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은 그때처럼 아주 조그만 틈만큼 열렸고, 다시 날카롭고 미심쩍은 두 눈길이 어둠 속에서 그를 노려보았다. 여기서 라스콜니코프는 갈피를 잃고 큰 잘못을 저지를 뻔했다.
둘뿐이라는 것에 노파가 겁을 먹을까 두려웠고 제 몰골이 그 여자를 안심시키리라고 기대할 수도 없어서, 그는 문을 붙들고 제 쪽으로 당겼다. 노파가 어쩌다 다시 닫아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고 노파는 문을 도로 당기지는 않았으나 자물쇠 손잡이도 놓지 않아서, 하마터면 문과 함께 계단으로 끌려 나올 뻔했다. 노파가 문간을 가로막고 서서 들여보내지 않는 것을 보고 그는 그대로 그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 여자는 놀라 물러났고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하지 못한 듯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십니까, 알료나 이바노브나.”
그는 되도록 스스럼없이 말을 꺼냈으나 목소리가 말을 듣지 않고 끊기며 떨렸다.
“제가…… 물건을 가져왔습니다…… 아니, 이쪽으로 갑시다…… 밝은 데로……”
그러고는 그 여자를 두고 청하지도 않은 채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노파가 그를 뒤쫓아 달려왔다. 혀가 풀렸다.
“맙소사! 무슨 일이시오?…… 누구요? 무엇을 바라는 거요?”
“이러지 마십시오, 알료나 이바노브나…… 아시는 사람입니다…… 라스콜니코프요…… 자, 요전에 말씀드린 저당물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저당물을 내밀었다.
노파는 저당물을 흘깃 보더니 곧바로 청하지 않은 손님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유심히, 사납게, 미심쩍어하며 바라보았다. 일 분쯤 지났다. 그 눈에 비웃음 같은 것마저 어린 듯했다,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이. 그는 제가 갈피를 잃어 가는 것을, 거의 무섭다는 것을 느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그 여자가 저렇게 바라보기만 하고 반 분만 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면 그대로 달아나 버릴 것 같았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못 알아보시겠소?”
그가 문득, 역시 사납게 말했다.
“받으시려면 받고 아니면 다른 데로 가겠소, 나는 시간이 없소.”
그는 이런 말을 할 생각이 없었는데 저절로 불쑥 튀어나왔다.
노파가 정신을 차렸고, 손님의 단호한 말투가 그 여자에게 기운을 준 모양이었다.
“아니 나리, 왜 그렇게 대뜸…… 무엇이오?”
그 여자가 저당물을 바라보며 물었다.
“은 담뱃갑이오. 지난번에 말씀드렸잖습니까.”
그 여자가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창백하시오? 손도 떨고 있네! 물에라도 빠졌소, 나리?”
“열이 나서요.”
그가 뚝뚝 끊어 대답했다.
“먹을 것이 없으면…… 창백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는 겨우 말을 이어 붙이며 보탰다. 힘이 또 그를 떠나고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그럴듯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노파가 저당물을 받았다.
“이게 무엇이오?”
그 여자가 라스콜니코프를 한 번 더 뚫어지게 훑어보고 저당물을 손에 얹어 무게를 가늠하며 물었다.
“물건이오…… 담뱃갑…… 은으로 된…… 보십시오.”
“그런데 이거 은 같지가 않은데…… 어지간히도 감아 놓았군.”
끈을 풀어 보려고 창 쪽으로, 빛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숨 막히는 더위인데도 그 여자의 창은 모두 닫혀 있었다) 그 여자는 몇 초 동안 그를 온전히 놓아두고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외투 단추를 풀고 고리에서 도끼를 빼냈으나 아직 완전히 꺼내지는 않고 오른손으로 옷 아래에서 붙들고만 있었다. 두 손이 무섭게 힘이 빠졌다. 한순간 한순간 손이 더 저리고 뻣뻣해지는 것이 제 귀에 들리는 듯했다. 도끼를 놓쳐 떨어뜨릴까 두려웠다…… 문득 머리가 어질해지는 듯했다.
“이 사람이 여기 무엇을 이렇게 감아 놓았담!”
노파가 언짢은 듯 부르짖고 그의 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더는 한순간도 놓칠 수 없었다. 그는 도끼를 온전히 꺼내 두 손으로 치켜들었고, 제 자신을 거의 느끼지 못한 채, 거의 힘도 들이지 않고, 거의 기계처럼 등으로 머리 위에 내려놓았다. 이때 그에게는 힘이라는 것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한 번 도끼를 내리자 그때 그의 안에서 힘이 태어났다.
