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 장로들

내 독자들 중에는 알료샤가 병약하고 신비주의에 들뜬, 제대로 자라지 못한, 창백하고 폐병 든 몽상가였으리라고 상상하는 이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예상과는 정반대로, 알료샤는 이 무렵 건강이 넘쳐흐르는, 볼이 붉고 눈이 맑은 열아홉 살 청년으로, 체격도 훌륭하게 자라 있었다.
게다가 그는 상당한 미남이었다. 균형 잡힌 몸매에 키는 중키를 조금 넘었고, 짙은 갈색 머리, 갸름하고 반듯한 타원형 얼굴, 넓게 자리 잡은 짙은 회색의 빛나는 눈을 지니고 있었다. 매우 사려 깊으면서도 겉보기엔 더없이 평온해 보이는 청년이었다.
혹자는, 붉은 볼이 광신이나 신비주의와 양립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 알료샤는 누구보다도 현실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물론 수도원 안에서 그는 기적을 온전히 믿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기적이란 결코 현실주의자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현실주의자를 믿음으로 이끄는 것은 기적이 아니다. 진정한 현실주의자란, 만약 그가 불신자라면, 기적적인 것을 믿지 않을 힘과 능력을 언제든 찾아낼 것이다. 설령 반박할 수 없는 사실로서 기적과 맞닥뜨린다 해도, 그는 그 사실을 인정하느니 차라리 자기 자신의 감각을 의심하려 들 것이다. 설령 그것을 인정한다 해도, 그는 그것을 그때까지 자신이 미처 알지 못했던 자연의 한 사실로서 인정할 뿐이다.
현실주의자에게 있어 믿음은 기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기적이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만약 현실주의자가 일단 믿게 된다면, 바로 그 현실주의 자체 때문에라도 기적적인 것 역시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사도 도마는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지만, 막상 보았을 때는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외쳤다. 그를 믿게 만든 것이 과연 그 기적이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오직 믿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믿었던 것이며, "보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조차 이미 마음속 깊이 온전히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또 알료샤가 우둔하고 미숙하며 학업도 마치지 못한 인물이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학업을 마치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를 우둔하다거나 아둔하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크나큰 부당함일 것이다. 나는 앞서 한 말을 그대로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가 이 길로 들어선 것은 오직, 당시 그의 상상력을 사로잡은 것이 그 길뿐이었고, 그 길이 그의 영혼을 어둠에서 빛으로 이끌어낼 이상적인 탈출구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자면, 그는 어느 정도 우리의 최근 세대에 속하는 청년이었다—즉 본성이 정직하고, 진리를 갈망하며, 그것을 찾아 나서고 믿으며, 영혼의 온 힘을 다해 그것을 당장 섬기고자 하고, 즉각적인 행동을 추구하며, 그것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런 부류였다.
다만 이런 청년들은 안타깝게도, 목숨을 바치는 것이 실은 많은 경우 가장 쉬운 희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예컨대 자신들 앞에 목표로 세운 진리와 대의를 위해 봉사할 힘을 열 배로 키우기 위해서라면 들끓는 청춘의 오륙 년을 힘겹고 지루한 공부에 바치는 편이, 많은 이들에게는 도리어 그 힘을 훨씬 넘어서는 일임을 이해하지 못한다.
알료샤가 택한 길은 방향은 정반대였지만, 신속한 성취를 갈망하는 그 마음만은 똑같았다.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하자마자 그는 신과 불멸의 존재를 확신했고, 곧바로 본능적으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불멸을 위해 살고 싶다. 그리고 타협은 받아들이지 않겠다."
마찬가지로, 만약 그가 신도 불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더라면, 그는 즉시 무신론자이자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회주의란 단지 노동 문제가 아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무신론의 문제, 오늘날 무신론이 취하는 형태의 문제, 하늘에서 땅으로 오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땅 위에 하늘을 세우기 위해 신 없이 쌓아 올리는 바벨탑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알료샤로서는 예전처럼 그냥 살아간다는 것이 이상하고 불가능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네가 온전해지려거든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이 있지 않은가.
