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콜니코프는 제 마음속에도 그토록 큰 공포와 고통을 품고 있으면서 루진에 맞서 소냐를 힘차고 적극적으로 변호했다. 아침부터 너무도 괴로웠던 터라, 견딜 수 없게 된 마음을 다른 데로 돌릴 기회가 생긴 것이 차라리 반가운 듯했다. 소냐를 감싸려는 마음에 얼마나 깊은 개인적인 정과 진심이 담겨 있었는지는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게다가 곧 소냐와 마주해야 한다는 일이 줄곧 마음에 걸려, 특히 어떤 순간에는 몹시 불안했다. 리자베타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소냐에게 말해야 했다. 그때 닥칠 끔찍한 고통을 미리 느끼며 두 손으로라도 밀쳐 내려는 듯했다. 그러니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의 집에서 나오며 “자, 이제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소피야 세묘노브나?” 하고 외쳤을 때만 해도, 방금 루진에게 거둔 승리에 고무되어 겉으로는 여전히 기운이 넘치고 도전적인 흥분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카페르나우모프의 집에 이르자 갑자기 힘이 빠지고 두려워졌다. 문 앞에 멈춰 서서 이상한 물음을 곱씹었다. '리자베타를 누가 죽였는지 꼭 말해야 하나?' 이상한 물음이었다. 바로 그 순간, 말하지 않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순간을 잠깐이라도 늦출 수 없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늦출 수 없는지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저 그렇게 느꼈고, 피할 수 없는 일 앞에서 자신이 아무 힘도 없다는 괴로운 자각에 거의 짓눌릴 지경이었다. 더는 생각하며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재빨리 문을 열고 문턱에서 소냐를 바라보았다. 소냐는 작은 탁자에 팔꿈치를 짚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앉아 있다가, 라스콜니코프를 보자 기다리고 있었던 듯 얼른 일어나 맞으러 왔다.
“당신이 안 계셨으면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방 한가운데서 마주치자 소냐가 서둘러 말했다. 무엇보다도 이 말을 어서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려고 기다린 것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탁자로 가서 소냐가 방금 일어난 의자에 앉았다. 소냐는 어제와 똑같이 두 걸음 떨어져 그 앞에 섰다.
“어떻습니까, 소냐?” 말문을 열다가 문득 제 목소리가 떨린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모든 일이 그 「사회적 지위와 그에 따르는 습관」에 달려 있었던 셈이지요. 아까 그 말뜻을 알아들으셨습니까?”
소냐의 얼굴에 고통이 어렸다.
“어제처럼 말씀하시지만 말아 주세요!” 소냐가 말을 끊었다. “제발, 또 시작하지 마세요. 지금도 괴로운 일이 충분히 많아요…….”
그러고는 핀잔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까 겁이 나서 얼른 웃어 보였다.
“제가 바보같이 거길 나와 버렸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나요? 방금 가 보려던 참인데, 혹시…… 당신이 오실까 해서요.”
그는 아말리야 이바노브나가 그들을 집에서 쫓아내고 있으며,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 어디론가 '정의를 찾으러' 뛰쳐나갔다고 전했다.
“아, 하느님! 어서 가요…….”
소냐가 벌떡 일어나 작은 숄을 집어 들었다.
“언제나 똑같군요!” 라스콜니코프가 짜증스럽게 외쳤다. “당신은 그 사람들 생각밖에 없어요! 나하고 좀 있어 주세요.”
“하지만……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는요?”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야 집을 뛰쳐나갔다면 당연히 당신한테도 들르겠지요. 당신을 그냥 지나칠 리가 있습니까.” 그가 투덜거리며 덧붙였다. “여기 와서 당신이 없으면 결국 당신 잘못이 될 텐데요…….”
소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다 의자에 걸터앉았다. 라스콜니코프는 바닥을 바라보며 무언가 생각에 잠겨 말이 없었다.
“이번에 루진은 그럴 마음까지는 없었다고 합시다.” 소냐를 보지 않은 채 말을 꺼냈다. “하지만 마음만 먹었더라면, 아니면 무슨 셈속으로든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나와 레베자트니코프가 마침 거기 없었다면 당신을 감옥에 처넣었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네.” 소냐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네!” 불안하고 정신이 팔린 채 되풀이했다.
“실제로 내가 거기 없을 수도 있었어요! 레베자트니코프는 정말 우연히 끼어든 거고요.”
소냐는 말이 없었다.
“그럼 감옥에 갔더라면 어떻게 됐겠습니까? 내가 어제 한 말 기억합니까?”
이번에도 대답이 없었다. 그는 잠시 기다렸다.
“또 「아, 말씀하지 마세요, 그만하세요!」 하고 소리칠 줄 알았는데.” 라스콜니코프가 억지로 웃었다. “왜 또 말이 없습니까?” 잠시 뒤에 물었다. “무슨 이야기든 해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당신이 어떤 「문제」를 어떻게 풀지 꼭 알고 싶어졌습니다. 레베자트니코프의 말을 빌리자면 말이지요.” 말이 조금씩 엉키는 듯했다. “아니, 정말입니다. 진지하게 묻는 거예요. 소냐, 루진의 속셈을 미리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때문에 카테리나 이바노브나도 아이들도 완전히 파멸한다는 것을, 틀림없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요. 당신도 덤으로 망하고요. 당신은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걸로 치니까 덤이라고 합시다. 폴레치카도 마찬가지예요…… 그 아이도 같은 길로 갈 테니까. 자,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갑자기 당신 결정에 맡긴다면요? 이쪽을 세상에 살게 할지 저쪽을 살게 할지, 그러니까 루진이 살아서 못된 짓을 하게 할지, 카테리나 이바노브나가 죽게 할지를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결정하겠습니까? 누가 죽어야 하겠어요? 당신에게 묻는 겁니다.”