노파는 늘 그렇듯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었다. 희끗한 금발의 성긴 머리카락은 여느 때처럼 기름을 번들거리게 바르고 쥐꼬리처럼 가늘게 땋아 뒷머리에 삐죽 꽂힌 뿔빗 조각 아래로 말아 올려 있었다. 매는 정수리 한복판에 떨어졌는데 그 여자의 작은 키가 그것을 도왔다. 그 여자는 소리를 질렀으나 아주 힘없는 소리였고, 문득 온몸이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그러면서도 두 손을 머리로 들어 올리기는 했다. 한 손에는 여전히 '저당물'을 쥐고 있었다. 그때 그는 있는 힘껏 한 번, 또 한 번 내리쳤다, 계속 등으로, 계속 정수리에. 피가 엎어진 잔에서처럼 쏟아졌고 몸이 뒤로 넘어갔다. 그는 물러서서 쓰러지게 두었다가 곧바로 그 여자의 얼굴로 몸을 굽혔다. 이미 죽어 있었다. 두 눈은 튀어나오려는 듯 부릅떠져 있었고 이마와 온 얼굴은 경련으로 일그러져 찌그러져 있었다.
그는 도끼를 죽은 이 곁 바닥에 내려놓고 곧바로 그 여자의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흐르는 피에 더럽혀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지난번에 그 여자가 열쇠를 꺼내던 바로 그 오른쪽 주머니에. 그는 온전히 제정신이었고 어두워짐도 어질함도 이제 없었으나 손은 여전히 떨렸다. 나중에 그는 제가 몹시 조심스럽고 주의 깊었다는 것을, 무엇에도 더럽혀지지 않으려 계속 애썼다는 것을 떠올렸다…… 열쇠는 곧바로 꺼냈다. 그때처럼 모두 강철 고리 하나에 한 꾸러미로 꿰여 있었다. 그는 곧바로 그것을 들고 침실로 달려갔다. 아주 작은 방이었고 성상을 넣은 큰 궤가 있었다. 다른 벽에는 큰 침대가 있었는데 아주 깨끗했고, 헝겊을 이어 붙인 비단 솜이불이 덮여 있었다. 세 번째 벽에는 장롱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장롱에 열쇠를 맞추기 시작하자마자, 열쇠가 짤랑이는 소리를 듣자마자 경련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했다. 문득 다시 모든 것을 내던지고 나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한순간일 뿐이었다. 나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는 제 자신을 비웃기까지 했는데, 문득 다른 불안한 생각이 머리를 때렸다. 노파가 어쩌면 아직 살아 있어서 정신을 차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던 것이다. 열쇠와 장롱을 버려두고 그는 시신 쪽으로 되달려가 도끼를 잡고 노파 위로 다시 한번 치켜들었으나 내리지는 않았다. 죽었다는 데는 의심이 없었다. 몸을 굽혀 다시 가까이 들여다보니 두개골이 부서졌고 조금 옆으로 밀려나기까지 한 것이 또렷이 보였다. 손가락으로 만져 보려다가 손을 거두었다. 그러지 않아도 보였다. 그러는 사이 피는 이미 웅덩이를 이루고 있었다. 문득 그는 그 여자의 목에 걸린 끈을 알아보고 잡아당겼으나 끈이 질겨 끊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피에 젖어 있었다. 품에서 그대로 빼내려 해 보았으나 무언가가 걸려 막혔다. 조바심이 나서 다시 도끼를 치켜들었다, 시신 위에서 그대로 끈을 내리쳐 자르려고. 그러나 감히 그러지 못하고, 손과 도끼를 더럽혀 가며 두 분이나 씨름한 끝에 도끼가 몸에 닿지 않게 끈을 잘라 벗겨 냈다. 그가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지갑이었다. 끈에는 십자가가 둘, 편백나무 것과 구리 것이 걸려 있었고 그 밖에 법랑을 입힌 작은 성상도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과 함께 강철 테와 고리가 달린, 기름때에 전 작은 사슴가죽 지갑이 매달려 있었다. 지갑은 아주 빵빵했다. 라스콜니코프는 들여다보지도 않고 그것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십자가들은 노파의 가슴에 던져 놓고, 이번에는 도끼도 챙겨 들고 침실로 되달려갔다.
