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작품의 비교
《전쟁과 평화》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이라는 거대한 역사와 로스토프·볼콘스키·베주호프 가문의 일상을 한 작품 안에 결합한다. 작품은 역사소설이면서 가족소설이고, 전쟁 서사이면서 성장소설이며, 소설 중간과 끝에서 역사철학을 직접 논하는 논고이기도 하다. 최근 연구는 이 작품이 1812년 전쟁에 대한 러시아인의 집단기억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면서도, 역사적 사실을 중립적으로 재현한 기록이 아니라 톨스토이의 주관적이고 논쟁적인 역사 해석을 담은 작품임을 강조한다.
이 작품에서 역사의 중심은 나폴레옹이나 알렉산드르 황제가 아니다. 전쟁터에서 명령을 잘못 듣는 병사, 피란길에 수레를 내주는 가족, 부상자를 간호하는 여성,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 걸어가는 포로가 역사를 만든다. 전쟁이 ‘역사’의 영역이라면 평화는 사소한 일상이 지속되는 영역이지만, 톨스토이에게 진정한 삶은 오히려 식사와 춤, 사랑과 출산, 농사와 가족의 기억 속에 있다. 귀족 주인공들조차 거대한 역사 앞에서는 이름 없는 민중과 다르지 않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규모 면에서 더 좁다. 지방 도시의 한 집안, 방탕한 아버지와 서로 다른 세 아들, 사생아 하인, 한 건의 살인과 재판이 중심을 이룬다. 그러나 이 좁은 공간 안에는 신의 존재, 악의 문제, 인간의 자유, 혁명과 신앙, 부자 관계와 러시아의 미래가 들어 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1878년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1879년부터 1880년까지 잡지에 연재했다. 집필 무렵 어린 아들 알료샤를 잃은 개인적 슬픔과 끊임없는 마감 압박도 작품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았다. 마지막 거처였던 쿠즈네치니 골목의 아파트에서 이 작품은 완성되었다.
두 작품의 가장 큰 차이는 사건을 바라보는 방향에 있다. 《전쟁과 평화》는 한 인간의 운명을 세계 전체의 운동 속에 놓는다. 안드레이와 피에르, 나타샤와 니콜라이는 역사를 움직인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자신보다 훨씬 큰 흐름 속에서 실패하고 배우며 살아남는다. 반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한 가족의 범죄 속에서 세계 전체의 문제를 끌어낸다. 표도르 카라마조프의 죽음은 단지 사적인 살인이 아니다. 아버지를 미워한 모든 아들이 어디까지 그 죽음에 책임이 있는지, 생각과 욕망도 행위의 죄가 될 수 있는지를 묻는 철학적 사건이다.
《전쟁과 평화》의 인물들은 역사와 일상 사이를 이동한다. 피에르는 프리메이슨과 전쟁, 포로 생활을 거쳐 가족의 행복으로 돌아오고, 나타샤는 무도회와 연애의 열광을 지나 간호와 모성의 삶에 이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인물들은 하나의 관념을 몸으로 살아 낸다. 드미트리는 욕망과 명예, 이반은 이성과 반역, 알료샤는 신앙과 사랑, 스메르자코프는 굴욕과 허무를 드러낸다. 그러나 이들은 단순한 알레고리가 아니다. 드미트리에게도 신앙이 있고, 이반에게도 사랑이 있으며, 알료샤에게도 의심과 욕망이 있다. 인물들은 서로의 내부에 침투해 있다.
두 작품은 가족을 국가와 인류의 축소판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만난다. 로스토프가와 볼콘스키가의 결혼과 계승은 전쟁 뒤 러시아가 다시 삶을 이어 가는 방식을 보여 준다. 카라마조프가는 아버지의 권위가 무너진 시대에 자식들이 무엇을 믿고 책임져야 하는지를 묻는다. 한 작품의 중심에는 ‘역사를 누가 움직이는가’라는 질문이 있고, 다른 작품의 중심에는 ‘죄는 누구의 것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그러나 두 질문은 결국 하나로 합쳐진다. 인간은 자유로운가, 아니면 자신이 알지 못하는 힘과 관계에 의해 움직이는가.
《전쟁과 평화》는 역사의 인과관계를 해체한 뒤 무수한 인간 행위의 연결과 필연성을 말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인간에게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에 악과 책임이 생긴다고 말한다. 전자는 절대적인 개인 의지를 의심하고, 후자는 자유를 포기함으로써 얻는 행복을 의심한다. 톨스토이의 소설이 세계가 개인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 준다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은 개인의 선택이 세계 전체를 심판하는 순간을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