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 제2에필로그 / 제10장
《전쟁과 평화》 · 제2에필로그

제10장

《전쟁과 평화》 제2에필로그 10장 삽화

이처럼 인간의 삶을 바라볼 때 외부 세계와의 연관이 크거나 작고, 시간적으로 더 멀거나 가깝고, 원인에 대한 의존성이 크거나 작음에 따라 자유의지와 필연성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점차 줄거나 늘어난다.

따라서 외부 세계와의 연관이 잘 알려져 있고, 행동과 그 행동을 살펴보는 때 사이의 시간이 길며, 행동의 원인에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의 사례를 살펴보면 최대의 필연성과 최소의 자유의지라는 개념을 얻는다. 외부 조건에 거의 좌우되지 않고, 아주 최근에 행동했으며, 그 행동의 원인을 우리가 알 수 없는 사람을 살펴보면 최소의 필연성과 최대의 자유라는 개념을 얻는다.

어느 경우에도 관점을 아무리 바꾸고, 인간과 외부 세계의 연관을 아무리 분명히 하거나 알 수 없게 하고, 시간의 간격을 아무리 길거나 짧게 하고, 행동의 원인을 아무리 이해할 수 있거나 이해할 수 없게 하더라도 완전한 자유나 완전한 필연성을 결코 생각할 수 없다.

첫째, 인간이 외부 세계의 영향에서 아무리 많이 벗어났다고 상상해도 공간 속의 자유라는 개념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모든 인간 행동은 주위의 것들과 자기 몸의 조건에 필연적으로 좌우된다. 나는 팔을 들어 올렸다가 내린다. 내 행동은 자유로운 듯 보인다. 그러나 모든 방향으로 팔을 들어 올릴 수 있었는지 자문하면, 주위 사물이나 내 몸의 구조에서 그 행동을 가로막는 것이 가장 적은 방향으로 팔을 들어 올렸음을 알게 된다. 가능한 모든 방향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 것은 그 방향에 장애물이 가장 적었기 때문이다. 내 행동이 자유로우려면 어떤 장애물도 만나지 않아야 했다. 인간을 자유로운 존재로 생각하려면 공간 밖에 있다고 상상해야 하는데, 이는 명백히 불가능하다.

둘째, 판단하는 때를 행동한 때에 아무리 가깝게 가져가도 시간 속의 자유라는 개념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일 초 전에 한 행동을 살펴보더라도 그것은 이미 이루어진 순간과 돌이킬 수 없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유롭지 않다고 인정해야 한다. 나는 팔을 들어 올릴 수 있는가? 들어 올린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그 순간에 팔을 들어 올리지 않을 수도 있었는지 자문한다. 이를 확신하려고 다음 순간에는 팔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팔을 들지 않는 것은 처음 질문했던 순간에 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붙잡아 둘 수 없는 시간이 흘렀고, 그때 들어 올린 팔은 지금 들지 않고 있는 팔과 더는 같지 않으며, 그때 팔을 들어 올린 공기도 지금 나를 둘러싼 공기와 같지 않다. 첫 운동이 일어난 순간은 돌이킬 수 없고, 그 순간에는 오직 하나의 운동만 할 수 있었으며, 어떤 운동을 했든 그것만이 유일한 운동이었을 것이다. 한순간 뒤 팔을 들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때 들지 않을 수도 있었음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 한순간에는 오직 하나의 운동만 할 수 있었으므로 다른 운동일 수 없었다. 그것을 자유로운 것으로 상상하려면 과거와 미래의 경계인 현재, 곧 시간 밖에 있다고 상상해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하다.

셋째, 원인을 이해하는 어려움이 아무리 커져도 완전한 자유, 곧 원인이 없는 상태라는 개념에는 결코 도달하지 못한다. 자신이나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에서 의지 표현의 원인을 아무리 알기 어렵더라도, 이성이 가장 먼저 요구하는 것은 원인의 존재를 가정하고 찾는 일이다. 원인이 없으면 어떤 현상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원인에도 좌우되지 않고 행동하려고 팔을 들어 올린다. 하지만 원인 없이 행동하려는 나의 소망이 내 행동의 원인이다.

그러나 모든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난 인간을 상상하고, 어떤 원인에서도 생겨나지 않은 현재의 순간적인 행동만 살펴보면서, 무한히 작은 필연성의 잔여가 영과 같다고 인정하더라도 인간의 완전한 자유라는 개념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외부 세계의 영향을 받지 않고 시간 밖에 서 있으며 원인에 의존하지 않는 존재는 더는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유가 완전히 없고 필연성의 법칙에 전적으로 종속된 인간의 행동도 결코 상상할 수 없다.

첫째, 인간이 놓인 공간의 조건들에 대한 지식을 아무리 늘려도 그 지식은 결코 완전할 수 없다. 공간이 무한한 것처럼 그 조건의 수도 무한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에게 영향을 주는 모든 조건이 규정되지 않는 한 완전한 필연성은 없고 일정한 정도의 자유가 남는다.

둘째, 살펴보는 행동과 그 행동에 대한 판단 사이의 기간을 아무리 늘려도 그 기간은 유한하고 시간은 무한하다. 따라서 이 점에서도 절대적인 필연성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셋째, 어떤 행동의 인과 사슬에 아무리 쉽게 접근할 수 있어도 그 사슬은 끝이 없으므로 전체를 결코 알 수 없고, 따라서 여기에서도 절대적인 필연성에 도달하지 못한다.