그는 무섭게 서둘렀고 열쇠를 움켜쥐고 다시 씨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쩐지 자꾸 어긋났다. 열쇠가 자물통에 들어가지 않았다. 손이 그렇게 떨려서가 아니라 계속 잘못 골랐던 것이다. 이를테면 이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면서도 계속 밀어 넣었다. 문득 그는 떠올렸고 헤아렸다. 다른 작은 것들과 함께 달랑거리는 이 톱니 달린 큰 열쇠는 장롱 것일 리가 없으며(지난번에도 그 생각이 떠올랐다) 무슨 궤 것일 텐데, 어쩌면 바로 그 궤에 모든 것이 감추어져 있으리라고. 그는 장롱을 버리고 곧바로 침대 밑으로 기어들었다. 노파들은 궤를 침대 밑에 두는 법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과연 그랬다. 한 아르신이 넘는 제법 큰 궤가 놓여 있었는데, 뚜껑이 볼록하고 붉은 모로코가죽을 씌웠으며 강철 못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톱니 열쇠가 딱 맞아 열렸다. 맨 위 흰 홑이불 아래에 붉은 비단을 씌운 토끼털 외투가 있었고, 그 아래에는 비단옷이, 그다음에는 숄이 있었으며, 그 안쪽으로는 온통 헝겊 나부랭이만 있는 듯했다. 그는 먼저 피에 더럽혀진 제 손을 그 붉은 비단에 닦으려 했다.
'붉은 것이니까, 붉은 것 위에서는 피가 덜 보이겠지.'
그렇게 헤아리다가 문득 정신이 들었다.
'맙소사! 내가 미쳐 가는 것인가?'
그는 겁에 질려 생각했다.
그런데 그 헝겊들을 들추자마자 문득 외투 밑에서 금시계가 미끄러져 나왔다. 그는 달려들어 죄다 뒤집기 시작했다. 과연 헝겊들 사이에 금붙이가 섞여 있었다. 아마 모두 저당물일 텐데 찾아간 것도 있고 못 찾아간 것도 있었으리라. 팔찌, 목걸이, 귀고리, 장식 핀 따위였다. 어떤 것은 갑에 들어 있었고 어떤 것은 그냥 신문지로 쌌는데 꼼꼼하고 정성스럽게 두 겹으로 싸고 둘레를 끈으로 묶어 두었다. 조금도 미적거리지 않고 그는 그것들로 바지와 외투 주머니를 채우기 시작했다. 꾸러미와 갑을 가려 보지도 열어 보지도 않은 채였다. 그러나 많이 담지는 못했다……
문득 노파가 있던 방에서 누가 걸어 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멈추고 죽은 듯이 숨을 죽였다. 그러나 모든 것이 조용했다. 그러니 헛들은 것이었다. 문득 또렷이 가벼운 외침이 들렸다, 아니면 누군가가 조용히 뚝 끊기게 신음하다 그친 것 같았다. 그런 다음 다시 죽은 듯한 고요가 일 분인지 이 분인지 이어졌다. 그는 궤 옆에 쭈그려 앉아 숨을 겨우 쉬며 기다리다가 문득 벌떡 일어나 도끼를 잡고 침실에서 뛰어나갔다.
방 한가운데에 리자베타가 큰 보따리를 손에 들고 서서, 죽은 언니를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 온몸이 무명천처럼 하얬고 소리를 지를 힘도 없는 듯했다. 뛰어나오는 그를 보자 그 여자는 나뭇잎처럼 잘게 떨었고 온 얼굴로 경련이 달렸다. 손을 들어 올리고 입을 벌렸으나 그래도 소리를 지르지 못했고, 천천히, 뒷걸음으로 그에게서 구석 쪽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뚫어지게, 똑바로 그를 바라보면서도 여전히 소리를 지르지 못했다, 소리를 지를 숨이 모자라기라도 한 것처럼. 그는 도끼를 들고 그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그 여자의 입술이 애처롭게 비뚤어졌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무언가에 겁을 먹기 시작할 때, 저를 겁주는 것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울음을 터뜨리려 할 때처럼. 그리고 이 가엾은 리자베타는 어찌나 단순하고 어찌나 짓눌리고 어찌나 영영 겁에 질려 있었던지, 얼굴을 막으려고 손조차 들어 올리지 않았다. 도끼가 바로 그 얼굴 위로 치켜들려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그 순간에 가장 마땅하고 가장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을 텐데도. 그 여자는 자유로운 왼손을 아주 조금, 얼굴에는 한참 못 미치게 들어 올려 천천히 그의 앞으로 내밀었을 뿐이었다, 마치 그를 밀어내기라도 하려는 듯이. 매는 두개골에 그대로, 날로 떨어져 이마 위쪽을 정수리 가까이까지 단번에 갈랐다. 그 여자는 그대로 쓰러졌다. 라스콜니코프는 아주 갈피를 잃어 그 여자의 보따리를 움켜쥐었다가 다시 던지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두려움이 점점 더 그를 사로잡았다, 특히 이 두 번째의, 아주 뜻밖이었던 죽임 뒤로는. 그는 어서 여기서 달아나고 싶었다. 