알료샤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것」 대신 이 루블만 내놓고, 「그를 따르는」 대신 그저 미사에나 나가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어쩌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그에게 우리 수도원을 떠올리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가 그를 미사에 데려갔던 그 수도원을.
어쩌면 비스듬히 비쳐 들던 햇살과, 가엾은 "광인" 어머니가 그를 안아 올려 마주하게 했던 그 성상이, 아직도 그의 상상력에 작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들을 곱씹으며, 그는 어쩌면 그저 이곳에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을지, 아니면 그저 「이 루블」로 그칠지를 확인해 보러 우리에게 왔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수도원에서 그는 이 장로를 만나게 되었다.
여기서 잠시 곁길로 새서, 러시아 수도원에서 "장로"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고 넘어가야겠다. 다만 내가 이 일에 그다지 유능하지 못하다는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래도 몇 마디로나마 피상적으로라도 설명해 보려 한다.
이 방면의 권위자들은, "장로" 제도가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으로, 우리 수도원들에서는 백 년을 채 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다만 정교회 동방, 특히 시나이와 아토스 산에서는 이미 천 년 넘게 이어져 온 제도였다. 옛날 러시아에도 이 제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지만, 타타르의 침입, 내란,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동방과의 관계 단절 등 러시아를 덮친 여러 재앙 때문에 이 제도는 잊히고 말았다.
이 제도는 지난 세기 말엽, 이른바 "고행자"라 불리던 위대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파이시 벨리치콥스키와 그 제자들에 의해 우리 사이에서 다시 부활했다. 그러나 오늘날까지도 이 제도가 남아 있는 곳은 몇몇 수도원에 지나지 않으며, 러시아에서는 때로 하나의 혁신으로 취급되어 거의 박해에 가까운 취급을 받기도 했다. 이 제도가 특히 융성했던 곳은 저 유명한 코젤스크의 옵티나 수도원이었다.
이 제도가 우리 수도원에 언제, 어떻게 도입되었는지는 나로서는 알 길이 없다. 이미 세 명의 장로가 있었고, 조시마는 그 마지막 장로였다. 그러나 그는 쇠약과 병으로 거의 죽어가고 있었고, 그의 뒤를 이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는 우리 수도원으로서는 중대한 문제였다. 그때까지 우리 수도원은 이렇다 할 특별한 것으로 이름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성인의 성해도, 기적을 행하는 성상도, 영광스러운 전설도, 역사적인 업적도 없었다. 우리 수도원이 러시아 전역에 걸쳐 융성하고 이름을 떨친 것은 오로지 장로들 덕분이었으며, 그들을 보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해 순례자들이 수천 리 길을 마다하지 않고 러시아 각지에서 몰려들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장로란 대체 무엇인가? 장로란 그대의 영혼과 그대의 의지를 자신의 영혼과 의지 속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장로를 택할 때, 그대는 자기 자신의 의지를 포기하고 그것을 완전한 복종, 완전한 자기 부정 속에서 그에게 넘겨준다.
이 수련 과정, 이 자기 부정의 무서운 학교는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자기 극복과 자기 지배의 희망 속에서, 복종의 삶을 산 끝에 완전한 자유—즉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자유—에 이르기 위함이며, 평생을 살고도 자기 안에서 참된 자기를 찾지 못한 이들의 운명을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이 장로 제도는 이론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라, 천 년에 걸친 동방의 실천에서 확립된 것이었다. 장로에게 지는 의무는 러시아 수도원에 예로부터 있던 보통의 "순명"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 의무에는 그에게 스스로를 맡긴 모든 이가 그에게 고해해야 한다는 것과, 그와 그들 사이의 끊을 수 없는 유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컨대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리스도교 초기, 어느 수련수사가 자신의 장로가 내린 어떤 명을 이행하지 못하고 시리아의 수도원을 떠나 이집트로 갔다. 그곳에서 그는 위대한 고행 끝에 마침내 신앙을 위해 고문과 순교의 죽음을 당할 만한 자격을 얻었다.
