 때), 교회가 '모든 사회 조직'처럼, 혹은 제 상대가 교회를 부르는 대로 '종교적 목적을 위한 인간의 조직'처럼 국가 안에서 한정된 위치를 구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모든 지상의 국가가 결국에는 완전히 교회로 변모하여, 교회의 목적과 어울리지 않는 모든 목적을 버리고 교회 외에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국가를 조금도 격하시키지 않으며, 위대한 국가로서의 명예와 영광이나 그 통치자들의 영광을 조금도 앗아가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국가를 여전히 이교적이고 그릇된 거짓된 길에서, 오직 영원한 목표로 이끄는 참되고 정당한 길로 돌려놓을 뿐입니다.
그래서 만약 『교회 재판권의 기초에 관하여』의 저자가 그 기초를 찾고 세우면서, 그것을 우리의 죄 많고 불완전한 시대에 불가피한 일시적 타협으로 여겼더라면 옳게 판단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저자가, 지금 그가 상정하는 그 기초들―그 일부는 방금 이오시프 신부께서 열거하신 바 있습니다만―이 항구적이고 본질적이며 영원한 기초라고 감히 선언하는 순간, 그는 교회와 그 신성하고 영원한 사명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이것이 제 논문의 요지입니다."
"요컨대," 파이시 신부가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19세기에 들어와 유독 명료하게 정식화된 어떤 이론들에 따르면, 교회는 마치 낮은 형태에서 높은 형태로 나아가는 진보인 양 국가로 변모하여 국가 안으로 사라져야 하며, 그리하여 과학과 시대정신과 문명에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교회가 이를 거부하고 응하지 않는다면, 국가 안에 한구석이 마련되어 주어질 것이며, 그나마도 통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그리고 이것이 모든 현대 유럽 국가들에서 이루어지는 방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러시아의 희망과 사고는, 교회가 낮은 유형에서 높은 유형으로 국가 속에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국가가 마침내 교회가 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게 될 자격을 갖추게 되기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되기를!"
"고백건대, 다소 안심이 되는군요." 미우소프가 미소 지으며 다시 다리를 꼬았다. "제가 이해하는 한, 그런 이상의 실현은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나 이루어질, 한없이 먼 훗날의 일이로군요. 그야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전쟁과 외교와 은행 등등을 폐지한다는 아름다운 유토피아적 꿈, 사실상 사회주의와 비슷한 종류의 것이군요.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이 진지하게 하는 말인 줄 알았고, 그래서 교회가 지금 당장이라도 범죄자를 재판해 태형이나 징역, 심지어 사형까지 선고하려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만약 교회 재판소밖에 없었다면, 교회는 지금도 범죄자에게 징역이나 사형을 선고하지 않을 것입니다. 범죄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은 반드시 달라질 것입니다. 물론 단번에는 아니겠지만, 상당히 빠른 시일 안에 말입니다." 이반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답했다.
"진심으로 하는 말입니까?" 미우소프가 그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만약 모든 것이 교회가 된다면, 교회는 모든 범죄자와 불순종하는 자들을 제명하되, 그 목을 자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반이 말을 이었다. "제명당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지금처럼 그저 인간 사회에서만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도 끊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범죄로써 인간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에도 죄를 지은 셈이 됩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지금도 이것은 마찬가지지만,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기에, 오늘날의 범죄자는 매우, 매우 자주 자기 양심과 타협을 합니다. '나는 도둑질을 하지만,' 그는 말합니다. '교회를 거스르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적이 아니다.' 오늘날의 범죄자는 늘 스스로에게 이렇게 되뇝니다만, 교회가 국가를 대신하게 되면 전 세계에 걸쳐 있는 교회에 맞서서 '모든 사람이 잘못되었다, 모두가 오류에 빠졌다, 온 인류가 거짓 교회다. 도둑이자 살인자인 나야말로 유일한 참된 그리스도교회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기가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에게 말하기란 아주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려면 흔치 않은 사정들이 드물게 겹쳐야만 합니다.
이제 다른 한편으로, 범죄에 대한 교회 자체의 관점을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는 지금처럼 사회 보전을 위해 병든 지체를 기계적으로 잘라내는, 거의 이교적인 오늘날의 태도를 버리고, 인간의 갱생과 교화와 구원이라는 이상을 온전하고 진실하게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말씀이신지, 또 이해가 안 되는군요." 미우소프가 말을 끊었다. "또 무슨 꿈같은 이야기로군요. 뭔가 형체도 없고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파문이라니 그게 무엇입니까? 어떤 식의 제명이라는 겁니까? 이반 표도로비치, 당신은 그저 저를 놀리며 즐기고 계신 게 아닌가 싶군요."