그리고 만일 그 순간에 그가 더 바르게 보고 헤아릴 수 있었다면, 제 처지의 온갖 어려움과 온갖 절망과 온갖 흉함과 온갖 터무니없음을 헤아릴 수만 있었다면, 그리고 여기서 빠져나가 집에 이르기까지 아직 얼마나 많은 곤란을, 어쩌면 얼마나 많은 악행을 넘고 저질러야 하는지를 그때 알 수 있었다면, 아마 그는 모든 것을 내던지고 곧바로 제 발로 가서 자수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제 몸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오직 제가 한 일에 대한 소름과 역겨움 때문에. 역겨움이 유난히 한순간 한순간 그의 안에서 솟아오르고 자랐다. 이제는 세상 무엇을 준대도 그 궤로도, 아니 저 방으로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흐트러짐이, 생각에 잠김이라 해도 좋을 것이 차츰 그를 사로잡기 시작했다. 순간순간 그는 넋을 놓는 듯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중요한 것을 잊고 자질구레한 것에 달라붙었다. 하기야 부엌을 들여다보고 긴 의자 위에 물이 반쯤 찬 물통이 있는 것을 보고서 그는 손과 도끼를 씻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냈다. 두 손은 피투성이였고 끈적였다. 그는 도끼를 날부터 그대로 물에 담그고, 창가 깨진 접시에 놓인 비누 조각을 집어 물통 안에서 바로 손을 씻기 시작했다. 손을 씻고 나서 도끼를 꺼내 쇠를 씻고, 피가 밴 나무 자루를 삼 분쯤이나 오래 문질렀다, 비누까지 써 가며. 그런 다음 부엌을 가로질러 걸어 둔 줄에 널려 말리던 속옷으로 모두 닦아 내고, 창가에서 오랫동안 유심히 도끼를 살펴보았다. 자국은 남지 않았고 자루만 아직 축축했다. 그는 꼼꼼히 도끼를 외투 아래 고리에 끼웠다. 그런 다음 침침한 부엌의 빛이 허락하는 만큼 외투와 바지와 장화를 살펴보았다. 겉으로는 얼핏 보아 아무것도 없는 듯했고 장화에만 얼룩이 있었다. 그는 헝겊을 적셔 장화를 닦아 냈다. 하기야 그는 자기가 제대로 보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어쩌면 눈에 확 띄는 무언가가 있는데 제가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생각에 잠겨 방 한가운데 섰다. 괴롭고 어두운 생각 하나가 그의 안에서 솟아올랐다. 제가 미쳐 가고 있으며 이 순간 헤아릴 힘도 제 몸을 지킬 힘도 없고, 어쩌면 지금 하고 있는 이것이 해야 할 일이 전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맙소사! 달아나야 한다, 달아나야 해!'
그는 중얼거리고 현관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여기서 그를 기다린 것은, 그가 여태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그런 소름이었다.
그는 서서 바라보면서도 제 눈을 믿지 못했다. 현관에서 계단으로 나가는 바깥문, 아까 그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온 바로 그 문이 잠기지 않은 채, 손바닥 하나 너비만큼 열린 채 서 있었다. 자물쇠도 빗장도 걸리지 않은 채, 내내, 그 내내! 노파가 그의 뒤로 닫지 않았던 것이다, 어쩌면 조심하느라. 그러나 맙소사! 그 뒤에 리자베타를 보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그 여자가 어디로든 들어왔으리라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단 말인가! 벽을 뚫고 들어왔을 리는 없지 않은가.
그는 문으로 달려들어 빗장을 걸었다.
'아니, 이것도 또 아니다! 가야 한다, 가야 해……'
그는 빗장을 벗기고 문을 열고 계단 쪽으로 귀를 기울였다.
오래 귀를 기울였다. 어딘가 멀리, 아래에서, 아마 대문 아래에서 누군가의 두 목소리가 크고 날카롭게 소리치며 다투고 욕을 하고 있었다.
'저것들은 무엇이지?……'
그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마침내 단번에 모든 것이 잘린 듯 조용해졌다. 흩어진 것이다. 그는 나가려 했으나 문득 한 층 아래에서 계단으로 난 문이 소리를 내며 열리고 누군가가 무슨 가락을 흥얼거리며 내려가기 시작했다.
'어쩌면 다들 저렇게 시끄럽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는 다시 제 뒤로 문을 닫고 기다렸다. 마침내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사람 하나 없었다. 그는 계단으로 한 발을 내디뎠는데 문득 또 누군가의 새로운 발소리가 들렸다.
