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 죄와 벌 · 1866

에필로그 제2장

소냐의 사랑 앞에서 라스콜니코프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 열린다.
소냐의 사랑 앞에서 라스콜니코프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 열린다.

그는 오래전부터 병들어 있었다. 그러나 그를 꺾은 것은 유형 생활의 참혹함도, 노동도, 음식도, 깎인 머리도, 조각 천을 댄 옷도 아니었다. 아, 그 모든 고통과 시달림이 그에게 무슨 상관이 있었겠는가! 오히려 노동이 반갑기까지 했다. 일하다 몸이 지치면 적어도 몇 시간은 편히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음식이란, 바퀴벌레가 든 그 멀건 양배춧국이란 그에게 무엇이었는가? 예전 학생 시절에는 그것조차 없을 때가 많았다. 옷은 따뜻했고 생활 방식에 맞았다. 족쇄는 찬 느낌조차 없었다. 깎인 머리와 반쪽씩 다른 천을 댄 죄수복을 부끄러워해야 했을까? 누구 앞에서? 소냐 앞에서? 소냐는 그를 두려워했는데, 소냐 앞에서 부끄러워할 일이 있었겠는가?

그런데 어땠는가? 그는 소냐 앞에서조차 부끄러웠고, 그 때문에 소냐를 경멸하고 거칠게 대하며 괴롭혔다. 그러나 깎인 머리나 족쇄가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다. 자존심이 깊이 상해 있었다. 상한 자존심 때문에 병이 난 것이었다. 아, 자신을 스스로 비난할 수만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모든 것을, 수치와 불명예까지도 견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엄격하게 자신을 심판했고, 완고해진 양심은 과거에서 특별히 끔찍한 죄를 찾지 못했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단순한 실수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가 부끄러워한 것은 바로 자신, 라스콜니코프가 눈먼 운명의 어떤 판결에 따라 그토록 맹목적으로, 희망 없이, 아무 소리도 못 내고 어리석게 파멸했다는 사실이었다. 조금이라도 마음을 가라앉히려면 어떤 판결의 '무의미함' 앞에 몸을 낮추고 복종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에는 대상도 목적도 없는 불안, 미래에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끊임없는 희생뿐. 세상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그것이었다. 팔 년 뒤에도 겨우 서른두 살이라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가? 존재하기 위해 사는가? 그러나 그는 이전에도 수천 번, 사상 하나를 위해, 희망 하나를 위해, 심지어 공상 하나를 위해서라도 자기 존재를 내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존재만으로는 언제나 부족했다. 늘 더 많은 것을 원했다. 어쩌면 그때 자신을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이 허용되는 사람이라고 여긴 것은, 오직 자기 욕망의 강도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차라리 운명이 뉘우침을 보내 주었더라면! 마음을 부수고 잠을 쫓아내는 불타는 뉘우침, 그 끔찍한 고통 때문에 올가미와 깊은 물이 어른거리는 그런 뉘우침을! 아, 그는 기뻐했을 것이다! 고통과 눈물도 삶이니까. 그러나 그는 자기 범죄를 뉘우치지 않았다.

적어도 자기 어리석음에 화를 낼 수는 있었을 것이다. 예전에도 자기를 감옥까지 이끈 추하고 더없이 어리석은 행동들에 화를 냈듯이. 하지만 이제 감옥에서, 자유롭게, 지난 행동을 모두 다시 살피고 생각해 보자, 그 운명의 시절에 보였던 것처럼 그렇게 어리석고 추하다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엇이, 무엇이,' 그는 생각했다. '세상이 생긴 이래 세상에서 우글거리며 서로 부딪쳐 온 다른 사상과 이론들보다 내 생각을 더 어리석게 만드는가? 완전히 독립적이고 폭넓고 일상적인 영향에서 벗어난 눈으로 보기만 하면, 내 생각은 결코 그렇게……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아, 부정하는 자들, 은화 오 코페이카짜리 현자들아, 왜 중간에서 멈추는가!

