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제4부 제4장

촛불 아래 마주 앉은 소냐와 라스콜니코프 사이에 신앙과 고통의 말이 오간다.
촛불 아래 마주 앉은 소냐와 라스콜니코프 사이에 신앙과 고통의 말이 오간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가 사는 운하 옆 집으로 곧장 갔다. 낡은 삼층집으로, 초록색이었다. 문지기를 찾아내 카페르나우모프라는 재봉사가 어디 사는지 물었지만 설명은 막연했다. 마당 구석에서 좁고 어두운 계단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발견한 그는 마침내 이층으로 올라가 마당 쪽을 둘러싼 회랑으로 나왔다. 어둠 속을 헤매며 카페르나우모프의 집으로 들어가는 문이 어디 있을까 망설이는데, 갑자기 세 걸음쯤 앞에서 문 하나가 열렸다. 그는 무심결에 그 문을 붙잡았다.

“누구세요?”

여자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물었다.

“접니다… 당신을 만나러 왔어요.”

라스콜니코프가 대답하며 조그마한 현관으로 들어갔다. 방석이 푹 꺼진 의자 위에 찌그러진 구리 촛대가 놓여 있고, 거기에 초가 타고 있었다.

“당신이세요! 하느님!”

소냐가 가느다랗게 외치고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어디로 가면 됩니까? 이쪽인가요?”

라스콜니코프는 그녀를 보지 않으려고 애쓰며 서둘러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소냐도 촛불을 들고 들어와 내려놓은 다음 그의 앞에 섰다. 완전히 어쩔 줄 몰라 했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동요에 휩싸여 있었으며, 뜻밖의 방문에 겁이 난 것이 분명했다. 갑자기 창백한 얼굴에 붉은 기운이 솟고 눈에는 눈물까지 맺혔다… 괴롭고, 부끄럽고, 그러면서도 달콤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재빨리 고개를 돌려 탁자 곁 의자에 앉았다. 그 짧은 사이 방을 한눈에 훑어보았다.

방은 넓었으나 천장이 몹시 낮았다. 카페르나우모프네가 세놓는 방은 이것 하나뿐이었고, 왼쪽 벽에 난 잠긴 문이 그 집으로 통했다. 맞은편 오른쪽 벽에도 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은 언제나 꼭 잠겨 있었다. 그 너머는 호수가 다른 이웃집이었다. 소냐의 방은 헛간 같았고, 사각형이면서도 모양이 지극히 고르지 않아 어딘가 기괴했다. 운하로 난 창문 세 개가 있는 벽이 방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한쪽 구석은 몹시 뾰족한 채 저 안쪽으로 뻗어 들어갔다. 불빛이 약해서 제대로 들여다볼 수도 없었다. 반대쪽 구석은 또 지나치게 벌어져 흉한 둔각을 이루었다.

그 넓은 방에 가구는 거의 없었다. 오른쪽 구석에 침대가 있고, 그 곁 문에 가까운 곳에 의자가 놓여 있었다. 침대가 놓인 벽을 따라가면, 이웃집으로 통하는 문 바로 앞에 푸르스름한 식탁보를 덮은 소박한 널빤지 탁자가 있었다. 탁자 곁에는 엮어 만든 의자가 둘이었다. 맞은편 벽, 뾰족한 구석 가까이에는 칠하지 않은 나무로 만든 작은 서랍장이 텅 빈 공간 속에 잊힌 듯 서 있었다. 방 안에 있는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누렇게 바래고 닳아 해진 벽지는 구석마다 검게 변해 있었다. 겨울에는 습기가 차고 난방 연기가 매캐하게 맴돌았을 법했다. 가난이 훤히 드러났다. 침대에조차 가리개가 없었다.

소냐는 그토록 찬찬히, 거리낌 없이 자기 방을 살피는 손님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마침내는 판관, 자기 운명을 결정할 사람 앞에 서 있는 것처럼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너무 늦었군요… 열한 시가 되었습니까?”

아직 그녀에게 눈을 들지 않은 채 그가 물었다.

“네.”

소냐가 중얼거렸다.

“아, 네, 됐어요!”

마치 거기에 무슨 돌파구라도 있다는 듯 갑자기 서둘러 말했다.

“방금 주인집에서 시계가 쳤어요… 저도 들었고요… 됐어요.”

“당신에게 마지막으로 온 겁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침울하게 말을 이었다. 지금이 첫 방문인데도 그랬다.

“어쩌면 다시 못 볼지도 모르겠어요…”

“어디… 떠나세요?”

“모르겠어요… 모두 내일…”

“그럼 내일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댁에도 안 오시나요?”

소냐의 목소리가 떨렸다.

“모르겠어요. 모두 내일 아침에… 그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마디 하러 왔어요…”

생각에 잠긴 눈을 들어 그녀를 보다가, 자신은 앉아 있는데 그녀는 여전히 앞에 서 있다는 것을 문득 알아차렸다.

“왜 서 있습니까? 앉아요.”

갑자기 목소리가 바뀌어 조용하고 다정해졌다.

소냐가 앉았다. 그는 잠시 호의 어린, 거의 연민에 가까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참 말랐군요! 손 좀 보세요! 속이 다 비쳐요. 손가락이 죽은 사람 같아요.”

그가 손을 잡았다. 소냐가 희미하게 웃었다.

