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합니다, 건강해요!” 조시모프가 들어서는 사람들을 향해 쾌활하게 외쳤다. 그는 벌써 십 분쯤 전에 와서 어제 앉았던 소파 구석에 앉아 있었다. 라스콜니코프는 맞은편 구석에 앉아 있었는데, 옷을 다 갖춰 입었고 꼼꼼하게 씻고 머리까지 빗은 모습이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그에게 없던 일이었다. 방은 단번에 가득 찼으나 나스타샤도 어쨌든 손님들 뒤를 따라 들어와 서서 듣기 시작했다.
과연 라스콜니코프는 거의 건강했다. 특히 어제와 견주면 그러했다. 다만 몹시 창백했고 넋이 나가 있었고 침울했다. 겉으로 그는 다친 사람이나 어떤 심한 몸의 아픔을 견디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눈썹은 모였고 입술은 다물려 있었고 눈길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적게, 내키지 않는 듯이, 마치 힘겹게 하거나 의무를 이행하듯이 말했고, 그의 동작에는 이따금 어떤 불안이 나타났다.
이를테면 손가락이 몹시 아프게 곪았거나 손을 다쳤거나 그런 일을 당한 사람과 완전히 닮으려면 팔에 감은 붕대나 손가락에 씌운 호박단 덮개 같은 것만 있으면 될 정도였다.
하기야 이 창백하고 침울한 얼굴도 어머니와 누이가 들어서자 한순간 빛 같은 것으로 환해졌다. 그러나 그것은 이전의 서글픈 넋 나감 대신 그의 표정에 어쩐지 더 응축된 고통을 더해 주었을 뿐이었다. 빛은 이내 스러졌으나 고통은 남았다. 이제 막 치료를 시작한 의사의 온갖 젊은 열의로 제 환자를 관찰하고 연구하고 있던 조시모프는, 가족이 오자 그에게서 기쁨 대신 이미 피할 수 없게 된 한두 시간의 고문을 견뎌 내려는 무겁고 감추어진 결의 같은 것을 보고 놀랐다. 그는 그 뒤로, 뒤따른 대화의 거의 한마디 한마디가 제 환자의 어떤 상처를 건드리고 헤집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어제는 사소한 한마디에도 광란에 빠지다시피 하던 그 편집증 환자가 오늘은 제 자신을 다스리고 감정을 감추는 솜씨를 보이는 데 얼마쯤 감탄하기도 했다.
“예, 이제 저 자신도 거의 건강하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어머니와 누이에게 다정하게 입 맞추며 말했고, 그 때문에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곧바로 얼굴이 환해졌다. “그리고 이건 어제 같은 투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는 라주미힌을 향해 벗의 정을 담아 손을 쥐며 덧붙였다.
“저는 오늘 이 친구를 보고 놀라기까지 했습니다.” 조시모프가 온 사람들을 아주 반기며 말을 꺼냈다. 십 분 만에 이미 제 환자와의 대화의 실마리를 놓쳐 버린 참이었기 때문이다. “사나흘쯤 뒤면, 이대로만 가면 완전히 예전처럼 될 겁니다. 그러니까 한 달, 아니 두 달 전처럼요… 아니, 어쩌면 석 달 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건 한참 전에 시작되어 준비되고 있었으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이제 인정하시겠지요, 어쩌면 당신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었다고?” 그는 여전히 무엇으로든 그를 자극할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조심스러운 웃음을 담아 덧붙였다.
“그럴 수도 있겠지요.” 라스콜니코프가 차갑게 대답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조시모프가 입맛이 돌아 말을 이었다. “당신의 완전한 회복이 이제 주로 오직 당신 자신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한 가지를 새겨 드리고 싶습니다. 당신의 병적인 상태가 생겨나는 데 영향을 미친 최초의, 말하자면 뿌리가 되는 원인들을 없애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을 것이고 그러지 않으면 오히려 더 나빠질 겁니다. 그 최초의 원인들을 저는 모릅니다만 당신께는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머리 좋은 분이고, 물론 제 자신을 관찰해 오셨겠지요. 제가 보기에 당신의 이상이 시작된 것은 대학을 그만두신 것과 얼마쯤 겹칩니다. 당신은 하는 일 없이 지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그러니 일과, 스스로 앞에 굳게 세워 둔 목적이 당신께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예, 예, 아주 옳으신 말씀입니다… 어서 대학에 다시 들어가야겠군요. 그러면 모든 것이… 기름칠한 듯 굴러가겠지요…”
얼마쯤은 부인들 앞에서 효과를 노리고 제 현명한 충고를 시작했던 조시모프는, 말을 마치고 제 청자를 바라보았을 때 그 얼굴에서 분명한 조소를 알아채고 물론 다소 당황했다. 하기야 그것은 한순간이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곧바로 조시모프에게 감사를 표하기 시작했다. 특히 어제 여관으로 밤중에 찾아와 준 것에 대해서였다.
“어떻게, 저 사람이 밤에도 어머니께 갔었단 말입니까?” 라스콜니코프가 불안해진 듯 물었다. “그렇다면 어머니도 여행 뒤에 주무시지 못하셨겠군요?”
“아아, 로댜, 그래 봐야 두 시까지밖에 안 됐단다. 나와 두냐는 집에서도 두 시 전에 누운 적이 없었어.”
“저 역시 저분께 무엇으로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돈 문제는 젖혀 두고—이런 말을 꺼내는 것을 용서하십시오(그는 조시모프를 향했다)—제가 대체 무엇으로 당신께 이런 각별한 관심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고 그것이 저에게는 괴롭기까지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는 겁니다.”
