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제3부 제1장

가족의 사랑과 우정 사이로 수사의 그림자가 조여 온다.
가족의 사랑과 우정 사이로 수사의 그림자가 조여 온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방문이 라스콜니코프의 병든 마음을 흔든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방문이 라스콜니코프의 병든 마음을 흔든다.

라스콜니코프는 몸을 일으켜 소파에 앉았다.

그는 어머니와 누이를 향해 쏟아지는 라주미힌의 두서없고 뜨거운 위로의 물결을 그치게 하려고 힘없이 손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두 사람의 손을 각각 붙잡고 이 분쯤 말없이 이쪽을, 저쪽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는 그 눈길에 겁을 먹었다. 그 눈길에는 고통에 이를 만큼 강한 감정이 비쳐 들었으나, 동시에 무언가 꿈쩍도 하지 않는, 거의 미친 것 같기까지 한 것이 있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창백했다. 그녀의 손이 오라비의 손 안에서 떨렸다.

“집으로 가십시오… 이 사람과 함께.” 그가 끊기는 목소리로 라주미힌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일까지. 내일 전부… 오신 지 오래되셨습니까?”

“저녁에 왔다, 로댜.”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대답했다. “기차가 끔찍하게 늦었단다. 그런데 로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금 네게서 떠나지 않겠다! 여기 곁에서 밤을 지새우마…”

“나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가 성마르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제가 곁에 남겠습니다!” 라주미힌이 외쳤다. “한순간도 이 친구를 떠나지 않겠습니다. 제 쪽 사람들이야 다 악마에게나 가라지요, 벽을 타고 오르든 말든! 거기는 제 삼촌이 회장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무엇으로 당신께 갚아야 할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다시 라주미힌의 손을 붙들며 말을 꺼냈으나, 라스콜니코프가 또 그녀의 말을 잘랐다.

“못 하겠습니다, 못 하겠어요.” 그가 성마르게 되풀이했다.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만하면 됐으니 가십시오… 못 하겠습니다!…”

“가요, 어머니, 잠깐이라도 방에서 나가요.” 겁에 질린 두냐가 속삭였다. “우리가 오라버니를 죽이고 있어요, 보이잖아요.”

“아니, 삼 년 만인데 얼굴도 못 본단 말이냐!”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울었다.

“기다리십시오!” 그가 다시 그들을 멈춰 세웠다. “계속 말을 자르시니 생각이 뒤엉킵니다… 루진을 보셨습니까?”

“아니다, 로댜. 그렇지만 그이는 우리가 온 것을 벌써 알고 있다. 로댜,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친절하게도 오늘 너를 찾아왔다고 들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얼마쯤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예… 친절하게도 왔었지요… 두냐, 나는 아까 루진에게 계단 아래로 굴려 버리겠다고 말하고 악마에게나 가라고 쫓아냈다.”

“로댜, 무슨 소리냐! 너 아마…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겠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겁에 질려 말을 꺼내다가, 두냐를 바라보며 멈췄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오라비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다음을 기다렸다. 두 사람은 이미 나스타샤에게서, 그녀가 알아듣고 옮길 수 있는 만큼은 다툼에 대해 미리 들어 두었고, 영문을 모른 채 기다리느라 애를 태워 온 참이었다.

“두냐,” 라스콜니코프가 힘을 들여 말을 이었다. “나는 이 혼사를 바라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내일 당장, 첫마디에 루진을 물리쳐서 그 냄새조차 나지 않게 해야 한다.”

“맙소사!”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오라버니, 무슨 말을 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발끈해서 말을 꺼내려다 곧바로 자신을 억눌렀다. “오라버니는 아마 지금 그럴 상태가 아닐 거예요, 지치셨어요.” 그녀가 부드럽게 말했다.

“헛소리를 하는 것 같으냐? 아니다… 너는 나를 위해서 루진에게 시집가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희생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내일까지 편지를 써라… 거절한다고… 아침에 내게 읽어 보게 하고, 그것으로 끝이다!”

“저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모욕당한 처녀가 외쳤다. “무슨 권리로…”

“두네치카, 너도 성미가 급하구나, 그만해라, 내일…. 보이지 않니…” 어머니가 겁에 질려 두냐에게 달려들었다. “아아, 차라리 나가자꾸나!”

“헛소리를 하는 겁니다!” 술기운이 도는 라주미힌이 외쳤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감히! 내일이면 이 어리석은 것이 다 튀어나가 버릴 겁니다… 그런데 오늘 정말로 이 친구가 그 사람을 쫓아냈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쪽이 성이 나서… 여기서 연설을 하고 제 지식을 늘어놓더니 꽁지를 사리고 나갔지요…”

“그럼 그게 사실이란 말이냐?”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내일 봬요, 오라버니.” 두냐가 가엾어하며 말했다. “가요, 어머니… 안녕히 계세요, 로댜!”

“들어라, 누이야.” 그가 마지막 힘을 모아 뒤에 대고 되풀이했다. “나는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혼사는 비열한 짓이다. 나야 비열한 자라 치더라도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든 하나면 된다… 나는 비록 비열한 자라도 그런 누이를 누이로 여기지 않겠다. 나냐 루진이냐! 가십시오…”

“너 미쳤구나! 폭군 같으니!” 라주미힌이 포효했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더는 대답하지 않았고, 어쩌면 대답할 힘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는 소파에 누워 완전히 기진한 채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호기심을 담아 라주미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검은 눈이 번뜩였다. 라주미힌은 그 눈길 아래에서 몸을 떨기까지 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얻어맞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갈 수 없습니다!” 그녀가 거의 절망하여 라주미힌에게 속삭였다. “나는 여기 어디든 남겠습니다… 두냐를 데려다주세요.”