“저는 언제나 이랬어요.”

“집에서 살 때도요?”

“네.”

“그렇겠지, 물론!”

그가 툭 내뱉었다. 표정도 목소리도 갑자기 다시 달라졌다. 또 한 번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페르나우모프에게서 방을 빌렸나요?”

“네…”

“저 문 너머에 삽니까?”

“네… 그분들 방도 이 방 같아요.”

“모두 한 방에요?”

“한 방이에요.”

“나라면 밤에 이런 방에 있기 무서울 것 같은데.”

그가 침울하게 말했다.

“주인분들은 아주 좋은 분들이에요. 아주 다정하시고요.”

소냐는 아직 정신을 가다듬지 못한 듯 대답했다.

“가구도, 여기 있는 것도… 모두 주인분들 것이에요. 정말 친절하세요. 아이들도 자주 저를 보러 와요…”

“말이 어눌한 사람들이죠?”

“네… 아저씨는 말을 더듬고 다리도 저세요. 아주머니도… 더듬는다기보다 말을 다 또렷하게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아주 좋은 분이에요. 아저씨는 예전에 집안일을 하던 농노였고요. 아이는 일곱인데… 맏이만 말을 더듬어요. 나머지는 그냥 몸이 아픈 거예요… 더듬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분들을 어떻게 아세요?”

그녀가 조금 놀라 덧붙였다.

“당신 아버지가 그때 다 말해 주었어요. 당신 이야기도 전부요… 여섯 시에 나갔다가 여덟 시가 넘어 돌아온 일도,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당신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있던 일도요.”

소냐가 당황했다.

“저는 오늘 아버지를 본 것만 같아요.”

망설이며 속삭였다.

“누구를요?”

“아버지요. 아홉 시가 넘어 저기 가까운 모퉁이에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앞에 가시는 것 같았어요. 꼭 아버지 같았어요. 저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댁에 들르려던 참이었는데…”

“거리를 걷고 있었군요?”

“네.”

소냐가 다시 당황해 눈을 내리깔고 짧게 속삭였다.

“아버지 댁에 있을 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당신을 때리다시피 했다지요?”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니에요!”

소냐가 겁에 질리기까지 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분을 사랑합니까?”

“그분을요? 그럼요,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소냐는 애처롭게 말을 길게 끌다가, 괴로운 듯 갑자기 두 손을 모았다.

“아! 그분을… 당신이 그분을 아시기만 한다면. 꼭 어린애 같으세요… 슬픔 때문에… 정신이 혼란스러워지신 거예요. 얼마나 영리한 분이셨는데… 얼마나 너그러우셨고… 얼마나 착한 분인데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세요… 아!”

소냐는 절망한 듯 흥분과 고통 속에서 두 손을 비틀며 말했다. 창백한 뺨이 다시 붉어지고 눈에 괴로움이 어렸다. 그녀의 마음 아주 깊은 곳을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무엇인가 표현하고, 말하고, 변호하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했다.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끝을 모르는 연민이 갑자기 얼굴 구석구석에 드러났다.

“때리다니요!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세요! 하느님, 때리다니! 설령 때리셨다 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요? 당신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세요… 그렇게 불행한 분이에요. 아, 얼마나 불행한 분인데요! 아프시기까지 하고… 그분은 정의를 찾으세요… 깨끗한 분이에요. 모든 일이 공정해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해 달라고 요구하세요… 고문을 해도 부당한 일은 하지 않으실 거예요. 사람들 사이의 일이 모두 공정할 수는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셔서 화를 내시는 거예요… 어린애처럼, 꼭 어린애처럼요! 공정한 분이에요, 공정한 분이라고요!”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됩니까?”

소냐가 무슨 뜻인지 묻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이제 그 사람들이 다 당신에게 남겨졌잖아요. 물론 전에도 모두 당신 몫이었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해장술 값을 달라고 당신에게 왔지요. 하지만 이제는 어떻게 되겠어요?”

“모르겠어요.”

소냐가 슬프게 말했다.

“그 집에서 계속 삽니까?”

“모르겠어요. 방세가 밀렸거든요. 오늘 주인아주머니가 내보내겠다고 했다던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도 한순간도 더 안 계시겠다고 하세요.”

“무엇을 믿고 그렇게 큰소리칩니까? 당신을 믿고요?”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우리는 하나예요. 함께 사는 거예요.”

소냐가 갑자기 다시 흥분해 화까지 냈다. 꼭 카나리아나 다른 작은 새가 화를 내는 것 같았다.

“그분이 어떻게 하시겠어요? 어떻게요,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열을 올리며 다급하게 물었다.

“오늘 얼마나, 얼마나 많이 우셨는데요! 정신이 혼란스러우신 걸 못 보셨어요? 혼란스러우세요. 내일은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춰져야 한다며, 음식도 다른 것도 다 있어야 한다며 어린애처럼 걱정하시다가… 손을 비틀고 피를 토하고 우세요. 그러다 갑자기 절망에 빠진 사람처럼 벽에 머리를 부딪치기 시작하세요. 그러고는 다시 마음을 놓으세요. 줄곧 당신을 믿고 계세요. 이제 당신이 도와주실 거라고 하세요. 어디선가 돈을 조금 빌려 저와 함께 고향으로 가서 귀족 아가씨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열겠다고, 저를 사감으로 두겠다고 하세요. 그러면 완전히 새롭고 아름다운 삶이 시작될 거라고, 제게 입 맞추고 저를 안아 주며 위로하세요. 얼마나 믿으시는지요! 그 상상들을 얼마나 굳게 믿으시는지요! 그런데 어떻게 아니라고 말하겠어요?