"아니, 실은 지금도 실제로 그렇습니다." 장로가 불쑥 말했고, 모두 일제히 그를 돌아보았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없었다면, 범죄자를 악행에서 억누를 아무런 힘도, 그 후에 이어질 진정한 응징도 없었을 것입니다. 조금 전에 말한 기계적인 형벌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형벌은 대개의 경우 오히려 마음을 더 모질게 만들 뿐, 참된 형벌은, 유일하게 실효를 거두는, 유일하게 억제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형벌은 못 됩니다. 그 참된 형벌은 양심에 의한 죄의 자각 속에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그렇습니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미우소프가 생생한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그야," 장로가 말을 시작했다. "이 모든 유형, 강제 노역형, 예전에는 태형까지 곁들여진 형벌들이 그 누구도 교화시키지 못하며, 게다가 범죄자를 단념시키는 경우도 거의 없고, 범죄의 수는 줄기는커녕 계속 늘어나기만 한다는 것 때문입니다. 이 점은 인정하실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러니 사회의 안전은 지켜지지 않는 셈입니다. 눈엣가시 같은 지체를 기계적으로 잘라내어 멀리 눈에 안 띄는 곳으로 보내 봐야, 언제나 곧바로 다른 범죄자가 그 자리를 채우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둘씩이나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사회를 지키고, 범죄자를 갱생시키고 변화시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그의 양심 속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율법뿐입니다. 그가 그리스도교 사회, 즉 교회의 아들로서 자신의 그릇됨을 자각함으로써만, 그는 사회에 대한, 즉 교회에 대한 자신의 죄를 자각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범죄자가 자신이 죄를 지었음을 자각할 수 있는 대상은 국가가 아니라 오직 교회뿐입니다.
만약 사회가 교회로서 재판권을 지녔더라면, 언제 제명된 자를 다시 불러들여 자신에게 되돌려 받아들일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교회는 실제적인 재판권은 없이 다만 도덕적 단죄의 힘만을 지니고 있기에, 스스로 나서서 범죄자를 능동적으로 처벌하는 일에서는 물러나 있습니다. 교회는 그를 파문하지 않고, 그저 어머니처럼 그를 타이르기를 그치지 않을 뿐입니다. 게다가 교회는 범죄자와의 모든 그리스도교적 친교를 지키려고까지 애씁니다. 교회는 그를 예배에, 성사에 받아들이고, 그에게 자선을 베풀며, 그를 죄수라기보다 오히려 포로처럼 대합니다.
오, 주여, 만약 그리스도교 사회, 즉 교회마저도 세속의 법이 그를 배척하고 잘라내듯이 그를 배척한다면, 범죄자는 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교회가 세속법의 직접적인 귀결로서 파문으로써 그를 벌한다면, 그는 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적어도 러시아의 범죄자에게는 그보다 더 무서운 절망은 없을 것입니다. 러시아의 범죄자에게는 아직 믿음이 있으니까요. 하기야 누가 압니까, 그렇게 되면 정말 두려운 일이 벌어질지도, 절망에 빠진 범죄자의 마음이 믿음마저 잃어버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면 그는 대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교회는 다정하고 사랑 넘치는 어머니처럼, 죄인이 이미 세속법에 의해 너무나 가혹하게 벌을 받았다 여기며 스스로는 능동적인 처벌에서 물러나 있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는 그를 불쌍히 여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물러나 있는 것은 무엇보다도, 교회의 심판만이 유일하게 진리를 담고 있기에, 실질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다른 어떤 심판과도, 설령 일시적 타협으로라도 결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그런 협정을 맺을 수가 없습니다.
외국의 범죄자는 좀처럼 뉘우치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오늘날의 바로 그 학설들이야말로 그의 범죄가 범죄가 아니라 부당하게 억압적인 힘에 대한 반작용일 뿐이라는 생각을 그에게 굳혀 주기 때문입니다. 사회는 그를 기계적으로 압도하는 힘으로 완전히 잘라내며, (적어도 유럽에서는 그들 스스로 그렇게 말한다고 합니다만) 이러한 배제에는 증오와 망각, 그리고 길 잃은 형제의 궁극적인 운명에 대한 더없이 깊은 무관심이 뒤따른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로, 교회의 자비로운 개입 없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데, 많은 경우 그곳에는 애초에 교회라는 것이 아예 없기 때문입니다. 성직자와 화려한 교회 건물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교회 자체는 이미 오래전부터 교회에서 국가로 옮겨가 국가 안에 완전히 사라지려고 애써 왔습니다. 적어도 루터파 국가들에서는 그렇게 보입니다. 로마로 말하자면, 이미 천 년 전에 교회 대신 국가로 선포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범죄자는 더는 자신이 교회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갖지 못한 채 절망에 빠집니다. 그가 사회로 돌아온다 해도, 흔히 너무나 큰 증오를 품고 돌아오기에 사회 쪽에서 본능적으로 그를 잘라내 버립니다. 이것이 어떻게 끝날지는 여러분 스스로 판단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많은 경우 사정은 비슷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이가 있다면, 우리에게는 기존의 법정들 외에도 교회가 있어서, 범죄자를 언제나 소중하고 여전히 귀한 아들로 여기며 관계를 이어간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뿐 아니라, 비록 실제로는 아니어도 사상으로나마 교회의 심판이 여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지금은 실행되고 있지 않을지언정 미래를 향한 꿈으로서 여전히 살아 있고, 범죄자의 영혼 속에서도 틀림없이 본능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방금 여기서 나온 말도 참말입니다. 즉 만약 교회의 재판권이 그 온전한 힘으로 실제로 도입된다면, 다시 말해 사회 전체가 교회로 변모한다면, 지금은 결코 미치지 못하는 영향력으로 교회의 심판이 범죄자의 교화에 작용할 뿐 아니라, 범죄 그 자체도 놀랍도록 줄어들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미래의 범죄와 범죄자를 지금과는 많은 경우 전혀 다르게 바라보며, 제명된 자를 되돌리고, 악을 꾀하는 자를 제지하며, 타락한 자를 갱생시키는 데 성공하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사실," 조시마 장로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금의 그리스도교 사회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다만 몇몇 의인들, 이를테면 일곱 명의 의인 위에 겨우 서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들은 결코 끊이지 않을 것이기에, 사회는 거의 이교에 가까운 성격에서 하나의 보편적이고 전능한 교회로 완전히 변모하기를 기다리며 여전히 흔들림 없이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되기를! 설령 그것이 세상 끝날에나 이루어질지라도, 그것은 반드시 이루어지도록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근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때와 시기의 비밀은 하느님의 지혜와 예지와 사랑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셈으로는 아직 멀어 보이는 것도, 신의 섭리로는 이미 가까이, 그 나타남을 눈앞에 두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되기를, 그렇게 되기를!" 파이시 신부가 근엄하고 경건하게 되뇌었다.
