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제3부 제2장

라주미힌이 걱정에 찬 어머니와 두냐를 성심껏 돕는다.
라주미힌이 걱정에 찬 어머니와 두냐를 성심껏 돕는다.

이튿날 여덟 시가 채 되기 전에 라주미힌은 근심에 찬 진지한 얼굴로 깨어났다. 이날 아침 그에게는 새롭고 예상치 못한 당혹이 한꺼번에 여럿 들이닥쳤다. 그는 전에는 언젠가 이런 식으로 깨어나리라고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어제 일을 마지막 세부까지 기억하고 있었고, 자기에게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여태 그에게는 아주 낯설었던, 이전의 어떤 것과도 닮지 않은 하나의 인상을 제 안에 받아들였다는 것을 알아들었다. 동시에 그는 제 머릿속에 타오른 몽상이 더없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또렷이 의식하고 있었다. 어찌나 실현 불가능한지 그것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해서, 그는 서둘러 다른 근심으로, 「저 빌어먹을 어제」가 그에게 유산으로 남긴 더 절박한 당혹으로 넘어갔다.

그의 가장 끔찍한 기억은 어제 자기가 어떻게 「비열하고 추악한」 자였는가 하는 것이었다. 취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처녀 앞에서 그녀의 처지를 이용하여 어리석게 성급한 질투에서 그녀의 신랑을 헐뜯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사이의 관계와 약속을 모르는 것은 물론이고 그 사람 자체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대체 그에게 무슨 권리가 있어서 그토록 성급하고 경솔하게 그를 판단한단 말인가? 누가 그를 재판관으로 불렀단 말인가! 그리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같은 존재가 돈 때문에 값어치 없는 사람에게 몸을 내던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그에게도 값어치가 있다는 뜻이다. 셋방? 그런데 그가 대체 어떻게 그것이 그런 셋방인 줄 알 수 있었겠는가? 집을 마련하고 있다지 않은가… 흥, 이 얼마나 비열한가! 그리고 취해 있었다는 것이 무슨 변명이 되는가? 어리석은 핑계이고 그를 더욱 낮출 뿐이다! 술 속에 진실이 있으니, 진실이 죄다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그 시샘 많고 거친 마음의 온갖 더러움이 죄다 나와 버린 것이다!' 그리고 대체 그에게, 라주미힌에게 그런 몽상이 조금이라도 허락될 수 있는가? 그런 처녀에 견주어 그가 무엇인가—술 취한 난봉꾼이자 어제의 허풍쟁이가? '그런 냉소적이고 우스꽝스러운 견줌이 가당키나 한가?' 라주미힌은 이 생각에 절망적으로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갑자기,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듯 바로 그 순간, 어제 계단에 서서 주인 여자가 자기를 두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질투할 것이라고 말한 것이 또렷이 떠올랐다… 이것은 이미 견딜 수 없었다. 그는 있는 힘껏 주먹으로 부엌 페치카를 내리쳐 손을 다치고 벽돌 한 장을 튀어나오게 했다.

'물론이지.' 그는 일 분쯤 뒤에 어떤 자기 비하의 감정을 담아 속으로 중얼거렸다. '물론 이 온갖 추한 짓들은 이제 덧칠할 수도 지울 수도 없다… 그러니 그것에 대해 생각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말없이 나타나서… 제 할 일을 하고… 그것도 말없이, 그리고… 용서를 빌지도 말고,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리고… 그리고 물론 이제 다 끝장이다!'

그런데도 옷을 입으면서 그는 여느 때보다 꼼꼼하게 제 차림을 살폈다. 다른 옷은 없었고, 있었다 해도 어쩌면 입지 않았을 것이다—'그래, 일부러라도 입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냉소가와 더러운 게으름뱅이로 남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에게는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할 권리가 없다. 더구나 그 남들이 그를 필요로 하고 제 발로 그를 부르고 있는 마당에는. 그는 제 옷을 솔로 꼼꼼히 털어 냈다. 속옷은 언제나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이 점에서 그는 각별히 깔끔했다.

이날 아침 그는 정성껏 몸을 씻었다. 나스타샤에게 비누가 있었던 것이다. 머리와 목을, 특히 손을 씻었다. 그런데 제 수염을 밀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물음에 이르자(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에게는 고인이 된 자르니친 씨가 남긴 훌륭한 면도칼이 있었다) 그 물음은 격렬하게 부정 쪽으로 결판났다. '그냥 이대로 두자! 아니, 내가 무엇 때문에 면도를 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하겠지! 세상없어도 안 된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저렇게 거칠고 더럽고 몸가짐이 술집 같다. 그리고… 그리고 그가 자기도, 뭐 조금쯤은, 그래도 점잖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고 치자… 그래, 점잖은 사람인 것이 무슨 자랑거리란 말인가? 누구나 점잖은 사람이어야 하고, 그것도 더 깨끗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고 어쨌든 (그는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에게도 그런 자잘한 일들이 있었다… 아주 부정직하다고까지는 못해도 어쨌든!… 그리고 어떤 속마음을 품었던 적들은 또 어떻고! 흠… 그런데 이 모든 것을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곁에 나란히 놓는다고! 그래, 젠장! 될 대로 되라지! 그래, 일부러라도 이렇게 더럽고 기름지고 술집 같은 채로 있겠다, 침이나 뱉어라! 더 심해질 테다!…'

조시모프가 그를 발견한 것은 이런 독백 가운데서였다. 그는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의 큰방에서 밤을 지새운 참이었다.