소냐는 불안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머뭇거리면서 무언가를 향해 먼 데서부터 에돌아 오는 그 말투에서 예사롭지 않은 것을 느꼈다.
“그런 질문을 하실 것 같았어요.” 그를 찬찬히 살피며 말했다.
“좋아요, 그랬다고 합시다. 그래도 어떻게 결정하겠느냐는 말입니다.”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을 왜 물으세요?” 소냐가 거북해하며 말했다.
“그럼 루진이 살아서 못된 짓을 하는 편이 낫겠군요! 이것조차 감히 결정하지 못하겠습니까?”
“저는 하느님의 섭리를 알 수 없잖아요……. 물을 수 없는 것을 왜 물으세요? 그런 부질없는 질문은 왜 하시나요? 그런 일이 어떻게 제 결정에 달릴 수 있겠어요? 그리고 누가 저더러 누가 살고 누가 죽어야 하는지 심판하라고 했나요?”
“하느님의 섭리가 끼어들면 이제 아무 도리도 없지요.” 라스콜니코프가 침울하게 중얼거렸다.
“차라리 원하시는 걸 곧바로 말씀하세요!” 소냐가 괴롭게 외쳤다. “또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이렇게…… 저를 괴롭히려고만 오신 건 아니잖아요!”
더는 견디지 못하고 갑자기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그는 어둡고 괴로운 마음으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오 분쯤 지났다.
“네 말이 맞아, 소냐.” 마침내 조용히 말했다. 사람이 갑자기 달라져 있었다. 억지로 뻔뻔한 체하며 힘없이 도발하던 말투가 사라졌다. 목소리마저 문득 기운을 잃었다. “어제 내가 직접 말했지. 용서를 빌러 오는 건 아닐 거라고. 그런데 거의 첫마디부터 용서를 빌고 말았어……. 루진이니 섭리니 한 건 나 때문에 한 말이야……. 용서해 달라고 한 거였어, 소냐…….”
웃으려 했지만 창백한 미소에는 힘없이 미처 맺지 못한 무언가가 남았다. 고개를 숙이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때 갑자기 소냐를 향한, 속을 갉아먹는 듯한 기묘한 증오가 마음을 스쳤다. 스스로도 그 뜻밖의 감정에 놀라고 두려워진 듯, 문득 고개를 들어 소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주친 것은 걱정과 애틋함이 고통스러울 만큼 가득한 눈길이었다. 거기에는 사랑이 있었다. 증오는 환영처럼 사라졌다. 그 감정은 증오가 아니었다. 한 감정을 다른 감정으로 잘못 짚은 것이었다. 다만 그 순간이 왔다는 뜻이었다.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다 갑자기 낯빛이 하얗게 질리더니 의자에서 일어나 소냐를 바라보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저도 모르게 소냐의 침대로 옮겨 앉았다.
그에게 이 순간은, 도끼를 고리에서 이미 빼낸 채 노파 뒤에 서서 이제는 '한순간도 더 지체할 수 없다'고 느꼈던 순간과 끔찍할 만큼 닮아 있었다.
“왜 그러세요?” 소냐가 몹시 겁에 질려 물었다.
그는 한마디도 꺼낼 수 없었다. 이런 식으로 고백할 생각은 전혀, 전혀 없었다. 지금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다. 소냐는 조용히 다가가 침대 옆자리에 앉고는 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기다렸다. 가슴이 세차게 뛰다가 멎을 듯했다. 견딜 수가 없었다. 그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을 소냐 쪽으로 돌렸다. 무슨 말인가 하려 애쓰는 입술이 힘없이 일그러졌다. 소냐의 가슴에 공포가 번졌다.

“왜 그러세요?” 조금 물러나며 다시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소냐. 겁내지 마……. 아무것도 아니라고! 정말, 따져 보면…… 아무것도 아니야.” 정신을 잃고 헛소리하는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런데 하필 너를 괴롭히러 왜 왔을까?” 갑자기 소냐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정말이야. 왜 왔을까? 자꾸 나한테 그렇게 묻게 돼, 소냐…….”
십오 분 전에는 정말 스스로에게 그런 물음을 던졌을지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힘도 없이, 자신을 거의 의식하지도 못한 채, 온몸이 끊임없이 떨리는 것을 느끼며 말하고 있었다.
“아, 얼마나 괴로우실까요!” 소냐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괴롭게 말했다.
“다 아무것도 아니야!…… 있잖아, 소냐.” 그가 어쩐지 갑자기, 이 초쯤 창백하고 힘없는 미소를 지었다. “어제 내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기억해?”
소냐는 불안하게 기다렸다.
“떠나면서 말했지. 어쩌면 영영 작별하는 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오늘 다시 오게 되면…… 리자베타를 누가 죽였는지 말해 주겠다고.”
소냐가 갑자기 온몸을 떨었다.
“그래서 말해 주러 왔어.”
“그럼 어제 정말로…….” 소냐가 어렵게 속삭였다. “그걸 어떻게 아세요?”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재빨리 물었다.
소냐는 숨을 쉬기가 힘들어졌다. 얼굴이 점점 더 창백해졌다.
“알아.”
소냐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사람을 찾았나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니, 못 찾았어.”
“그런데 어떻게 아세요?” 다시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에도 거의 일 분 동안 침묵이 흐른 뒤였다.
그가 소냐 쪽으로 몸을 돌리고 뚫어지게,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맞혀 봐.” 아까처럼 일그러진 힘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경련 같은 것이 소냐의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 당신은…… 저를…… 왜 그렇게…… 겁을 주세요?” 소냐가 어린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 사람하고 아주 친한 사이겠지…… 알고 있으니까.” 라스콜니코프는 이제 눈을 돌릴 힘조차 없다는 듯 소냐의 얼굴을 집요하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 사람은 리자베타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 그 여자는…… 뜻하지 않게 죽였어……. 노파를 죽이려 했던 거야…… 혼자 있을 때…… 그래서 찾아갔는데……. 그때 리자베타가 들어온 거야……. 그래서…… 그 여자도 죽인 거야.”