이 발소리는 아주 멀리, 아직 계단 맨 아래에서 들렸다. 그러나 그는 첫 소리부터 어쩐지 이것이 반드시 이리로, 사층으로, 노파에게 오는 것이라고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아주 잘 또렷이 기억했다. 왜 그랬을까? 소리가 그렇게 유난하고 뜻있게 들리기라도 했던 것일까? 발소리는 무겁고 고르고 서두르지 않았다. 이제 일 층을 지났고, 이제 더 올라왔다. 점점 더 잘 들린다! 올라오는 이의 무거운 숨소리가 들렸다. 이제 삼 층이 시작됐다…… 이리로다! 그러자 문득 제 몸이 굳어 버린 것 같았다, 마치 꿈속 같았다, 누가 쫓아오고 가까이 왔고 죽이려 하는데 제 몸은 그 자리에 뿌리박혀 손조차 움직일 수 없는 그런 꿈속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손님이 사 층으로 올라서기 시작했을 때, 그제야 그는 온몸이 문득 깨어나 재빠르고 날렵하게 현관에서 집 안으로 도로 미끄러져 들어가 뒤로 문을 닫는 데 성공했다. 그런 다음 빗장을 잡아 조용히, 소리 없이 고리에 걸었다. 본능이 도왔다. 다 끝내고 그는 숨도 쉬지 않고 바로 문 옆에 숨었다. 청하지 않은 손님도 이미 문 앞에 와 있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 마주 서 있었다, 아까 문을 사이에 두고 그가 귀를 기울이던 때의 그와 노파처럼.
손님이 몇 번 무겁게 숨을 돌렸다.
'뚱뚱하고 덩치가 크겠군.'
라스콜니코프는 손에 도끼를 움켜쥐며 생각했다. 정말로 이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손님이 초인종을 잡고 세게 눌렀다.
양철 소리가 짤랑이자마자 문득 방 안에서 무언가가 움직인 것 같았다. 몇 초 동안 그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까지 했다. 낯선 이가 한 번 더 울리고 더 기다리더니 문득 조바심이 나서 있는 힘껏 문손잡이를 흔들어 대기 시작했다. 라스콜니코프는 고리 안에서 튀는 빗장 갈고리를 소름 끼치며 바라보았고, 이제 곧 빗장이 튀어 나가리라고 멍한 두려움 속에 기다렸다. 정말로 그럴 법했다, 그만큼 세게 흔들어 댔다. 손으로 빗장을 붙들까 생각도 해 보았으나 그러면 저쪽이 알아챌 수도 있었다. 머리가 다시 어질해지기 시작하는 듯했다.
'쓰러지겠다!'
그의 안에서 스쳤으나 낯선 이가 말을 하기 시작했고 그는 곧바로 정신이 들었다.
“아니 저것들이 처자빠져 자나, 누가 목이라도 졸랐나? 빌어먹을 것들!”
그가 통 속에서 나오는 소리처럼 으르렁거렸다.
“어이, 알료나 이바노브나, 늙은 마녀야! 리자베타 이바노브나, 형언할 수 없는 미인이여! 문 열어라! 어이구 빌어먹을 것들, 자는 건가 뭔가?”
그러고는 다시 사납게 열 번이나 한꺼번에 온 힘으로 초인종을 잡아당겼다. 물론 이 집에서 위세를 부리며 스스럼없이 구는 사람이었다.
바로 그 순간 문득 잘고 서두르는 발소리가 계단 가까이에서 들렸다. 누군가가 또 올라오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처음에는 알아듣지도 못했다.
“설마 아무도 없나요?”
올라온 이가 여전히 초인종을 잡아당기고 있는 첫 번째 손님을 향해 낭랑하고 즐겁게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코흐!”
'목소리로 보아 아주 젊겠군.'
라스콜니코프는 문득 생각했다.
“귀신이나 알겠소, 자물쇠를 부술 뻔했소.”
코흐가 대답했다.
“그런데 당신은 나를 어떻게 아시오?”
“아니 이런! 그저께 함브리누스에서 당구로 내리 세 판을 당신에게 땄잖습니까!”
“아아……”
“그래 저 사람들이 없다고요? 이상하군요. 하기야 지독히 어이없는 노릇이지요. 노파가 어디를 갔을까요? 볼일이 있는데.”
“나도 볼일이 있소이다!”
“그럼 어쩌겠습니까? 돌아가야지요. 에이! 돈 좀 구하려 했는데!”
젊은이가 부르짖었다.