그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고, 나가면서 서둘러 병자를 들여다보러 온 것이었다. 라주미힌은 그가 마멋처럼 자고 있다고 알렸다. 조시모프는 깰 때까지 깨우지 말라고 일렀다. 자신은 열한 시쯤 들르겠다고 약속했다.

“그 친구가 집에 있기만 하다면 말이지.” 그가 덧붙였다. “흥, 젠장! 제 환자를 마음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치료를 하라니! 자네 아나, 그 친구가 저쪽으로 갈지, 아니면 저쪽에서 이리로 올지?”

“저쪽에서 올 것 같네.” 라주미힌이 질문의 목적을 알아채고 대답했다. “그리고 물론 자기네 집안일을 이야기하겠지. 나는 나가 있겠네. 자네는 의사니까 물론 나보다 권리가 많고.”

“나도 고해 신부는 아니야. 왔다가 가면 그만이지. 저들 말고도 할 일이 많아.”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리네.” 라주미힌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끊었다. “어제 내가 취해서 그 친구한테 가는 길에 온갖 어리석은 것들을 흘려 버렸어… 온갖… 그중에 자네가 그 친구를 두고 광기 쪽으로 기울었다고 걱정한다는 것도…”

“자네는 어제 부인들한테도 그 말을 흘렸지.”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건 아네! 때리려거든 때리게! 그런데 자네한테 정말로 무슨 굳은 생각이 있었던 건가?”

“터무니없다니까. 무슨 굳은 생각인가! 자네 자신이 나를 그 친구한테 데려갈 때 편집증 환자라고 묘사했잖나… 그런데 우리가 어제 또 불을 지폈지. 그러니까 자네가, 그 이야기로 말이야… 그 칠장이 이야기 말이네. 그 친구가 어쩌면 바로 그 일로 정신이 나갔을지도 모르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다니! 그때 사무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거기서 어떤 놈이 그런 의심으로… 그 친구를 모욕했는지 내가 정확히 알았더라면! 흠… 어제 그런 이야기를 하게 두지 않았을 걸세. 편집증 환자들은 물 한 방울로 대양을 만들고, 꾸며 낸 것을 눈앞에 사람 모습으로 본단 말이야… 내가 기억하는 한 어제 자메토프의 그 이야기에서 일의 절반이 밝혀졌어. 아니, 무슨 말이 필요한가! 나는 이런 경우를 하나 아네. 어떤 마흔 살 우울증 환자가 여덟 살짜리 사내아이가 식탁에서 날마다 놀려 대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아이를 찔러 죽였어! 그런데 여기서는 온통 누더기를 걸치고 있는데 뻔뻔한 구역 경찰이, 시작되고 있던 병이, 게다가 그런 의심이! 광란에 빠진 우울증 환자에게! 그것도 미쳐 날뛰는, 유별난 자존심을 가진 자에게! 어쩌면 바로 거기에 병의 출발점 전체가 들어앉아 있는지도 몰라! 그래, 젠장!… 그러고 보니 그 자메토프라는 친구는 정말로 사랑스러운 애송이야. 다만 흠… 어제 그 모든 걸 이야기한 건 공연한 짓이었어. 끔찍한 수다쟁이야!”

“그럼 누구한테 이야기했단 말인가? 나하고 자네한테?”

“포르피리한테도.”

“그래서, 포르피리한테 했다고 어떻다는 건가?”

“그건 그렇고, 자네는 저쪽에, 어머니와 누이한테 무슨 영향력이 있나? 오늘 그 친구를 좀 더 조심해서 다뤄야 할 텐데…”

“알아서들 하겠지!” 라주미힌이 내키지 않는 듯 대답했다.

“그런데 그 친구는 왜 그렇게 그 루진한테 달려드는 거지? 돈 있는 사람이고 누이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은데… 그 집엔 땡전 한 푼 없잖나, 안 그래?”

“자네가 왜 그런 걸 캐물어?” 라주미힌이 성마르게 외쳤다. “땡전이 있는지 없는지 내가 어떻게 아나? 직접 물어보게, 그럼 알게 되겠지…”

“쳇, 자네는 가끔 어찌 그리 어리석은가! 어제 마신 술이 아직 앉아 있군… 잘 있게. 자네의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한테 재워 줘서 고맙다고 전해 주게. 문을 걸어 잠그고 내 아침 인사에 문 너머로 대답도 안 하더군. 그러면서 제 자신은 일곱 시에 일어나서 부엌에서 복도를 지나 사모바르를 나르게 하던데… 나는 용안을 뵐 영광을 얻지 못했네…”