또 한 번 끔찍한 일 분이 흘렀다. 두 사람은 줄곧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도 모르겠어?” 그가 갑자기 물었다. 종탑에서 아래로 몸을 던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모…… 모르겠어요.” 소냐가 거의 들리지 않게 속삭였다.
“잘 봐.”
그 말을 하자마자, 전에도 겪었던 익숙한 감각이 다시 그의 마음을 얼어붙게 했다. 소냐를 바라보다가 문득 그 얼굴에서 리자베타의 얼굴을 본 것 같았다. 그때 도끼를 들고 다가갔을 때의 리자베타 표정이 선명하게 기억났다. 리자베타는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벽 쪽으로 뒷걸음질 쳤다. 얼굴에는 완전히 어린아이 같은 두려움이 떠올라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갑자기 무언가에 겁을 먹으면 무서운 대상을 불안한 눈으로 빤히 쳐다보며 뒤로 물러나고, 작은 손을 앞으로 내밀며 막 울음을 터뜨리려 하는 것과 꼭 같았다. 지금 소냐에게도 거의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똑같이 힘없는 눈으로, 똑같은 두려움을 안고 한동안 그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왼손을 앞으로 내밀어 손가락 끝으로 그의 가슴을 아주 살짝 짚었다. 그러고는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서며 자꾸만 멀어졌다.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더욱 굳어 갔다. 소냐의 공포가 갑자기 그에게도 옮았다. 그의 얼굴에도 꼭 같은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 역시 소냐를 똑같이 바라보기 시작했다. 거의 같은 어린아이의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알았어?” 마침내 속삭였다.
“하느님!” 소냐의 가슴에서 끔찍한 비명이 터졌다. 베개에 얼굴을 묻고 침대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 하지만 곧 재빨리 몸을 일으켜 그에게 바싹 다가갔다. 두 손을 붙잡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죔쇠처럼 꼭 움켜쥔 채, 다시 그의 얼굴을 한곳에 붙박인 듯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 마지막 절박한 눈길로 무엇이든 한 가닥 남은 희망을 찾아내어 붙잡으려 했다. 하지만 희망은 없었다. 의심할 여지도 남지 않았다. 모두 사실이었다! 훗날 이 순간을 떠올릴 때조차 이상하고 놀라웠다. 어째서 그때는 그렇게 단번에, 더 의심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보았을까? 그렇다고 이런 일을 미리 예감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지금, 그가 막 이 말을 하고 나니, 정말로 바로 이것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만 같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만해, 소냐. 이제 됐어! 나를 괴롭히지 마!” 그가 괴롭게 애원했다.
이런 식으로 털어놓을 생각은 전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말았다.
소냐는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손을 비틀며 방 한가운데까지 갔다. 그러나 얼른 돌아와 다시 곁에 앉았다. 어깨가 거의 맞닿을 만큼 가까이 앉았다. 그러다 갑자기 무엇에 찔린 듯 몸을 떨며 소리를 지르더니, 자신도 까닭을 모른 채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떻게, 어떻게 자신에게 그런 짓을 하셨어요!” 절망에 차서 말했다. 곧 무릎을 펴고 일어나 그의 목에 매달리며 두 팔로 꼭, 꼭 끌어안았다.
라스콜니코프는 몸을 뒤로 젖히고 서글픈 미소를 지으며 소냐를 바라보았다.
“넌 참 이상해, 소냐. 이런 말을 했는데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구나. 제정신이 아니야.”
“아니, 아니야. 지금 이 세상 어디에도 당신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어!” 소냐는 그의 말을 듣지도 못한 채, 정신없이 외쳤다. 그러더니 발작이라도 일어난 듯 갑자기 목 놓아 울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감정이 물결처럼 그의 마음으로 밀려들어 한순간에 마음을 부드럽게 했다. 그는 그 감정에 저항하지 않았다. 눈에서 흘러나온 눈물 두 방울이 속눈썹에 매달렸다.
“그럼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소냐?” 거의 희망을 품은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안 버려, 안 버려. 언제도, 어디에서도!” 소냐가 외쳤다. “당신을 따라갈 거야. 어디든 따라갈 거야! 아, 하느님!…… 아, 불쌍한 나!…… 왜, 왜 당신을 진작 몰랐을까! 왜 더 일찍 오지 않았어? 아, 하느님!”
“이렇게 왔잖아.”
“이제야! 아, 이제 어떻게 하지!…… 함께, 함께!” 소냐는 정신을 잃은 듯 되풀이하며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 “유형지에도 당신과 함께 갈 거야!”
그가 갑자기 움찔했다. 예전의 그 밉살스럽고 거의 오만한 미소가 입술에 비어져 나왔다.
“소냐, 나는 아직 유형지에 갈 생각이 없을지도 몰라.” 그가 말했다.
소냐가 얼른 그를 바라보았다.
이 불행한 사람을 향해 처음 솟구쳤던 뜨겁고 고통스러운 연민이 지나자, 살인이라는 끔찍한 생각이 다시 소냐를 후려쳤다. 달라진 말투에서 갑자기 살인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냐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 어떻게,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했는지. 이제 이 모든 물음이 한꺼번에 의식 속에서 타올랐다. 다시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사람이, 이 사람이 살인자라고!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나?'
“이게 무슨 일이에요! 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사람처럼, 깊은 혼란 속에서 말했다. “어떻게 당신이, 당신 같은 사람이…… 그런 일을 결심할 수 있었어요?……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래, 돈을 빼앗으려고. 그만해, 소냐!” 그가 지친 듯, 심지어 짜증스럽기까지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냐는 얼이 빠진 듯 서 있다가 갑자기 외쳤다.