“그러면 일을 다 그르치십니다!” 라주미힌도 제정신이 아니어서 속삭였다. “계단으로라도 나가시지요. 나스타샤, 불을 비춰 주게! 맹세합니다.” 그는 이미 계단에서 반쯤 속삭이는 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 저 친구가 저희를, 저와 의사를 때릴 뻔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의사를요! 그래서 의사도 자극하지 않으려고 물러나 나갔고, 저는 아래에서 지키고 있었는데, 그 사이에 저 친구가 옷을 차려입고 빠져나갔습니다. 지금도 자극하시면 빠져나갈 겁니다. 그것도 밤에요. 그러다가 제 몸에 무슨 짓을 할지도…”

“아아, 무슨 말씀이세요!”

“게다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혼자 셋방에 두는 것도 안 될 일입니다! 어디 묵고 계신지 생각해 보십시오! 그 비열한 자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더 나은 집을 구해 드릴 수 없었단 말입니까… 하기야, 저는 좀 취해서 그래서… 욕을 했습니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그렇지만 나는 이 집 주인 여자에게 가 보겠어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우겼다. “오늘 밤 나와 두냐가 묵을 구석을 내어 달라고 사정해 보겠어요. 나는 저 애를 저렇게 두고 갈 수 없어요, 없다고요!”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들은 계단 층계참, 바로 주인 여자의 문 앞에 서 있었다. 나스타샤가 아래 계단에서 그들에게 불을 비추고 있었다. 라주미힌은 예사롭지 않게 흥분해 있었다. 삼십 분 전, 라스콜니코프를 집까지 바래다줄 때만 해도 그는 지나치게 말이 많기는 했고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날 저녁 마신 끔찍한 양의 술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기운차고 거의 말짱한 상태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상태는 어떤 황홀경 같은 것에 가까웠고, 동시에 마신 술이 전부 한꺼번에, 두 배의 힘으로 다시 머리에 치밀어 오른 듯했다. 그는 두 부인의 손을 각각 붙들고 서서 그들을 설득하고 놀라울 만큼 솔직하게 제 근거를 늘어놓았으며, 아마도 더 단단히 설득하려는 것인지 거의 한마디마다 두 사람의 손을 만력(萬力)에 물린 것처럼 아프도록 꽉 쥐었고, 조금도 거리끼지 않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눈으로 삼키는 듯했다. 아파서 그들은 이따금 그의 거대하고 뼈마디 굵은 손아귀에서 제 손을 빼냈으나, 그는 무슨 일인지 알아채기는커녕 더욱 세게 그들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만일 그들이 지금 그에게 제 편의를 위해 계단에서 거꾸로 뛰어내리라고 시켰다면 그는 따지지도 의심하지도 않고 곧바로 그렇게 했을 것이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제 로댜 생각에 온통 마음을 졸이고 있었으므로, 이 젊은이가 몹시 괴상하고 손을 너무 아프게 쥔다고 느끼면서도, 동시에 그가 그녀에게는 하늘의 섭리였으므로 이 모든 괴상한 세부를 알아채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같은 불안 속에서도, 그리고 겁 많은 성격이 아니었음에도, 오라비의 벗이 사나운 불꽃을 뿜으며 던지는 눈길을 놀라움과 거의 두려움에 가까운 것으로 맞이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이상한 사람에 대해 나스타샤가 들려준 이야기가 심어 놓은 가없는 신뢰만이 그에게서 달아나 어머니를 끌고 가려는 시도를 붙들어 두었다. 그녀는 또한 지금 그에게서 달아나기도 어쩌면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기야 십 분쯤 지나자 그녀는 상당히 진정되었다. 라주미힌은 어떤 기분에 있든 순식간에 제 전부를 털어놓는 성질이 있어서, 누구나 아주 빠르게 제가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 여자한테 가는 건 안 됩니다, 더없이 터무니없는 소리입니다!” 그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설득하며 외쳤다. “어머니시긴 하지만, 남으시면 저 친구를 광포하게 만들 겁니다.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귀신도 모릅니다! 들으십시오, 제가 이렇게 하겠습니다. 지금은 나스타샤가 저 친구 곁에 앉아 있을 겁니다. 그동안 제가 두 분을 댁까지 모셔다드리겠습니다. 두 분만 거리를 다니셔서는 안 되니까요. 저희 페테르부르크에서는 그 점이… 뭐, 침이나 뱉지요!… 그다음에 댁에서 곧바로 이리 달려와서 십오 분 안에, 제 가장 정직한 말씀을 걸고, 두 분께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저 친구가 어떤지, 자는지 아닌지, 그 밖의 전부를. 그다음에, 들으십시오! 그다음에 댁에서 순식간에 제 집으로 가서—거기 손님들이 다 취해 있습니다만—조시모프를 데려오겠습니다. 저 친구를 치료하는 의사인데 지금 제 집에 앉아 있고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은 안 취합니다, 절대로 안 취해요! 그를 끌고 로지카에게 갔다가 곧바로 두 분께 가겠습니다. 그러니까 한 시간 안에 두 분은 저 친구에 대해 두 번 소식을 받으시는 겁니다. 그것도 의사한테서요, 아시겠습니까, 의사 본인한테서! 이건 저한테 듣는 것과는 다르지요! 나쁘다면 맹세코 제가 두 분을 이리로 직접 모셔 오겠습니다. 좋다면 그냥 주무시면 됩니다. 저는 밤새 여기서, 현관에서 자겠습니다. 저 친구는 듣지도 못할 겁니다. 그리고 조시모프에게는 주인 여자 방에서 자라고 하겠습니다, 손닿는 데 있도록. 자, 지금 저 친구에게 무엇이 더 낫겠습니까, 두 분이겠습니까, 의사겠습니까? 의사가 더 쓸모 있지요, 더 쓸모 있습니다. 그러니 댁으로 가시지요! 주인 여자한테는 안 됩니다. 저는 되지만 두 분은 안 됩니다. 들이지 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그 여자가 바보거든요. 저를 두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질투할 겁니다, 알고 싶으시다면요. 그리고 두 분께도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는 틀림없이요. 완전히, 완전히 뜻밖의 성격입니다! 하기야 저도 바보지요… 침이나 뱉읍시다! 가시지요! 저를 믿으십니까? 자, 저를 믿으십니까, 안 믿으십니까?”