내 행동의 무엇이 그들에게 그렇게 추하게 보이는가?'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악행이기 때문에? 악행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내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법상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법조문을 어기고 피를 흘렸다. 그러니 법조문에 따라 내 머리를 가져가라……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그렇다면 권력을 물려받지 않고 스스로 빼앗은 인류의 은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도 첫걸음을 내디딜 때 처형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자기 걸음을 견뎠으므로 옳고, 나는 견디지 못했으므로 그 걸음을 허락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가 자기 죄로 인정한 것은 오직 이것 하나였다. 견디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것뿐이었다.

그때 왜 자신을 죽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그를 괴롭혔다. 왜 강 위에 서서 자수를 택했는가? 살고 싶다는 욕망은 그렇게 강하고, 이겨 내기는 그렇게 어려운가? 죽음을 두려워하던 스비드리가일로프는 이겨 내지 않았는가?

그는 괴롭게 이 질문을 자신에게 던졌다. 강 위에 서 있던 그때에도 어쩌면 자신과 자기 신념 속의 깊은 거짓을 예감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 예감이 앞으로 삶에 닥칠 전환, 앞으로의 부활,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눈의 전조였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보다는 둔중한 본능의 무게만을 인정하려 했다. 자신이 끊을 수 없고, 나약하고 보잘것없어서 또다시 넘어설 수 없었던 무게라고 여겼다. 그는 동료 유형수들을 바라보며 놀랐다. 모두 얼마나 삶을 사랑하고 아끼는가! 감옥에서는 자유로울 때보다 삶을 더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더 아끼는 것 같았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 가령 부랑자들이 겪은 무서운 고통과 시련은 얼마나 많았는가! 그런데도 햇빛 한 줄기, 울창한 숲, 이름 모를 외딴곳의 차가운 샘 하나가 그들에게 그토록 큰 의미일 수 있단 말인가? 삼 년 전부터 기억해 둔 그 샘을, 부랑자는 연인을 만나듯 다시 만나기를 꿈꾸고, 샘 둘레의 푸른 풀과 덤불 속에서 노래하는 새를 꿈에서 보는 것이었다. 더 자세히 들여다볼수록 훨씬 더 설명하기 어려운 사례들이 보였다.

감옥에서 그는 물론 주위의 많은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전혀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어딘지 눈을 내리깔고 살았다. 바라보는 것이 역겹고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여러 가지가 그를 놀라게 했고, 전에 짐작도 못 했던 것들을 마지못해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놀라웠던 것은 자신과 이 모든 사람들 사이에 놓인 무섭고 건널 수 없는 심연이었다. 자신과 그들은 서로 다른 민족인 듯했다. 서로를 의심과 적의로 바라보았다. 그런 단절의 일반적인 원인들은 알고 이해했지만, 그 원인이 실제로 그토록 깊고 강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감옥에는 정치범인 폴란드 유형수들도 있었다. 그들은 이 사람들을 그저 무식한 농노로 여기고 위에서 내려다보며 경멸했다. 하지만 라스콜니코프는 그렇게 볼 수 없었다. 이 무식한 사람들이 여러 면에서 바로 그 폴란드인들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이들을 지나치게 경멸하는 러시아인들도 있었다. 전직 장교 하나와 신학생 둘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들의 잘못도 똑똑히 알아차렸다.

정작 그 자신은 모두에게 미움을 받고 배척당했다. 나중에는 증오받기까지 했다. 왜였을까? 알 수 없었다. 자신보다 훨씬 큰 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그를 경멸하고 비웃었으며, 그의 범죄를 비웃었다.

“너는 나리잖아!” 그들이 말했다. “네가 도끼를 들고 다닐 처지냐? 나리들이 할 일이 아니지.”

사순절 둘째 주, 그가 속한 막사 차례가 되어 성찬을 준비하는 금식과 기도를 하게 되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교회에 기도하러 갔다. 어느 날 말다툼이 벌어졌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자신도 몰랐다. 모두가 한꺼번에 사납게 달려들었다.

“너는 무신론자야! 하느님을 믿지 않아!” 그들이 소리쳤다. “죽여야 해.”