“물론 돌아가야지, 그런데 왜 시각을 정해 주고서는? 저 마녀가 나한테 직접 시각을 정해 주었소. 나로서는 에두르고 온 길인데. 게다가 대체 어디를 쏘다니는지 모르겠소. 저 마녀는 일 년 내내 앉아서 골골대고 다리가 아프다면서, 여기서 문득 놀러 나갔단 말이오!”
“문지기에게 물어보면 어떨까요?”
“무엇을?”
“어디로 갔고 언제 오는지요.”
“흠…… 제기랄…… 물어본다……”
“그런데 저 여자는 어디도 안 다니는데……”
그러고는 다시 한번 자물쇠 손잡이를 당겼다.
“제기랄, 어쩔 수 없군, 가야겠소!”
“잠깐!”
젊은이가 문득 소리쳤다.
“보십시오, 당기면 문이 이렇게 벌어지는 게 보이시죠?”
“그래서?”
“그러니까 자물쇠로 잠근 게 아니라 빗장을, 그러니까 갈고리를 걸어 둔 겁니다! 빗장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시죠?”
“그래서?”
“아니 어떻게 모르십니까? 그러니까 저 안에 누가 있다는 뜻이에요. 다들 나갔다면 바깥에서 열쇠로 잠갔겠지 안에서 빗장을 걸지는 않지요. 그런데 여기, 빗장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까? 안에서 빗장을 걸려면 집에 있어야 하잖아요, 아시겠어요? 그러니까 집에 앉아 있으면서 안 열어 주는 겁니다!”
“이런! 정말 그렇군!”
놀란 코흐가 소리쳤다.
“그럼 저것들이 저 안에서 무얼 하는 거야!”
그러고는 미친 듯이 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잠깐!”
젊은이가 다시 소리쳤다.
“흔들지 마십시오! 여기 무언가 심상치 않습니다…… 초인종을 누르고 흔들었는데도 안 열어 주잖아요. 그러니까 둘 다 정신을 잃었거나, 아니면……”
“무엇이오?”
“이렇게 하지요. 문지기를 부르러 갑시다. 문지기가 직접 깨우게요.”
“그럽시다!”
두 사람이 아래로 움직였다.
“잠깐! 당신은 여기 남아 계시고 내가 아래로 뛰어가 문지기를 불러오겠습니다.”
“왜 남아 있으라는 거요?”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까요……”
“그럼 그러지요……”
“나는 예심판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분명히, 부-운-명히 무언가 심상치 않아요!”
젊은이가 열을 내어 부르짖고는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코흐는 남아서 한 번 더 조용히 초인종을 건드렸고 그것이 한 번 짤랑였다. 그런 다음 조용히, 무언가를 헤아리고 살피듯 문손잡이를 당겼다 놓았다 하며 움직여 보았다, 빗장 하나만 걸려 있다는 것을 한 번 더 확인하려고. 그러고는 씩씩거리며 몸을 굽혀 열쇠 구멍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안쪽에서 꽂아 둔 열쇠가 있어서 아무것도 보일 수가 없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서서 도끼를 움켜쥐고 있었다. 그는 헛것에 홀린 사람 같았다. 저들이 들어오면 맞붙어 싸울 채비까지 하고 있었다. 저들이 두드리고 의논할 때 그의 머리에는 모든 것을 단번에 끝내고 문 너머로 저들에게 소리쳐 버릴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문득 떠올랐다. 때로는 문이 열리기 전에 저들과 욕이라도 주고받고 싶었고 저들을 약 올리고 싶었다.
'차라리 어서 끝났으면!'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그런데 저놈이, 제기랄……”
시간이 흘렀다, 일 분, 이 분 — 아무도 오지 않았다. 코흐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이 제기랄!……”
그가 문득 소리치고는 조바심이 나서 제 망보기를 버리고 서둘러 장화 소리를 내며 역시 아래로 내려갔다. 발소리가 잦아들었다.
'주여, 어찌해야 하나!'
라스콜니코프는 빗장을 벗기고 문을 조금 열었다 —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고는 문득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가서 되도록 단단히 뒤로 문을 닫고 아래로 내달렸다.
계단 세 층을 이미 내려왔을 때 문득 아래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렸다 — 어디로 가야 하나! 숨을 데라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는 되돌아, 다시 그 집으로 뛰어 올라가려 했다.
“어이, 도깨비야, 제기랄! 잡아라!”
누군가가 아래 어느 집에서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와, 뛴다기보다 계단을 굴러 내려가듯 하며 목청껏 소리쳤다.
“미치카! 미치카! 미치카! 미치카! 미치카! 뒈져라아아!”
외침은 새된 비명으로 끝났다. 마지막 소리는 이미 안뜰에서 들렸다.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여럿이 크고 빠르게 이야기하며 요란하게 계단을 올라오기 시작했다. 셋인가 넷이었다. 그는 젊은이의 낭랑한 목소리를 알아들었다.