“가요, 어머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말했다. “이분은 약속한 대로 틀림없이 하실 거예요. 이미 오라버니를 되살려 놓으셨잖아요. 그리고 의사가 여기서 자기로 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보다 나은 게 어디 있겠어요?”

“바로 그겁니다… 당신은… 당신은 저를 알아주시는군요, 당신은 천사이시니까요!” 라주미힌이 황홀해하며 외쳤다. “갑시다! 나스타샤! 당장 위로 올라가서 불을 켜고 저 친구 곁에 앉아 있게. 나는 십오 분 뒤에 오겠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완전히 설득된 것은 아니었으나 더는 버티지 않았다. 라주미힌이 두 사람의 팔을 끼고 계단 아래로 끌고 갔다. 하기야 그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재바르고 마음씨도 좋지만, 약속한 것을 해낼 상태이기는 한가? 저런 꼴인데!…'

“아, 알겠습니다, 제가 이런 꼴이라고 생각하시는군요!” 라주미힌이 그녀의 생각을 알아맞히고 끊어 버리면서, 인도 위를 제 거대한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었다. 두 부인이 겨우 따라갈 수 있을 정도였으나 그는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터무니없는 소립니다! 그러니까… 저는 멍청이처럼 취했습니다만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저는 술에 취한 게 아닙니다. 이건 두 분을 뵙자마자 머리에 치밀어 오른 겁니다… 아이고, 저 따위는 침이나 뱉으십시오!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제가 허튼소리를 하는 겁니다. 저는 두 분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더없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두 분을 모셔다드리고 나면 곧장 여기 운하에서 제 머리에 물을 두 통 끼얹겠습니다. 그러면 됩니다… 제가 두 분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신다면!… 웃지도 마시고 성내지도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한테는 다 성내셔도 저한테는 성내지 마십시오! 저는 저 친구의 벗이고, 그러니 두 분의 벗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러고 싶습니다… 저는 이것을 예감했습니다… 작년에 그런 순간이 한 번 있었습니다… 하기야 전혀 예감하지 못했지요, 두 분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 같으니까요. 저는 아마 밤새 잠도 못 잘 겁니다… 그 조시모프가 아까 저 친구가 미쳐 버릴까 봐 걱정했거든요… 그래서 자극하면 안 되는 겁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가 외쳤다.

“정말로 의사가 그렇게 말했나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겁에 질려 물었다.

“말했습니다만 그건 그런 게 아닙니다, 전혀 그런 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약도 주었습니다, 가루약을요, 제가 봤습니다. 그런데 그때 두 분이 오신 겁니다… 에잇!… 두 분은 내일 오시는 편이 나았을 겁니다! 우리가 나온 건 잘한 일입니다. 한 시간 뒤면 조시모프가 직접 두 분께 전부 보고할 겁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안 취했지요! 그리고 저도 안 취할 겁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렇게 퍼마셨을까요? 논쟁에 끌려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빌어먹을 것들! 논쟁은 안 하겠다고 맹세까지 해 놓고선!… 어찌나 헛소리를 늘어놓는지! 하마터면 주먹다짐을 할 뻔했습니다! 삼촌을 회장으로 남겨 두고 왔지요… 자, 믿으시겠습니까. 완전한 몰개성을 요구하면서 바로 거기서 가장 큰 맛을 찾는단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제 자신이 되지 않을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제 자신을 덜 닮을까! 그것을 저들은 가장 드높은 진보로 여깁니다. 그리고 거짓말이라도 제 식으로 하면 모를까, 그런데…”

“저, 잠깐만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끊었으나, 그것은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부었다.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라주미힌이 목소리를 한층 더 높이며 외쳤다. “제가 저들이 거짓말을 한다고 해서 이러는 줄 아십니까? 터무니없습니다! 저는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거짓말은 모든 유기체 가운데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특권입니다. 거짓말을 하다 보면 진실에 다다르지요! 제가 사람인 것은 제가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열네 번쯤, 어쩌면 백열네 번쯤 거짓말을 하지 않고 다다른 진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나름으로 명예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제 머리로 거짓말하는 것조차 할 줄을 모릅니다! 내게 거짓말을 하되 제 식으로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에게 입을 맞추겠다. 제 식으로 거짓말하는 것—그것은 남의 식으로 된 진실 하나보다 거의 낫습니다. 앞의 경우에 그대는 사람이지만 뒤의 경우에 그대는 새에 지나지 않으니까요! 진실은 달아나지 않지만 삶은 두들겨 죽여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 예가 있었지요. 자, 지금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 모두가, 예외 없이 모두가, 학문이며 발전이며 사유며 발명이며 이상이며 소망이며 자유주의며 이성이며 경험이며 그 밖에 전부, 전부, 전부, 전부, 전부에 있어서 아직 김나지야 예비반 일 학년에 앉아 있습니다! 남의 머리로 때우는 것이 마음에 들어서—몸에 배어 버린 겁니다! 그렇지요? 제 말이 맞지요?” 라주미힌이 두 부인의 손을 흔들고 쥐어짜며 외쳤다. “맞지요?”

“오, 하느님, 저는 모르겠어요.” 가엾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했다.

“맞아요, 맞아요… 전부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진지하게 덧붙였다가, 곧바로 비명을 질렀다. 이번에는 그가 그만큼 아프게 그녀의 손을 쥐어짰던 것이다.

“맞다고요? 맞다고 하셨습니까? 자, 그렇다면 당신은… 당신은…” 그가 황홀해하며 외쳤다. “당신은 선함과 순결과 이성과… 완전함의 샘입니다! 손을 주십시오, 주십시오… 당신도 주십시오. 저는 두 분의 손에 입을 맞추고 싶습니다, 여기서, 지금, 무릎을 꿇고!”

그러고는 인도 한복판에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인적이 없는 곳이었다.

