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에필로그 / 제11장
《전쟁과 평화》 · 제2에필로그

제11장

《전쟁과 평화》 제2에필로그 11장 삽화

역사는 인간 자유의지의 발현을 외부 세계와의 연관 속에서, 시간 속에서, 원인에 의존하는 것으로 살펴본다. 곧 이성의 법칙으로 이 자유를 규정한다. 따라서 자유의지가 그 법칙들로 규정되는 만큼만 역사는 학문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 곧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은 역사에서 천체를 움직이는 자유로운 힘을 인정하는 것이 천문학에서와 같다.

그 가정은 법칙이 존재할 가능성, 곧 어떤 학문이든 존재할 가능성을 파괴할 것이다. 자유롭게 움직이는 물체가 단 하나라도 있다면 케플러와 뉴턴의 법칙은 부정되고 천체의 운동에 관한 어떤 개념도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하나의 행동이라도 자유의지로 일어난다면 역사 법칙은 하나도 존재할 수 없고 역사적 사건에 관한 어떤 개념도 존재할 수 없다.

역사에는 인간 의지들이 움직이는 선들이 존재한다. 그 한쪽 끝은 미지 속에 감추어져 있지만, 다른 쪽 끝에서는 현재 인간의 의지에 대한 의식이 공간과 시간 속에서 원인에 의존하여 움직인다.

이 운동의 영역이 우리 눈앞에 더 넓게 펼쳐질수록 그 운동의 법칙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 법칙들을 발견하고 규정하는 것이 역사의 과제다.

역사학이 현재 그 대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지금 따라가는 길, 곧 사건의 원인을 인간 자유의지에서 찾는 길에서는 그 법칙들을 학문적으로 진술할 수 없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아무리 제한하더라도 그것을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힘으로 인정하는 순간 법칙의 존재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자유의지라는 이 요소를 무한소로 줄이고, 곧 무한히 작은 양으로 간주해야만 원인에 절대적으로 접근할 수 없음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면 역사는 원인을 찾는 대신 법칙의 발견을 과제로 삼을 것이다.

이 법칙들을 찾는 일은 오래전에 시작되었고, 역사가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사고 방법은 낡은 역사 방법이 현상의 원인들을 끊임없이 해부하고 또 해부하며 나아가는 자기 파괴와 동시에 형성되고 있다.

모든 인간 학문은 이 길을 따라왔다. 가장 정확한 학문인 수학은 무한소에 이르면 분석의 과정을 버리고 알려지지 않은 무한소량을 적분하는 새로운 과정으로 들어간다. 수학은 원인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법칙, 곧 알려지지 않은 모든 무한소 요소에 공통된 성질을 찾는다.

형태는 달라도 다른 학문들도 같은 사유의 길을 따라 나아갔다. 뉴턴은 중력 법칙을 진술할 때 태양이나 지구에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가장 큰 물체에서 가장 작은 물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성질이 있다고 말했다. 곧 물체 운동의 원인에 관한 문제는 제쳐 두고 무한히 큰 것에서 무한히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에 공통된 성질을 표현했다. 자연과학도 똑같이 한다. 원인에 관한 문제는 제쳐 두고 법칙을 찾는다. 역사도 같은 길 위에 서 있다. 역사의 대상이 개인들의 삶에서 일어난 일화를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민족들과 인류의 운동을 연구하는 것이라면, 역사 역시 원인이라는 개념을 제쳐 두고 서로 떼어 놓을 수 없이 연결된 자유의지의 모든 무한소 요소에 공통된 법칙을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