“성내지 마십시오.” 조시모프가 힘겹게 웃었다. “당신이 제 첫 환자라고 쳐 두시지요. 저희처럼 이제 막 개업한 자들은 제 첫 환자들을 제 자식처럼 사랑하고, 어떤 이들은 거의 사랑에 빠지다시피 합니다. 게다가 저는 환자가 넉넉한 형편도 아니고요.”
“저 사람에 대해서는 말도 꺼내지 않겠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라주미힌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저 사람 역시 저한테서 모욕과 성가심 말고는 아무것도 받은 것이 없습니다.”
“원, 거짓말을! 자네 오늘 감상적인 기분이기라도 한가?” 라주미힌이 외쳤다.
그가 좀 더 통찰력이 있었다면, 여기에 감상적인 기분 따위는 결코 없으며 오히려 정반대인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는 그것을 알아챘다. 그녀는 유심히, 불안하게 오라비를 좇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해서는 말할 엄두도 내지 못하겠습니다.” 그가 아침부터 외워 둔 과업을 읊듯이 말을 이었다. “오늘에야 저는 어머니께서 어제 여기서 제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얼마나 애를 태우셨을지 얼마쯤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갑자기 말없이 웃음을 담아 누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웃음에 진짜 꾸밈없는 감정이 스쳤다. 두냐는 반가워하고 고마워하며 곧바로 내밀어진 손을 붙들어 뜨겁게 쥐었다. 어제 다툰 뒤로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건넨 것은 처음이었다. 오라비와 누이의 이 마지막의, 말 없는 화해를 보고 어머니의 얼굴이 환희와 행복으로 빛났다.
“그래서 내가 이 친구를 사랑한다니까!” 무엇이든 부풀리는 라주미힌이 의자에서 힘차게 몸을 돌리며 속삭였다. “저 친구한테는 저런 데가 있어!…”
'그리고 어쩌면 저 애는 저렇게 다 잘 해낼까.' 어머니는 속으로 생각했다. '얼마나 고결한 충동을 지녔는지, 그리고 어제 누이와의 그 어긋남을 얼마나 단순하고 조심스럽게 끝내 버렸는지. 그런 순간에 손을 내밀고 좋게 바라본 것만으로… 그리고 눈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굴 전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두네치카보다도 더 잘생겼구나… 그런데, 하느님, 저 옷차림은 저게 뭐란 말인가, 얼마나 끔찍하게 입었는지! 아파나시 이바노비치의 가게에서 심부름하는 바샤도 저보다는 낫게 입는데!… 그리고 이렇게, 이렇게 저 애한테 달려들어 껴안고… 울고 싶은데—그런데 무섭다… 어쩌면 저럴까, 하느님!… 저렇게 다정하게 말하는데도 무섭다! 대체 내가 무엇을 무서워하는 걸까?…'
“아아, 로댜, 너는 믿지 못할 거다.” 그녀가 그의 말에 서둘러 대답하려고 갑자기 받았다. “나와 두네치카가 어제 얼마나… 불행했는지! 이제 다 지나가고 끝났고 우리 모두 다시 행복해졌으니 말해도 되겠지. 생각해 보렴, 너를 껴안으려고 기차에서 곧장이다시피 여기로 달려왔는데, 그런데 저 여자가—아, 마침 저기 있구나! 안녕, 나스타샤!—갑자기 우리한테 말하기를, 네가 알코올 섬망으로 누워 있다가 방금 의사한테서 몰래 달아났다고, 헛소리를 하며 거리로 나갔다고, 그래서 너를 찾으러 달려 나갔다고 하지 뭐냐. 우리가 어땠는지 너는 믿지 못할 거다! 나는 그 순간 우리가 아는 사람, 네 아버지의 벗이었던 포탄치코프 중위가 얼마나 비극적으로 죽었는지가 떠올랐단다—너는 그 사람을 기억 못 하지, 로댜—그이도 알코올 섬망으로 똑같이 뛰쳐나가서 마당의 우물에 빠졌는데 이튿날에야 겨우 건져 냈지. 그러니 우리야 물론 더 부풀렸고. 표트르 페트로비치를 찾아 나설까도 했다, 하다못해 그이 도움이라도 빌려서… 왜냐하면 우리는 단둘이었으니까, 완전히 단둘이었으니까.” 그녀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늘어놓다가 갑자기 뚝 멈췄다. 「모두가 이미 다시 완전히 행복해졌다」고는 해도 표트르 페트로비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직 제법 위험하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다.
“예, 예… 그건 물론 언짢은 일이지요…” 라스콜니코프가 대답하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찌나 넋이 나가고 거의 귀 기울이지 않는 낯빛이었던지 두네치카가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그가 힘겹게 떠올리며 말을 이었다. “아, 그렇지. 어머니, 그리고 두네치카, 부디 제가 오늘 먼저 찾아가고 싶지 않아서 두 분이 먼저 오시기를 기다렸다고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니, 그게 무슨 소리냐, 로댜!”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도 놀라며 외쳤다.
'오라버니는 의무로 우리한테 대답하는 걸까?' 두네치카는 생각했다. '화해도 하고 용서도 구하는데, 마치 근무를 서거나 외운 과업을 읊는 것 같구나.'
“이제 막 깨어나서 가려고 했는데 옷이 저를 붙들었습니다. 어제 저 사람한테… 나스타샤한테 이 피를 빨아 달라고 말하는 걸 잊었거든요… 이제야 겨우 옷을 입었습니다.”
“피라니! 무슨 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불안해했다.
“그건… 걱정 마십시오. 어제 제가 얼마쯤 헛소리를 하며 쏘다니다가 마차에 치인 사람을 만났는데, 그래서 묻은 피입니다… 어떤 관리였지요…”
“헛소리를 했다고? 그런데 너는 전부 기억하잖나.” 라주미힌이 말을 끊었다.