그는 그들과 하느님이나 신앙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무신론자라고 죽이려 했다. 그는 잠자코 반박하지 않았다. 유형수 하나가 완전히 이성을 잃고 덤벼들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조용하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눈썹 하나,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호송병이 때맞추어 그와 살인하려는 자 사이에 들어섰다. 그러지 않았다면 피가 흘렀을 것이다.

또 하나 풀 수 없는 질문이 있었다. 왜 그들은 모두 소냐를 그렇게 좋아하게 되었는가? 소냐는 환심을 사려 하지 않았다. 만나는 일도 드물었다. 그를 잠깐 보러 작업장에 올 때 가끔 마주쳤을 뿐이었다. 그런데도 모두 소냐를 알고 있었다. 그를 따라왔다는 것도, 어떻게 어디서 사는지도 알았다. 돈을 주지도 않았고 특별히 도와준 일도 없었다. 다만 성탄절에 한 번, 감옥 전체를 위해 파이와 고리 모양 빵을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러나 차츰 그들과 소냐 사이에 좀 더 가까운 관계가 생겼다. 소냐는 그들을 대신해 가족에게 편지를 써 주고 우편으로 보냈다. 도시에 온 친척들은 그들의 부탁에 따라 소냐에게 물건과 돈까지 맡겼다. 아내들과 애인들도 소냐를 알고 찾아왔다. 소냐가 라스콜니코프를 보러 작업장에 나타나거나 일하러 가는 죄수 무리를 만나면, 모두 모자를 벗고 인사했다. “어머니, 소피야 세묘노브나, 다정하고 가여운 우리 어머니!” 낙인이 찍힌 거친 유형수들이 그 작고 여윈 사람에게 이렇게 말했다. 소냐는 웃으며 답례했고, 모두 그 미소를 좋아했다. 걸음걸이까지 좋아해서, 걸어가는 뒷모습을 돌아보며 칭찬했다. 그렇게 몸집이 작다는 것까지 칭찬했다. 무엇을 더 칭찬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아픈 것을 돌봐 달라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사순절 끝 무렵과 부활절 주간 내내 병원에 누워 있었다. 회복기에 접어들어, 열에 들떠 헛소리하던 때의 꿈들이 생각났다. 병중의 꿈에서 온 세상은 아시아 깊은 곳에서 유럽으로 밀려오는, 듣도 보도 못한 무서운 역병의 희생물로 정해져 있었다. 극히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 말고는 모두 죽어야 했다. 새로운 선모충 같은 미세한 생물들이 나타나 사람의 몸속에 들어갔다. 그런데 그 생물들은 지성과 의지를 지닌 영들이었다.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곧 귀신 들리고 미쳐 버렸다. 그러나 감염된 사람들만큼 자기가 똑똑하고 진리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다고 여긴 사람은 일찍이 없었다. 한 번도 없었다. 자기 판단과 과학적 결론, 도덕적 신념과 믿음을 그토록 확고하게 여긴 적은 없었다. 마을 전체, 도시 전체, 민족 전체가 감염되어 미쳐 갔다. 모두 불안해하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누구나 자기 한 사람에게만 진리가 있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들을 보며 괴로워하고 가슴을 치고 울며 손을 비틀었다. 누구를 어떻게 심판해야 하는지 몰랐고, 무엇을 악이라 하고 무엇을 선이라 해야 하는지 합의하지 못했다. 누구를 비난하고 누구를 용서해야 하는지 몰랐다. 