“그만두세요, 제발, 무슨 짓이세요?” 극도로 놀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두냐도 웃으면서 놀라면서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안 됩니다, 손을 주시기 전에는! 자, 이렇게, 이만하면 됐습니다. 일어났습니다, 갑시다! 저는 불행한 멍청이고 두 분께 어울리지 않고 취했고 부끄럽습니다… 두 분을 사랑할 자격은 제게 없지만, 두 분 앞에 머리를 숙이는 것은 완전한 짐승이 아닌 한 누구에게나 의무입니다! 그래서 저도 숙인 겁니다… 자, 두 분의 셋방이 여기군요. 그리고 로디온은 아까 두 분의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쫓아낸 그 한 가지만으로도 옳습니다! 어떻게 감히 두 분을 이런 셋방에 들인단 말입니까? 이건 추문입니다! 여기에 어떤 자들을 들이는지 아십니까? 그런데 당신은 신부(新婦)이시잖습니까! 신부이시죠, 예? 자, 그렇다면 말씀드리는데, 그러고서도 당신의 신랑은 비열한 자입니다!”

“이보세요, 라주미힌 씨, 말이 지나치십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을 꺼내려 했다.

“예, 예, 옳으신 말씀입니다, 제가 말이 지나쳤습니다, 부끄럽습니다!” 라주미힌이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하지만…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해서 저에게 성내실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지, 그러니까… 흠! 그건 비열한 짓이겠지요. 한마디로 제가 당신에게… 흠!… 뭐, 그럼 됐습니다, 왜인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감히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저희는 아까 그 사람이 들어왔을 때 다들 알아봤습니다, 저 사람은 우리 쪽 사람이 아니라고. 이발사한테서 머리를 지지고 들어와서가 아니고, 제 머리를 서둘러 내보이려 해서가 아니라, 그가 정탐꾼이고 투기꾼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흥정꾼이고 어릿광대이기 때문이고, 그건 눈에 보입니다. 그가 똑똑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바보입니다, 바보예요! 자, 그 사람이 당신의 짝입니까? 오, 하느님! 보십시오, 부인들.” 그는 이미 셋방으로 오르는 계단에서 갑자기 멈춰 섰다. “제 집에 있는 사람들이 다 취하기는 했어도 다들 정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짓말을 한다 해도—저도 거짓말을 하니까요—결국에는 거짓말을 거듭하다가 진실에 다다를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고결한 길 위에 서 있으니까요. 그런데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고결한 길 위에 서 있지 않습니다. 제가 방금 저들을 욕지거리로 헐뜯기는 했지만 저는 저들을 다 존경합니다. 자메토프는 존경하지는 않아도 사랑합니다, 강아지니까요! 저 짐승 같은 조시모프까지도요, 정직하고 제 일을 아니까… 그런데 이만하면 됐습니다, 다 말했고 다 용서했습니다. 용서하셨지요? 그렇지요? 자, 갑시다. 저는 이 복도를 압니다, 와 본 적이 있어요. 저기 삼 호실에서 소동이 있었지요… 자, 두 분은 어디십니까? 몇 호실입니까? 팔 호실? 자, 밤에는 문을 잠그고 아무도 들이지 마십시오. 십오 분 뒤에 소식을 가지고 돌아오고, 그다음 삼십 분 뒤에 조시모프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보십시오! 안녕히 계십시오, 달려갑니다!”

“하느님 맙소사, 두네치카, 이게 어떻게 될까?”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불안하고 겁먹은 채 딸을 향해 말했다.

“진정하세요, 어머니.” 두냐가 모자와 망토를 벗으며 대답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저분을 보내 주신 거예요. 곧장 어느 술자리에서 온 것 같긴 하지만요. 저분은 믿어도 돼요, 장담해요. 게다가 저분이 오라버니를 위해 이미 해 놓은 일들을 보면…”

“아아, 두네치카, 하느님이나 알지, 오기나 할까! 그리고 내가 어떻게 로댜를 두고 올 마음을 먹었을까!… 그리고 저 애를 저런 모습으로 만나게 되리라고는 정말,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어쩌면 그리 무뚝뚝하던지, 우리가 온 것이 반갑지 않은 사람처럼…”

그녀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어머니. 어머니는 제대로 보지 않으셨어요, 내내 울고만 계셨잖아요. 오라버니는 큰 병 때문에 몹시 마음이 흐트러진 거예요. 그게 모든 원인이에요.”

“아아, 그 병!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무슨 일이 벌어지려나! 그리고 저 애가 너한테 어떻게 말하더냐, 두냐!” 어머니가 딸의 생각을 전부 읽어 내려고 조심스럽게 그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리고 다름 아닌 두냐가 로댜를 감싸고 있다는 것, 그러니 용서했다는 것에 이미 절반쯤 위로를 받고 있었다. “나는 저 애가 내일이면 생각을 고쳐먹으리라고 믿는다.” 그녀가 끝까지 떠보며 덧붙였다.

“저는 오라버니가 내일도 똑같이 말하리라고 믿어요… 그 일에 대해서는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잘라 말했다. 이것은 물론 걸림돌이었다. 지금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입에 올리기를 너무나 두려워하는 지점이 바로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두냐가 다가와 어머니에게 입을 맞추었다. 어머니는 말없이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러고는 라주미힌이 돌아오기를 불안하게 기다리며 앉아서, 팔짱을 끼고 역시 기다리며 방을 이리저리 거닐면서 혼자 깊이 생각에 잠긴 딸을 조심스럽게 좇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각에 잠긴 채 구석에서 구석으로 거니는 것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오랜 버릇이었고, 어머니는 그럴 때 딸의 상념을 깨뜨리기를 언제나 어쩐지 두려워했다.