“그건 사실이야.” 라스콜니코프가 어쩐지 유난히 조심스럽게 그에 대해 대답했다. “전부 기억해, 아주 사소한 세부까지도. 그런데 이걸 보게. 내가 왜 그 일을 했고 왜 거기 갔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건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어.”
“너무나 잘 알려진 현상입니다.” 조시모프가 끼어들었다. “일의 수행은 때로 명인의 솜씨로, 더없이 교묘하게 이루어지는데, 행동의 통제, 행동의 발단은 흐트러져 있어서 여러 병적인 인상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꿈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어쩌면 저 사람이 나를 거의 미친 사람으로 여기는 편이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다.' 라스콜니코프는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식이라면 건강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두네치카가 불안하게 조시모프를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제법 옳은 지적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런 뜻에서라면 과연 우리 모두가, 그것도 아주 자주 거의 미친 사람과 같습니다. 다만 「병자들」이 우리보다 조금 더 미쳐 있다는 작은 차이가 있을 뿐이지요. 그러니 여기서는 반드시 선을 구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조화로운 인간이란 거의 아예 없다는 것, 이건 사실입니다. 수만 명에 하나, 어쩌면 수십만 명에 하나 만날까 말까 하고, 그것도 상당히 약한 표본으로나 만날 뿐이지요…”
좋아하는 주제에 말이 길어진 조시모프에게서 조심성 없이 튀어나온 「미친」이라는 말에 모두가 얼굴을 찌푸렸다. 라스콜니코프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듯 생각에 잠긴 채, 창백한 입술에 이상한 웃음을 띠고 앉아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계속 헤아리고 있었다.
“자, 그래서 그 치인 사람은 어떻게 됐나? 내가 자네 말을 잘랐군!” 라주미힌이 서둘러 외쳤다.
“뭐라고?” 그가 잠에서 깨듯 말했다. “아… 그래, 그 사람을 집으로 옮기는 걸 돕다가 피가 묻은 거야… 그러고 보니 어머니, 제가 어제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을 하나 했습니다. 정말이지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어제 어머니가 보내 주신 돈을 전부 그 사람의 아내에게… 장례에 쓰라고 줘 버렸습니다. 이제 과부가 되었는데 폐병을 앓고 있는 가엾은 여자입니다… 어린 고아가 셋 있고 굶고 있고… 집은 텅 비었고… 딸이 하나 더 있습니다… 어머니도 보셨더라면 어쩌면 직접 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기야 저에게는 아무 권리도 없었지요, 인정합니다. 특히 그 돈이 어머니께 어떻게 마련된 것인지 알면서 말입니다. 남을 도우려면 먼저 그럴 권리를 가져야 하고, 그러지 않으면 「Crevez, chiens, si vous n'êtes pas contents!」이지요.” 그가 웃었다. “그렇지, 두냐?”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두냐가 단단하게 대답했다.
“오! 너도… 의도를 품고 있구나!…” 그가 거의 증오를 담아 그녀를 바라보고 비웃듯 웃으며 중얼거렸다. “내가 그것을 헤아렸어야 했는데… 뭐, 칭찬할 만한 일이다. 너에게도 그편이 낫고… 그리고 넘어서지 못할 선(線)에 이르게 되면—너는 불행해질 것이고, 넘어선다면—어쩌면 더 불행해질 것이다… 하기야 이건 다 터무니없는 소리다!” 그가 뜻하지 않게 열이 오른 것에 화가 나서 성마르게 덧붙였다. “저는 다만 어머니께 용서를 구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가 날카롭고 끊어지게 맺었다.
“그만해라, 로댜, 나는 네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훌륭하다고 믿는다!” 반가워진 어머니가 말했다.
“믿지 마십시오.” 그가 입을 비틀어 웃으며 대답했다. 침묵이 뒤따랐다. 이 온갖 대화에도, 침묵에도, 화해에도, 용서에도 어딘가 긴장된 것이 있었고 모두가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로 저들이 나를 무서워하는구나.' 라스콜니코프는 이마 아래로 어머니와 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과연 잠자코 있을수록 더 겁을 먹었다.
'멀리 있을 때는 저들을 그렇게 사랑했던 것 같은데.' 그의 머릿속에 스쳤다.
“그런데 로댜,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돌아가셨단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갑자기 튀어나오듯 말했다.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누굽니까?”
“아아, 하느님, 마르파 페트로브나 말이다, 스비드리가일로바! 내가 너에게 그렇게 많이 써 보냈잖니.”
“아—아—아, 그렇지, 기억납니다… 그래서 죽었다고요? 아, 정말입니까?” 그가 갑자기 잠에서 깨기라도 한 듯 움찔했다. “정말로 죽었습니까? 왜요?”
“생각해 보렴, 갑작스럽게!” 그의 호기심에 기운을 얻은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서둘러 말했다. “그것도 내가 너에게 그 편지를 부친 바로 그 무렵에, 바로 그날에 말이다! 상상해 보렴, 그 끔찍한 사람이 죽음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그 여자를 끔찍하게 때렸다더구나!”
“두 사람이 그렇게 살았습니까?” 그가 누이를 향해 물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였어요. 그 사람은 그 부인에게 언제나 몹시 참을성이 있었고 정중하기까지 했어요. 여러 경우에 그 성격을 지나치리만큼 너그럽게 받아 주기도 했고요, 꼬박 칠 년 동안… 그런데 어쩌다 갑자기 참을성을 잃은 거예요.”
“그렇다면 칠 년을 견뎠다면 그리 끔찍한 자는 전혀 아니겠구나? 두네치카, 너는 그자를 변호하는 것 같은데?”
“아니요, 아니요, 그 사람은 끔찍한 사람이에요!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상상할 수도 없어요.” 두냐가 몸서리치다시피 하며 대답하고는 미간을 찌푸리고 생각에 잠겼다.