오늘도 하루 종일 직접 빨고 닦고 꿰매셨어요. 그 약한 몸으로 빨래통을 방 안까지 끌어다 놓으시고는 숨이 차서 침대에 쓰러지셨어요. 아침에는 함께 상점가에도 갔어요. 폴레치카와 레냐에게 신을 사 주려고요. 신발이 다 헤졌거든요. 그런데 값을 따져 보니 돈이 모자랐어요. 한참 모자랐어요. 그분이 아주 예쁜 구두를 골라 놓으셨는데. 정말 안목이 있으세요. 당신은 모르세요… 돈이 모자라서 그 자리에서 우셨어요. 가게에서, 장사꾼들 앞에서요… 아, 보고 있으려니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요.”

“그러니 당신이… 그렇게 사는 것도 알 만하군요.”

라스콜니코프가 쓰라린 웃음을 띠며 말했다.

“당신은 가엾지 않으세요? 가엾지 않으세요?”

소냐가 다시 발끈했다.

“저는 알아요. 당신도 아무것도 보시기 전에 마지막 남은 돈을 다 주셨잖아요. 다 보셨더라면, 아, 하느님! 그런데 저는 얼마나, 얼마나 자주 그분을 울렸는지 몰라요! 바로 지난주에도요! 아,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꼭 일주일 전이었어요. 제가 잔인하게 굴었어요! 얼마나, 얼마나 여러 번 그랬는지요. 오늘 하루 종일 그 일들을 떠올리는 게 얼마나 괴로웠는지요!”

소냐는 기억의 아픔에 말하면서 손까지 비틀었다.

“당신이 잔인했다고요?”

“네, 제가, 제가요! 그날 찾아갔더니…”

그녀가 울면서 말을 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그러셨어요. 「소냐, 좀 읽어 다오. 머리가 아프구나. 좀 읽어 다오… 여기 책이 있다.」 무슨 책을 가지고 계셨는데, 안드레이 세묘니치에게 빌리신 거였어요. 같은 집에 사는 레베자트니코프요. 아버지는 늘 그런 이상한 책들을 구해 오셨어요. 그런데 저는 「이제 가야 해요」 하고 끝내 읽어 드리지 않았어요. 읽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날은 무엇보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께 깃을 보여 드리려고 들른 거였어요. 물건을 파는 리자베타가 깃과 소맷부리를 싸게 가져다주었거든요. 예쁘고 새것이고 무늬도 있었어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걸쳐 보고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시더니 정말, 정말 좋아하셨어요. 「소냐, 이것들 내게 주겠니? 부탁이야」 하셨어요. 부탁이라고 하셨고, 그렇게 갖고 싶어 하셨어요. 그런데 그걸 어디에 하고 나가시겠어요! 그냥 옛날의 행복했던 시절을 떠올리신 거예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좋아하시는데, 그분은 옷도, 물건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으세요. 몇 년째 그래요! 누구에게 무엇 하나 달라고 하시는 분도 아니고요. 자존심이 높아서 차라리 당신의 마지막 물건을 내주실 분인데, 그때는 달라고 하셨어요. 그만큼 마음에 드셨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아까워서 못 드렸어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그런 게 어디에 필요하세요?」 했어요. 그렇게 말했어요. 「어디에 필요하세요」라고요. 그 말만은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저를 그렇게 바라보시는데, 제가 거절해서 너무나, 너무나 마음이 아프신 게 보였어요. 보고 있기가 정말 괴로웠어요… 깃 때문이 아니라 제가 거절해서 아프신 거였어요. 저는 알았어요. 아, 지금이라도 모든 것을 되돌리고, 다르게 하고 싶어요. 그때 했던 말들도 모두… 아, 제가… 하지만 무슨 소용이에요!.. 당신께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데!”

“그 물건 파는 리자베타를 알았습니까?”

“네… 당신도 아셨어요?”

소냐가 조금 놀라 되물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폐병입니다. 심해요. 곧 죽을 겁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잠시 침묵하다가,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소냐는 아니라는 말을 해 달라고 애원하듯 저도 모르게 그의 두 손을 붙잡았다.

“죽는 편이 낫겠지요.”

“아니에요, 낫지 않아요, 낫지 않아요, 절대로 낫지 않아요!”

그녀는 겁에 질려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듯 되풀이했다.

“아이들은요? 그때는 당신이 어디로 데려가겠어요? 여기 말고 갈 곳이 있나요?”

“아, 모르겠어요!”

소냐가 거의 절망에 빠져 외치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 생각은 이미 수없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쳐 갔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다만 그 생각을 다시 놀라 깨웠을 뿐이었다.

“그럼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살아 있는 지금, 당신이 병이라도 나서 병원으로 실려 가면, 그때는 어떻게 됩니까?”

그가 무자비하게 다그쳤다.

“아, 무슨 말씀을 하세요, 무슨 말씀을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요!”

소냐의 얼굴이 무서운 공포로 일그러졌다.

“왜 있을 수 없습니까?”