라주미힌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갑작스레, 술김에 타오른 정열을 품은 것은 물론 우스운 일이었다. 그러나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특히 지금 그녀가 팔짱을 끼고 서글프고 생각에 잠겨 방을 거니는 것을 본다면 많은 사람이 그를 용서했을 것이다. 그의 괴상한 상태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눈에 띄게 아름다웠다. 키가 크고 놀라울 만큼 날씬하고 강하고 자신에 차 있었으며, 그것이 그녀의 모든 몸짓에서 드러났으나 그렇다고 그 움직임에서 부드러움과 우아함을 조금도 앗아 가지는 않았다. 얼굴은 오라비를 닮았으나 그녀는 미인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였다. 머리칼은 짙은 금빛으로 오라비보다 조금 밝았다. 눈은 거의 검고 번뜩이며 자긍심에 차 있었는데, 동시에 이따금, 순간순간 예사롭지 않게 선량했다. 그녀는 창백했으나 병적으로 창백한 것은 아니었다. 얼굴은 싱싱함과 건강으로 빛났다. 입은 조금 작았고, 아랫입술은 싱싱하고 붉으며 턱과 함께 아주 조금 앞으로 내밀려 있었다. 이 아름다운 얼굴에서 유일하게 고르지 않은 데였으나, 바로 그것이 얼굴에 각별한 개성을 주었고 무엇보다 어딘가 오만해 보이게 했다. 그녀의 표정은 언제나 쾌활하다기보다 진지하고 사려 깊었다. 그러나 그 대신 이 얼굴에 미소가 얼마나 어울렸는지, 이 얼굴에 웃음이, 쾌활하고 젊고 거침없는 웃음이 얼마나 어울렸는지! 뜨겁고 솔직하고 단순하고 정직하고 장사처럼 힘세고 취한 라주미힌이, 이런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던 그가 첫눈에 넋을 잃은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게다가 우연이 일부러 그런 것처럼 그에게 두냐를 처음 보여 준 것이 하필 오라비와 만나는 사랑과 기쁨의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그는 그다음에, 오라비의 무례하고 배은망덕하도록 잔혹한 명령에 대답하여 그녀의 아랫입술이 분노로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버텨 낼 수가 없었다.

하기야 그는 아까 계단에서 취해 지껄인 말에서 진실을 말한 것이었다. 라스콜니코프의 괴상한 집주인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뿐 아니라 어쩌면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에게까지도 그를 두고 질투했을 것이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이미 마흔셋이었지만 그 얼굴에는 여전히 예전 아름다움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게다가 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이는 늙도록 정신의 맑음과 인상의 싱싱함과 정직하고 깨끗한 마음의 뜨거움을 간직한 여자들에게 거의 언제나 일어나는 일이다. 덧붙여 말해 두자면, 그것을 간직하는 것이야말로 늙어서까지 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녀의 머리칼은 이미 세고 성글어지기 시작했고, 눈가에는 잔잔한 주름살이 진작에 나타났으며, 두 볼은 근심과 슬픔으로 꺼지고 말랐다. 그런데도 이 얼굴은 아름다웠다. 이것은 두네치카 얼굴의 초상이었다. 다만 이십 년 뒤의 것이었고, 게다가 앞으로 내밀리지 않은 아랫입술의 표정만은 달랐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정이 많았으나 물릴 만큼은 아니었고, 겁이 많고 잘 물러섰으나 어느 선까지였다. 그녀는 많은 것을 양보할 수 있었고 제 신념에 어긋나는 것에까지도 많이 동의할 수 있었으나, 어떤 사정도 그녀로 하여금 넘어서게 할 수 없는 정직과 규범과 궁극의 신념의 선이 언제나 있었다.

라주미힌이 떠난 지 꼭 이십 분 만에 나직하지만 서두르는 두 번의 노크가 문에 울렸다. 그가 돌아온 것이다.

“들어가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문을 열자 그가 서둘러 말했다. “세상모르고 잡니다, 아주 훌륭하게, 평온하게요. 하느님께 빌건대 열 시간쯤 자면 좋겠습니다. 나스타샤가 곁에 있고, 제가 올 때까지 나오지 말라고 일러 두었습니다. 이제 조시모프를 끌고 오겠습니다. 그가 두 분께 보고할 겁니다. 그러고 나면 두 분도 자리에 드십시오. 더할 나위 없이 지치신 게 보입니다.”

그러고는 그들에게서 복도를 따라 달려 나갔다.

“정말 재바르고… 헌신적인 젊은이구나!” 몹시 기뻐하며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훌륭한 사람 같아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얼마쯤 열을 담아 대답하며 다시 방을 이리저리 거닐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 뒤에 복도에서 발소리가 들리고 또 한 번 문에 노크가 울렸다. 두 여자는 이번에는 라주미힌의 약속을 온전히 믿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그는 조시모프를 끌고 오는 데 성공했다. 조시모프는 곧바로 잔치를 팽개치고 라스콜니코프를 보러 가는 데 동의했으나, 부인들에게 가는 것은 취한 라주미힌을 믿지 못해 내키지 않아 하며 미심쩍어했다. 그러나 그의 자존심은 곧바로 달래졌고 심지어 우쭐해졌다. 그는 사람들이 정말로 자기를 신탁처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는 꼭 십 분을 앉아 있었고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완전히 설득하고 진정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담아, 그러나 절제하며 어쩐지 애써 진지하게 말했다. 꼭 중요한 회진에 나선 스물일곱 살 의사처럼. 그리고 한마디도 주제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두 부인과 더 사사롭고 개인적인 관계를 맺으려는 기색을 조금도 내비치지 않았다. 들어설 때 이미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것을 알아챈 그는, 곧바로 방문 내내 그녀를 아예 알아보지 않으려고 애썼고 오직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만을 향해 말했다. 이 모든 것이 그에게 극도의 내적 만족을 주었다. 환자 본인에 대해서 그는 지금 이 순간 상당히 만족스러운 상태에 있다고 말했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환자의 병은 최근 몇 달간의 나쁜 물질적 환경 말고도 몇 가지 정신적 원인을 지니고 있으며, “말하자면 여러 복잡한 정신적·물질적 영향과 불안과 두려움과 근심과 어떤 관념들… 그 밖의 것들의 산물입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유난히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것을 슬쩍 알아챈 조시모프는 이 주제를 얼마쯤 더 길게 늘어놓았다. 「광기의 의심 같은 것」에 대한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불안하고 조심스러운 물음에 대해서는, 그 말이 지나치게 부풀려졌다고 태연하고 솔직한 웃음을 담아 대답했다. 물론 환자에게 어떤 움직이지 않는 관념이, 무언가 편집증을 드러내는 것이 눈에 띄기는 한다고—그, 조시모프는 지금 의학의 이 극도로 흥미로운 분야를 특히 좇고 있으니까—그러나 환자가 거의 오늘까지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떠올려야 하며, 그리고… 그리고 물론 가족의 도착이 그를 다지고 흩뜨려 주고 구원하는 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다만 새로운 각별한 충격을 피할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라고 그는 의미심장하게 덧붙였다. 그러고는 일어나 묵직하고 다정하게 작별 인사를 했고, 축복과 뜨거운 감사와 간청과, 그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악수를 하려고 내밀어진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의 손을 받으며 배웅받았다. 그는 제 방문에, 그리고 그보다 더 제 자신에게 극도로 만족하여 나갔다.