'저들이다!'
온전한 절망 속에 그는 저들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될 대로 되라! 멈춰 세우면 모든 것이 끝장이고, 지나가게 두어도 역시 모든 것이 끝장이다. 기억할 테니까. 이미 서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계단 하나만 남아 있었다 — 그런데 문득 살길이 있었다! 그에게서 몇 계단 떨어진 오른쪽에, 비어 있고 활짝 열린 집이, 바로 일꾼들이 칠을 하고 있던 이 층의 그 집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그들이 나가고 없었다. 아마 방금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뛰쳐나간 것이 그들이었으리라. 마루는 갓 칠했고 방 한가운데에는 작은 통과 페인트 담은 사금파리와 솔이 놓여 있었다. 한순간에 그는 열린 문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벽 뒤에 숨었다. 때맞춘 일이었다. 저들은 이미 바로 그 층계참에 서 있었다. 그런 다음 위로 꺾어 그 앞을 지나 사 층으로 올라갔다,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서. 그는 기다렸다가 발끝으로 나와 아래로 달렸다.
계단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문 아래에도 없었다. 그는 빠르게 문간을 지나 거리 왼쪽으로 꺾었다.
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더없이 잘 알고 있었다. 저들이 이 순간 이미 그 집에 들어갔고, 방금까지 잠겨 있던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몹시 놀랐으며, 이미 시신들을 바라보고 있고, 일 분도 지나지 않아 여기에 방금까지 살인자가 있었으며 어딘가에 숨었다가 저들 곁을 스쳐 달아났다는 것을 헤아려 온전히 알아차리리라는 것을. 어쩌면 저들이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가 빈집에 앉아 있었다는 것까지 알아차릴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걸음을 크게 빨리 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첫 모퉁이까지 백 걸음쯤 남았는데도.
'아무 문간으로든 미끄러져 들어가 낯선 계단에서 기다릴까? 아니, 큰일이다! 도끼를 어디 내던질까? 삯마차를 잡을까? 큰일이다! 큰일이야!'
마침내 골목이다. 그는 반쯤 죽은 채로 그리로 꺾었다. 여기서 그는 이미 반은 살아난 것이었고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의심을 덜 살 뿐 아니라 여기는 사람이 몹시 붐벼서 그는 그 속에서 모래알처럼 지워졌다. 그러나 이 모든 괴로움이 그를 어찌나 지치게 했던지 그는 겨우 움직였다. 땀이 방울져 흘렀고 목이 온통 젖었다.
“어지간히 걸쳤군!”
그가 운하 쪽으로 나섰을 때 누군가가 그에게 소리쳤다.
이제 그는 제정신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갈수록 더 나빠졌다. 그래도 그는 기억했다, 운하로 나서면서 사람이 적어 여기서는 더 눈에 띄겠다고 문득 겁이 나서 골목으로 되돌아가려 했던 것을. 쓰러질 지경이었는데도 그는 그래도 에둘러서 아주 다른 쪽에서 집에 이르렀다.
제정신이 온전치 않은 채로 그는 제 집 대문도 지나쳤다. 적어도 계단에 이르고 나서야 비로소 도끼가 떠올랐다. 그러는 사이 아주 중요한 일이 앞에 있었다. 도끼를 도로 갖다 놓되 되도록 눈에 띄지 않게 해야 했다. 물론 그는 이제 헤아릴 힘이 없었다, 어쩌면 도끼를 전에 있던 자리에 두지 않고 나중에라도 어디 남의 집 뜰에 던져 버리는 편이 훨씬 나았으리라는 것을.
그러나 모든 것이 무사히 되었다. 문지기 방 문은 닫혀 있었으나 잠겨 있지는 않았으니 문지기가 집에 있을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러나 그는 이미 무엇 하나 헤아릴 힘을 잃어버려서 곧장 문지기 방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문지기가 그에게 '무슨 일이오?' 하고 물었다면 그는 어쩌면 그대로 도끼를 내밀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지기는 또 없었고, 그는 도끼를 긴 의자 밑 전에 있던 자리에 놓는 데 성공했다. 전처럼 장작으로 덮어 두기까지 했다. 그 뒤로 제 방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 주인 여자의 문은 닫혀 있었다. 제 방에 들어서자 그는 그대로 소파에 몸을 던졌다. 잠들지는 않았으나 넋을 놓고 있었다. 누가 그때 그의 방에 들어왔다면 그는 곧바로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무슨 생각인지 모를 조각들과 토막들이 그의 머릿속에 우글거렸다. 그러나 그는 그 가운데 하나도 붙잡을 수 없었고 하나에도 멈추어 설 수 없었다, 안간힘을 썼는데도……
작품 해설과 번역 노트
윤문 노트
이 회차의 고유 문제 — 도끼의 등과 날
원문은 알료나에게는 도끼의 등을, 리자베타에게는 날을 쓴다고 분명히 갈라 적는다. 이것은 세부가 아니라 이 소설의 뼈대다. 노파는 한 달 동안 계획된 상대라 그가 정한 방식대로 치고, 리자베타는 계획에 없던 상대라 잡히는 대로 친다. 등과 날의 차이가 곧 이론과 그 이론이 무너진 자리의 차이다. 두 낱말을 뭉뚱그리지 않았다.