“배가 고팠던 거야! 당신은…… 어머니를 도우려고? 그렇지?”
“아니야, 소냐, 아니야.” 그가 고개를 돌려 푹 떨군 채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배고프지는 않았어……. 어머니를 돕고 싶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꼭 맞는 말은 아니야……. 나를 괴롭히지 마, 소냐!”
소냐가 두 손을 마주쳤다.
“정말로, 정말로 이게 다 사실일까요! 하느님, 어떻게 이런 게 사실일 수 있나요! 누가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어떻게, 가진 마지막 돈까지 남에게 내주시면서, 돈을 빼앗으려고 사람을 죽이셨어요! 아!” 문득 소냐가 외쳤다. “카테리나 이바노브나에게 주신 그 돈은…… 그 돈은…… 하느님, 설마 그 돈도…….”
“아니야, 소냐.” 그가 서둘러 말을 끊었다. “그건 그 돈이 아니야. 진정해! 그 돈은 어머니가 어떤 상인을 통해 보내 주신 거야. 내가 아플 때 받았어. 건네준 바로 그날에……. 라주미힌이 봤어……. 그 친구가 대신 받아 주기도 했고……. 그건 내 돈이야. 나 자신의 돈, 정말 내 돈이야.”
소냐는 어리둥절한 채 들으면서 있는 힘을 다해 무언가를 이해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 돈은…… 사실 거기 돈이 들어 있었는지도 몰라.” 그가 낮은 목소리로 생각에 잠긴 듯 덧붙였다. “그때 노파 목에서 지갑을 벗겼어. 스웨이드 지갑이었어……. 꽉 차서 불룩한 지갑이었는데…… 안을 들여다보지 않았어. 아마 그럴 틈이 없었겠지……. 그리고 물건들은, 무슨 커프스단추하고 사슬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 물건하고 지갑을 모두 V대로에 있는 남의 집 마당, 돌 밑에 숨겼어. 바로 이튿날 아침에. 지금도 다 거기 있어.”
소냐는 온 힘을 기울여 들었다.
“그럼 왜…… 돈을 빼앗으려고 그랬다면서, 어떻게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으셨어요?” 지푸라기라도 잡듯 급히 물었다.
“모르겠어……. 그 돈을 가져갈지 말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어.” 그가 다시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그러다 갑자기 정신을 차리고 짧게 피식 웃었다. “참, 내가 방금 무슨 바보 같은 말을 했지?”
소냐의 머리에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을 버렸다. 아니다, 다른 무엇이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있잖아, 소냐.” 그가 문득 무슨 영감을 받은 듯 말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만일 내가 오로지 배가 고파서 베어 죽였다면 말이야.” 한 마디 한 마디에 힘을 주며, 알 수 없으면서도 진실한 눈으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그랬다면 지금 나는…… 행복했을 거야! 그걸 알아 둬!”
“그런데 그게 너한테 무슨 소용이지, 무슨 소용이 있어!” 잠시 뒤에는 절망까지 서린 목소리로 외쳤다. “지금 내가 잘못했다고 인정한들 너한테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나를 이겼다고 그렇게 어리석은 기쁨을 누리면 뭐 해? 아, 소냐, 내가 지금 그러려고 너를 찾아왔겠어!”
소냐는 다시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제 같이 가자고 한 건, 이제 내게 남은 사람이 너 하나뿐이기 때문이야.”
“어디로 가자고요?” 소냐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훔치러도 아니고, 죽이러도 아니야. 걱정 마. 그런 일 때문은 아니야.” 그가 쓰게 웃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야……. 그런데 소냐, 어제 너더러 어디로 가자고 했는지, 나도 이제야, 바로 지금에야 알았어. 어제 같이 가자고 할 때는 나도 어딘지 몰랐거든. 한 가지 때문이었어. 오로지 그 한 가지 때문에 부르고, 그 때문에 찾아왔어. 나를 버리지 말라고. 버리지 않을 거지, 소냐?”
소냐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내가 왜, 왜 이 사람에게 말했지? 왜 털어놓았을까!” 잠시 뒤, 한없는 고통을 담은 눈으로 소냐를 바라보며 절망적으로 외쳤다. “너는 내 설명을 기다리고 있어, 소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나도 알아. 그런데 무슨 말을 하겠어? 너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야. 다만 괴로워하다 지쳐 버리겠지……. 나 때문에! 봐, 너는 울면서 또 나를 안아 주잖아. 그런데 왜 나를 안아 주는 거야? 나 혼자 견디지 못해서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러 왔기 때문에? 「너도 괴로워해 봐. 그러면 내가 좀 편해질 테니까!」 이런 비열한 놈을 사랑할 수 있어?”
“당신도 괴로워하고 있잖아!” 소냐가 외쳤다.
다시 같은 감정이 물결처럼 그의 마음으로 밀려들었고, 다시 한순간 그 마음을 부드럽게 했다.
“소냐, 내 마음은 악해. 그걸 알아 둬. 그러면 많은 일이 설명될 거야. 내가 온 것도 악하기 때문이야. 어떤 사람은 아예 오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나는 겁쟁이고…… 비열한 놈이야! 그렇지만…… 됐어! 다 그 이야기가 아니야……. 이제 말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
그는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아, 우리는 서로 다른 사람이야!” 다시 외쳤다. “서로 맞지 않아. 그런데 왜, 왜 내가 왔을까! 이 일은 나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거야!”
“아니, 아니야. 와서 잘한 거야!” 소냐가 외쳤다. “내가 아는 편이 나아! 훨씬 나아!”
그가 괴로운 눈으로 소냐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정말 그렇기도 해!”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말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 이거야. 나는 나폴레옹이 되고 싶었어. 그래서 죽였어……. 자, 이제 알겠어?”