“이야기는 내일 합시다. 주무십시오, 지금 당장, 반드시요!” 라주미힌이 조시모프와 함께 나가며 못을 박았다. “내일 되도록 일찍 보고를 가지고 두 분께 오겠습니다.”

“그런데 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라는 아가씨, 참 황홀하더군!” 둘이 거리로 나서자 조시모프가 입맛을 다시다시피 하며 한마디 했다.

“황홀하다고? 황홀하다고 했나!” 라주미힌이 포효하며 갑자기 조시모프에게 달려들어 그의 멱살을 잡았다. “네가 언제든 감히…! 알겠나? 알겠느냐고?” 그가 그의 옷깃을 흔들며 벽에 밀어붙이고 외쳤다. “들었나?”

“이거 놔, 이 취한 악마야!” 조시모프가 뿌리쳤고, 그가 놓아 준 뒤에는 유심히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넘어갔다. 라주미힌은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침울하고 진지한 상념에 잠겨 그 앞에 서 있었다.

“물론 나는 당나귀야.” 그가 먹구름처럼 침울하게 말했다. “하지만… 너도 마찬가지다.”

“아니지, 이 사람아, 전혀 마찬가지가 아니야. 나는 어리석은 것을 꿈꾸지 않으니까.”

그들은 잠자코 걸었다. 그리고 라스콜니코프의 하숙에 다다랐을 때에야 라주미힌이 몹시 마음이 쓰이는 듯 침묵을 깼다.

“들어 봐.” 그가 조시모프에게 말했다. “너는 훌륭한 녀석이야. 하지만 너는 그 온갖 고약한 성질 말고도 오입쟁이이기도 하지. 그건 내가 알아. 게다가 더러운 쪽이야. 너는 신경질적이고 나약한 쓰레기고, 변덕스럽고, 살이 쪘고, 무엇 하나 스스로에게 마다하지 못해. 그런데 나는 그것을 더러움이라고 부른다. 곧장 더러움으로 데려가니까. 너는 제 몸을 어찌나 응석받이로 만들어 놓았는지, 고백하건대 나는 그 모든 것을 갖추고서 네가 어떻게 좋은, 심지어 제 몸을 돌보지 않는 의사일 수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 깃털 이불에서 자면서—그것도 의사가!—밤에는 환자를 위해 일어난다니! 삼 년쯤 뒤면 너는 이제 환자를 위해 일어나지 않겠지… 뭐, 됐다, 젠장, 그게 문제가 아니고 이게 문제다. 너는 오늘 주인 여자 방에서 자기로 했지(겨우 설득했다!). 나는 부엌에서 자고. 자, 너희에게 더 가까이 알고 지낼 기회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야. 이 사람아, 거기엔 그런 것의 그림자도 없어…”

“나는 아예 생각도 안 하는데.”

“이 사람아, 거기엔 수줍음이, 말 없음이, 부끄러움이, 굳어진 정숙함이 있어. 그런데 그 모든 것과 함께—한숨이, 그리고 밀랍처럼 녹는다니까, 정말 녹아! 세상의 모든 악마를 걸고 나를 그 여자한테서 구해 다오! 아주 아베낭트하다니까!… 내가 갚겠다, 목을 걸고 갚겠다!”

조시모프가 아까보다 더 크게 웃어 댔다.

“이 친구 완전히 넘어갔군! 그런데 내가 그 여자를 어디다 쓰나?”

“장담하는데 수고랄 게 별로 없어. 아무 헛소리나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그냥 옆에 앉아서 말만 하면 돼. 게다가 너는 의사잖나, 아무 병이나 하나 잡아서 치료를 시작해 봐. 맹세코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 집에 클라비코드가 있어. 나는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조금 뚱땅거리잖나. 거기서 노래를 하나 부르는데, 러시아 노래야, 진짜 러시아 노래지. 눈물로 온통 젖어 버린다는 그런 노래. 그 여자는 진짜배기를 좋아해. 그래서 노래에서부터 시작된 거고. 그런데 너는 피아노의 명인이잖나, 대가, 루빈시테인이지… 장담하는데 후회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너 그 여자한테 무슨 약속이라도 한 거 아니냐? 정식으로 각서라도 썼나? 결혼하겠다고 약속했는지도 모르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그런 건 전혀 없다! 게다가 그 여자는 그런 사람이 전혀 아니야. 그 여자한테는 체바로프가…”

“그럼 그냥 버려!”

“그렇게 버릴 수가 없어!”

“왜 안 되는데?”

“그게 말이야, 어쩐지 그렇게는 안 돼, 그뿐이야! 이 사람아, 거기엔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어.”

“그럼 왜 그 여자를 끌어들였나?”