교회가 그를 성인으로 여겨 장례를 치르려는데, 부제가 "세례받지 않은 자들은 모두 물러가라"고 권고하는 순간, 순교자의 유해를 담은 관이 갑자기 제자리를 벗어나 교회 밖으로 내던져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일이 세 차례나 되풀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사람들은, 이 성스러운 이가 순명의 서약을 어기고 자신의 장로 곁을 떠났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가 이룬 위대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장로의 사죄 없이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물론 이것은 그저 오래된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더 최근의 실례가 하나 있다.
어느 수도사가 자신이 성스러운 땅이자 안식처로 여겨 사랑하던 아토스 산을 떠나라는 장로의 갑작스러운 명을 받았다.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지에 경배를 드리고, 그다음에는 북쪽 시베리아로 가라는 것이었다. "그곳이 바로 그대가 있을 곳이지, 여기가 아니다."
수도사는 슬픔에 잠겨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를 찾아가 자신을 그 순명에서 풀어 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총대주교는, 자신이 그를 풀어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애초에 그런 의무를 지운 장로 자신 말고는 이 땅 위 그 누구도 그를 풀어 줄 힘을 갖고 있지도, 가질 수도 없다고 대답했다.
이렇듯 장로들은 어떤 경우에는 무한하고도 설명하기 힘든 권위를 부여받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우리의 여러 수도원에서는 처음에 이 제도가 거의 박해에 가까운 저항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장로들은 곧 백성들 사이에서 큰 존경을 받기 시작했다.
예컨대 무지한 백성들의 무리는 물론이고 신분 높은 이들까지도, 자신의 의혹과 죄와 고통을 고백하고 조언과 훈계를 구하기 위해 우리 수도원의 장로들에게 몰려들었다. 이를 본 장로 제도의 반대자들은, 고해성사가 함부로 경솔하게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수도사든 속인이든 장로에게 끊임없이 마음을 여는 이 행위는 성사의 성격을 지닌 것이 전혀 아니었다.
그럼에도 결국 장로 제도는 유지되었고, 러시아 수도원들 사이에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물론, 인간을 예속에서 자유로, 그리고 도덕적 완성으로 이끄는 이 도구가 천 년의 시험을 견뎌 왔다고는 해도, 그것이 양날의 검이 되어 어떤 이들을 겸손과 완전한 자기 절제가 아니라 도리어 사탄과도 같은 오만으로, 즉 자유가 아니라 예속으로 이끌 수도 있다는 것은 아마 사실일 것이다.
조시마 장로는 예순다섯이었다. 그는 지주 집안 출신으로, 젊은 시절에는 군에 몸담아 카프카스에서 장교로 복무한 적이 있었다. 그는 분명 그 영혼의 어떤 독특한 자질로 알료샤를 사로잡았을 것이다.
알료샤는 장로의 거처에서 지내며 살았고, 장로는 그를 몹시 아껴 곁에서 시중들게 했다. 여기서 짚어 둘 것은, 알료샤가 어떤 의무에도 얽매여 있지 않았고, 원하는 곳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며 며칠씩 자리를 비워도 상관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수도복을 입고 있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것이었을 뿐, 남들과 다르게 보이지 않으려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 자신이 그렇게 하기를 좋아했던 것이다.