“그 일은 두 사람 사이에 아침에 있었다는구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러고 나서 그 여자가 곧바로 말을 매라고 이르고는 식사가 끝나는 대로 시내로 가려고 했단다. 그런 일이 있으면 언제나 시내로 갔다니까. 식사 때는 아주 잘 먹었다고들 하고…”
“얻어맞은 사람이요?”
“…하기야 그 여자는 늘 그런… 버릇이 있었지. 그리고 식사를 마치자마자 떠나는 데 늦지 않으려고 곧장 목욕터로 갔단다… 그러니까 그 여자가 거기서 물로 무슨 치료를 하고 있었다는구나. 그 집에 찬 샘이 하나 있어서 날마다 꼬박꼬박 거기서 몸을 담갔는데, 물에 들어가자마자 갑자기 발작이 온 거야!”
“그럴 만도 하군요!” 조시모프가 말했다.
“그래서 그자가 그 여자를 심하게 때렸답니까?”
“그건 아무래도 마찬가지잖아요.” 두냐가 응수했다.
“흠! 하기야 어머니, 그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십니까.” 라스콜니코프가 성마르게, 그리고 뜻하지 않게 갑자기 말했다.
“아아, 얘야, 나는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몰라서 그랬단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래서, 다들 저를 무서워하시는 겁니까?” 그가 일그러진 웃음을 띠고 말했다.
“그건 정말이에요.” 두냐가 오라비를 똑바로 엄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어머니는 계단을 올라오면서 무서워서 성호를 그으셨어요.”
그의 얼굴이 경련이라도 일으킨 듯 일그러졌다.
“아아, 무슨 소리냐, 두냐! 화내지 마라, 부디, 로댜… 왜 그러니, 두냐!”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당황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나는 여기 오면서 내내, 기차 안에서 꿈꾸었단다. 우리가 어떻게 만나고 어떻게 서로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할지… 그리고 어찌나 행복했던지 길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나는 지금도 행복하다… 공연히 그러는구나, 두냐! 나는 너를 보는 것만으로 이미 행복하다, 로댜…”
“그만하십시오, 어머니.” 그가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중얼거리며 그녀의 손을 쥐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눌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그는 갑자기 당황해서 창백해졌다. 또다시 얼마 전의 어떤 끔찍한 느낌이 죽음의 냉기가 되어 그의 마음을 지나갔다. 또다시 그에게 갑자기 완전히 또렷하고 분명해진 것이다. 자기가 방금 끔찍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이제는 이야기를 나눌 시간을 얻는 일이 결코 없을 뿐 아니라 이미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코, 누구와도 이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이 괴로운 생각의 인상이 어찌나 강했던지 그는 한순간 거의 제 자신을 완전히 잊고 자리에서 일어나, 아무도 바라보지 않은 채 방을 나가려 했다.
“왜 그러나?” 라주미힌이 그의 팔을 붙들며 외쳤다.
그는 다시 앉아 말없이 둘레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모두가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체 다들 왜 이렇게 따분한 얼굴입니까!” 그가 아주 뜻밖에도 갑자기 외쳤다. “무슨 말이든 하십시오! 정말이지 이렇게 앉아만 있을 겁니까! 자, 말들을 하시지요! 이야기를 나눕시다… 모여 놓고 잠자코들 있으니… 자, 무슨 말이든!”
“다행이구나! 나는 어제 같은 일이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왜 그래요, 로댜?”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미심쩍어하며 물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다. 한 가지 일이 생각나서.” 그가 대답하고는 갑자기 웃었다.
“일이 생각난 거라면 잘됐군요! 나도 순간 생각하기를…” 조시모프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저는 가 봐야겠습니다. 어쩌면 또 들르지요… 마주친다면 말입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나갔다.
“정말 훌륭한 분이구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한마디 했다.
“예, 훌륭하고 뛰어나고 교양 있고 머리도 좋지요…” 라스콜니코프가 갑자기 어쩐지 뜻밖의 빠른 말투로, 그리고 여태 없던 어떤 활기를 담아 말하기 시작했다. “병나기 전에 어디서 저 사람을 만났는지 이제 기억이 안 나는군요… 어디선가 만난 것 같은데… 그리고 이 사람도 좋은 사람이지요!” 그가 라주미힌 쪽으로 턱짓을 했다. “두냐, 너는 이 사람이 마음에 드니?” 그가 그녀에게 묻고는 갑자기,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요.” 두냐가 대답했다.
“쳇, 자네는 참… 돼지 같은 놈이군!” 끔찍하게 민망해져 얼굴을 붉힌 라주미힌이 말하고 의자에서 일어섰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살짝 미소 지었고 라스콜니코프는 큰 소리로 웃어 댔다.
“어디 가나?”
“나도… 볼일이 있어서.”
“볼일 같은 건 전혀 없잖나, 남아 있게! 조시모프가 갔다고 자네까지 가야 하나. 가지 말게… 그런데 몇 시지? 열두 시 됐나? 두냐, 네 시계 참 예쁘구나! 그런데 왜들 또 잠자코 계십니까? 나만, 나만 계속 말하고 있잖습니까!…”
“이건 마르파 페트로브나가 준 거예요.” 두냐가 대답했다.
“아주 값진 것이란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덧붙였다.
“아—아—아! 꽤 크구나, 여자 것 같지 않은데.”
“저는 이런 걸 좋아해요.” 두냐가 말했다.
'그러니까 신랑의 선물이 아니었군.' 라주미힌은 생각하고 무엇 때문인지 모르게 반가워졌다.
“나는 루진의 선물인 줄 알았는데.” 라스콜니코프가 한마디 했다.
“아니다, 그이는 아직 두네치카에게 아무것도 선물하지 않았다.”