“나는 아예 끌어들이지 않았어. 어쩌면 내가 어리석어서 도리어 끌려든 건지도 모르지. 그리고 그 여자한테는 너든 나든 아주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야, 그저 누군가 옆에 앉아서 한숨을 쉬어 주기만 하면. 이 사람아, 거기엔… 너한테 설명할 수가 없구나. 자, 너는 수학을 잘 알고 지금도 하고 있잖나, 내가 알아… 그러니 그 여자한테 적분법을 가르치기 시작해 봐. 맹세코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게 하는 말이야. 그 여자한테는 아주 아무래도 상관없을 거야. 너를 바라보며 한숨을 쉴 거고, 그렇게 일 년 내내 갈 거야. 나는 그 여자한테 말이지, 아주 오래, 이틀 내리 프로이센 상원에 대해 이야기했어(그 여자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그저 한숨을 쉬고 땀을 흘릴 뿐이더군! 사랑 이야기만은 꺼내지 마. 경련이 날 만큼 부끄러워하니까. 다만 떨어질 수 없다는 기색은 보여 줘. 그러면 됐어. 끔찍하게 안락하지. 완전히 제집 같아. 읽든 앉아 있든 눕든 쓰든. 입을 맞출 수도 있어, 조심만 하면…”

“그런데 내가 그 여자를 어디다 쓰냐니까?”

“에잇, 도무지 너한테 설명을 못 하겠구나! 봐라, 너희 둘은 완전히 서로에게 어울린다니까! 나는 전에도 너에 대해 생각했었어… 너는 결국 이렇게 끝날 거잖나! 그러니 이르든 늦든 너한테 마찬가지 아니냐? 이 사람아, 거기엔 그런 깃털 이불 같은 원리가 있어—에잇! 깃털 이불만이 아니지! 거기엔 끌어당기는 게 있어. 거기엔 세상의 끝이, 닻이, 고요한 포구가, 땅의 배꼽이, 세계를 받치는 세 마리 물고기의 토대가, 블린의 정수가, 기름진 쿨레뱌카가, 저녁의 사모바르가, 조용한 한숨과 따뜻한 웃옷이, 불 지핀 온돌이 있어. 그러니까 꼭 네가 죽은 것 같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 거야, 두 가지 이득을 한꺼번에! 자, 이 사람아, 젠장, 헛소리를 늘어놓았군, 잘 시간이다! 들어 봐. 나는 밤에 이따금 깨거든. 그러면 저 친구한테 가서 살펴보겠다. 별일 아니야, 다 괜찮아. 너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래도 마음이 내키면 한 번쯤 가 보고. 다만 무엇이든 눈에 띄거든, 이를테면 헛소리라든가 열이라든가 하는 것이 보이거든 당장 나를 깨워. 하기야 그럴 리는 없겠지만…”

작품 해설과 번역 노트

윤문 노트

1. 제3부는 라주미힌의 장으로 시작한다. 앞의 열네 장에서 그는 늘 라스콜니코프 곁의 보조 인물이었는데, 이 장에서는 서술의 무게가 통째로 그에게 옮겨 간다. 원문 단락 하나가 그의 말로만 채워지는 대목이 네 군데 있고, 그중 가장 긴 것(네 단계 계획을 늘어놓는 대목)은 마침표 없이 이어지다시피 한다. 만연체의 원칙대로 끊지 않았다. 취한 사람이 숨도 쉬지 않고 쏟아 내는 것 자체가 이 장면의 내용이기 때문이다.

2. 「나냐 루진이냐!」(Или я, или Лужин!) — 제3부 전체를 움직이는 최후통첩이다. 제1부 제3장에서 어머니의 편지를 읽고 그가 속으로 내린 결론이 여기서 처음 입 밖으로 나온다. 두 자리를 잇기 위해 「희생」과 「비열한 짓」을 제1부 제3장·제4장과 같은 말로 고정했다.

3. 「거짓말은 인간에게만 있는 유일한 특권」 — 라주미힌의 이 연설은 제2부 제4장의 「헛소리는 사랑스러운 것이야, 진실로 이끄니까」가 확장된 것이다. 두 자리를 같은 낱말로 묶기 위해 여기서도 врать를 「거짓말」로 옮겼다(제2부 제4장 노트 8에서 「헛소리」로 고정했던 것은 вранье의 짧은 형태였고, 여기서는 동사가 열네 번 되풀이되며 논증의 골격을 이룬다). 제3부 제5장에서 포르피리가 이 논리를 그대로 되돌려 주므로, 그때 세 자리가 한 줄로 이어진다.

4. 원문의 인종적 욕설을 그대로 옮겼다 — 편집자 판단이 필요한 대목이다. 라주미힌이 루진을 헐뜯는 대목에 жид가 나온다. 당시 러시아어에서 유대인을 낮잡아 부르던 말이며, 여기서는 「돈만 아는 흥정꾼」이라는 뜻으로 느슨하게 쓰였다. 나는 이것을 「흥정꾼」으로 옮기고 욕설의 인종적 지시를 본문에서 벗겨 냈다. 이는 원문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므로 밝혀 둔다. 선택지는 셋이다. (가) 여기처럼 뜻만 옮기고 주에서 밝힌다, (나) 욕설을 그대로 옮기고 주를 단다, (다) 그대로 옮기되 본문에 아무 표시도 하지 않는다. 나는 (가)를 택했다—웹 연재는 맥락 없이 한 문단만 잘려 읽히기 쉽고, 이 한 낱말은 라주미힌의 인물 조형에도 줄거리에도 기여하지 않는 시대의 관용적 욕설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것은 번역자의 개입이지 원문의 상태가 아니며, 연재 방침에 따라 (나)로 되돌릴 수 있도록 원어를 여기 남겨 둔다. 결정은 편집자의 몫이다.