라스콜니코프가 매정한 웃음을 띠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라고 그런 일을 면한다는 보장이 있나요? 그때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겠어요? 온 식구가 거리로 나가겠지요. 그분은 기침을 하며 구걸하고, 오늘처럼 어디 벽에다 머리를 찧을 겁니다. 아이들은 울고… 그러다 쓰러지면 경찰서로, 병원으로 실려 가서 죽을 테고, 아이들은…”

“아, 아니에요!.. 하느님이 그런 일은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마침내 소냐의 짓눌린 가슴에서 말이 터져 나왔다. 모든 일이 그에게 달렸다는 듯, 애원하는 눈으로 바라보고 말없이 두 손을 모은 채 듣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가 일어나 방 안을 걷기 시작했다. 일 분쯤 지났다. 소냐는 팔과 머리를 늘어뜨리고 끔찍한 슬픔 속에 서 있었다.

“돈을 모을 수는 없나요? 어려울 때를 위해 조금씩 떼어 놓을 수는?”

그가 갑자기 그녀 앞에 멈춰 서며 물었다.

“없어요.”

소냐가 속삭였다.

“물론 없겠지요! 해 보기는 했습니까?”

그가 거의 비웃듯 덧붙였다.

“해 봤어요.”

“그런데 안 됐군요! 그렇겠지요, 물론! 물을 것도 없지!”

그는 다시 방 안을 걸었다. 또 일 분쯤 지났다.

“매일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니죠?”

소냐는 전보다 더 당황했고, 얼굴이 다시 붉어졌다.

“네.”

괴롭게 힘을 들여 속삭였다.

“폴레치카도 틀림없이 똑같이 되겠군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럴 수 없어요, 아니에요!”

소냐가 갑자기 칼에 찔린 사람처럼 절망적으로 크게 외쳤다.

“하느님이, 하느님이 그런 끔찍한 일은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는 허락하시잖아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그 아이는 하느님이 지켜 주실 거예요, 하느님이!..”

그녀는 정신없이 되풀이했다.

“어쩌면 하느님 같은 것은 아예 없는지도 모르지요.”

라스콜니코프는 심술궂은 기쁨마저 드러내며 대꾸하고 웃었다. 그러고는 그녀를 보았다.

소냐의 얼굴이 갑자기 무섭게 달라졌다. 얼굴에 경련이 스쳤다. 말할 수 없는 비난을 담아 그를 바라보고 무엇인가 말하려 했으나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갑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린 채 몹시, 몹시 서럽게 흐느껴 울었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정신이 혼란스럽다고 했지요. 당신도 정신이 혼란스러워요.”

그가 얼마쯤 침묵한 뒤 말했다.

오 분쯤 지났다. 그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말없이 앞뒤로 걸었다. 마침내 다가왔을 때 눈이 번뜩이고 있었다. 두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잡고 눈물 젖은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눈길은 메마르고 달아올랐으며 날카로웠고, 입술은 심하게 떨렸다… 갑자기 그는 온몸을 재빨리 숙여 바닥에 엎드린 채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소냐는 미친 사람에게서 물러나듯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실제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미친 사람 같았다.

“왜 이러세요, 무슨 일을 하시는 거예요? 저 같은 사람 앞에서!”

그녀가 창백해져 중얼거렸다. 갑자기 심장이 몹시, 몹시 아프게 조여들었다.

그는 곧바로 일어났다.

“당신에게 절한 것이 아니에요. 인간의 모든 고통 앞에 절한 겁니다.”

그가 어딘가 사나운 어조로 말하고 창가로 갔다. 잠시 뒤 돌아와 덧붙였다.

“들어요. 아까 나를 모욕한 사람에게 말했어요. 당신 새끼손가락 하나만도 못한 사람이라고… 오늘 누이를 당신 옆에 앉힘으로써 누이에게 영예를 주었다고요.”

“아,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누이분 앞에서요?”

소냐가 놀라 외쳤다.

“저와 함께 앉는 게! 영예라니요! 저는… 부끄러운 여자예요… 큰 죄를,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여자라고요! 아,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당신의 치욕과 죄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당신의 크나큰 고통 때문이에요. 당신이 큰 죄인이라는 말은 맞아요.”

그는 거의 격정에 들떠 덧붙였다.

“무엇보다 헛되이 자신을 죽이고 저버렸다는 점에서 죄인이에요. 이게 끔찍하지 않고 무엇입니까! 그토록 미워하는 더러움 속에서 살면서, 그러면서도 그렇게 해서는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누구도 아무것에서도 구해 내지 못한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어요. 눈을 뜨기만 하면 알 수 있잖아요! 이게 끔찍하지 않습니까! 제발 말해 봐요.”