“아…… 아니.” 소냐가 순진하고도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그렇지만…… 말해, 말해 줘! 이해할게. 나 나름대로 다 이해할게!” 그에게 애원했다.
“이해한다고? 좋아, 어디 보자.”
그는 입을 다물고 한참 생각했다.
“이런 거야. 언젠가 이런 질문을 해 봤어. 이를테면 나폴레옹이 내 처지에 놓였다면 어떨까? 출세를 시작하는 데 툴롱도 없고, 이집트도 없고, 몽블랑을 넘는 일도 없었다면. 그렇게 근사하고 기념비적인 일들 대신, 우스꽝스러운 하급 관리의 미망인인 늙은 여자 하나만 달랑 있었다면. 게다가 그 여자를 죽여야 궤짝에서 돈을 꺼낼 수 있었다면. 출세하려고 말이야, 알겠지? 그렇다면 달리 나갈 길이 없을 때 나폴레옹은 그 일을 결심했을까? 너무도 기념비적이지 못하고…… 또 죄가 되는 일이라서 꺼림칙해하지 않았을까?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끔찍하게 오래 괴로워했어. 그러다가 마침내 문득 알아차리고 나서는, 그때까지 고민했다는 게 몹시 부끄러워졌지. 나폴레옹은 꺼림칙해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일이 기념비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거야……. 대체 꺼림칙해할 게 뭐냐는 말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거야! 그리고 다른 길이 없었다면, 찍소리도 못 내게 목을 졸라 죽였겠지. 조금도 골똘히 생각하지 않고!…… 그래서 나도…… 골똘한 생각을 그만두고…… 목을 졸랐어……. 권위 있는 선례를 따라서……. 정확히 그랬어! 우스워? 그래, 소냐. 여기서 가장 우스운 건, 어쩌면 정말로 그런 이유였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소냐는 조금도 우습지 않았다.
“차라리 곧바로 말씀해 주세요……. 예를 들지 말고요.” 더욱 조심스러워진,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그가 소냐 쪽으로 몸을 돌리고 슬픈 눈으로 바라보더니 두 손을 잡았다.
“이번에도 네 말이 맞아, 소냐. 다 헛소리야. 거의 말장난일 뿐이지! 봐, 우리 어머니에게 가진 것이 거의 없다는 건 너도 알잖아. 누이는 어쩌다 교육을 받았지만, 가정교사로 이 집 저 집 떠돌아야 할 처지야. 두 사람의 희망은 오직 나 하나에게 달려 있었어. 나는 공부를 했지만, 대학에 다니며 생활을 꾸려 갈 수가 없어서 한동안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 그렇게 계속 버텼더라도, 십 년이나 십이 년쯤 뒤에는, 사정이 잘 풀린다면, 어쨌든 교사나 관리가 되어 천 루블쯤 봉급을 받으리라는 기대는 할 수 있었겠지…….” 그는 외워 둔 말을 하듯 이야기했다. “그때쯤이면 어머니는 걱정과 슬픔으로 바싹 말라 버리셨을 거야. 그래도 나는 편히 모시지 못했을 테고, 누이는…… 누이는 더 나쁜 일을 당했을 수도 있지!…… 게다가 무엇 때문에 평생 모든 것을 그냥 지나치고, 모든 것에서 눈을 돌리고, 어머니를 잊고, 이를테면 누이가 모욕당하는 것도 공손히 참아야 하지? 무엇 때문에? 두 사람을 묻고 나서 새 가족을, 아내와 아이들을 얻은 다음, 그 사람들마저 한 푼도, 먹을 것 한 조각도 없이 남겨 두려고? 그래서…… 그래서 노파의 돈을 손에 넣어 처음 몇 해 동안 쓰기로 한 거야. 어머니를 괴롭히지 않고 대학에 다니며 생활을 꾸리고, 졸업한 뒤 첫걸음을 내딛는 데 쓰려고. 그것도 크게, 철저하게 해치워서, 새로운 앞날을 완전히 마련하고 새롭고 독립적인 길로 들어서려 했지…….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게 다야……. 물론 노파를 죽인 건…… 잘못한 일이야……. 그래, 그걸로 됐어!”
기진맥진한 듯 가까스로 말을 끝내고 고개를 떨구었다.
“아, 그게 아니에요, 그게 아니에요.” 소냐가 괴롭게 외쳤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가……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너도 아닌 줄 아는구나!……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말했어. 사실을!”
“그게 무슨 사실이에요! 아, 하느님!”
“소냐, 나는 그저 이 한 마리를 죽였을 뿐이야. 쓸모없고, 역겹고, 해로운 이를.”
“사람이 이라고요!”
“나도 이가 아니라는 건 알아.” 그가 소냐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소냐.” 덧붙였다. “아까부터 줄곧 거짓말이야……. 다 그게 아니야. 네 말이 맞아. 전혀, 전혀, 전혀 다른 이유들이 있어!…… 소냐, 나는 오랫동안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어……. 지금 머리가 몹시 아파.”
눈에는 열에 들뜬 불빛이 타올랐다. 거의 헛소리를 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불안한 미소가 입가를 맴돌았다. 흥분한 마음 사이로 이미 무서운 탈진의 기색이 비쳤다. 소냐는 그가 얼마나 괴로운지 알았다. 소냐도 머리가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가 하는 말은 참 이상했다. 무언가 이해될 듯도 했지만……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아, 하느님!' 소냐는 절망에 빠져 손을 비틀었다.