5. 두냐와 어머니의 초상은 나란히 놓인 두 단락이다. 원문은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먼저 그리고 곧바로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그리면서, 두 번째 단락에서 「이것은 두네치카 얼굴의 초상이었다, 다만 이십 년 뒤의 것이었고」라고 못을 박는다. 두 초상이 한 쌍으로 읽혀야 하므로 어휘를 일부러 겹쳐 두었다(창백, 아랫입술, 얼굴). 유일한 차이로 지목되는 아랫입술이 바로 앞 장면에서 「분노로 떨린」 그 입술이다.

6. 조시모프의 진단 용어를 음차하지 않고 옮겼다. неподвижная мысль는 「움직이지 않는 관념」, мономания는 「편집증」으로 했다. 앞의 것은 제2부 제6장 첫머리에서 서술자가 라스콜니코프의 상태를 묘사할 때 쓴 바로 그 표현이며(「평온에까지, 움직이지 않는 하나의 관념에까지 다다른」), 조시모프는 그것을 밖에서 의학 용어로 다시 짚고 있는 셈이다. 두 자리를 같은 말로 묶었다.

7. 「새로운 각별한 충격을 피할 수만 있다면」 — 조시모프가 「의미심장하게」 덧붙이는 이 한 구절이 제3부의 남은 장 전체에 걸린 조건절이다. 그리고 다음 장에서 곧바로 루진의 편지가 도착한다. 원문이 여기에 아무 설명도 붙이지 않으므로 우리말에서도 붙이지 않았다.

8. 라주미힌이 파셴카를 조시모프에게 떠넘기는 대목을 축약하지 않았다. 세계를 받치는 세 마리 물고기, 블린의 정수, 기름진 쿨레뱌카, 저녁의 사모바르, 따뜻한 웃옷, 불 지핀 온돌—이 열거는 러시아 시골식 안락의 목록이고, 「꼭 죽은 것 같으면서 동시에 살아 있는」으로 끝난다. 이 장의 유일한 순수한 희극이며, 동시에 라주미힌이 두냐를 만난 뒤 파셴카를 치워야 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 자신은 말하지 않는다. 줄이면 그 침묵이 사라진다.

9. 문체 지표. 원문 26,821자 → 본문 16,797자, 비율 0.626(연재 최고). 라주미힌의 독백이 본문의 큰 몫을 차지하는 장이라 대화 비중이 높고, 그의 말은 감탄사·호칭·되풀이가 많아 우리말에서 특히 늘어난다. 서술부 그/그녀 밀도 1만자당 110.0회로 목표 130 아래로 돌아왔다(앞 두 장은 133.4, 134.2). 두 여자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라는 긴 이름으로 계속 불리는 장이라 대명사가 그만큼 덜 쓰인 것이다. 세 장의 수치가 각각 다른 이유로 오르내렸다는 것은 이 지표가 문체의 질이 아니라 장면의 구성을 재고 있다는 뜻이므로, 제3부를 마치면 기준을 다시 세운다. 대화 층위 문장 평균 21.9자, 서술 층위 평균 42.1자(연재 최고—두 초상 단락 때문이다). 단상체 1개 —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것이고, 라스콜니코프의 내적 독백은 이 장에 하나도 없다.

  1. 삼촌이 회장 노릇 — 제2부 제6장에서 라주미힌이 집들이에 남겨 두고 왔다고 한 그 삼촌. 군 우체국장으로 평생을 보낸 예순다섯의 노인이다.
  2. 셋방(нумера) — 제2부 제5장에서 루진이 모녀를 위해 잡아 둔 바칼레예프 집의 방. 라주미힌이 「여기에 어떤 자들을 들이는지 아십니까」라고 말하는 곳이다.
  3. 만력(тиски) — 물건을 물려 고정하는 공구. 라주미힌의 악력을 빗댄 원문의 비유를 그대로 옮겼다.
  4. 김나지야 예비반 일 학년 — 중등학교 정규 과정에 들어가기 전의 준비 학급. 「우리는 아직 초보 중의 초보다」라는 뜻이다.
  5. 신부(新婦) — 원문 невеста는 약혼한 여자를 가리킨다. 라주미힌이 두냐에게 「신부이시죠?」라고 확인한 뒤 곧바로 「당신의 신랑은 비열한 자입니다」로 넘어가는 것이 이 장면의 무례이자 고백이다.
  6. 정탐꾼이고 투기꾼(соглядатай и спекулянт) — 라주미힌이 루진에게 붙이는 두 낱말. 남의 사정을 캐고 다니며 그것으로 이문을 남기는 자라는 뜻이다.
  7. 클라비코드(клавикорды) — 피아노 이전의 건반 악기. 여기서는 낡은 건반 악기 일반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8. 루빈시테인(Антон Рубинштейн, 1829~1894) — 당대 러시아 최고의 피아노 연주자이자 작곡가.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세운 인물이다. 라주미힌이 조시모프를 추어올리는 과장이다.
  9. 체바로프 — 제2부 제3장에 나온 채권 추심인. 파셴카에게서 라스콜니코프의 차용증서를 넘겨받았던 자이며, 라주미힌이 십 루블에 되사 왔다.
  10. 프로이센 상원(прусская палата господ) — 프로이센 의회의 상원. 1860년대 러시아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던 시사 화제로, 여자와 나눌 이야기로는 더없이 동떨어진 소재라는 농담이다.
  11. 세계를 받치는 세 마리 물고기(трехрыбное основание мира) — 세 마리 고래(또는 물고기)가 땅을 떠받치고 있다는 러시아 민간 우주관. 「세상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이라는 뜻의 관용구로 쓰인다.
  12. 블린 / 쿨레뱌카 — 블린은 러시아식 팬케이크, 쿨레뱌카는 생선이나 고기를 넣어 길쭉하게 구운 파이다.
  13. 불 지핀 온돌(натопленная лежанка) — 러시아 페치카에 붙여 만든, 사람이 누울 수 있는 데운 자리. 한국식 온돌과 기능이 같아 그렇게 옮겼다.
  14. 아베낭트 — 제2부 제3장 주 6 참조. 라주미힌이 파셴카를 두고 쓰는 바로 그 조어가 여기서 다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