아홉 시 정각에 라주미힌은 바칼레예프의 셋방에 나타났다. 두 부인은 벌써 오래전부터 히스테리에 가까운 조바심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일곱 시쯤,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일찍 일어났던 것이다. 그는 밤처럼 어두운 얼굴로 들어서서 어색하게 인사를 했고, 그 때문에 곧바로 화가 났다—물론 제 자신에게. 그런데 그는 셈을 잘못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그대로 그에게 달려들어 두 손을 붙들고 하마터면 거기에 입을 맞출 뻔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힐끗 보았다. 그런데 그 오만한 얼굴에도 이 순간에는 그토록 큰 감사와 우정의 표정이, 그가 기대하지 못한 그토록 온전한 존경이 어려 있어서(비웃는 눈길과 어쩔 수 없이 새어 나오는, 잘 감추지 못한 경멸 대신에!) 차라리 욕설로 맞아 주었더라면 정말이지 그는 마음이 더 편했을 것이다. 이제는 너무나 민망해졌던 것이다. 다행히 이야기할 거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는 서둘러 그것에 매달렸다.

「아직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과 「모든 것이 훌륭하다」는 것을 듣고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선언했다. 「미리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이 아주, 아주, 아주 많기 때문」이었다. 차에 대한 물음과 함께 마시자는 권유가 뒤따랐다. 그들 자신도 라주미힌을 기다리느라 아직 마시지 않은 참이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종을 울리자 더럽고 누더기를 걸친 자가 나타났고, 그에게 차가 주문되어 마침내 차려져 나오기는 했으나 어찌나 더럽고 꼴사납던지 부인들이 부끄러워했다. 라주미힌은 셋방을 한바탕 욕하려 했으나 루진을 떠올리고 입을 다물었고, 민망해했으며, 마침내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물음이 끊임없이 잇달아 쏟아지자 끔찍하게 반가워했다.

그것에 대답하며 그는 사십오 분을 이야기했다. 끊임없이 말을 잘리고 되물음을 받으면서도, 로디온 로마노비치의 지난 일 년 삶에 대해 그가 아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필요한 사실들을 모두 전하는 데 성공했고, 그의 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로 맺었다. 하기야 그는 많은 것을 빠뜨렸는데, 그것은 마땅히 빠뜨려야 할 것들이었고 그중에는 사무소에서의 장면과 그 온갖 결과도 있었다. 그의 이야기는 탐욕스럽게 청취되었다. 그런데 그가 이제 다 끝냈고 청중을 만족시켰다고 생각했을 때, 그들에게는 그가 아직 시작조차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 드러났다.

“말씀해 주세요, 말씀해 주세요, 당신이 보시기에는… 아, 실례합니다, 제가 아직 당신 이름도 모르는군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서둘러 물었다.

“드미트리 프로코피치입니다.”

“그러면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저는 아주, 아주 알고 싶습니다… 대체로… 그 애가 지금 사물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그러니까 제 말을 알아들으세요,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그러니까 이렇게 말하는 편이 낫겠군요. 그 애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지요? 늘 저렇게 성마른가요? 그 애에게 어떤 소망이 있고, 말하자면 어떤 몽상이 있는지, 말할 수 있다면요? 지금 무엇이 그 애에게 각별한 영향을 주고 있는지요? 한마디로 저는 알고 싶은데…”

“아이 어머니, 그걸 어떻게 한꺼번에 다 대답하실 수 있겠어요!” 두냐가 한마디 했다.

“아아, 하느님, 저는 그 애를 정말, 정말, 정말 저런 모습으로 만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그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드미트리 프로코피치가 대답했다. “저는 어머니가 안 계십니다만, 삼촌이 해마다 여기 오시는데 거의 매번 저를 알아보지 못하십니다. 겉모습조차 말입니다. 그런데도 머리가 좋은 분이지요. 그러니 세 분이 떨어져 계신 삼 년 사이에 물이 많이 흘러간 겁니다. 그런데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저는 로디온을 일 년 반 알았습니다. 뚱하고 침울하고 도도하고 자존심이 셉니다. 요즈음은(어쩌면 훨씬 전부터) 의심이 많고 우울증이 있습니다. 도량이 넓고 착합니다. 제 감정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로 마음을 드러내느니 차라리 잔혹한 짓을 하는 쪽입니다. 하기야 어떤 때는 우울증 따위가 전혀 아니라 그저 비인간적이라 할 만큼 차갑고 무감각합니다. 정말이지 그 안에 상반된 두 성격이 번갈아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끔찍하게 말이 없습니다! 늘 시간이 없고 늘 남들이 방해가 되는데, 정작 자신은 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남을 비웃지 않는데, 재치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그런 자질구레한 일에 쓸 시간이 없다는 듯합니다.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습니다. 그 순간에 모두가 관심을 두는 것에는 절대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제 자신을 끔찍하게 높이 치는데, 아마 그럴 만한 근거가 얼마쯤 없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자, 또 무엇이 있을까요?… 제 생각에는 두 분이 오신 것이 그 친구에게 더없이 구원이 되는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아아, 부디 그러기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제 로댜에 대한 라주미힌의 평에 괴로워하며 외쳤다.