“아니야, 소냐. 그게 아니야!” 그가 다시 말을 시작했다. 생각이 갑자기 다른 쪽으로 돌아서 놀라고 다시 흥분한 듯,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게 아니야!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 봐. 그래, 이게 정말 더 낫겠어! 내가 자존심이 세고, 질투가 많고, 악하고, 비열하고, 앙심을 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봐. 그리고…… 어쩌면 정신이 이상해질 소질까지 있다고. 한꺼번에 다 말해 버리자! 정신이 이상하다는 말은 전에도 사람들이 했어. 나도 알아차렸지! 아까 대학에 다니면서 생활을 꾸릴 수 없었다고 했지. 그런데 어쩌면 할 수도 있었다는 걸 알아? 어머니가 납부할 돈은 보내 주셨을 거야. 장화와 옷과 빵값은 나도 벌 수 있었어. 틀림없이! 가르칠 자리도 있었고, 오십 코페이카씩 주겠다는 곳도 있었어. 라주미힌은 일하고 있잖아! 그런데 나는 악에 받쳐서 하기 싫었던 거야. 바로 악에 받쳤던 거야. 이 말이 딱 맞아! 그때 나는 거미처럼 내 구석으로 파고들었어. 내 굴 같은 방에 와 봤으니 알잖아……. 소냐, 낮은 천장과 비좁은 방이 사람의 마음과 정신까지 짓누른다는 걸 알아? 아, 그 방이 얼마나 싫었던지! 그래도 나가려고 하지 않았어. 일부러 나가려 하지 않았어! 며칠씩 나가지 않고, 일도 하기 싫고, 먹는 것조차 싫어서 그저 누워 있었어. 나스타시야가 가져다주면 먹고, 안 가져다주면 하루가 그냥 지나갔지. 악에 받쳐서 일부러 달라고 하지 않았어! 밤에는 불도 없어서 어둠 속에 누워 있었지만, 초를 살 돈도 벌기 싫었어. 공부해야 하는데 책은 팔아 버렸지. 지금도 내 탁자 위, 메모와 공책 위에는 손가락 두께로 먼지가 쌓여 있어. 누워서 생각하는 편이 더 좋았어. 줄곧 생각했어……. 그리고 자꾸 그런 꿈을 꾸었어. 이상한 꿈, 갖가지 꿈을. 어떤 꿈인지 말할 것도 없어! 그런데 그때부터 이런 생각도 어렴풋이 들기 시작했어……. 아니야, 그게 아니야! 또 잘못 말하고 있어! 봐, 그때 나는 자꾸 이렇게 물었어. 남들이 어리석다면, 그리고 그들이 어리석다는 것을 내가 분명히 안다면, 나는 왜 더 영리해지려 하지 않을 만큼 어리석은 걸까? 그러다가 알게 됐어, 소냐. 모두가 똑똑해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너무 오래 걸리겠다는 걸……. 그러고는 또 알았어. 그런 일은 영원히 일어나지 않는다는 걸. 사람은 변하지 않고, 누구도 사람을 뜯어고칠 수 없고, 애쓸 가치도 없다는 걸! 그래, 그런 거야! 그게 그들의 법칙이야……. 법칙이라고, 소냐! 그런 거야!…… 이제 나는 알아, 소냐. 지성과 정신이 굳세고 강한 사람이 그들 위의 지배자가 된다는 걸! 대담하게 많은 일을 감행하는 사람이 그들에게는 옳은 사람이야. 더 많은 것을 무시하고 내팽개칠 수 있는 사람이 그들에게는 입법자가 되고, 누구보다 더 대담해질 수 있는 사람이 누구보다 옳은 사람이 돼! 여태 그렇게 되어 왔고 앞으로도 언제나 그럴 거야! 눈먼 사람만 못 알아보지!”
이 말을 하면서 라스콜니코프는 소냐를 보고는 있었지만, 소냐가 이해하는지 아닌지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열기가 그를 완전히 사로잡았다. 어두운 도취에 빠져 있었다. 실제로 너무도 오래 아무하고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다! 소냐는 이 어두운 교리 문답이 그의 신앙이자 법칙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때 알아차렸어, 소냐.” 그가 열에 들떠 말을 이었다. “권력은 감히 몸을 굽혀 그것을 집어 드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걸. 필요한 건 하나야. 오직 하나, 감히 해 보는 것뿐이야! 그때 생전 처음으로 어떤 생각이 떠올랐어. 나보다 먼저 그 누구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생각이! 아무도! 문득 대낮처럼 환히 보였어. 어째서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감히, 이 온갖 어처구니없는 것들을 지나가다가, 한꺼번에 꼬리째 움켜쥐고 죄다 털어 버리지 못했을까? 어째서 지금도 그러지 못할까! 나는…… 나는 감히 해 보고 싶어서 죽였어……. 그저 감히 해 보고 싶었어, 소냐. 이유는 그것뿐이야!”
“아, 그만하세요, 그만하세요!” 소냐가 두 손을 마주치며 소리쳤다. “하느님에게서 떠나셨으니 하느님이 당신을 벌하시고 악마에게 넘기신 거예요!”
“참, 소냐. 그럼 내가 어둠 속에 누워 그런 생각을 자꾸 했던 건, 악마가 나를 유혹해서였을까? 응?”