“아—아—아! 그런데 어머니, 제가 사랑에 빠져서 결혼하려 했던 일 기억하십니까?” 그가 갑자기 어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는 뜻밖의 전환과 그가 그 이야기를 꺼낸 어조에 얻어맞은 얼굴이었다.
“아아, 얘야, 그럼!”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두네치카와 라주미힌과 눈길을 주고받았다.
“흠! 그렇지요! 그런데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릴까요? 기억도 잘 나지 않습니다. 그 애는 그런 병약한 처녀였지요.” 그가 다시 갑자기 생각에 잠기며 눈을 내리깔고 말을 이었다. “아주 병이 많았고, 거지에게 적선하기를 좋아했고, 늘 수도원을 꿈꾸었고, 언젠가 그 이야기를 저에게 하다가 눈물을 쏟았습니다. 그래요, 그래요… 기억납니다… 아주 잘 기억납니다. 못생긴 아이였지요… 생김새가. 정말이지 제가 왜 그때 그 애에게 붙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늘 병약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애가 절름발이거나 곱추이기까지 했다면 저는 아마 그 애를 더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그가 생각에 잠겨 웃었다. “그저… 무슨 봄날의 헛것 같은 것이었지요…”
“아니요, 그건 봄날의 헛것만은 아니었어요.” 두네치카가 마음을 담아 말했다.
그는 주의 깊게, 긴장한 채로 누이를 바라보았으나 그 말을 알아듣지 못했거나 아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고는 깊은 상념에 잠긴 채 일어나 어머니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고, 제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너는 지금도 그 아이를 사랑하는구나!” 감동한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했다.
“그 애를요? 지금요? 아, 그렇지… 그 애 말씀이군요! 아닙니다. 그건 이제 다 저세상 일 같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오래전 일이고요. 게다가 둘레의 모든 것이 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는 주의 깊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마치 천 베르스타 밖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대체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귀신이나 알 일이지요! 그리고 왜 캐물으십니까?” 그가 언짢아하며 덧붙이고는 입을 다물고 손톱을 물어뜯으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네 집은 어쩌면 이렇게 나쁘냐, 로댜, 꼭 관 같구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갑자기 무거운 침묵을 깨며 말했다. “나는 네가 절반은 이 집 때문에 이렇게 우울해졌다고 믿는다.”
“집이요?…” 그가 넋 나간 채 대답했다. “예, 집이 많이 거들었지요… 저도 그것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방금 어머니가 얼마나 이상한 말씀을 하셨는지 아신다면.” 그가 갑자기 이상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조금만 더 있었다면 이 모임이, 삼 년 만에 만난 이 가족이, 무엇 하나 이야기할 수 없는 완전한 불가능 속에서 오가는 이 혈육의 말투가 마침내 그에게 결정적으로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든 저렇게든 오늘 반드시 결판을 내야 하는 미룰 수 없는 일이 하나 있었다—그는 아까 깨어났을 때 이미 그렇게 정해 두었다. 지금 그는 그 일을 하나의 출구처럼 반겼다.
“두냐, 이런 이야기다.” 그가 진지하고 메마르게 말을 꺼냈다. “나는 물론 어제 일에 대해 너에게 용서를 구한다. 그러나 나의 가장 중요한 것에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것이 내 의무라고 여긴다. 나냐 루진이냐. 나야 비열한 자라 치더라도 너는 그래서는 안 된다. 누구든 하나면 된다. 만일 네가 루진에게 시집간다면 나는 그 순간부터 너를 누이로 여기기를 그만두겠다.”
“로댜, 로댜! 그건 어제와 똑같은 이야기잖니.”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서럽게 외쳤다. “그리고 왜 너는 자꾸 스스로를 비열한 자라고 부르는 거냐, 나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다! 어제도 똑같았지…”
“오라버니,” 두냐가 단단하게, 역시 메마르게 대답했다. “이 모든 것에는 오라버니 쪽의 착오가 있어요. 저는 밤새 생각했고 그 착오를 찾아냈어요. 문제는 전부, 오라버니가 제가 누군가에게, 누군가를 위해 저 자신을 희생으로 바친다고 짐작하고 있다는 데 있어요. 그건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저는 그저 저 자신을 위해 시집가는 거예요. 저 자신이 힘겨우니까요. 그리고 물론 혈육에게 쓸모가 있게 된다면 기쁘겠지만, 제 결심에서 그것이 가장 중요한 동기는 아니에요…”
'거짓말이다!' 그는 성이 나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오만한 것! 은혜를 베풀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구나! 오, 비천한 성격들! 저들은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것 같다… 오, 내가 저들 모두를… 얼마나 미워하는가!'
“한마디로 저는 표트르 페트로비치에게 시집가는 거예요.” 두네치카가 말을 이었다. “두 개의 악 가운데 작은 쪽을 고르는 것이니까요. 저는 그이가 저에게 기대하는 것을 전부 정직하게 이행할 생각이고, 그러니 그이를 속이는 것이 아니에요… 왜 방금 그렇게 웃었어요?”
그녀도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그 눈에 분노가 스쳤다.
“전부 이행한다고?” 그가 독기 어린 웃음을 담아 물었다.
“어느 한계까지는요. 표트르 페트로비치의 청혼 방식과 형식이 저에게 그이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곧바로 보여 주었어요. 그이는 물론 제 자신을 높이 치지요, 어쩌면 지나치게 높이. 그렇지만 저는 그이가 저도 높이 쳐 주기를 바라요… 왜 또 웃어요?”
“그런데 너는 왜 또 얼굴을 붉히느냐? 너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누이야. 일부러 거짓말을 하고 있어. 오직 여자의 고집 하나로, 내 앞에서 제 뜻을 관철하려고 말이다… 너는 루진을 존경할 수 없다. 나는 그자를 보았고 그자와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너는 돈 때문에 제 자신을 파는 것이고, 그러니까 어떤 경우든 비천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그래도 나는 네가 적어도 얼굴을 붉힐 수는 있다는 것이 기쁘구나!”