그리고 라주미힌은 마침내 좀 더 기운을 내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야기하는 동안 자주 그녀를 힐끗거렸으나 스치듯이, 한순간만이었고 곧바로 눈을 돌렸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탁자에 앉아 주의 깊게 귀를 기울이다가는 다시 일어나 제 버릇대로 팔짱을 끼고 입술을 다문 채 구석에서 구석으로 거닐었고, 이따금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생각에 잠긴 채로 물음을 하나씩 던졌다. 그녀 또한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그녀는 어딘가 얇은 감으로 지은 거무스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목에는 흰 비치는 스카프를 매고 있었다. 여러 표시로 라주미힌은 두 여자의 형편이 극도로 가난하다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만일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여왕처럼 차려입고 있었다면 그는 아마 그녀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면 바로 그녀가 그토록 가난하게 입고 있고 그가 이 온갖 인색한 살림을 알아채 버렸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 두려움이 깃들었고 그는 제 한마디 한마디를, 제 몸짓 하나하나를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러잖아도 제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것은 물론 거북한 일이었다.

“오라버니의 성격에 대해 흥미로운 말씀을 많이 해 주셨고… 편향 없이 말씀해 주셨어요. 그건 좋은 일입니다. 저는 당신이 오라버니를 우러러보기만 하는 줄 알았어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미소를 담아 한마디 했다. “그리고 오라버니 곁에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 같군요.” 그녀가 생각에 잠겨 덧붙였다.

“저는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만, 하기야 그 점에서도 당신이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다만 무엇인가요?”

“그 친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앞으로도 결코 사랑하지 않을 겁니다.” 라주미힌이 잘라 말했다.

“그러니까 사랑할 능력이 없다는 말씀인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 당신이야말로 오라버니를 끔찍하게 닮으셨습니다, 무엇 하나 빠짐없이요!” 그가 자기도 예상하지 못한 채 불쑥 내뱉었다. 그러나 곧바로 방금 바로 그녀에게 오라버니에 대해 한 말을 떠올리고는 가재처럼 붉어지며 끔찍하게 민망해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그를 바라보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로댜에 대해서는 두 사람 다 틀릴 수 있단다.” 얼마쯤 언짢아진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받았다. “나는 지금 일을 말하는 게 아니다, 두네치카.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그 편지에 쓴 것… 그리고 우리가 너와 함께 짐작한 것은 어쩌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당신은 그 애가 얼마나 공상적이고, 뭐라고 할까요, 변덕스러운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저는 그 애 성격을 한 번도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 애가 겨우 열다섯이었을 때조차도요. 저는 확신합니다, 그 애가 지금도 갑자기 제 몸에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고요. 어떤 사람도 결코 하리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그런 짓을요…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그 애가 일 년 반 전에, 그 뭐라던가, 제 집주인인 자르니친의 딸과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저를 얼마나 놀라게 하고 뒤흔들고 하마터면 죽일 뻔했는지 아십니까?”

“그 이야기를 자세히 아시나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물었다.

“너는 생각하니,”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열을 내어 말을 이었다. “그때 내 눈물이, 내 간청이, 내 병이, 어쩌면 서러움으로 인한 내 죽음이, 우리의 가난이 그 애를 막을 수 있었겠니? 더없이 태연하게 온갖 장애를 넘어갔을 거다. 그런데 정말로 그 애가, 정말로 그 애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걸까?”

“그 친구는 이 이야기에 대해 제게 아무것도, 한 번도 스스로 말한 적이 없습니다.” 라주미힌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다만 자르니치나 부인 본인에게서 얼마쯤 들었는데, 그분도 그 나름으로 이야기꾼은 아니어서요. 그리고 제가 들은 것은 어쩌면 조금 이상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무엇을, 무엇을 들으셨나요?” 두 여자가 한꺼번에 물었다.

“하기야 그리 유별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제가 알게 된 것은 다만, 이미 완전히 정해졌다가 신붓감이 죽어서 이루어지지 않은 이 혼사를 자르니치나 부인 본인이 몹시 마땅찮아했다는 것입니다… 그 밖에 신붓감은 생김새도 예쁘지 않았다고, 그러니까 오히려 못났다고들 하더군요… 게다가 병약했고… 그리고 이상했고… 하기야 어떤 값어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틀림없이 무언가 값어치가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으니까요… 지참금도 없었고, 하기야 그 친구가 지참금을 셈에 넣었을 리도 없고요… 대체로 이런 일은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그분이 값어치 있는 처녀였으리라고 확신해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짧게 한마디 했다.

“하느님이 나를 용서하시기를. 나는 그때 그 애가 죽은 것이 반가웠단다. 하기야 둘 중에 누가 누구를 망쳤을지는 모르겠구나. 그 애가 그 여자를 망쳤을지, 그 여자가 그 애를 망쳤을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맺었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머뭇거리며, 끊임없이 두냐를 힐끔거리면서—그것이 두냐에게는 분명히 언짢은 일이었다—어제 로댜와 루진 사이에 있었던 장면에 대해 다시 캐묻기 시작했다. 이 사건은 보아하니 그녀를 무엇보다도 두렵고 떨리도록 불안하게 하고 있었다. 라주미힌은 전부 다시 자세히 되풀이했으나, 이번에는 제 결론도 덧붙였다. 그는 라스콜니코프가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일부러 모욕했다고 곧바로 몰아세웠고, 이번에는 병을 들어 변명해 주는 일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병이 나기 전에 이미 그걸 생각해 두었습니다.” 그가 덧붙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넋이 나간 낯빛으로 말했다. 그러나 라주미힌이 이번에는 표트르 페트로비치에 대해 그토록 조심스럽게, 심지어 존중까지 담은 듯이 말한 것이 그녀를 몹시 놀라게 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도 놀랐다.