사람들은 무의미한 증오로 서로 죽였다. 군대를 이루어 서로 맞섰지만, 군대는 행군 도중 갑자기 스스로를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대열이 무너지고 병사들이 서로에게 달려들어 찌르고 베고, 물어뜯고 잡아먹었다. 도시에서는 온종일 비상종이 울렸다. 모두를 불러 모았지만 누가 무엇 때문에 부르는지는 아무도 몰랐고, 모두 불안해했다. 가장 평범한 생업들마저 버려졌다. 누구나 자기 생각과 수정안을 내놓아 합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농사도 멈추었다. 여기저기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달려와 무엇인가 함께 하기로 뜻을 모으고 흩어지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곧 방금 뜻한 것과 전혀 다른 일을 시작했고, 서로 비난하고 싸우고 칼로 베었다. 불이 나고 굶주림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과 모든 것이 죽어 갔다. 역병은 커져 더욱 멀리 퍼져 나갔다. 온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몇 명뿐이었다. 깨끗하고 선택받은 이들, 새로운 인류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땅을 새롭게 하며 정화하도록 정해진 이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어디에서도 그들을 보지 못했고, 그들의 말이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무의미한 헛소리가 기억 속에서 그토록 슬프고 고통스럽게 울린다는 것, 열병의 꿈이 남긴 인상이 그토록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괴로웠다. 벌써 부활절 주간이 지난 둘째 주였다. 따뜻하고 맑은 봄날들이 이어졌다. 죄수 병실의 창문을 열었다. 쇠창살이 있고 그 아래로 보초가 오가는 창이었다. 병든 동안 소냐는 병실에 두 번밖에 오지 못했다. 매번 허락을 받아야 했고, 그것이 어려웠다. 하지만 병원 마당의 창 밑에는 자주 왔다. 특히 저녁 무렵에, 때로는 그저 잠시 마당에 서서 멀리서나마 병실 창문을 보기 위해서였다. 어느 날 저녁 무렵, 거의 다 나은 라스콜니코프는 잠들었다가 깨어 무심코 창가로 갔다. 갑자기 멀리 병원 문 곁에 소냐가 보였다. 서서 무엇인가 기다리는 듯했다. 그 순간 무엇인가 가슴을 꿰뚫는 듯했다. 그는 몸을 떨고 서둘러 창에서 물러났다. 이튿날 소냐는 오지 않았다. 사흘째에도 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가 불안하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침내 퇴원했다. 감옥으로 돌아와 죄수들에게 소피야 세묘노브나가 병이 나 집에 누워 아무 데도 나가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몹시 걱정되어 사람을 보내 알아보았다. 곧 위험한 병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소냐도 그가 자기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걱정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연필로 쓴 쪽지를 보냈다. 많이 나았고 별것 아닌 가벼운 감기일 뿐이며, 곧, 아주 곧 작업장으로 만나러 가겠다고 알렸다. 그 쪽지를 읽을 때 심장은 세차고 아프게 뛰었다.