어쩌면 그의 젊은 상상력이 장로의 권위와 명성에 깊이 사로잡혔던 것일 수도 있다. 사람들 말에 따르면,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이들이 조시마 장로에게 죄를 고백하고 그로부터 조언과 치유의 말을 구하러 찾아온 나머지, 그는 더없이 예리한 직관을 갖추게 되어 낯선 얼굴만 보고도 처음 온 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그의 양심을 짓누르는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아맞힐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따금 방문객들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들의 비밀을 꿰뚫어 봄으로써 그들을 놀라게 하고, 거의 두렵게 만들기까지 했다.
알료샤는 많은 이들이—거의 모두가—처음 장로를 찾아갈 때는 근심과 불안에 싸여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밝고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알료샤가 특히 놀랐던 것은, 조시마 장로가 결코 엄격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오히려 그는 늘 거의 명랑하다시피 했다.
수도사들은 그가 죄가 더 많은 이들에게 더 마음이 끌리며, 죄인이 클수록 그를 더욱 사랑한다고 말하곤 했다. 물론 그의 생애 마지막까지도 수도사들 가운데는 그를 미워하고 시기하는 이들이 없지 않았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았고 그들은 침묵을 지켰다. 그중에는 수도원에서 상당한 지위를 지닌 이들도 있었는데, 예컨대 엄격한 금식과 침묵 서약으로 이름난 나이 든 수도사 한 명이 그러했다.
그러나 대다수는 조시마 장로의 편이었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진심으로 뜨겁게 그를 사랑했다. 어떤 이들은 그에게 거의 광신적이라 할 만큼 헌신하여, 큰 소리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성인이며 그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그의 임종이 가까워졌음을 보며, 머지않아 그의 성해가 수도원에 기적과 크나큰 영광을 가져다주리라고 미리 내다보았다.
알료샤는, 그 관이 교회 밖으로 날아갔다는 이야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과 똑같이, 장로의 기적적인 힘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병든 아이나 친지를 데려와 장로에게 안수와 기도를 청하는 많은 이들이, 어떤 이는 다음날, 어떤 이는 며칠 뒤 다시 돌아와 장로의 발 앞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며 병자를 낫게 해 준 것에 감사하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들이 정말로 나은 것인지, 아니면 그저 병의 자연스러운 경과에 따라 좋아진 것뿐인지—그런 물음은 알료샤에게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스승이 지닌 영적인 힘을 온전히 믿었고, 그의 명성과 영광을 마치 자기 자신의 승리인 양 기뻐했기 때문이다.
장로가 암자의 문 앞으로 나와, 러시아 각지에서 오로지 그를 보고 축복을 받기 위해 몰려든 소박한 순례자들의 무리 앞에 설 때면, 알료샤의 가슴은 두근거렸고 그의 온몸은 그야말로 환하게 빛나는 것 같았다.
순례자들은 그의 앞에 엎드려 울며 그의 발에 입 맞추고, 그가 서 있는 땅에까지 입을 맞추며 통곡했다. 여인들은 아이들을 그에게 들어 올려 보였고, "악령 들린" 병자들을 그에게 데려왔다. 장로는 그들에게 말을 건네고, 짧은 기도문을 읽어 준 뒤, 축복하고 돌려보냈다.
근래에는 병의 발작으로 몸이 몹시 쇠약해져서 때로는 방을 나설 수조차 없었고, 순례자들은 며칠씩 그가 나오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알료샤는 사람들이 어째서 그를 그토록 사랑하는지, 어째서 그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감격에 겨워 그의 앞에 엎드려 우는지 조금도 의아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 그는 이해하고 있었다. 슬픔과 노고에, 그리고 그보다 더한 영원한 부정과 영원한 죄악—자신의 죄악이며 세상의 죄악—에 시달려 지친 러시아 농민의 소박한 영혼에게는, 엎드려 경배할 무언가 거룩한 존재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필요이자 위안이라는 것을.