“사실이 아니에요, 거짓말이 아니에요!…” 두네치카가 온갖 냉정을 잃으며 외쳤다. “저는 그이가 저를 높이 치고 저를 귀하게 여긴다는 확신 없이는 그이에게 시집가지 않아요. 저 자신이 그이를 존경할 수 있다는 굳은 확신 없이는 시집가지 않아요. 다행히 저는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고, 그것도 바로 오늘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혼인은 오라버니가 말하는 것 같은 비열한 짓이 아니에요! 그리고 설령 오라버니가 옳다 해도, 제가 정말로 비열한 짓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라 해도—저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이 무자비하지 않나요? 왜 저에게, 어쩌면 오라버니 자신에게도 없는 영웅다움을 요구하나요? 그건 전제(專制)이고 폭력이에요! 제가 누구든 망친다면 오직 저 자신 하나뿐이에요… 저는 아직 아무도 베어 죽이지 않았어요!… 왜 그렇게 저를 보세요? 왜 그렇게 창백해졌어요? 로댜, 왜 그래요? 로댜, 오라버니!…”
“하느님! 정신을 잃게 만들었구나!”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외쳤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터무니없습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을 뿐입니다. 정신을 잃은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놈의 정신 잃는 이야기라니!… 흠! 그렇지…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더라? 그렇지. 어떻게 너는 오늘 안에 그자를 존경할 수 있다는 것과 그자가… 뭐라고 했지, 너를 높이 친다는 것을 확인한다는 거냐? 오늘이라고 말한 것 같은데. 아니면 내가 잘못 들었나?”
“어머니, 오라버니에게 표트르 페트로비치의 편지를 보여 드리세요.” 두네치카가 말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떨리는 손으로 편지를 건넸다. 그는 큰 호기심을 품고 그것을 받았다. 그런데 펼치기 전에 그는 갑자기 어쩐지 놀란 듯 두네치카를 바라보았다.
“이상하구나.” 그가 갑자기 새로운 생각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천천히 말했다.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는가? 이 온갖 소란은 무엇 때문인가? 네가 원하는 자에게 시집가려무나!”
그는 제 자신에게 하듯 말했으나 소리 내어 발음했고, 얼마 동안 어리둥절해진 사람처럼 누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마침내 편지를 펼쳤다. 여전히 어떤 이상한 놀라움의 낯빛을 간직한 채였다. 그러고는 천천히 주의 깊게 읽기 시작해 두 번 읽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각별한 불안에 싸여 있었다. 다들 무언가 각별한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저에게 놀라운 일이군요.” 그가 얼마쯤 생각한 뒤에 편지를 어머니에게 건네며, 그러나 특별히 누구를 향한 것도 아니게 말을 꺼냈다. “사건을 맡아 다니는 사람이고 변호사이고 말하는 투도 그런데… 저렇게 배운 티 안 나게 쓰다니.”
모두가 몸을 움직였다. 전혀 그런 것을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저 사람들은 다들 저렇게 쓰네.” 라주미힌이 끊어 말했다.
“자네가 읽었나?”
“읽었네.”
“우리가 보여 주었단다, 로댜, 우리가… 아까 의논했거든.” 민망해진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말을 꺼냈다.
“이건 본디 법조문 문체야.” 라주미힌이 말을 잘랐다. “법원 서류는 지금도 저렇게 쓰지.”
“법조문? 그렇지, 바로 법조문이고 사무 문체군… 아주 못 배운 것도 아니고 아주 문학적인 것도 아니고—사무 문체야!”
“표트르 페트로비치는 제 자신이 동전 몇 푼으로 배웠다는 것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 제 길을 닦았다는 것을 자랑하기까지 해요.” 오라비의 새로운 어조에 얼마쯤 기분이 상한 아브도티야 로마노브나가 한마디 했다.
“그래, 자랑한다면 자랑할 만도 하겠지. 나는 반박하지 않는다. 누이야, 너는 내가 이 편지 전체에서 그런 경박한 지적을 끄집어냈다고 기분이 상한 모양이구나. 그리고 내가 언짢은 김에 너를 놀리려고 일부러 그런 자질구레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고. 오히려 그 반대다. 문체와 관련해서 나에게 지금 경우에 결코 쓸모없지 않은 지적이 하나 떠올랐다. 거기에 「스스로를 탓하시기 바랍니다」라는 표현이 하나 있는데 아주 뜻깊고 또렷하게 놓여 있고, 그 밖에 내가 가면 그자가 곧바로 물러나겠다는 위협이 있다. 이 물러나겠다는 위협은 두 분이 말을 듣지 않으면 두 분을 버리겠다는 위협과 같은 것이고, 이미 페테르부르크로 불러들여 놓은 지금 버리겠다는 것이다. 자,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루진에게서 이런 표현을 듣는 것이, 만일 저 사람이(그는 라주미힌을 가리켰다), 아니면 조시모프가, 아니면 우리 가운데 누구든 그렇게 썼을 때와 똑같이 기분 상할 만한 일이겠느냐?”