“그럼 당신은 표트르 페트로비치에 대해 그런 의견이신가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묻지 않고는 견디지 못했다.

“따님의 장래 남편에 대해 저는 다른 의견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라주미힌이 단단하고 뜨겁게 대답했다. “그리고 이것은 속된 예의에서만 드리는 말씀이 아니라, 왜냐하면… 왜냐하면… 적어도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께서 스스로, 제 뜻으로 이 사람을 고르는 영광을 베푸셨다는 그 한 가지 때문입니다. 제가 어제 그를 그토록 헐뜯었다면 그것은 어제 제가 더럽게 취해 있었고 게다가…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 제정신이 아니었고, 머리가 없었고, 미쳐 있었습니다, 완전히… 그리고 오늘 그것이 부끄럽습니다!” 그는 얼굴을 붉히고 입을 다물었다.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얼굴이 확 달아올랐으나 침묵을 깨지 않았다. 그녀는 루진 이야기가 나온 바로 그 순간부터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뒷받침 없이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보아하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침내 그녀는 말을 더듬으며 끊임없이 딸을 힐끔거리면서, 지금 자기를 극도로 괴롭히는 사정이 하나 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말이지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그녀가 말을 꺼냈다. “드미트리 프로코피치께 전부 털어놓아도 되겠니, 두네치카?”

“물론이지요, 어머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힘주어 한마디 했다.

“이런 일입니다.” 제 근심을 털어놓을 허락을 받고 마치 산을 내려놓기라도 한 듯 그녀가 서둘러 말했다. “오늘 아주 이른 아침에 저희가 어제 도착을 알린 것에 대한 답으로 표트르 페트로비치에게서 쪽지를 받았습니다. 보세요, 어제 그이는 약속한 대로 저희를 바로 역에서 맞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대신 역으로는 이 셋방 주소를 든 하인이 마중을 나와 길을 안내했고,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오늘 아침에 제가 직접 이리로 가겠다고 전하라 했다더군요. 그런데 그 대신 오늘 아침에 그이에게서 이 쪽지가 왔습니다… 직접 읽어 보시는 것이 가장 좋겠습니다. 저를 몹시 불안하게 하는 대목이 하나 있어요… 어느 대목인지는 곧 직접 보시게 될 겁니다. 그리고… 솔직한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당신은 누구보다 로댜의 성격을 잘 아시고 누구보다 잘 조언해 주실 수 있습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두네치카는 첫걸음부터 이미 전부 결정해 버렸고, 저는, 저는 아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라주미힌은 어제 날짜가 적힌 쪽지를 펼쳐 다음을 읽었다.

  “존경하는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 귀하. 삼가 알려 드리는 바, 갑작스레 발생한 지장으로 인하여 하차장에서 귀하를 맞이하지 못하였으며, 그 목적으로 대단히 재바른 사람을 보내 두었습니다. 마찬가지로 내일 아침에도 귀하를 뵙는 영광을 스스로 거두겠는바, 이는 미룰 수 없는 원로원 사무 때문이며 또한 귀하와 아드님의, 그리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와 그 오라버니의 혈육 간 상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귀하의 거처로 찾아뵙고 인사를 올리는 것은 다름 아닌 내일, 오후 여덟 시 정각으로 하겠으며, 이에 덧붙여 간곡한, 아울러 단호한 청을 하나 드리는 바입니다. 곧 저희가 함께 만나는 자리에 로디온 로마노비치가 더는 자리하지 않도록 하여 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제 병중에 제가 방문하였을 때 전례 없이 무례하게 저를 모욕하였으며, 그 밖에도 저는 귀하께 개인적으로 긴요하고 상세한 해명을 드려야 할 알려진 대목이 있어 그에 대한 귀하 자신의 해석을 듣고자 하는 바입니다. 삼가 미리 알려 드리는 바, 만일 청에 반하여 로디온 로마노비치와 마주치게 된다면 저는 즉시 물러날 수밖에 없을 것이며, 그때에는 귀하 스스로를 탓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쓰는 것은, 제가 방문하였을 때 그토록 병들어 보이던 로디온 로마노비치가 두 시간 만에 갑자기 나아졌으니 집 밖으로 나온 이상 귀하께도 올 수 있으리라는 짐작에서입니다. 이를 제 두 눈으로 확인하였는바, 말에 치여 그로 인해 죽은 어느 술꾼의 거처에서 그가 그 딸에게, 곧 행실이 드러난 처녀에게 장례를 구실로 이십오 루블에 이르는 돈을 어제 내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그 액수를 어떤 수고로 모으셨는지 아는 터라 저를 몹시 놀라게 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존경하는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께 각별한 경의를 표하며, 삼가 공손한 충정의 뜻을 받아 주시기 바랍니다.