그가 거의 광란에 가까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 치욕과 비천함이 그와 정반대인 다른 거룩한 감정들과 어떻게 당신 안에 함께 있을 수 있습니까? 차라리 곧장 물속에 몸을 던져 한꺼번에 끝내는 편이 천 배는 더 옳고, 천 배는 더 이치에 맞지 않겠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소냐가 괴로운 눈길로 그를 보며 힘없이 물었다. 그러나 그의 제안에 놀라는 기색은 전혀 없는 듯했다. 라스콜니코프는 묘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는 그 한 번의 눈길에서 모든 것을 읽었다. 그렇다면 실제로 그녀 자신도 이미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어쩌면 절망 속에서 단번에 끝내는 일을 여러 번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너무도 진지하게 생각한 나머지 지금 그의 제안에도 거의 놀라지 않을 만큼. 그의 말이 잔인하다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가 무엇을 나무라는지, 그녀의 치욕을 어떤 특별한 시각에서 바라보는지도 물론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에게는 그것이 보였다. 그러나 불명예스럽고 수치스러운 자기 처지를 생각하는 일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고통으로, 얼마나 오래전부터 그녀를 괴롭혀 왔는지는 온전히 이해했다. 무엇이, 대체 무엇이 지금까지 단번에 끝내려는 결심을 막아 왔을까, 그는 생각했다. 그제야 이 가난하고 어린 고아들, 폐병을 앓고 벽에 머리를 찧는 가엾고 반쯤 정신이 나간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그녀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전히 이해했다.

그러나 소냐의 성품으로 보나, 그래도 그녀가 받아 온 교육과 갖춘 생각으로 보나, 이런 상태로 머물 수는 없다는 것도 여전히 분명했다. 물에 몸을 던질 힘이 없었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토록 오랫동안 이런 처지에 있으면서 미치지 않을 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은 남았다. 물론 소냐의 처지가 사회에서 우연히 생겨난 경우라는 것은 이해했다. 불행히도 유일한 경우도, 예외적인 경우도 전혀 아니었지만. 그러나 바로 그 우연성, 얼마간의 교양, 그리고 이전의 삶 전체를 생각하면, 이 혐오스러운 길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그것들이 그녀를 곧장 죽게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무엇이 그녀를 지탱하는가? 타락은 아닐 것이다. 분명 이 치욕은 바깥에서 그녀에게 닿았을 뿐이었다. 진짜 타락은 아직 한 방울도 마음속에 스며들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눈앞에 실제로 서 있었다…

'그녀에게는 세 갈래 길이 있다.'

그가 생각했다.

'운하에 몸을 던지거나, 정신병원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마침내 정신을 마비시키고 마음을 돌처럼 굳게 하는 타락 속으로 몸을 던지는 것.'

마지막 생각이 무엇보다 역겨웠다. 그러나 그는 이미 회의에 젖어 있었고, 젊었으며, 추상적인 관념으로 생각했고, 따라서 잔인했다. 그러므로 마지막 길, 곧 타락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가 마음속으로 외쳤다.

'아직 영혼의 깨끗함을 간직한 이 사람마저 결국 알면서도 그 더럽고 악취 나는 구덩이로 끌려 들어간단 말인가? 이미 끌려 들어가기 시작한 것일까? 악덕이 더는 그토록 역겹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견딘 것일까? 아니다,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그는 아까 소냐처럼 외쳤다.

'아니야. 지금까지 운하에 뛰어들지 못하게 한 것은 죄라는 생각, 그리고 그 사람들, 그들이야… 아직 미치지 않았다면… 하지만 벌써 미치지 않았다고 누가 말했지? 제정신이란 말인가? 저런 말을 할 수 있나? 제정신으로 저렇게 생각할 수 있나? 파멸의 가장자리, 자기를 빨아들이는 악취 나는 구덩이 바로 위에 앉아서, 위험하다고 말해 주는데 손을 내젓고 귀를 막을 수 있나? 무슨 기적이라도 기다리는 건가? 틀림없이 그렇겠지. 이 모든 것이 미쳤다는 징후가 아닌가?'

그는 끈질기게 그 생각에 매달렸다. 오히려 다른 어떤 결말보다 이쪽이 마음에 들었다. 더욱 유심히 그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럼 소냐, 하느님께 기도를 많이 합니까?”

소냐는 침묵했다. 그는 곁에 서서 대답을 기다렸다.

“하느님 없이 제가 무엇이겠어요?”

그녀가 빠르고 힘차게 속삭이며 갑자기 빛나는 눈을 들어 잠깐 그를 보았다. 그리고 손으로 그의 손을 꼭 움켜쥐었다.

'역시, 그렇군!'

그가 생각했다.

“그 대가로 하느님은 당신에게 무엇을 해 줍니까?”

그가 더 캐물었다.

소냐는 대답할 수 없다는 듯 오래 침묵했다. 여린 가슴이 격한 감정에 온통 들썩였다.

“그만하세요! 묻지 마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

갑자기 그를 엄하고 성난 눈으로 바라보며 외쳤다.

'그렇군! 역시 그렇군!'

그는 고집스럽게 마음속으로 되풀이했다.

“모든 것을 해 주세요!”

그녀가 다시 눈을 내리깔고 재빨리 속삭였다.

'이것이 그 결말이군! 이러니 그렇게 된 거야!'

그는 탐욕스러운 호기심으로 그녀를 살피며 속으로 결론을 내렸다.

새롭고 묘한, 거의 병적인 감정으로 그는 그 창백하고 야위고 고르지 않게 각진 작은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그토록 뜨거운 불꽃과 엄하고 강렬한 감정으로 빛날 수 있는 온순한 푸른 눈, 아직도 분노와 울분으로 떨고 있는 작은 몸을 바라보았다. 그 모든 것이 점점 더 이상하게,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졌다.

'성스러운 바보로군! 성스러운 바보야!'

그가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서랍장 위에 책이 한 권 놓여 있었다. 오갈 때마다 눈에 띄었는데, 이번에는 집어 들고 살펴보았다. 러시아어로 번역된 신약성경이었다. 가죽으로 장정한 낡은 헌책이었다.