“아—니요.” 두네치카가 생기를 띠며 대답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순진하게 표현되었다는 것과, 그이가 어쩌면 그저 글에 능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아들었어요… 그건 잘 헤아리셨어요, 오라버니. 저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는데…”
“법조문식으로 표현된 것이고, 법조문식으로는 달리 쓸 수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어쩌면 그자가 바라던 것보다 거칠게 나온 거지. 하지만 너를 조금 실망시켜야겠구나. 이 편지에는 표현이 하나 더 있다. 나에 대한 중상이고 제법 비열한 것이다. 나는 어제 그 돈을 과부에게, 폐병을 앓고 있고 짓눌린 여자에게 주었지, 「장례를 구실로」가 아니라 곧바로 장례에 쓰라고 주었다. 그리고 딸의 손에 준 것이 아니다—그자가 「행실이 드러난」 처녀라고 쓴, 내가 어제 난생처음 본 그 딸 말이다—바로 그 과부에게 주었다. 이 모든 것에서 나는 나를 더럽혀 두 분과 나를 갈라놓으려는 지나치게 성급한 바람을 본다. 그리고 표현은 또다시 법조문식이다. 그러니까 목적이 지나치게 뚜렷하게 드러나 있고 몹시 순진하게 서두른 것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머리 좋게 행동하려면 머리 하나로는 모자란다. 이 모든 것이 사람을 그려 보인다. 그리고… 나는 그자가 너를 높이 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을 너에게 알리는 것은 오직 깨우침을 주기 위해서다. 나는 진심으로 너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바라니까…”
두네치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결정은 이미 아까 내려져 있었고 그녀는 다만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기로 정했니, 로댜?” 그의 갑작스러운, 새로운, 사무적인 말투에 아까보다 더 불안해진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물었다.
“「정했니」라니 무슨 말씀입니까?”
“그러니까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저녁에 네가 우리한테 있지 않도록 하라고, 네가 오면 그이가 가 버리겠다고 썼잖니.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할 거냐?”
“그건 물론 제가 정할 일이 아니지요. 첫째로 두 분께서, 표트르 페트로비치의 그런 요구가 기분 상하지 않으시다면 그러시고, 둘째로 두냐가, 역시 기분 상하지 않는다면 그러면 됩니다. 저는 두 분께 좋은 대로 하겠습니다.” 그가 메마르게 덧붙였다.
“두네치카는 이미 정했고 나도 저 애와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서둘러 끼워 넣었다.
“저는 오라버니에게 청하기로 정했어요, 로댜. 오늘 그 만남에 반드시 우리와 함께 있어 달라고 간곡히 청하기로요.” 두냐가 말했다. “오시겠어요?”
“가겠다.”
“당신께도 여덟 시에 와 주시기를 청합니다.” 그녀가 라주미힌을 향했다. “어머니, 저는 이분도 청했어요.”
“그거 훌륭하구나, 두네치카. 자, 너희가 그렇게 정했으니,”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가 덧붙였다. “그렇게 되도록 하자꾸나. 나도 마음이 한결 편하다. 나는 꾸미고 거짓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차라리 온전한 진실을 말하자꾸나… 표트르 페트로비치가 성을 내든 말든!”
작품 해설과 번역 노트
윤문 노트
1. 이 장에서 라스콜니코프는 처음으로 「연기」를 한다. 조시모프가 관찰하는 대로, 어제는 사소한 한마디에도 광란에 빠지던 사람이 오늘은 제 감정을 감추는 솜씨를 보인다. 그래서 그의 말투가 앞 장들과 달라졌다—「아침부터 외워 둔 과업을 읊듯이」, 「메마르게」, 「사무적인 말투」. 원문이 서술로 세 번이나 이 부자연스러움을 지적하므로, 우리말에서도 그의 대사를 일부러 매끄럽지 않게, 미리 준비된 문장처럼 옮겼다. 자연스럽게 다듬으면 두네치카가 속으로 '마치 근무를 서거나 외운 과업을 읊는 것 같구나'라고 하는 대목이 근거를 잃는다.
2. 「선(線)」이 이 장의 중심어다. 원문 черта가 세 자리에 놓인다. 조시모프가 병자와 건강한 자 사이에 「반드시 선을 구별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라스콜니코프가 누이에게 「넘어서지 못할 선에 이르게 되면」이라고 말하고, 그 자신이 제1부에서 이미 그 선을 넘은 사람이다. 세 자리를 같은 낱말로 고정했다. 제3부 제5장의 논문 장면에서 이 낱말이 네 번째로 돌아오며 그때 「넘어설 권리」라는 이론의 이름을 얻는다.
3. 「저는 아직 아무도 베어 죽이지 않았어요!」(Я еще никого не зарезала!) — 이 장 전체가 이 한 문장을 향해 간다. 두냐는 「나는 아직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말했을 뿐인데, 라스콜니코프는 그 말에 창백해져 쓰러질 뻔한다. 그리고 아무도 왜인지 모른다. 동사 зарезать(칼로 베어 죽이다)를 제1부 제6장·제7장에서 쓴 것과 같은 말로 옮겼다. 「죽이다」로 평탄화하면 이 문장이 왜 그를 쓰러뜨리는지가 흐려진다.
4. 「우리가 이야기 나눌 시간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 이 소설에서 가장 조용한 파국이다. 무심코 어머니를 달래려고 한 이 말이 곧바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서술은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설명하지 않고 그저 「끔찍한 거짓말」이라고만 한 뒤, 「이제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결코, 누구와도 이제 이야기할 수 없다」로 이어진다. 원문의 부정어 네 개(ни об чем больше, никогда и ни с кем)를 그대로 쌓아 올렸다.
5. 「천 베르스타 밖에서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 제2부 제5장에서 루진이 쓴 바로 그 관용구다. 거기서는 「그런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뜻의 상투어였는데, 여기서 라스콜니코프의 입에서는 글자 그대로의 뜻이 된다. 두 자리를 같은 말로 묶었다. 상투어가 진실이 되는 이런 되풀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상습적인 수법이므로 어느 쪽도 바꾸지 않았다.