“그만하세요! 비웃지 마세요, 하느님을 모독하는 사람이여.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시는군요! 아, 하느님! 이 사람은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만해, 소냐. 비웃는 게 아니야. 악마가 나를 끌고 갔다는 건 나도 알아. 그만해, 소냐. 그만해!” 그가 어둡고 단호하게 되풀이했다. “나는 다 알아. 그때 어둠 속에 누워 이 모든 것을 이미 생각하고 혼자 속삭여 봤어……. 아주 사소한 구석까지 나 자신과 다투어 봤고, 전부 알아. 전부! 그때는 그런 말들이 얼마나 지겹고, 또 얼마나 지겨웠는지! 나는 다 잊고 새로 시작하고 싶었어, 소냐. 지껄이는 걸 그만두고 싶었어! 내가 바보처럼 앞뒤도 안 가리고 갔다고 생각해? 나는 똑똑한 사람처럼 갔어.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한 거야! 이를테면 내가 이런 것조차 몰랐을 것 같아? 권력을 가질 권리가 내게 있는가 하고 스스로 묻고 또 캐묻기 시작했다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권력을 가질 권리가 없는 거라는 것. 또는 사람이 이인가 하고 묻는다면, 적어도 내게는 이미 사람이 이가 아니라는 것.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고 묻지도 않은 채 곧장 나아가는 사람에게나 인간이 이인 거야……. 나폴레옹이라면 갔을까, 안 갔을까 하고 그렇게 여러 날 괴로워했다면, 이미 내가 나폴레옹이 아니라는 걸 분명히 느끼고 있었던 거지……. 나는 그 모든 말에서 오는 괴로움을 전부, 전부 견뎠어, 소냐. 그래서 그 모든 것을 어깨에서 털어 버리고 싶었던 거야. 소냐, 나는 궤변 없이 죽이고 싶었어. 나를 위해,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 죽이고 싶었어! 이 점에서는 나 자신에게조차 거짓말하고 싶지 않았어! 어머니를 도우려고 죽인 게 아니야. 헛소리야! 돈과 권력을 얻어 인류의 은인이 되려고 죽인 것도 아니야. 헛소리야! 그냥 죽였어. 나를 위해 죽였어. 나 하나만을 위해. 그러고 나서 누군가의 은인이 됐든, 평생 거미처럼 사람들을 거미줄에 붙잡아 생명의 즙을 빨아먹었든, 그 순간의 나에게는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야 했어!…… 소냐, 죽일 때 무엇보다 필요했던 건 돈이 아니었어. 돈보다는 다른 것이 필요했어……. 이제 나는 다 알아……. 내 말을 이해해 봐. 어쩌면 같은 길을 그대로 가더라도 두 번 다시는 살인하지 않았을 수도 있어.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다른 것이었어. 내 손을 움직이게 한 것도 다른 것이었어. 그때 나는 알아야 했어. 그것도 서둘러 알아야 했어. 나도 남들처럼 이인가, 아니면 사람인가? 내가 넘어설 수 있을까, 없을까! 감히 몸을 굽혀 집어 들 수 있을까, 없을까? 나는 벌벌 떠는 피조물인가, 아니면 권리가 있는가…….”
“죽일 권리요? 사람을 죽일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소냐가 두 손을 마주치며 외쳤다.
“아, 소냐!” 그가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무슨 반박인가 하려다가 경멸하듯 입을 다물었다. “말을 끊지 마, 소냐! 너한테 한 가지만 증명하고 싶었어. 그때 악마가 나를 끌고 가 놓고, 나중에야 나한테 거기 갈 권리가 없었다고 알려 주었다는 거야. 나도 남들과 똑같은 이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악마가 나를 비웃은 거야. 그래서 지금 너를 찾아왔어! 손님을 맞아 줘! 내가 이가 아니었다면 너한테 왔겠어? 잘 들어. 그때 노파에게 간 건 그냥 시험해 보려고 간 거였어……. 그렇게 알아 둬!”
“그러고 사람을 죽였어요! 죽였다고요!”
“하지만 그게 어떻게 죽인 거야? 그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나? 내가 그때 갔던 식으로 죽이러 가는 사람이 있나! 언젠가 내가 어떻게 갔는지 말해 줄게……. 내가 그 늙은 여자를 죽였나? 나 자신을 죽였지, 늙은 여자를 죽인 게 아니야! 그 자리에서 나 자신을 단숨에 끝장내 버린 거야. 영원히!…… 그 늙은 여자는 악마가 죽였어. 내가 아니라……. 그만, 그만해, 소냐. 이제 됐어! 나를 내버려 둬.” 그가 갑자기 경련 같은 고통 속에서 외쳤다. “나를 내버려 둬!”
무릎에 팔꿈치를 짚고 두 손바닥으로 머리를 죔쇠처럼 꽉 움켜쥐었다.
“이 얼마나 큰 고통인가요!” 소냐에게서 고통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말해 봐!” 그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물었다. 절망으로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소냐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소냐가 외치며 벌떡 일어났다. 여태 눈물로 가득했던 두 눈이 갑자기 빛났다. “일어나!”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는 거의 놀란 눈으로 소냐를 바라보며 몸을 조금 일으켰다. “지금 가. 바로 이 순간에 가서 네거리에 서. 몸을 굽혀 먼저 당신이 더럽힌 땅에 입을 맞춰. 그러고는 온 세상을 향해, 사방으로 몸을 굽혀 인사하고 모든 사람에게 큰 소리로 말해. 「내가 죽였습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다시 생명을 보내 주실 거야. 갈 거지? 갈 거지?”
소냐는 발작이라도 하는 듯 온몸을 떨며 물었다. 그의 두 손을 붙잡아 자기 손안에 꽉 쥐고 불타는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는 놀랐다. 소냐의 갑작스러운 열정에 충격을 받기까지 했다.
“소냐, 유형지에 가라는 말이야? 내 죄를 고발하라는 건가?” 그가 침울하게 물었다.
“고통을 받아들이고 그 고통으로 속죄해야 해. 해야 할 일은 그거야.”
“아니야! 나는 그 사람들에게 가지 않아, 소냐.”
“그럼 어떻게 살 거야, 어떻게 살아갈 거야? 무엇을 의지해서 살겠어?” 소냐가 외쳤다. “이대로 살아갈 수가 있겠어? 어머니와는 어떻게 이야기할 거야? 아, 그분들은, 이제 그분들은 어떻게 될까! 아, 내가 무슨 말을! 이미 어머니와 누이를 버렸잖아. 벌써 버렸어. 버렸다고. 아, 하느님!” 소냐가 외쳤다. “이 사람은 벌써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어떻게, 어떻게 사람 없이 살아갈 수 있겠어!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될까!”