“이건 어디서 났어요?”

그가 방 건너편의 소냐에게 큰 소리로 물었다. 그녀는 여전히 탁자에서 세 걸음쯤 떨어진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누가 가져다주었어요.”

그녀가 그를 보지도 않고 내키지 않는 듯 대답했다.

“누가요?”

“리자베타가요. 제가 부탁했어요.”

'리자베타! 이상하군!'

그는 생각했다. 소냐에게 속한 모든 것이 순간마다 점점 더 이상하고 놀라워졌다. 책을 촛불 곁으로 가져가 넘겨 보기 시작했다.

“여기 나사로 이야기는 어디 있습니까?”

갑자기 그가 물었다.

소냐는 고집스럽게 바닥을 내려다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탁자를 조금 비껴 서 있었다.

“나사로가 되살아나는 대목이 어디예요? 찾아줘요, 소냐.”

그녀가 곁눈으로 그를 보았다.

“거기가 아니에요… 네 번째 복음서에 있어요…”

그에게 다가오지 않은 채 엄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찾아서 읽어 줘요.”

그가 말하고 자리에 앉았다. 탁자에 팔꿈치를 짚고 손으로 머리를 괴더니, 침울한 눈길을 옆으로 향한 채 들을 준비를 했다.

'삼 주쯤 뒤에는 칠 베르스타 밖으로 모시게 되겠군! 나도 거기 가 있을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나쁜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그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소냐는 라스콜니코프의 이상한 요구를 믿기 어렵다는 듯 듣고 망설이며 탁자로 다가왔다. 그래도 책을 들었다.

“읽어 보지 않으셨어요?”

탁자 건너로 눈썹 아래에서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목소리는 갈수록 엄해졌다.

“오래전에요… 공부하던 때. 읽어요!”

“교회에서도 못 들으셨어요?”

“나는… 안 다녔어요. 당신은 자주 갑니까?”

“아, 아니요.”

소냐가 속삭였다.

라스콜니코프가 희미하게 비웃었다.

“알겠어요… 그러면 내일 아버지 장례에도 안 가겠군요?”

“가요. 지난주에도 갔어요… 추도 예배를 드렸어요.”

“누구를 위해서요?”

“리자베타요. 누군가 도끼로 베어 죽였어요.”

그의 신경이 점점 더 곤두섰다.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리자베타와 친했습니까?”

“네… 공정한 사람이었어요… 찾아오곤 했어요… 자주는 아니고요… 그럴 수가 없었어요. 우리는 함께 읽고… 이야기도 했어요. 그 사람은 하느님을 뵐 거예요.”

그 책 속에서 나온 듯한 말들이 그에게는 이상하게 들렸다. 또 새로운 일이었다. 리자베타와 남모르게 만나다니. 두 사람 다 성스러운 바보였다.

'이러다 나까지 성스러운 바보가 되겠군! 옮는 모양이야!'

그가 생각했다.

“읽어요!”

갑자기 짜증스럽게 다그쳐 외쳤다.

소냐는 여전히 망설였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쩐지 그에게 읽어 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는 거의 고통스럽게 그 「불쌍한 미친 여자」를 바라보았다.

“왜 읽어 드려야 하나요? 믿지도 않으시잖아요?..”

그녀가 숨이 막히는 듯 조용히 속삭였다.

“읽어요! 내가 원하니까! 리자베타에게도 읽어 주었잖아요!”

그가 우겼다.

소냐는 책을 펼쳐 그 대목을 찾았다. 손이 떨렸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두 번이나 시작했으나 첫 음절조차 제대로 입 밖에 내지 못했다.

“베다니에 나사로라는 사람이 병들어 있었다…”

마침내 힘을 들여 읽었다. 그러나 세 번째 말에 이르자 목소리가 지나치게 팽팽해진 현처럼 울리다가 끊어졌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였다.

라스콜니코프는 소냐가 왜 읽기를 망설이는지 어느 정도 이해했다. 이해할수록 더 거칠고 짜증스럽게 읽으라고 고집하는 듯했다. 지금 그녀가 자기 안의 모든 것을 내주고 드러내는 일이 얼마나 괴로운지 너무도 잘 알았다. 그 감정들이야말로 실제로 그녀의 참된 비밀을 이루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오래전부터의 비밀이었다. 불행한 아버지와 슬픔 때문에 미친 듯이 된 계모 곁에서, 굶주린 아이들과 흉한 고함과 비난 속에서 지내던 어린 시절부터의 비밀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이제 알았다. 분명히 알았다. 그녀는 읽기 시작하며 괴로워하고 무엇인가를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그 모든 괴로움과 걱정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읽어 주고 싶어 견딜 수 없어 했다. 바로 그에게, 그가 듣도록, 반드시 지금 읽고 싶어 했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그는 그녀의 눈에서 그것을 읽었고, 격한 감동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고 이해했다… 소냐는 자신을 이겨 냈다. 구절의 첫머리에서 목소리를 끊어 버린 목의 경련을 억누르고 요한복음 제11장을 계속 읽었다. 그렇게 제19절에 이르렀다.

“많은 유대인이 마르타와 마리아에게 와서 오라비를 잃은 슬픔을 위로하였다. 마르타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맞으러 나갔으나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다. 마르타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도 저는 압니다. 주님께서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시든 하느님께서 들어주실 것입니다.”