  귀하의 순종하는 종   페 루진 올림”

“이제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울음을 터뜨리다시피 하며 말했다. “아니, 제가 어떻게 로댜에게 오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그 애는 어제 그토록 집요하게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물리치라고 요구했는데, 이번에는 그 애 자신을 들이지 말라고 하니! 알게 되면 일부러라도 올 겁니다, 그러면… 그때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께서 결정하신 대로 하십시오.” 라주미힌이 태연하게 곧바로 대답했다.

“아아, 하느님! 저 애는 말하기를… 저 애는 하느님만 아는 소리를 하면서 저에게 목적을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저 애는 그편이 낫다고, 그러니까 낫다는 게 아니라 무엇 때문인지 반드시 로댜도 오늘 여덟 시에 일부러 와서 두 사람이 반드시 마주쳐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애에게 편지를 보여 주고 싶지도 않았고, 당신을 통해서 어떻게든 꾀를 내어 그 애가 오지 않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 애는 저렇게 성마르니까요… 게다가 저는 아무것도 모르겠습니다. 거기 무슨 술꾼이 죽었다는 것도, 무슨 딸이라는 것도, 어떻게 그 애가 그 딸에게 마지막 남은 돈을 전부 줄 수 있었는지도… 그 돈은…”

“어머니께서 그토록 비싸게 마련하신 돈이지요, 어머니.”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덧붙였다.

“그 친구는 어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라주미힌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어제 그 친구가 술집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아신다면, 하기야 머리는 좋게 돌아갔습니다만… 흠! 어떤 죽은 사람과 어떤 처녀에 대해 그 친구가 정말로 어제 집으로 가는 길에 무슨 말인가를 하기는 했는데, 저는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저도 어제는…”

“어머니, 우리가 직접 오라버니한테 가는 게 가장 좋아요. 거기서 보면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예요, 장담해요. 게다가 시간도 됐고요—맙소사! 열 시가 넘었어요!” 그녀가 목에 가느다란 베네치아 사슬로 걸려 있는, 다른 차림새와는 끔찍하게 어울리지 않는 훌륭한 법랑 금시계를 들여다보며 외쳤다. '신랑의 선물이로군.' 라주미힌은 생각했다.

“아아, 시간이!… 시간이다, 두네치카, 시간이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불안하게 부산을 떨었다. “우리가 이렇게 오래 안 가니 어제 일로 성이 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구나. 아아, 하느님!”

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부산스럽게 망토를 두르고 모자를 썼다. 두네치카도 차려입었다. 그녀의 장갑은 닳았을 뿐 아니라 해지기까지 했다는 것을 라주미힌은 알아챘다. 그런데 이 옷차림의 뚜렷한 가난이 오히려 두 부인에게 어떤 각별한 품위를 더해 주고 있었다. 가난한 옷을 입을 줄 아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그러하다. 라주미힌은 경건하게 두네치카를 바라보았고 그녀를 이끌고 가게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감옥에서 제 양말을 깁던 그 여왕은'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물론 그 순간에 진짜 여왕으로 보였을 것이다. 더없이 화려한 의식과 행차 때보다도 더.'

“하느님 맙소사!”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내가 아들을, 내 사랑하는, 사랑하는 로댜를 만나는 것이 지금처럼 두려워지리라고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저는 두렵습니다,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그녀가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머니.” 두냐가 그녀에게 입 맞추며 말했다. “차라리 오라버니를 믿으세요. 저는 믿어요.”

“아아, 하느님! 나도 믿는다. 그런데 밤새 잠을 못 잤구나!” 가엾은 여자가 외쳤다.

그들은 거리로 나왔다.

“두네치카, 있잖니, 내가 새벽녘에야 겨우 조금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돌아가신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꿈에 나왔단다… 온통 흰 옷을 입고… 나에게 다가와 손을 잡더니 나를 보고 고개를 젓는 거야, 그렇게 엄하게, 엄하게, 마치 나무라는 것처럼… 이게 좋은 징조일까? 아아, 하느님,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당신은 아직 모르시겠군요.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돌아가셨어요!”

“아니요, 모릅니다.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누구신지요?”

“갑작스럽게요! 그러니까 상상해 보세요…”

“나중에 하세요, 어머니.” 두냐가 끼어들었다. “이분은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누구인지도 아직 모르시잖아요.”

“아아, 모르세요? 저는 당신이 이미 전부 아시는 줄 알았습니다. 용서하세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요즈음 저는 그저 정신이 나가 있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당신을 저희의 섭리처럼 여기고 있어서, 그래서 당신이 이미 전부 아시리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어요. 저는 당신을 친척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성내지 마세요. 아아, 하느님, 오른손이 왜 그러세요? 다치셨나요?”

“예, 다쳤습니다.” 행복해진 라주미힌이 중얼거렸다.

“저는 가끔 너무 마음에서 우러나는 대로 말해서 두냐가 저를 바로잡아 주곤 한답니다… 그런데, 하느님 맙소사, 그 애가 어쩌면 그런 골방에 살고 있을까요! 그런데 깨어나기는 했을까요? 그리고 그 여자가, 그 애 집주인이 그것을 방이라고 여긴답니까? 들어 보세요, 그 애가 마음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 제가 어쩌면 제… 나약함으로 그 애를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겠군요?… 저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시겠어요,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그 애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저는, 있잖아요, 완전히 넋이 나간 사람처럼 다니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미간을 찌푸리는 것이 보이거든 너무 캐묻지 마십시오. 특히 건강에 대해서는 아주 묻지 마십시오. 싫어합니다.”