- 리자베타의 손 — 원문이 유난히 길게, 거의 냉정하게 적는 대목이다. 얼굴을 막으려고 손을 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그 순간 가장 마땅하고 자연스러운 몸짓이었을 텐데도 그러지 않았다는 것, 자유로운 왼손을 얼굴에 한참 못 미치게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는 것. 한 줄도 줄이지 않았다. 라스콜니코프의 이론이 무너지는 지점이 바로 이 들지 않은 손이다.
- '붉은 것 위에서는 피가 덜 보이겠지' — 살인 뒤 그가 처음으로 제 상태를 알아차리는 자리다. 헤아림이 한 줄 나오고 곧바로 '내가 미쳐 가는 것인가?'가 붙는다. 사이를 벌리지 않았다.
- 손 씻는 대목 — 원문이 비누와 물통과 널어 둔 속옷까지 꼼꼼히 적는다. 이 꼼꼼함이 앞 회차의 고리와 가짜 저당물을 만들던 꼼꼼함과 같은 결이라, 자질구레하다고 덜어 내면 인물이 사라진다.
- 열려 있던 문 — 이 장의 반전이다. 원문의 감탄과 되물음('그러나 맙소사! 그 뒤에 리자베타를 보지 않았던가!')을 그대로 두었다.
- '나는 예심판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 젊은이의 이 한마디는 뒤에 오는 모든 심문의 예고편이다. 원문의 늘여 쓴 강조('부-운-명히')도 살렸다.
- 시제 — 계단에서 발소리를 듣는 대목과 도망치는 대목에서 원문이 현재형으로 튀어 오른다. 5·6장과 같은 장치이므로 그대로 받았다.
검수
- 폭력 장면을 줄이거나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원문이 무엇을 얼마나 자세히 보게 하는지가 이 소설의 윤리적 설계이기 때문이다.
- 단상체 구간의 말줄임·반복·미완을 정리하지 않았다.
- 강조부사를 임의로 삭제하지 않았다.
주
- 도끼의 등 — 도끼날 반대쪽의 뭉툭한 쇠 부분. 장작을 팰 때 쐐기를 두드리는 데 쓴다.
- 쥐꼬리 땋은 머리 — 성기고 가는 머리카락을 가늘게 땋아 내린 모양을 가리키는 러시아어 표현.
- 편백나무 십자가와 구리 십자가 — 정교회 신자가 목에 거는 세례 십자가. 두 개가 걸려 있다는 것은 하나가 남의 것이라는 뜻으로, 뒤에 이 물건들이 다시 나온다.
- 법랑 성상 — 금속판에 법랑을 입혀 만든 작은 휴대용 성상.
- 아르신 — 약 71센티미터.
- 모로코가죽 — 염소가죽을 무두질해 물들인 고급 가죽. 궤가 값나가는 물건이라는 표시다.
- 함브리누스 — 페테르부르크의 실재 술집 이름. 코흐와 젊은이가 당구를 치며 알게 된 사이라는 것이 그 한마디로 드러난다.
- 예심판사 — 1864년 사법 개혁으로 새로 생긴 직책. 수사를 지휘하고 심문하는 자리로, 이 소설의 중심 인물 하나가 그 직책을 맡는다. 그 직책을 준비 중인 젊은이가 지금 문 앞에서 추리를 해 보이는 것이다.
- 빗장과 갈고리 — 안쪽에서만 걸 수 있는 잠금 장치. 젊은이의 추리가 성립하는 근거이며, 그 추리가 정확했다는 점이 이 장면의 긴장을 만든다.
- 갓 칠한 마루 — 이 층 빈집에서 칠장이들이 일하고 있었다는 6장의 세부가 여기서 그를 살린다. 뒤에 사건 수사의 중요한 고리로 다시 나온다.
- 운하 — 예카테리나 운하(현 그리보예도프 운하). 소설의 주요 무대를 가로지르는 물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