“어린애처럼 굴지 마, 소냐.” 그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무슨 잘못을 했어? 왜 가야 하지? 가서 무슨 말을 해? 다 허상일 뿐이야……. 자기들은 수백만 명을 죽이면서 그것을 미덕으로 여기기까지 하잖아. 그들은 사기꾼이고 비열한 자들이야, 소냐!…… 가지 않겠어. 무슨 말을 하겠어? 죽이기는 했는데 감히 돈을 가져가지 못하고 돌 밑에 숨겼다고?” 쓰디쓴 비웃음을 띠며 덧붙였다. “그러면 오히려 나를 비웃겠지. 돈을 안 가져가다니 바보라고 할 거야. 겁쟁이에 바보라고! 아무것도,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소냐. 이해할 자격도 없어. 내가 왜 가지? 안 가. 어린애처럼 굴지 마, 소냐…….”
“괴로워서 견디지 못할 거야. 견디지 못할 거야.” 소냐가 절박하게 애원하며 그를 향해 두 팔을 내밀고 되풀이했다.
“어쩌면 내가 나를 모함했는지도 몰라.” 그가 생각에 잠긴 듯 어둡게 말했다. “어쩌면 나는 아직 이가 아니라 사람이고, 너무 서둘러 나를 단죄했는지도 모르지……. 더 싸워 볼 거야.”
오만한 미소가 입술에 비어져 나왔다.
“그런 고통을 짊어지고! 평생을, 평생을 그래야 하는데!”
“익숙해지겠지…….” 그가 침울하게, 깊이 생각하며 말했다. 잠시 뒤 다시 말을 꺼냈다. “들어 봐. 이제 울지 마. 할 이야기를 해야겠어. 나를 찾고 있다고, 잡으려 한다고 알려 주러 왔어…….”
“아!” 소냐가 놀라 외쳤다.
“왜 소리를 질러! 나더러 유형지에 가라더니, 이제는 겁이 나? 하지만 알아 둬. 순순히 잡히지는 않을 거야. 그들과 더 싸울 거야. 아무것도 못 할걸. 확실한 증거가 없거든. 어제는 아주 위험했어. 다 끝났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오늘은 사정이 나아졌어. 그들이 가진 정황은 모두 양쪽으로 해석할 수 있어. 그러니까 그들의 혐의를 내게 유리하게 뒤집을 수 있다는 거야. 알겠어? 그렇게 할 거야. 이제 방법을 배웠으니까……. 그래도 감옥에는 틀림없이 가두겠지. 한 가지 일이 없었다면 오늘 가뒀을지도 몰라. 틀림없이 그랬을 거야. 아니, 아직 오늘 가둘 수도 있어……. 하지만 괜찮아, 소냐. 좀 갇혀 있다가 나오면 돼……. 확실한 증거는 하나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테니까. 장담해. 지금 가진 것만으로는 사람을 옭아매지 못해. 자, 이제 됐어……. 너는 알고 있으라고 말한 것뿐이야……. 누이와 어머니는 어떻게든 의심을 풀고 겁먹지 않도록 해 볼 거야……. 하긴 누이는 이제 앞날이 보장된 것 같으니까…… 어머니도 그렇겠지……. 그래, 그게 다야. 그래도 조심해. 내가 갇혀 있으면 감옥으로 만나러 올 거야?”
“아, 갈 거야! 갈 거야!”
두 사람은 슬프고 맥이 풀린 채 나란히 앉아 있었다. 폭풍이 지나간 뒤 아무도 없는 해안에 단둘이 떠밀려 온 것 같았다. 그는 소냐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이 쏟아지고 있는지 느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이 갑자기 무겁고 아팠다. 그렇다. 기묘하고도 끔찍한 느낌이었다! 소냐를 찾아올 때는 이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희망과 유일한 길이 있다고 느꼈다. 고통의 일부라도 내려놓으려 했다. 그런데 이제 소냐의 마음 전체가 자신을 향하자, 문득 이전보다도 비할 수 없이 불행해졌음을 느끼고 깨달았다.
“소냐.” 그가 말했다. “내가 감옥에 갇히면 차라리 찾아오지 마.”
소냐는 대답하지 않았다. 울고 있었다. 몇 분이 흘렀다.
“십자가를 걸고 있어?” 갑자기 생각난 듯 불쑥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없지? 안 걸고 있지? 자, 이것을 받아. 사이프러스 나무로 만든 거야. 내게는 다른 것이 하나 남았어. 구리로 된 것, 리자베타 거야. 우리는 서로 십자가를 바꿨어. 리자베타는 자기 십자가를 주고, 나는 내 성상을 주었어. 이제 나는 리자베타 것을 걸게. 이것은 당신이 가져. 받아……. 내 거야! 내 거라고!” 소냐가 애원했다. “우리 함께 고통을 겪으러 갈 거잖아. 십자가도 함께 지자!”
“줘!” 라스콜니코프가 말했다. 소냐를 슬프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십자가를 받으려고 내민 손을 곧바로 거두었다.
“지금은 아니야, 소냐. 나중에 하는 게 낫겠어.” 소냐를 달래려고 덧붙였다.
“그래, 그래. 그게 좋아. 그게 나아.” 소냐가 열심히 말을 받았다. “고통을 받아들이러 갈 때, 그때 걸어. 나한테 와. 내가 걸어 줄게. 기도하고 함께 가자.”
그때 누군가 문을 세 번 두드렸다.
“소피야 세묘노브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몹시 낯익은 누군가의 공손한 목소리가 들렸다.
소냐는 놀라 문으로 달려갔다. 금발의 레베자트니코프 씨가 방 안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