"이상하군요, 참으로 이상해요!" 미우소프가 격앙되었다기보다는 숨은 분노를 담아 말했다.
"무엇이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십니까?" 이오시프 신부가 조심스레 물었다.
"아니, 이건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미우소프가 갑자기 격하게 외쳤다. "국가가 사라지고 교회가 국가의 자리로 격상되다니요. 이건 단순한 교황지상주의가 아니라, 초교황지상주의입니다! 그레고리오 7세 교황의 꿈조차 뛰어넘는군요!"
"당신은 완전히 오해하고 계십니다." 파이시 신부가 엄하게 말했다. "잘 이해하십시오, 교회가 국가로 변모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로마와 그들의 꿈입니다. 그것은 악마의 세 번째 유혹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국가가 교회로 변모하여 위로 올라가 온 세상에 걸친 교회가 될 것입니다―이는 교황지상주의와 로마, 그리고 당신의 해석과는 완전히 정반대이며, 오직 정교회에 정해진 영광스러운 운명일 뿐입니다. 이 별은 동방에서 떠오를 것입니다!"
미우소프는 뜻깊게 침묵을 지켰다. 그의 온몸에서 유별난 자존심이 배어났다. 입가에는 오만하고 거만한 미소가 감돌았다. 알료샤는 심장이 두근거리는 채로 그 모든 것을 지켜보았다. 이 대화 전체가 그의 마음을 깊이 뒤흔들었다. 그는 문 옆에 미동도 없이 서서, 눈을 내리깐 채 골똘히 듣고 지켜보던 라키틴 쪽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의 두 뺨에 오른 홍조로 미루어, 알료샤는 라키틴 역시 못지않게 흥분해 있음을 짐작했다. 그리고 그 흥분의 원인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여러분, 짤막한 일화 하나를 들려드려도 되겠습니까." 미우소프가 유난히 위엄 있는 태도로 무게 있게 말했다. "몇 해 전, 12월의 쿠데타 직후였는데, 저는 파리에서 정부의 몹시 영향력 있는 어느 인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집에서 아주 흥미로운 인물을 만났습니다. 이 사람은 정확히 말해 탐정이라기보다는, 정치 탐정들로 이루어진 연대 전체를 감독하는 일종의 상관이었습니다―나름대로 상당히 힘 있는 자리였지요. 저는 호기심에 이끌려 그와 대화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방문객이 아니라 특별 보고를 가지고 온 부하 관리로서 왔던 터라, 자기 상관이 저를 맞이하는 태도를 보고는, 어느 정도까지는 물론이지만, 다소 솔직하게 이야기해 줄 마음을 냈습니다. 그는 개방적이라기보다는 정중한 쪽이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특히 외국인에게 정중할 줄 아는 그런 식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의 말을 훤히 이해했습니다. 화제는 당시 박해받던 사회주의 혁명가들이었습니다. 이 인물이 흘린 한 가지 아주 흥미로운 말만 인용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저 사회주의자들이나 무정부주의자들, 무신론자들, 혁명가들을 딱히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감시하고 있고, 그들의 동태를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는 신을 믿고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동시에 사회주의자인 좀 특이한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무서운 인간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사회주의자가 무신론자인 사회주의자보다 훨씬 더 두려운 존재입니다.'
그 말이 당시 제 마음을 강하게 때렸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문득 다시 떠오르는군요, 여러분."
"그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하시는 겁니까, 우리를 사회주의자로 보시는 겁니까?" 파이시 신부가 에두르지 않고 곧바로 물었다.
하지만 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가 무어라 대답할지 미처 생각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며 그토록 오래 기다리던 손님, 드미트리 표도로비치가 들어왔다. 사실 사람들은 이미 그를 기다리기를 포기한 터라, 그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한순간 다들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