“아아,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어머니 노릇이 얼마나 힘든지요! 그런데 저기 그 계단이군요… 이 얼마나 끔찍한 계단인지!”

“어머니, 얼굴이 창백하기까지 하세요. 진정하세요, 제 사랑하는 어머니.” 두냐가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기대며 말했다. “오라버니는 어머니를 보는 것이 행복해야 마땅한데, 어머니는 저렇게 스스로를 괴롭히시는군요.” 그녀가 눈을 번뜩이며 덧붙였다.

“잠깐만요, 제가 먼저 가서 깨어났는지 들여다보겠습니다.”

부인들은 계단을 앞서 올라간 라주미힌을 뒤따라 조용히 걸었다. 그리고 오 층 주인 여자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주인 여자의 문이 작은 틈만큼 열려 있고 어둠 속에서 재빠른 검은 두 눈이 그들 둘을 뜯어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눈길이 마주치자 문이 갑자기 닫혔는데, 어찌나 요란한 소리가 났던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겁에 질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작품 해설과 번역 노트

윤문 노트

1. 이 장은 제2부 제5장과 짝을 이룬다. 거기서 루진이 몸소 등장해 말로 제 자신을 드러냈다면, 여기서는 편지 한 장으로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편지가 더 파괴적이다. 몸소 왔을 때는 라주미힌과 라스콜니코프가 맞받아쳤지만, 편지는 반박당하지 않은 채 그대로 놓인다. 이 대비를 살리기 위해 편지의 문체를 앞 장 루진의 말투보다 한 단계 더 굳게 옮겼다.

2. 루진의 편지는 공문서 문체로 옮겼다. 원문은 관청 서류의 어투로 되어 있다—имею честь(삼가 ~하는 영광을 지닙니다), равномерно(마찬가지로), при сем(이와 함께), присовокупить(덧붙이다), покорный слуга(순종하는 종). 개인적인 편지인데 한 문장도 개인의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는 **「삼가 ~하는 바」·「~하여 주십사」·「~하시기 바랍니다」**로 된 구식 서한문 격식으로 받았다. 편하게 읽히도록 풀어 쓰면 이 사람이 예비 장모에게조차 서류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 사라진다.

3. 편지에서 가장 잔인한 것은 문장이 아니라 배치다. 소냐를 가리키는 대목이 문장 끝에, 부속절 안에, 이름도 없이 놓인다. 그리고 곧바로 「귀하께서 그 액수를 어떤 수고로 모으셨는지 아는 터라」가 따라붙는다. 그러니까 딸의 명예를 찌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어머니의 돈을 아들이 그런 여자에게 주었다는 것을 들이대는 것이 목적이다. 원문의 어순을 그대로 지켰다. 한국어 어순에서 이 절을 앞으로 당기면 고발이 되고, 뒤에 남겨 두면 원문 그대로 「덧붙이는 말」의 모양이 된다.

4. 라주미힌의 아침 독백을 단상체로 처리했다. 서술자 자신이 이 대목을 「이런 독백 가운데서」(на таких монологах)라고 부르므로, 이것은 서술자가 눈치로 옮긴 속말이 아니라 인물이 제 자신에게 내리는 판결이다. 제2부 제6장 자메토프의 '일리야 페트로비치는 멍청이다!'와 같은 층위이며, 제2부 제5장 루진(서술자가 눈빛을 읽어 옮긴 것 → 「 」)과는 갈라진다. 라스콜니코프 아닌 인물의 단상체가 한 장에 이만큼 길게 놓이는 것은 연재에서 처음이다.

5. 라주미힌의 인물평은 이 소설에서 라스콜니코프를 밖에서 본 유일한 초상이다. 「도량이 넓고 착합니다」와 「비인간적이라 할 만큼 차갑고 무감각합니다」가 같은 단락 안에 모순 없이 놓이고, 라주미힌 자신이 「상반된 두 성격이 번갈아」라고 정리한다. 어느 쪽으로도 기울지 않게 어조를 평탄하게 유지했다. 그리고 이 초상의 마지막 항목—「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습니다」—이 세 문단 뒤에 두냐에게 그대로 되풀이된다(「그녀 또한 남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는 버릇이 있었다」). 서술자가 아무 논평 없이 놓아둔 이 반복이 곧이어 라주미힌이 불쑥 내뱉는 「당신이야말로 오라버니를 끔찍하게 닮으셨습니다」의 근거다. 세 자리의 어휘를 똑같이 맞추었다.

6. 자르니친의 딸 이야기는 라스콜니코프의 유일한 연애사다. 병약하고 못생기고 이상했다는 처녀와 혼인하려 했다는 것—이에 대해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딱 한 마디만 한다. 「저는 그분이 값어치 있는 처녀였으리라고 확신해요.」 오라비를 변호하는 말이 아니라 죽은 여자를 변호하는 말이며, 이 한 줄이 두냐의 인물됨 전부다. 짧게, 군더더기 없이 옮겼다.