"우리 사이에는 죄와 부정과 유혹이 있지만, 그래도 이 땅 어딘가에는 거룩하고 드높은 이가 있다. 그가 진리를 지니고 있고, 그가 진리를 알고 있다. 그러니 진리는 이 땅에서 죽지 않았으며, 언젠가 우리에게도 찾아와 약속대로 온 땅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
알료샤는 백성들이 바로 이렇게 느끼고, 심지어 이렇게 생각하기까지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조시마 장로가 바로 그 성인이며 하느님의 진리를 지키는 자라는 것에 대해서는, 눈물 흘리는 농민들이나 아이들을 장로에게 내밀던 병든 여인들 못지않게, 그 자신도 추호의 의심이 없었다.
장로가 죽은 뒤 그의 성해가 수도원에 비할 데 없는 영광을 가져다주리라는 확신은, 그곳의 그 누구보다도 알료샤의 마음속에서 더욱 강했다. 그리고 근래 들어 일종의 깊은 내적 환희의 불꽃이 그의 가슴속에서 점점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이 장로가 자신의 눈앞에서 홀로 고고한 하나의 표본으로 서 있다는 사실이 그를 조금도 불안하게 하지 않았다.
"상관없다. 그는 거룩한 분이다. 그는 마음속에 모든 이를 위한 갱생의 비밀을 지니고 있다. 마침내 이 땅에 진리를 세우게 될 그 힘을,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거룩해지고 서로 사랑하게 되며, 더 이상 부자도 가난한 자도, 높은 이도 낮은 이도 없이 모두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그리스도의 참된 왕국이 도래하게 될 그 힘을." 이것이 알료샤의 가슴속에 품은 꿈이었다.
그때껏 알지 못했던 두 형이 찾아온 일은 알료샤에게 커다란 인상을 남긴 듯했다. 그는 이복형 드미트리와는—비록 그가 나중에 도착했는데도—친아버지 쪽 형인 이반보다 더 빨리 가까워졌다.
그는 이반 형에게 무척 흥미를 느꼈지만, 이반이 이 고장에 온 지 두 달이 지나도록, 두 사람은 자주 만났음에도 여전히 서로 허물없는 사이가 되지 못했다. 알료샤는 원래 말이 없는 편이었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했으며, 무언가를 부끄러워하는 듯 보였다. 반면 이반 형은—알료샤가 처음에는 그가 자신을 오래도록 유심히 바라보는 것을 알아챘지만—이내 그에 대한 생각을 접어 버린 듯했다.
알료샤는 이것을 어느 정도 당혹스럽게 여겼다. 처음에 그는 형의 무관심을 나이와 학식의 차이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반에게 호기심과 공감이 없는 것이 그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어떤 이유 때문은 아닌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는 자꾸만 이반이 무언가에—내면적이고 중요한 무언가에—몰두해 있어서, 어쩌면 이르기 몹시 어려운 어떤 목표를 향해 애쓰고 있어서 자신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는 것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알료샤는 또한, 학식 있는 무신론자가 자신 같은 어리석은 수련수사를 얼마간 경멸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기도 했다.
그는 형이 무신론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다. 설령 그런 경멸이 있다 해도 그것 때문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불안한 당혹감을 안은 채, 그는 형이 자신에게 다가와 주기를 기다렸다.
드미트리는 이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더없는 존경심과 유별난 진지함을 보이곤 했다. 알료샤는 그를 통해, 근래 두 형을 그토록 가깝고 남다른 유대로 묶어 놓은 중대한 사건의 자세한 내막을 모두 알게 되었다.
드미트리가 이반을 그토록 열렬히 언급하는 것은 알료샤의 눈에 한층 더 놀랍게 보였는데, 이반에 비하면 드미트리는 거의 배움이 없다시피 한 처지였고, 두 형제는 성격과 인품에서 이보다 더 다른 두 사람을 찾기 힘들 만큼 대조적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무렵, 알료샤에게 그토록 남다른 영향을 미친 이 장로의 방에서, 이 화목하지 못한 가족의 회합, 아니 차라리 모임이라 할 만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모임의 명분은 거짓된 것이었다.