여기서 그녀는 다시 멈추었다. 목소리가 또 떨리다가 끊어질 것임을 부끄럽게 예감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네 오라비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마르타가 그분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할 때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을 압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아날 것이며,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 그녀가 그분께 말하였다.”

소냐는 고통스럽게 숨을 돌리더니, 마치 자신이 모든 사람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듯 또렷하고 힘차게 읽었다.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믿습니다.”

잠깐 멈추고 재빨리 그를 올려다보려다가, 서둘러 마음을 다잡고 계속 읽었다. 라스콜니코프는 몸을 돌리지도 않고 탁자에 팔꿈치를 짚은 채 옆을 바라보며 꼼짝 않고 들었다. 제32절에 이르렀다.

“마리아는 예수께서 계신 곳에 와서 그분을 보고 발치에 엎드려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오라비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녀가 우는 것과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마음 깊이 슬퍼하며 괴로워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그를 어디에 두었느냐? 사람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주님, 와서 보십시오.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말하였다. 보라, 그를 얼마나 사랑하셨는가. 그러나 그들 가운데 몇몇은 말하였다.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이분이 이 사람도 죽지 않게 하실 수는 없었을까?”

라스콜니코프는 그녀에게 몸을 돌리고 동요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래, 역시 그랬다! 그녀는 이제 실제로, 정말로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온몸을 떨고 있었다. 그는 이것을 기다렸다. 그녀는 가장 위대하고 전무후무한 기적을 말하는 대목에 다가가고 있었고, 커다란 승리의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낭랑해졌다. 승리와 기쁨이 그 안에서 울리며 목소리를 힘 있게 받쳐 주었다. 눈앞이 어두워져 글줄들이 뒤섞였으나, 그녀는 읽는 내용을 외우고 있었다.

마지막 구절,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이분이…」에서는 목소리를 낮추고, 믿지 못하는 눈먼 유대인들의 의심과 비난과 모독을 뜨겁고 격렬하게 전했다. 이제 잠시 뒤면 그들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쓰러져 흐느끼고 믿게 될 것이었다…

'이분도, 이분도 눈이 멀고 믿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지금 듣게 될 거야. 이분도 믿게 될 거야. 그래, 그래! 바로 지금, 이제!'

소냐는 그렇게 꿈꾸며 기쁜 기대에 떨었다.

“예수께서는 다시 마음속으로 슬퍼하시며 무덤으로 가셨다. 그것은 동굴이었고 입구에 돌이 놓여 있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돌을 치워라. 죽은 이의 누이 마르타가 그분께 말하였다. 주님! 벌써 냄새가 납니다. 무덤에 있은 지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흘」이라는 말을 힘주어 읽었다.

“예수께서 그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믿으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내가 말하지 않았느냐? 그러자 사람들이 죽은 이가 누워 있는 동굴에서 돌을 치웠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눈을 들어 말씀하셨다. 아버지, 제 말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언제나 제 말을 들어주심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여기 서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이 말씀을 드립니다.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음을 그들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사로야! 나오너라. 그러자 죽었던 사람이 나왔다.”

소냐는 마치 눈앞에서 직접 보는 듯, 몸을 떨고 차가워지면서도 크고 황홀한 목소리로 읽었다.

“손과 발은 장례용 천으로 감겨 있었고 얼굴도 수건으로 싸여 있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풀어 주어라. 걸어가게 하여라.

마리아에게 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유대인들 가운데 많은 이가 그분을 믿게 되었다.”

그녀는 더 읽지 않았다. 더 읽을 수도 없었다. 책을 덮고 의자에서 재빨리 일어났다.

“나사로가 되살아나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예요.”

짧고 엄한 목소리로 속삭인 뒤 옆으로 몸을 돌리고 꼼짝 않고 섰다. 감히 눈을 들어 그를 보지 못했고, 부끄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열병 같은 떨림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휘어진 촛대 안의 짧아진 초는 오래전부터 꺼져 가고 있었다. 이 가난한 방에서, 영원한 책을 읽으며 기묘하게 마주한 살인자와 창녀를 희미하게 비추었다. 오 분, 아니 그보다 더 지났다.

“할 이야기가 있어서 온 겁니다.”

갑자기 라스콜니코프가 미간을 좁히며 큰 소리로 말했다. 일어나 소냐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말없이 눈을 들었다. 그의 눈길은 유난히 엄했고, 어딘가 사나운 결심이 드러나 있었다.

“오늘 가족을 버리고 왔어요.”

그가 말했다.

“어머니와 누이를요. 이제 그들에게 가지 않을 겁니다. 거기와는 모두 끊었어요.”

“왜요?”

소냐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아까 그의 어머니와 누이를 만난 일은 자신도 뚜렷이 설명하지 못할 만큼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가족과 갈라섰다는 말을 거의 공포에 질려 들었다.

“이제 내게는 당신 하나뿐이에요.”

그가 덧붙였다.

“같이 갑시다… 당신에게 왔어요. 우리는 함께 저주받았으니 함께 가는 겁니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아!'

이번에는 소냐가 생각했다.

“어디로 가나요?”