그뿐 아니라 남은 최소한의 자유가 영과 같다고 인정하고, 죽어 가는 사람이나 태어나지 않은 아기나 지적 능력이 없는 사람 같은 특정 사례에서 자유가 전혀 없다고 가정하더라도, 그렇게 하는 순간 살펴보는 사례에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파괴한다. 자유가 없어지는 즉시 인간도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유의 요소 없이 오직 필연성의 법칙에만 종속된 인간 행동이라는 개념은 인간의 완전히 자유로운 행동이라는 개념만큼이나 불가능하다.

따라서 자유 없이 필연성의 법칙에 완전히 종속된 인간 행동을 상상하려면 무한한 수의 공간적 관계, 무한히 긴 시간, 무한한 원인 계열을 안다고 가정해야 한다.

완전히 자유롭고 필연성의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인간을 상상하려면 완전히 홀로 공간과 시간 밖에 있고 원인에 대한 의존에서도 벗어나 있다고 상상해야 한다.

첫 번째 경우 자유 없는 필연성이 가능하다면 필연성 자체의 법칙으로 필연성을 정의한 셈이 되며, 곧 내용 없는 형식에 도달했을 것이다.

두 번째 경우 필연성 없는 자유가 가능하다면 공간·시간·원인 밖에 있는 무조건적인 자유에 도달했을 것이다. 무조건적이고 무제한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것은 무, 곧 형식 없는 내용일 것이다.

실제로는 인간의 우주관 전체를 이루는 두 가지 근본, 곧 이해할 수 없는 삶의 본질과 그 본질을 규정하는 법칙들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성은 말한다. 첫째, 공간은 그것을 보이게 하는 모든 물질 형태와 함께 무한하며 달리 생각할 수 없다. 둘째, 시간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는 무한한 운동이며 달리 생각할 수 없다. 셋째, 원인과 결과의 연관에는 시작이 없고 끝도 있을 수 없다.

의식은 말한다. 첫째, 오직 나만 존재하며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나일 뿐이다. 따라서 나는 공간을 포함한다. 둘째, 나는 흐르는 시간을 오직 그 안에서만 살아 있는 자신을 의식하는 현재의 고정된 순간으로 잰다. 따라서 나는 시간 밖에 있다. 셋째, 나는 내 삶의 모든 발현이 일어나는 원인이 바로 나라고 느끼므로 원인을 초월한다.

이성은 필연성의 법칙을 표현한다. 의식은 자유의 본질을 표현한다.

어떤 것에도 제한되지 않는 자유는 인간의 의식에서 삶의 본질이다. 내용을 잃은 필연성은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인간의 이성이다.

자유는 탐구되는 대상이고, 필연성은 탐구하는 형식이다. 자유는 내용이다. 필연성은 형식이다.

형식과 내용의 관계에 있는 두 인식의 원천을 분리할 때만 서로 배척하고 각각 이해할 수 없는 자유와 필연성의 개념을 얻게 된다.

둘을 결합할 때만 인간의 삶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게 된다.

형식과 내용으로서 결합하여 서로를 규정하는 이 두 개념을 벗어나면 삶에 대한 어떤 개념도 가능하지 않다.

인간의 삶에 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자유의지와 필연성, 곧 의식과 이성의 법칙 사이의 일정한 관계일 뿐이다.

자연이라는 외부 세계에 관해 우리가 아는 모든 것은 자연의 힘과 필연성, 곧 삶의 본질과 이성의 법칙 사이의 일정한 관계일 뿐이다.

자연의 거대한 힘들은 우리 밖에 있고 우리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우리는 그 힘들을 중력·관성·전기·동물적 힘 등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인간 안에 있는 생명의 힘은 의식하며 그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느끼는 중력은 그것이 종속된 필연성의 법칙을 아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모든 물체에 무게가 있다는 최초의 인식에서 뉴턴의 법칙에 이르기까지 그렇다.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지만 모든 사람이 의식하는 자유의지의 힘도 그것이 종속된 필연성의 법칙을 아는 만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모든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에서 가장 복잡한 경제적·역사적 법칙을 아는 데 이르기까지 그렇다.

모든 지식은 삶의 이 본질을 이성의 법칙 아래에 두는 일일 뿐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인간이 그것을 직접 의식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힘과 다르지만, 이성의 눈에는 다른 어떤 힘과도 전혀 다르지 않다. 중력·전기·화학적 친화력은 이성이 서로 다르게 규정하기 때문에만 서로 구별된다. 똑같이 인간 자유의지의 힘도 이성이 내리는 규정에 의해서만 다른 자연력과 구별된다. 필연성, 곧 자유를 규정하는 이성의 법칙을 벗어난 자유는 중력이나 열, 사물을 자라게 하는 힘과 전혀 다르지 않다. 이성에게 자유는 순간적이고 규정할 수 없는 생명의 감각일 뿐이다.

천체를 움직이는 힘의 규정할 수 없는 본질, 열과 전기 또는 화학적 친화력이나 생명력의 규정할 수 없는 본질이 천문학·물리학·화학·식물학·동물학 등의 내용을 이루듯, 자유의지의 힘은 역사의 내용을 이룬다. 그러나 모든 학문의 대상은 알려지지 않은 이 삶의 본질 자체가 아니라 그 본질의 발현이고, 그 본질 자체는 오직 형이상학의 대상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원인에 의존하여 인간에게 나타나는 자유의지의 힘까지는 역사의 대상이지만, 자유의지 자체는 형이상학의 대상이다.

경험과학에서는 우리가 아는 것을 필연성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알지 못하는 것을 생명력이라고 부른다. 생명력은 삶의 본질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 외에 남아 있는 미지의 나머지를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

역사에서도 우리가 아는 것을 필연성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알지 못하는 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른다. 역사에서 자유의지는 인간 삶의 법칙에 관해 우리가 아는 것 외에 남아 있는 미지의 나머지를 표현하는 말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