다시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이른 아침 여섯 시쯤, 그는 강가로 일하러 갔다. 그곳 창고에는 석고를 굽는 가마가 있었고 석고를 빻는 일도 했다. 일꾼은 세 명뿐이었다. 죄수 하나가 무슨 연장을 가지러 호송병과 함께 요새로 갔고, 다른 하나는 장작을 준비해 가마에 넣기 시작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창고에서 나와 강가로 가, 창고 곁에 쌓인 통나무 위에 앉아 넓고 쓸쓸한 강을 바라보았다. 높은 강둑에서는 너른 주위가 펼쳐졌다. 먼 맞은편 기슭에서 노랫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곳 햇빛에 잠긴 끝없는 초원에는 유목민의 천막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검은 점으로 흩어져 있었다. 그곳에는 자유가 있었고, 이곳 사람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이 살았다. 시간 자체가 멈춘 듯했다. 아브라함과 그 가축 떼의 시대가 아직 지나지 않은 것 같았다. 라스콜니코프는 앉아서 눈을 떼지 않고 가만히 바라보았다. 생각은 몽상과 관조로 옮아갔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떤 비애가 그를 흔들고 괴롭혔다.

갑자기 소냐가 곁에 있었다. 거의 소리 없이 다가와 나란히 앉았다. 아직 아주 이른 때라 아침의 서늘함이 가시지 않았다. 소냐는 초라한 낡은 외투와 녹색 숄을 걸치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직 병의 흔적이 남아, 여위고 창백하고 수척했다. 다정하고 기쁘게 웃었지만, 늘 그렇듯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소냐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때로는 그가 뿌리칠까 두려운 듯 아예 내밀지 않기도 했다. 그는 늘 역겨워하는 듯 그 손을 잡았고, 늘 짜증스럽다는 듯 맞았다. 방문 내내 고집스럽게 말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소냐가 그를 두려워하며 깊은 슬픔 속에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재빨리 소냐를 한번 보고 아무 말 없이 눈을 땅으로 내렸다. 둘뿐이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다. 호송병은 마침 다른 쪽을 보고 있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자신도 몰랐다. 갑자기 무엇인가 그를 들어 올려 소냐의 발 앞에 내던지는 듯했다. 그는 울며 소냐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처음 순간 소냐는 몹시 겁을 먹고 얼굴 전체가 죽은 듯 굳었다. 벌떡 일어나 떨며 그를 보았다. 그러나 곧,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을 이해했다. 눈에 끝없는 행복이 빛났다. 그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 한없이 사랑한다는 것, 마침내 그 순간이 왔다는 것을 알았고, 이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말하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둘 다 창백하고 여위었다. 그러나 병들고 창백한 그 얼굴들에는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새벽빛, 새로운 삶으로 온전히 부활하는 빛이 비쳤다. 사랑이 두 사람을 되살렸다. 한 사람의 마음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한 끝없는 생명의 샘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기다리고 견디기로 했다. 아직 칠 년이 남아 있었다. 그때까지 얼마나 많은 견딜 수 없는 고통과 끝없는 행복이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되살아났고, 그것을 알았다. 새로워진 존재 전체로 온전히 느꼈다. 그리고 소냐는, 소냐는 오직 그의 삶 하나로 살아왔던 것이다!

같은 날 저녁, 막사 문이 잠긴 뒤 라스콜니코프는 널빤지 침상에 누워 소냐를 생각했다. 그날은 예전에 적이었던 유형수들까지 모두 자기를 다르게 보는 듯했다. 자신이 먼저 말을 걸기도 했고, 그들은 다정하게 대답했다. 이제 그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소냐를 생각했다. 자기가 끊임없이 괴롭히고 그 마음을 찢어 놓았던 일을 떠올렸다. 창백하고 여윈 얼굴도 떠올렸다. 하지만 이제 그 기억들은 거의 괴롭지 않았다. 얼마나 끝없는 사랑으로 그 모든 고통을 갚을 것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날의 그 모든, 모든 고통은 무엇이란 말인가! 처음 밀려온 감정 속에서, 모든 것, 자기 범죄조차, 판결과 유형조차 바깥의 이상한 사실처럼, 심지어 자신에게 일어나지도 않은 일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 저녁 그는 어떤 것을 오래 꾸준히 생각하거나 정신을 집중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의식적으로 무엇을 해결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느낄 뿐이었다. 논리를 주고받던 자리에 삶이 들어섰고, 의식 속에서는 전혀 다른 무엇이 자라나야 했다.

베개 밑에는 복음서가 있었다. 그는 무심결에 그것을 집어 들었다. 소냐의 책이었다. 소냐가 나사로의 부활을 읽어 주었던 바로 그 책이었다. 유형살이 초기에는 소냐가 종교로 괴롭히고, 복음서 이야기를 꺼내고, 책들을 떠맡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몹시 놀랍게도 소냐는 한 번도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복음서를 권하기조차 하지 않았다. 병이 나기 얼마 전에 그가 먼저 빌려 달라고 했고, 소냐는 말없이 가져다주었다. 지금껏 그는 펼쳐 보지도 않았다.

지금도 펼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생각 하나가 스쳤다. '이제 그 사람의 믿음이 내 믿음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적어도 그 감정과 그 소망은……'

소냐도 하루 종일 마음이 설렜고, 밤에는 다시 아프기까지 했다. 그러나 너무 행복해서 자기 행복이 거의 두려울 정도였다. 칠 년, 겨우 칠 년! 행복의 첫머리에서, 어떤 순간 두 사람은 그 칠 년을 칠 일처럼 여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는 새로운 삶이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직 비싼 값을 치르고 얻어야 한다는 것, 앞으로의 크나큰 실천으로 그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여기서는 벌써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한 사람이 차츰 새로워지는 이야기, 차츰 거듭나는 이야기,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서서히 옮아가고 지금껏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현실을 알아 가는 이야기다. 그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이야기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