7. 감옥에서 양말을 깁던 여왕 — 라주미힌의 속말이다. 원문은 이름을 대지 않고 「그 여왕」이라고만 한다. 당시 러시아 독자에게는 설명이 필요 없는 이미지였다. 우리말에서도 이름을 넣지 않고 주에서 밝혔다. 본문에 이름을 넣으면 인물의 즉흥적인 연상이 서술자의 해설로 바뀐다.

8. 마르파 페트로브나의 죽음이 여기서 처음 소리 내어 언급된다. 그것도 어머니의 꿈 이야기에 딸려서, 그리고 두냐가 곧바로 말을 끊는 바람에 설명되지 않은 채로. 제1부 제3장 어머니의 편지에서 이미 나온 이름이지만 죽음은 새 소식이다. 제3부 제3장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등장할 길을 여는 대목이므로, 이 어정쩡한 중단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9. 마지막 문단의 검은 두 눈.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다. 이름이 나오지 않고 「재빠른 검은 두 눈」으로만 그려지며, 문이 요란하게 닫히는 것으로 장이 끝난다. 앞 장에서 라주미힌이 「저를 두고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에게 질투할 겁니다」라고 취해서 지껄인 것이 여기서 소리 하나로 확인된다. 서술자는 아무 설명도 붙이지 않는다.

10. 문체 지표 — 대명사가 연재 최고를 찍었다. 원문 23,908자 → 본문 14,739자, 비율 0.616. 서술부 그/그녀 밀도 1만자당 138.6회로 목표 130을 크게 넘었다(재검선 150은 여전히 밑돎). 세 장 연속 초과이며 이번에도 원인이 다르다. 이 장의 서술부는 라주미힌의 자기 비하 단락두 여자를 관찰하는 단락으로 되어 있는데, 앞쪽은 「그」가 계속 주어로 돌아오는 일인칭에 가까운 자유간접화법이고, 뒤쪽은 「그녀」로 두 여자를 갈라 가리켜야 하는 대목이다. 서술부 자체가 5,772자로 짧은 것도 밀도를 올렸다. 이로써 초과 원인이 네 장에 걸쳐 네 가지로 갈렸다(13장 단독 이동, 14장 이름 없는 아이들, 15장 긴 이름 반복으로 하락, 16장 자유간접화법). 기준 130은 장의 성격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것이 확정적이므로, 제3부를 마치는 대로 서술 유형별 기준으로 다시 세운다. 대화 층위 문장 평균 30.1자(연재 최고—루진의 편지와 라주미힌의 인물평이 끌어올렸다), 서술 층위 평균 38.7자. 단상체 9개 구간이며 그중 8개가 라주미힌의 것이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장에 등장조차 하지 않는다.

  1. 술 속에 진실이 있으니(In vino veritas) — 라틴어 격언의 러시아어 번역. 라주미힌이 제 자신을 벌하는 데 쓰고 있다.
  2. 자르니친(Зарницын) — 라스콜니코프의 집주인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의 죽은 남편. 그 딸이 라스콜니코프의 죽은 약혼녀다. 「자르니치나」는 그 성의 여성형으로, 프라스코비야 파블로브나를 가리킨다.
  3. 마멋(сурок) — 굴을 파고 겨울잠을 자는 설치류. 「마멋처럼 잔다」는 깊이 잔다는 뜻의 관용 표현이다.
  4. 편집증(мономания) — 한 가지 관념에만 병적으로 붙들리는 상태를 가리키던 19세기 정신의학 용어. 조시모프가 「극도로 흥미로운 분야」라며 좇고 있다고 제3부 제1장에서 밝힌 바로 그것이다.
  5. 우울증(ипохондрик) — 당시 용법으로는 오늘날의 건강염려증보다 넓은, 침울과 과민을 아우르는 상태를 가리켰다.
  6. 드미트리 프로코피치 — 라주미힌의 이름과 부칭이 여기서 처음 밝혀진다. 열다섯 장 만이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제가 아직 당신 이름도 모르는군요」라고 묻고서야 나온다는 것이 이 인물이 지금까지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를 말해 준다.
  7. 하차장(дебаркадер) — 역의 승강장. 루진이 굳이 프랑스어에서 온 이 낱말을 쓰는 것도 격식을 세우려는 태도의 일부다.
  8. 원로원 사무 — 제2부 제5장 주 1 참조. 루진이 두 번째로 꺼내는 같은 구실이다.
  9. 행실이 드러난 처녀(девица отъявленного поведения) — 소냐를 가리키는 루진의 표현. 「отъявленный」는 본디 「악명 높은」이라는 뜻으로, 범죄자에게 붙이던 말이다.
  10. 베네치아 사슬(венецианская цепочка) — 가늘게 엮은 금 사슬. 당시 유행하던 목걸이 줄이다.
  11. 감옥에서 양말을 깁던 여왕 — 프랑스 혁명기에 갇혀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리킨다. 옥중에서 제 옷을 손수 기웠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었다.
  12. 마르파 페트로브나 — 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집의 안주인 스비드리가일로바. 제1부 제3장 어머니의 편지에 그 이름과 두냐를 둘러싼 소동이 적혀 있었다. 그 죽음이 여기서 처음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