6. 죽은 약혼녀 이야기에서 한 문장을 눌러 옮겼다. 「그 애가 절름발이거나 곱추이기까지 했다면 저는 아마 그 애를 더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원문은 이 말을 아무 논평 없이 놓고 곧바로 「그저 무슨 봄날의 헛것 같은 것이었지요」로 넘어간다. 감상으로도 자기 고발로도 기울지 않도록 어조를 평탄하게 두었다. 두네치카가 「그건 봄날의 헛것만은 아니었어요」라고 받는데 그는 알아듣지 못한다—이 어긋남이 이 대목의 전부다.
7. 마르파 페트로브나의 죽음이 희극으로 서술된다. 얻어맞은 그날 아침에 말을 매라 이르고, 식사를 잘 하고, 늦지 않으려고 목욕터로 가서, 찬물에 들어가자마자 쓰러진다. 어머니는 이것을 사건의 순서대로 쾌활하게 늘어놓고, 라스콜니코프는 그 사이사이에 두 번 끼어든다—「얻어맞은 사람이요?」, 「그래서 그자가 그 여자를 심하게 때렸답니까?」. 두냐는 두 번 다 자르듯 짧게 받는다—「그건 아무래도 마찬가지잖아요.」 이 세 목소리의 어긋남을 살리려고 어머니의 문장만 길게, 두 남매의 문장은 짧게 유지했다.
8. 루진의 편지를 두 번째로 읽는 장면이다. 제3부 제2장에서 독자는 이미 전문을 읽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편지가 다시 인용되지 않고 분석만 놓인다. 라스콜니코프가 집어내는 것은 두 가지다—「스스로를 탓하시기 바랍니다」가 실은 버리겠다는 위협이라는 것, 그리고 소냐에 대한 대목이 중상이라는 것. 앞 장의 윤문 노트 3에서 지적한 그 배치를 이 장의 인물이 직접 짚는 셈이므로, 두 장의 표현을 글자 그대로 맞추어 두었다(「행실이 드러난」, 「장례를 구실로」).
9. 「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애를 쓰는가?」 — 편지를 펼치기 직전에 그가 소리 내어 말해 버리는 한마디다. 서술은 「제 자신에게 하듯 말했으나 소리 내어 발음했고」라고 못을 박는다. 한 장 내내 누이의 혼인을 막으려 싸워 놓고 갑자기 상관없어지는 이 급전을, 원문은 설명하지 않는다. 우리말에서도 설명을 보태지 않았다.
10. 문체 지표. 원문 26,796자 → 본문 16,585자, 비율 0.619. 서술부 그/그녀 밀도 1만자당 138.4회로 앞 장(138.6)과 거의 같다. 네 장 연속 목표 130 초과이며 재검선 150은 여전히 밑돈다. 이 장의 원인은 한 방에 다섯 사람이 있고 그중 셋이 남자라는 데 있다. 「그」 하나로는 라스콜니코프·라주미힌·조시모프를 가릴 수 없어 이름과 대명사를 번갈아 쓸 수밖에 없는데, 서술부가 5,852자로 짧아 밀도가 그대로 올라갔다. 대화 층위 문장 평균 24.3자, 서술 층위 평균 31.5자. 단상체 10개 구간이며 라스콜니코프 5개, 어머니 2개, 두네치카 2개, 라주미힌 1개로 네 인물에 흩어졌다—연재에서 처음이다. 한 방에서 네 사람이 각자 속으로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 층위 분포에 그대로 찍혔다.
주
- 호박단 덮개(чехол из тафты) — 곪은 손가락에 씌우던 얇은 비단 싸개.
- 알코올 섬망(белая горячка) — 글자 그대로는 「흰 열병」. 심한 음주 뒤에 오는 섬망 상태를 가리키던 당대의 병명이다. 나스타샤가 라스콜니코프의 상태를 이 말로 전한 것이 두 여자를 공포에 빠뜨렸다.
- 포탄치코프 중위 —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만 나오는 인물. 이런 곁가지 일화를 쏟아 내는 것이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말버릇이다.
- 아파나시 이바노비치 — 바흐루신. 제2부 제3장에서 어머니가 그를 통해 삼십오 루블을 부쳤던 상인이다.
- Crevez, chiens, si vous n'êtes pas contents! — 프랑스어로 「마음에 안 들면 뒈져라, 개들아!」라는 뜻. 당대 프랑스 문학에서 가진 자의 냉소를 대표하는 문구로 인용되던 말이다. 라스콜니코프가 「남을 도우려면 먼저 그럴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제 말에 곧바로 이 문구를 붙이는 것은, 권리 없이 베푸는 자선에 대한 조롱이자 동시에 제 자신에 대한 조롱이다. 프랑스어 그대로 두었다.
- 베르스타(верста) — 약 1.067킬로미터. 제2부 제5장 주 11 참조.
- 마르파 페트로브나 스비드리가일로바 — 두냐가 가정교사로 있던 집의 안주인. 제1부 제3장 어머니의 편지에 그 집에서 벌어진 일이 적혀 있었다. 그 죽음이 제3부 제2장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여기서 자세히 이야기된다. 이 죽음이 스비드리가일로프를 페테르부르크로 불러들이는 원인이며, 그는 이 장이 끝나고 몇 시간 뒤에 나타난다.
- 찬 샘(холодный ключ) — 지주 저택의 정원이나 뜰에 있던 천연 샘. 냉수욕이 당시 유행하던 건강법이었다.
- 동전 몇 푼으로 배웠다(учился на медные деньги) — 「가난하게 공부했다」는 뜻의 관용구. 구리 동전은 가장 값싼 화폐다.
- 법조문 문체(судейский слог) — 제3부 제2장 윤문 노트 2에서 다룬 그 문체다. 라주미힌이 「법원 서류는 지금도 저렇게 쓰지」라고 확인해 준다.
- 스스로를 탓하시기 바랍니다(пеняйте на себя) — 루진의 편지에 있던 표현. 제3부 제2장 본문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