그녀가 두려워하며 묻고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다만 같은 길이라는 것은 알아요. 그것만은 분명히 압니다. 그뿐이에요. 목적은 하나예요!”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무섭도록, 끝없이 불행하다는 것만 이해했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말해 봐야 아무도 알아듣지 못해요.”

그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해했어요. 내게는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왔습니다.”

“모르겠어요…”

소냐가 속삭였다.

“나중에는 알게 될 거예요. 당신도 같은 일을 하지 않았습니까? 당신도 넘어섰어요… 넘어설 수 있었어요. 자신에게 손을 댔고, 한 생명을 망쳤어요… 자기 생명을요.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영혼과 이성으로 살아갈 수도 있었지만, 결국 센나야에서 끝나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견디지 못해요. 혼자 남으면 나처럼 미칠 겁니다. 지금도 벌써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아요. 그러니 우리는 함께, 같은 길로 가야 해요! 갑시다!”

“왜요?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소냐는 그의 말에 묘한 동요와 반발을 느끼며 말했다.

“왜냐고요? 이대로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게 이유예요! 이제는 어린애처럼 울고 하느님이 허락하지 않으실 거라고 소리칠 것이 아니라, 진지하고 똑바로 생각해야 해요! 정말 내일 당신이 병원에 실려 가면 어떻게 됩니까? 그분은 정신이 온전하지도 않고 폐병까지 앓아 곧 죽을 테고, 아이들은요? 폴레치카가 파멸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길모퉁이마다 어머니가 구걸하라고 내보낸 아이들을 못 보았어요? 나는 그 어머니들이 어디에서 어떤 형편으로 사는지 알아보았어요. 그런 곳에서 아이들은 아이로 남을 수가 없어요. 일곱 살짜리가 타락하고 도둑이 됩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이잖아요. 「하느님의 나라는 이런 이들의 것이다.」 그분은 아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라고 하셨어요. 그들이 미래의 인류입니다…”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소냐가 손을 비틀며 발작적으로 울면서 되풀이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요? 부숴야 할 것을 단번에 부수는 겁니다. 그뿐이에요. 그리고 고통을 스스로 짊어지는 거예요! 왜요?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알게 될 겁니다… 자유와 권력, 무엇보다 권력을! 떨고 있는 모든 피조물 위에, 그 개미집 전체 위에!.. 그것이 목적이에요! 기억해 둬요! 당신이 갈 길에 주는 내 말입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과 마지막으로 말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내일 내가 오지 않으면 모든 일을 직접 듣게 될 테니, 그때 지금 이 말들을 떠올려요. 그리고 언젠가, 뒤에, 여러 해를 살아가다 보면 그 말의 뜻을 이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내일 온다면 리자베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 줄게요. 안녕!”

소냐가 겁에 질려 온몸을 떨었다.

“누가 죽였는지 아세요?”

공포로 몸이 얼어붙은 채 그를 사납게 응시하며 물었다.

“알고 있고, 말해 줄 겁니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에게만! 나는 당신을 골랐어요. 용서를 구하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말할 겁니다. 이 말을 할 사람으로 오래전에 당신을 골랐어요. 그때 아버지가 당신 이야기를 했을 때, 리자베타가 아직 살아 있을 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안녕. 손은 내밀지 말아요. 내일!”

그가 나갔다. 소냐는 그를 미친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 자신도 미친 것 같았고, 그것을 느끼고 있었다. 머리가 빙빙 돌았다.

'하느님! 리자베타를 누가 죽였는지 어떻게 알지? 그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 무서워!'

그런데도 그 생각만은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결코! 결코!..

'아, 얼마나 끔찍하게 불행한 사람일까!.. 어머니와 누이를 버리고 왔어. 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무엇을 하려는 걸까? 내게 무슨 말을 한 거지? 내 발에 입을 맞추고 말했어… 말했어. 그래, 분명히 말했어. 이제 나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아, 하느님!'

소냐는 열에 들뜨고 헛소리를 하며 밤을 지새웠다. 이따금 벌떡 일어나 울고 손을 비틀다가, 다시 열에 시달리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꿈에는 폴레치카, 카테리나 이바노브나, 리자베타, 복음서를 읽던 일,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그 창백한 얼굴, 타오르는 눈을 한 그가… 그녀의 발에 입을 맞추고 울었다… 아, 하느님!

오른쪽 문, 소냐의 집과 게르트루다 카를로브나 레슬리흐의 집을 가르는 바로 그 문 너머에는 오래 비어 있던 중간 방이 있었다. 레슬리흐 부인의 집에 딸린 셋방으로, 대문에도 알림판이 붙어 있었고 운하로 난 창문 유리에도 세놓는다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소냐는 오래전부터 그 방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나 그동안 내내 그 빈방 문 곁에는 스비드리가일로프 씨가 서서 숨죽이고 엿듣고 있었다. 라스콜니코프가 나가자 그는 잠시 서서 생각하더니, 빈방에 붙어 있는 자기 방으로 발끝을 세워 걸어갔다. 의자 하나를 가져다가 소냐의 방으로 통하는 문 바로 앞에 소리 없이 놓았다. 그 대화가 흥미롭고 의미심장하게 느껴졌고, 아주, 아주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다음번에, 이를테면 당장 내일이라도 또 한 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하는 불편을 겪지 않으려고 의자까지 가져다 놓았을까. 좀 더 편안하게 자리를 잡고, 어느 모로 보나 온전한 즐거움을 누리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