당시 드미트리와 아버지 사이의 불화는 그 정점에 달해 있었고, 두 사람의 관계는 견딜 수 없을 만큼 팽팽해져 있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가 가장 먼저—겉으로는 농담처럼—모두 조시마 장로의 방에 모여 보자고, 그의 직접적인 개입에 기대지는 않더라도 장로의 존재가 지닌 화해의 힘을 빌려 좀 더 점잖게 합의에 이를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듯했다.
드미트리는 그때까지 장로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아버지가 자신을 겁주려는 속셈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몇 차례 아버지 앞에서 화를 터뜨린 일을 내심 자책하고 있던 터라, 그는 그 도전을 받아들였다. 참고로 그는 이반과 달리 아버지 집에 얹혀사는 것이 아니라 시내 반대편 끝에서 따로 살고 있었다.
마침 그 무렵 이 고장에 머물고 있던 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미우소프가 이 발상을 반갑게 받아들였다. 40년대와 50년대의 자유주의자이자 자유사상가이며 무신론자였던 그는, 어쩌면 지루함에서, 혹은 하찮은 오락거리를 얻으려는 기대에서 이끌렸을 것이다. 그는 문득 수도원과 그 성자를 한번 보고 싶다는 마음에 사로잡혔다.
수도원과의 소송이 여전히 질질 끌고 있던 터라, 그는 이를 핑계 삼아 원장을 만나 원만히 사건을 해결해 보려는 명목을 내세웠다. 그런 갸륵한 목적을 내세운 방문객이라면, 단순한 호기심으로 찾아온 이보다 더한 관심과 배려로 맞이해 줄 법도 했다.
장로는 근래 자신의 방을 거의 떠나지 못했고, 병 때문에 평소의 방문객들조차 거절할 수밖에 없었지만, 수도원 내부의 압력이 작용하여 결국 그들을 만나기로 승낙했고, 날짜가 정해졌다.
"누가 나를 그들 사이의 심판관으로 세웠단 말이냐?" 그는 그저 미소를 지으며 알료샤에게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이 방문 계획을 전해 들었을 때 알료샤는 몹시 불안해했다. 이 다투기 좋아하는 무리 가운데, 이 만남을 진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드미트리뿐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경박한 동기로, 어쩌면 장로에게 모욕이 될 만한 동기로 찾아올 터였다. 알료샤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반과 미우소프는 호기심에서, 어쩌면 아주 저속한 종류의 호기심에서 올 것이었고, 아버지는 무슨 어릿광대짓을 벌일 궁리를 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알료샤는 아버지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소년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단순한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그는 분명 마음속으로 어떻게 하면 이 집안의 불화를 끝낼 수 있을지 끊임없이 궁리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장로에 관한 것이었다. 그는 장로를 위해, 그의 명예를 위해 떨었고, 그에게 어떤 모욕이라도 가해지지 않을까—특히 미우소프의 세련되고 정중한 듯한 빈정거림과, 고학력자인 이반의 거만한 반쪽짜리 말들이 두려웠다.
그는 심지어 장로에게 그들에 대해 미리 일러바쳐 경고해 볼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다시 생각한 끝에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전날, 친구를 통해 형 드미트리에게 자신이 그를 사랑하며 약속을 지켜 주기를 바란다는 말만 전했다.
드미트리는 무슨 약속을 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아 의아해했지만, "비열한 짓" 때문에 도발당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만 장로와 형 이반에게 깊은 존경을 품고는 있으나 이 모임이 자신을 노린 함정이거나 아니면 볼썽사나운 소극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신한다고 답장을 써 보냈다.
"그럼에도 저는 당신이 그토록 우러르는 그 성스러운 분께 결례를 범하느니 차라리 제 혀를 깨물어 끊어 버리겠습니다." 그는 편지 말미에 이렇게 썼다. 알료샤는 그 편지를 읽고도 그다지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